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상실할 때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동력을 잃는다. 역설적이게도 고독사는 인간 실존의 근거가 타자와의 관계이자 세계와의 연결이라는 명제를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논거다. 세상은 끊임없이주체적인 삶을 가꾸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이제 솔직해져야 한다. 현대인은 결코 고립된 ‘자연인‘으로 살아갈 수 없다. 정교하고 복잡한 관계의 그물망 안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독사를 단순히 ‘혼자 비참하게 죽는다‘는 현상으로만 치부해서는안 된다. 고독사의 사망진단서를 작성한다면, 최초의 선행 사인은 단절로 인한 ‘사회적 죽음‘일 것이며, 생물학적 죽음은 그로 인한 최종 결과다. 사회적 죽음은 이제 인문학적 함의나 은유를 넘어, 실재하는 생명을 잠식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되었다. - P194
고립되어 살아가는 이들을 사회와 국가가 돌보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우리 사회의 각종 법률과 행정 시스템이 지닌 본질적 한계도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시스템은 개인이 처한 상황과 맥락을 최대한 단순하고보편적으로 해석하고, 합의해 만들어 낸 매뉴얼에 따라 작동한다. 따라서 지극히 다채롭고 때로는 모호하기까지 한 개인과 인간관계의 농도를 일률적이고 투박한 시스템 안에 온전히 담아내는 것은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관리가 관계의 빈구석을 완벽히 메우기 힘든 차가운 현실을 직면해야 하는 것이다. 시스템의 빈구석에는 분명 살고 있으나 투명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서성이고 있다. 삶이 아닌 죽음을 통해서 자신의 실존을 증명해야 했던 이들이…… - P195
고립사한 이의 냄새는 최초 발견자가 문을 열고 들어설 때 비로소 고립을 벗어나 타인의 코를 자극한다. 죽은 이의 존재감은 타인의 후각을통해 살아난다. 타인이 문을 열어주기 전까지 갇혀 있던 냄새는 살아 있을 때의 사무치는 고독을 대변한다. 그전까지는 아무도 그 냄새를 함께하지 않았다. 김완의 《죽은 자의 집 청소에서처럼 특수 청소를 의뢰하는 것은 결국 망인이 남기고 간 쓰레기를 포함해 체취를 지워 달라는 요구다. 즉 그곳에 살았던 이의 흔적을 소거하는 일, 존재와 기억을 지우는 일이다. 그들은 진정한 집을 상실하고 낯선 곳에서 손님처럼 살다가떠났다. 현대판 객사는 병원 밖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 - P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