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을 듣다
배한봉
햇살이 산길을 넘어오는 아침
탈골하는 억새들, 음성이 청량하다
살과 피 다 버리고 뼈 속까지
텅 비운 한 생애의 여백
여백은 세상을 아름답게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연 담고 있는 것이냐
면도날 같은 잎으로 여름
베어 눕히며 언덕 점령하던 때 지나
흰 꽃 속에 허파에 든 바람 실어
허허허허거리던 시절,
간과 쓸개 빼놓던 굽이를 돌아
비로소 세상에 풀어놓는 넉넉한 정신
바람 찬 산을 넘어온 아침이
내 얼굴을 만진다, 이제 겨우 마흔 몇
넘어야할 고개, 보내야할 계절이
돌아오고 또 돌아와서 숨가쁜 나이
산에 올라 억새들 뼈 속에서 울려나오는
깊고 맑은 공명을 듣는다
내 심중에서도 조금씩 여백이 보이고
누가 마음놓고 들어와 앉아
불어도 좋을 젓대 하나
가슴뼈 어딘가에 만들어지고 있었다
시집 [악기점]중에서
바람이 찹니다.
호박잎은 기침하며 돌아눕고 가을
깊어갑니다.
억새는 저 홀로 살과 뼈 버리고 있겠지요.
바람 찬 세상을 넘어 온 세월, 비우고 비우고.......
아름답게 꽉 채운 여백
억새는 흔들리고
공명을 듣습니다.
버리고 버리고........
마침내 채워지는 가을, 그리고 우포늪.
우포늪,
그립습니다.
배한봉시인은 우포늪 시인이라고도 불립니다.
십년 전에 출간 된 시집이니 시인도,
저도 이제는 쉰 몇,
겨우 쉰 몇.......
넘어야할 고개, 보내야할 계절이 아직도
숨 가쁜 나이네요.
그래도 시월 안에서,
가을 속에서,
광교산 아래에서 당신과 함께합니다.
내내 안녕을.
꽃 속의 음표꽃이 흔들리는 것은 바람 때문이 아니라제 몸 속 암술 수술의 음표들이 가락퉁기기 때문이리, 벌 나비 찾아드는 것 또한그 가락 장단이 향기 뿜어 내기 때문이리그대여, 사랑은 눈부신 그 음표들이열매 맺고 향기롭게 익는 일과 같은 것이니,우리는 어떤 가락 장단으로 세상을 걷고어떤 열매 키우며 서로 바라보는 것이냐나 오늘, 만개한 복사꽃 보며내 몸 속에서는 어떤 음표들이 가락 퉁기는지궁금하여 햇살 속에 마음 활짝 펼쳐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