여름날

                          김사인

 

풀들이 시드렁거드렁 자랍니다

제 오래비 시누 올케에다

시어미 당숙 조카 생질 두루 어우러져

여름 한낮 한가합니다

 

봉숭아 채송화 분꽃에 양아욱

산나리 고추가 핍니다

언니 아우 함께 핍니다

 

암탉은 고질고질한 병아리 두엇 데리고

동네 한 바퀴 의젓합니다

 

나도 삐약거리는 내 새끼 하나하고 그 속에 앉아

어쩌다 비 개인 여름 한나절

시드렁거드렁 그것들 봅니다

긴 듯도 해서 긴 듯도 해서 눈이 십니다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 (창비) 중에서

 

 

‘풀들은 시드렁거드렁 자라’지 않지요.

미친 듯이 죽기 살기로 자랍니다.

‘시어미 당숙 조카 생질 두루’ 가물어도, 장마 빗속에도,

어떤 장애에도 꿈쩍 않고 그저 자라기만 합니다.

‘삐약거리는 내 새끼 하나하고 그 속에 앉아’

‘시드렁거드렁 그것들’ 보고 있다가는

여름 내내 풀 속에 갇혀 지내야할지 모릅니다. ^.^;;

그런데도 곡식은 호미소리만 들어도 자란답니다.

풀은 그래 더욱 절박하게 자랄까요? 결국 지고 말더라도.

시인의 여유로운 시선이 더불어 유쾌합니다.

웃음이 날 듯 미소가 입술에 걸리는 리듬이 상쾌하지요.

더위에 지친 당신께, 이 시 한 편으로

감나무 그늘 밑 평상에 누운 듯 달콤한 휴식시간을

따블로, 아니 따따블로 보냅니다. 건강하세요.

 

  팔월, 화장실에 걸린 두 편 중 한 편의 시는 알게 된 뒤로 여름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여름날]이었다.

  여름이 지나가고 있는 구월에야 비로소 올린다.

  이미 화장실에는 구월의 시편으로 바뀐 지금에서야.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 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었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노숙]전문

  김사인시인을 처음 만난 건 2005년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노숙]으로다. 함부로 부린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는 서늘한 시인의 눈과 마음이 읽혀 여운이 오래 남았다. 몸을 함부로하고 살아온 축에 속하는 스스로의 시선까지 얹혀서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2006년, [가만히 좋아하는]이 나와서 좋았다. 주변의 꽤 많은 이들도 소장하고 있을 텐데 읽었을지는 글쎄, 모르겠다. 2006년 출간된 손세실리아 선생님의 [기차를 놓치다]와 함께 일 년여, 선택할 고민이 없는 선물이 되어 주었다. 알라딘 주문을 하면 이미 구입했다고 주루룩 올라가는 제목이기도 하니까.

  여기까지 쓰고 고향에 다녀왔다.

  팔월 초에 이어 두 번째 예상치 않은 방문이었다. 한 달에 두 번씩의 방문은 고향을 떠나온 35년 동안 엄마가 돌아가신 그때 이후 처음이었다. 마지막이 멀지 않았다는 소식으로 남은 가족들이 모였고 이번엔 그의 부음을 전해 받고 다녀왔다.

  가족의 부음, 벌써 몇 번째여서 익숙해진 걸음이어서만은 아닌 황망함과 부재의 설움 보다는 그동안의 회한들이 밀려왔다.

 

  새벽별처럼 아름다웠던 젊은 날에도/ 내 어깨 위엔/ 언제나 조그만 황혼이 걸려 있었다/ 향기로운 독버섯 냄새를 풍기며/ 속으로 나를 흔드는 바람이 있었다// 머리칼 사이로/ 무수히 빠져 나가는/ 은비늘 같은 시간들// 모든 이름이 덧없음을/ 그때 벌써 알고 있었다// 아! 젊음은/ 그 지느러미 속을 헤엄치는/ 짧은 감탄사였다// 온몸에 감탄사가 붙어/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른 잎사귀였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는/ 광풍의 거리/ 꿈과 멸망이 함께 출렁이는/ 젊음은 한 장의 프래카아드였다// 그리하여/ 나는 어서 너와 함께/ 낡은 어둠이 되고 싶었다// 촛불 밖에 스러지는/ 하얀 적막이 되고 싶었다

                                문정희시인의 시집 [어린 사랑에게]중에서 [젊은 날]전문

 

  인생의 빛나는 시간이라는 이십 대의 시절, 나는 문정희시인의 젊은 날 속의 마른 잎사귀였다.

