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말 걸어오는 길.
--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김남희 지음. (미래 M&B)
사실 이 책을 사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대부분 오마이 뉴스에서 읽었고 그런 종류의 책은 바람의 딸 한비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내가 생각을 바꾼 것은 책의 판매 수익금이 ‘인도의 다람살라에서 사귄 친구 빼마와 자미안이 티베트 노인들을 위한 공동체를 지을 때 건물 한 층을 올려주겠다 한 약속’ 에 쓰고 싶다는 작가의 말을 전해들은 순간이었다. 그것이 하나의 상술에 불과하고 과연 몇 퍼센트가 그들에게 전해질지 의심 많은 나로서는 미심쩍기는 해도 믿기로 했다. 그들을 직접 도울 수는 없지만 내가 좋아 산 책 한권이, 작은 돈을 보태 누군가에게 쓰일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지 않은가. 그러나 일반 서점에서 책을 사는 일은 이제는 무모한 것처럼 여겨진다.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해놓고 기다리는 동안 예상보다 늦었다고 적립금을 2000원이나 더 올려주는 횡재도 누렸으니 서점이 사라지는 속도는 인터넷보다 빠를지 모른다. 책들을 받아놓고 이틀, 하고 있는 마음 바쁜 일에 겉만 훑어보고 상자 째 멀찌감치 모른 척 밀어두고 있었다. 그런데 자꾸만 모니터로 본 것과 같은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것만 확인하자하고 펼쳐든 순간, 재생지 오래된 책 냄새가 나를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내용이나 사진은 거의 그대로 본 것임에도 불구하고 두어 시간을 책 속에 고개를 묻고 있었다. 나는 확실히 아날로그임을 끄덕이면서.
이 책의 제목은 제법 길다. 위에 적은 것 앞에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이라는 말이 덧붙어 있다. 아무리 용감하고 씩씩한 척 무장해도 우리들은 대부분 소심하고 겁 많다. 그리고 나름대로 살아오면서 지켜온 습관이라든가 원칙을 고수하는 까탈스러움을 가지고 있다. 거기다 여자 혼자라는 상황을 생각하면 참으로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행자가 되고 만다. 출판사에서야 호기심을 끌려고 그런 제목을 덧붙인 것일 테지만 여행을 준비하는 우리는 모두 설렘과 동시에 두려움과 소심함을 갖는다. 미지에 대한 큰 호기심과 비례해서 잔걱정들이 그만 포기하고 싶게도 만드는 것이다.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은 소수의 특이함이 아니라 다수의 평범함이다.
그렇게 내가 아는 모습을 한, 자칭 까탈이인 한 여자가 거기 있었다. 홀로 가는 길이 외롭고 무섭더라도 행복한 순간을 더 많이 깨달으면서 걸어가는 여자, 그는 김남희 이기도 하고 바로 내 자신이기도 하다. 그가 걷는 많은 길들을 이어서는 아니더라도 구간 별로 나도 많이 걸어보았다. 그 길 위의 내가 보이고 한 여자가 보이고 그 길이 주던 행복한 시간들이 떠올랐다. 한비야처럼 다변가가 아닌 김남희의 길이 거기에 오롯이 있었다. 그 길을 따라 걸으며 그 생각들을 엿보자, 길이 내게 말을 건다.
“6월 9일 토요일, 맑다.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 사자봉 땅끝.
토말비 앞에 서서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나니 8시. 출발이다. 813번 지방도로를 따라 걷는다. 태양은 아직 구름 뒤에 남아 있고,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서늘하다. 도로를 달리는 차도 보이지 않는다. 상쾌하다.”
“6월 18일 월요일, 비 오다.
짐을 다 싸놓고도 쏟아지는 빗줄기 때문에 한 시간 넘게 마음을 잡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빗줄기가 좀 약해진다 싶어 마음을 다 잡고 나서니 8시 반. 다시 비는 세차게 쏟아진다. 길 위에 나선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신발까지 다 젖었다. 피하거나 돌아설 틈도 없이 다 젖고 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6월 19일 화요일, 비.
지금까지 330킬로미터를 걸었다. 아직 남은 20여 일. 여전히 나는 걸을 것이며,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남길 것이다. 좀 더 편하고 싶다는, 좀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깨끗한 잠자리에 몸을 누이고 싶다는 욕망 또한 내 안에서 바글댈 것이다. 그 갈등과 욕망을 때로는 누르며, 때로는 인정하며, 내 한계와 수준 속에서 이 길을 걸어 갈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눈치 보지 않을 것이다. 그저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도록 노력할 것이다.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내 모습을 들여다봄으로써, 남들에게로 나가는 문을 열수 있도록.”