  시인께서도 그런 힘든 시간이 있었다는 시어들이 내게 보내주는 따뜻한 위로 같아서 노트에 적어 놓고 가끔 소리 내서 읽어보고는 했다. 시들만이, 책들만이, 영화들만이 고단한 현실을 떠나 잠시나마 숨 쉬게 하는 쉼터였고 피난처였다.

  한 해가 멀다 하고 황망한 걸음을 떼야했던 가족 중 누군가의 부음과 사고 소식들과 그 뒤치다꺼리는 남은자의 몫이어서 더 이상 무너질 것도, 버릴 것도 없어 꿈도 희망마저도 버려야 하던 그때의 내게 젊음은 특권이 아니라 벗어 날 수 없는 무서운 올가미로 목을 조여 오는 의무였다. 세월아 빨리 지나 가 버려라. 어서 빨리 늙어 버리고 싶었다.

  먹기 보다는 굶기를 더 많이 했고 차를 타기보다는 걷기를 더 많이 했던 춥고 배고프던 이십대 시절들의 아픈 기억에서 대미를 장식한 것은 산에서 낙상사고, 나는 내 몸뚱이에게 여섯 번의 수술과 험한 흉터를 선물한 셈이었기에 [노숙]의 구절들이 더 서늘하게 읽힌다.

 

   세상은 그에게 가죽구두 한 켤레를 선물했네/ 맨발로 세상을 떠돌아다닌 그에게/ 검은 가죽구두 한 켤레를 선물했네// 부산역 광장 앞/ 낮술에 취해/ 술병처럼 쓰러져/ 잠이 든 사내//맨발이 캉가루 구두약을 칠한 듯 반들거리고 있네/ 세상의 온갖 흙먼지와 기름때를 입혀 광을 내고 있네// 벗겨지지 않는 구두,/ 그 누구도/ 벗겨갈 수 없는/ 맞춤구두 한 켤레/ 죽음만이 벗겨줄 수 있네/ 죽음까지 껴 신고 가야 한다네

                                 손택수 시집 [목련 전차]중에서 [살가죽구두]전문

 

  같은 부모의 핏줄이라는 공통점으로 모두를 참담하게 만들 권리를 가진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우리는 각자의 회한과 각자의 설움으로 침묵했다. 혹여라도 그가 일어날까봐 조마조마하기도 하는 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떠났다. 정말 떠났다. 염을 지켜보는 내내 손택수시인의 [살가죽구두]가 떠다녔다.

  엄마는 장남이 잘 되어야 집안이 일어선다며 우리들 모두에게 양보를 구했고 우리는 엄마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엄마의 바람이나 헌신적인 희생에도 불구하고 온갖 패악으로 자신 뿐 아니라 엄마를 비롯한 우리 모두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거듭 된 노름으로 가계는 파산했고 언제나 모든 책임은 자신의 발목을 잡은 엄마와 우리 때문이라며 분노에 겨워 스스로 지칠 때까지 투우처럼 돌진하고 날 뛰고 옹색한 세간들과 함께 부유했다.

  올해로 사십년, 아버지 돌아가신 그 여름에서 사십 년이 지났는데 아버지의 부재는 그에겐 책임감보다는 우리에게 권리를 행사할 구실이 되었을까? 집에 돈이 있는 기색은 귀신 같이 알아냈고 울며 매달리는 엄마를 밀치고 쌀 한 톨 없는 집을 떠나 빈털터리가 되면 돌아오고는 했다. 술이 취해 들어오는 저녁마다 잠에 떨어질 때까지 몇 시간이고 무릎 꿇고 앉아서 들어야했던 말의 잔치들은 기억이 없고, 저려서 감각이 없어지던 다리와 발가락들과 팔이 저릴 때까지 동생하고 둘에게 안마를 시키던 폭군의 기억은 생생하게 살아난다. 그걸 지켜보면서 안절부절, 울다가 혼내다가 부탁하는 엄마가 지칠 때까지 멈추지 않던 그의 광기를 바로 위 오빠와 나와 동생은 그 모든 것을 겪어야했다. 유일한 탈출구는 집을 떠나는 방법 뿐, 처음엔 바로 위 오빠가, 그 다음엔 내가 그렇게 도망치듯이 떠나왔지만 내게는 늘 설운 이름으로 남은 동생, 막내는 그 뒤로도 오랜 시간 엄마 곁에 남아서 엄마 임종을 지켰다. 그것이 늘 미안하다. 엄마의 떠남으로 보고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엄마가 남기고 간 유일한 유산이 되었다.

  덜 보았거나 더 보았다 해도 우리 가족 모두는 그의 패악질로 각자의 생을 난도질당했다. 우리 모두의 불행의 시작이자 고향으로부터 도망치게 만든 지긋지긋한 애증의 혈육, 보고 살았던 시간보다 안 보고 살았던 시간이 길었지만 체증처럼 얹혀있던 징글징글한 혈육, 그도 결국은 한 줌의 재가 되어 살가죽구두를 벗고 떠났다. 잘 가라. 남들에겐 한없이 너그러웠지만 가까운 가족에겐 평생토록 모진 말과 패악으로 일삼던 그도 이유와 회한은 있을 테지만 용서할 수는 없다. 그 어떤 이유가 있다 했어도 용서하고 싶지 않다. 용서되지는 않기에 그냥 보낸다.

  가라, 잘 가라. 가서 다시는, 다시는 세상으로 오지 마라.

  남은 우리는 상처도, 절망도, 툭툭 털고 새롭게 시작하리니. 입 안에 고소한 여운을 남기는 우리 콩 두부처럼 살아가리니.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

의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소 저물어간다.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그 순간의 처음과 끝 사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어느 시간에 속할 어린 고요가

보일듯 말 듯 옅게 묻어 있는 것이며,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년이나 이백년쯤

아니라면 석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 곁으로 나비나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그 적에 나는 꿈결엔 듯

그 작은 목숨들의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에 실려온 낯익은 냄새가

어느 생에선가 한결 깊어진 그대의 눈빛인 걸 알아보게 되리라 생각한다.

                                          풍경의 깊이- 전문

 

  그렇게 팔월은 갔다. 구월이다. 여름이 간 것이다.

  고향에 머무는 내내 비는 오락가락했는데 돌아오는 길, 정읍을 지나니 쾌청하고 맑은 하늘이 우리를 반겼다. 부음을 받고 각자 회한으로 출발했던 길을 함께 돌아오는 우리 자매들은 환하게 벗겨진 하늘을 남은 우리 생의 환한 희망으로 받아들였다. 이천 십사 년 이 여름은 강렬한 흔적을 남기고 갔다.

  풍경들은 스무 살 언저리의 불행의 색깔로 덧칠되어 보이지 않는다. 바닥 중 가장 낮은 바닥으로 가라앉은 것 같던 세 번째인가 네 번째의 수술이 끝났을 때까지 내 생을 지배한 것은 거듭 된 불행의 기운에 도발하다가 지치고 분노하고 발악하고 포기였다. 그러나 쉬지 않고 질주만 하던 생에서 아픈 시절은 쉼이기도 했다. 쉬는 시간이 늘면서 책을 보는 시간도 길어지고 찬찬하게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도 길어졌다. 화성 주변에 살면서 늘 스치던 화성을 찬찬히 바라보고 그 속에 앉아있으니 절로 보여 지는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되었다. 나쁜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팔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는 다섯 번째의 수술에서 깨어나면서 세상의 끝을 다녀온 듯 했다.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 의 외로운 떨림들’을 처음으로 보고 느꼈을 때 삶은 내게 축복이구나 싶었다. 살아있는 순간, 순간이 새로움이었고 소소한 행복으로 가득해졌다. 아니라고 부정해도 욕심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비어지고 낮은 것, 작은 것, 소소한 것들을 찬찬하게 살펴보면서 살게 된 것이다. 무엇이 되고 싶었던 강렬한 욕망이 스스로를 조급하고 황폐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무엇이 되려하지 않으니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각자의 몫으로 빛나 보이고 풍경들의 깊이는 마음 안에 마음만이 찾아 가는 길을 놓는다. 세상은 같은 세상인데 다른 세상이 되었다.

 

모진 비바람에

마침내 꽃이 누웠다

 

밤내 신열에 떠 있다가

나도 푸석한 얼굴로 일어나

들창을 미느니

 

살아야지

 

일어나거라, 꽃아

새끼들 밥 해멕여

학교 보내야지

                꽃- 전문

 

   가족은 내게 상처다. 가정을 이루고 사는 일에 자신이 없었다. 다시 그 불행했던 순간들의 구성원 속으로 복귀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스스로 진단하건데 범생이 기질이 강한 나는 선택한 어떤 일에든 책임지려는 성향이 강하다. 혹여 후회 막심한 선택의 결과에도 끝까지 갈 것이 뻔한 모험을 감행하고 싶지 않았고 더 이상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발목 잡히고 싶지 않았다.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이야 약간 있지만 반대쪽의 가능성을 믿기엔 너무 조심스러운 쪽으로 멀리 와버린 것이다. 그래서 포기한 엄마라는 이름의 꽃, 세상의 모든 엄마들을 존경한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내 가족, 내 새끼, 내 꺼, 내 무엇에만 사랑을 넘어 집착하고 쟁취하려는 부류는(그들의 문제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강변하고 스스로도 철썩 같이 믿는 것이다.) 경멸하지만 본능에 충실한 엄마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오는 나비이네