“6월 25일 월요일, 흐리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의 방식이 바뀐다. 희망을 품고 열정으로 살아가는 사람 곁에 서면 나도 희망에 들뜬다. 정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내 삶의 희망이여야 하지 않을까. 나는 내 좋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인가. 나도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는 큰 꿈을 가져본다.
오늘 내가 걸어야 할 길을 본다. 길 위에 서면 날마다 새롭다. 늘 비슷한 것 같은 길도 다 다르고, 다 같은 사람살이 어디가나 비슷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새롭다. 산다는 건 끝이 없는 학교이자, 희망을 배우는 긴 길이다. 이 길 위에 오르길 참 잘했다.”
“7월 1일 일요일, 흐리다.
지친 몸과 마음으로 걷는 길. 아스팔트 위로 기어 나온 여치를 피하려다 밟아 죽였다. 풀 섶에 가만히 있지, 그 안에서 그냥 다른 여치들처럼 그게 세상의 전부인줄 알고 살아갈 것이지, 기어이 밖으로 나가다 밟혀 죽은 여치가 꼭 나 같아서 도로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길 위에서 울며 보낸 오후가 저문다.”
“7월 3일 화요일, 비온 후 개다.
....... 오늘 그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릴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7월 5일 목요일, 오락가락 하는 비.
우리는 나란히 걸으며 아름다운 풍경을 같이 나누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얼마간 거리를 유지한 채 앞서거니 뒷 서거니 걷고 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거리가 필요하다는 걸, 말과 말 사이에는 침묵이 필요하다는 걸 형이 알고 있는 듯해 고맙다........ 살아 있음이 이유도 없이 고마운 밤이 깊어간다. 생은 내게 얼마나 더 자주 예고도 없는 선물을 던져주고 갈 것인지.”
“7월 7일 토요일, 눈부시게 푸른 하늘.
뭔가 멋진 말을 스스로에게 들려주리라 다짐했는데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여기까지 걸어서 오고야 말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어리둥절할 뿐이다. 옆에서 누군가 먼 산을 가리키며 금강산이라고 말을 한다. 나는 여름 햇살을 받아 희미하게 빛나는 산을 눈에 두고 오래오래 앉아 있다. 언젠가 북녘 땅을 가로질러 걸으리라 새로운 다짐을 가슴에 담은 채.”
“길은 위대한 학교였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스승이었다.
세상에 나온 모든 목숨이 귀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음을, 나누며 사는 삶이 가치 있는 삶이며 사람들은 누구나 소통을 꿈꾼다는 것을 길은 내게 가르쳐 주었다. ........
820킬로미터를 걸어 다다른 길의 끝. 길의 끝에서 내가 본 것. 철조망을 넘나들며 노래하는 새와 막힘없이 이어지던 푸른 하늘과 바다. 언젠가는 북녘 땅 넘어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에서 아프리카까지 자유롭게 갈 수 있는 날을 꿈꾸어 본다. 익숙한 것들과의 헤어짐을 꿈꿀 수 있는 용기가 그때에도 내게 남아 있기를. 서른둘의 찬란한 여름, 그 여름을 통과하며 나는 여기까지 걸어와 가로막힌 벽 사이의 작은 틈을 발견했다. 그 작은 틈으로 호흡하며 벽 바깥의 세계를 상상하며 맑은 공기를 받아들인다. 그 틈으로 내 몸을 조심스레 디밀어본다. 아직은 틈이 내 몸에 비해 너무 작다. 몸을 구겨 넣어야 할 것도 같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 손이나 팔을 다치기도 하겠지만 더 이상 겁내지 않으리라.
나는 곧 세상 밖으로 나갈 것이며, 그곳에서 내가 볼 최초의 것이 사람의 얼굴이기를 꿈꾸어본다.”
이런 말들을 따라가다 보니 김남희의 것이 아닌 내게 거는 길의 말이었다. 나 아닌 누구라도 길에서 그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내게 말 거는 길들이 역마의 피들을 달래준다. 820킬로미터를 29일간 걸어서 여행을 할 여력이 없는 지금의 내게 아침가리, 미천골, 대관령 옛길의 속살거림을 들려준다. 귀가 점점 커지는 것 같다.
‘혼자라면 더욱 좋다. 마음이 움직이는 그 순간, 길을 나서자.’ 그 다짐을 새겨 넣으며 책을 덮는다. 덮은 손 위로 길이 놓이고 길들은 12월, 오후 햇살처럼 포근하게 퍼져간다. 나는 그 길들을 따라 세상과 소통할 것이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 속으로.
아, 언제 길 위로 나가서 수업을 받지. 나머지 공부에 매달려있는 요즘이다.
2004. 12. 3. 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