그 등에 무엇일까

몰라 빈 집 마당켠

기운 한낮의 외로운 그늘 한 뼘일까

아기만 혼자 남아

먹다 흘린 밥알과 김칫국물

비어져나오는 울음일까

나오다 턱에 앞자락에 더께지는

땟국물 같은 울음일까

돌보는 이 없는 대낮을 지고 눈시린 적막 하나 지고

가는데, 대체

어디까지나 가나 나비

 

그 앞에 고요히

무릎 꿇고 싶은 날들 있었다

                    나비- 전문

 

  어릴 때의 나는 고요했다. 내 추억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는 중추신경이 있다면 키가 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배구 선수로 차출 되었던 시절 말고는 대체로 담담하고 조용하고 과묵했다. 집에서 불리 우는 이름만이 세계의 전부이다가 입학했을 때까지 제 이름조차 모르고 열 살이 될 때까지 존재감도 없었던 듯하다. 아홉 살에 도서관 청소를 하러가서 책을 처음 만나 책에 빠지면서 성적이 좋아지게 된 것은 요즘 광고에서 말하는 원리를 알게 된 까닭이었을까? 사학년이 되었을 때 만난 선생님은 내성적인 나에게 발표학습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자신감을 갖게 해줬고 특별활동시간에는 시 공부를 하게 했다. 장자의 호접몽처럼 새롭고도 신비한 시간들이었다. ‘빈 집 마당켠 기운 한낮의 외로운 그늘 한 뼘일까’ 하고 어두운 눈을 뜬 건 그 선생님 덕분이다. 그 이후 한 번도 찾아 뵌 적 없지만 부인 할 수 없는 내 인생의 스승, 김정란 선생님.

  그리고 또 한 분의 선생님, 자꾸만 삐뚤어지고 싶은 무렵에 옆 반 담임이면서도 지켜보아주고 격려해주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참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세계를 바라보는 수평적 시선을 갖게 만들어준 김복순 선생님.

  시를 알게 하고 삶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어 준 손세실리아 선생님. 그분들과 책에서 만난 무수한 스승들이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도록 손잡아 주었다, ‘그 앞에 고요히 무릎 꿇고 싶은 날들 있었다’ 고 생각하면서 살게 되었으니 고맙고도 고마운 일이다.

 

내 하늘 한켠에 오래 머물다

새 하나

떠난다

 

힘없이 구부려 모았을

붉은 발가락들

흰 이마

 

세상 떠난 이가 남기고 간

단정한 글씨 같다

하늘이 휑뎅그렁 비었구나

 

뒤축 무너진 헌 구두나 물고

나는 또 쓸데없이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며 늙어가겠지

                          때늦은 사랑- 전문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은 아무리 자주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매번 서투르고 처음처럼 어설프고 황망하고 우왕좌왕이다. 아무리 마음을 단단히 먹었어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에 대해 아무런 감정도 남아있지 않다고 큰 소리쳤어도 달라지진 않았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표현은 이런 때 쓰는 모양이다. 그 여름 이후 여차저차한 일들이 일어났고, 겪었고, 여전히 거쳐가는중이다. 변화는 두렵기도하고 기대되기도 한다. 가끔은 지칠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래도 나에겐 시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 것이냐. 시가 있어, 지나간 시절을 위로 받고 지나간 시간에서 겸손해지고, 이미 지나버린 사람들이 그리움으로 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혹독한 여름을 어찌 지나나 싶으면 문득 가을이 와 있듯이........ 겨울이 지나고 해가 바뀌고 우린 이렇게 살아간다. 비록 가난하고 힘없어도, 나의 하루, 하루는 거룩한 것이라 믿으면서.

 

사람 사는 일 그러하지요

 

한 세월 저무는 일 그러하지요

 

닿을 듯 닿을 듯 닿지 못하고

 

저물녘 봄날 골목을

 

빈 손만 부비며 돌아옵니다.

                               춘곤- 전문​

  그런 봄이 머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지금처럼 치열하게 살아 갈 것이다.​ '빈 손만 부비며' 돌아갈지 몰라도 삶은 여전하다. 새 봄의 희망처럼 새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가 다시 곁에 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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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31 2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01 0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