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윤
서울대학교병원 조직은행 간호사이자 성균관대학교 철학과 겸임교수로 ‘철학하는 간호사다. 병원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잇는 조직은행 업무를 담당하고, 대학에서는 응용현상학을 가르친다. 서울대학교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 간호사로 근무했으며, 한때 CTS기독교TV 앵커와 기자로 활동했다. 이후 간호사로 복귀, 인체조직을 기증받아 필요한 환자에게이식하는 전 과정을 관리하고 있다. 간호사로 일하며 성균관대학교에서 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자는 현장에서 수많은 삶과 죽음을 마주하며 인간 존재에 근원적인 질문을 품게 되었다. 그 질문은 철학적 탐구로 이어졌고, 이 책은 임상과 철학을 오가며 죽음을 사유한 기록이다. 연명의료와 돌봄, 임종처럼 죽음을 앞두고 만나는 사건은 물론, 고립사와 안락사 등 다양한 죽음의 모습까지 폭넓게 다룬다. 죽음을 둘러싼 현실을 의료인의 눈으로 세심하게 살피고, 철학자의 시선으로 그 의미를 다시 묻는다. 죽음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은 삶과 생명의 감각을 새롭게 깨우는 일이다. 저자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결국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돌아보게 한다.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남겨 두지 않고, 지금의 삶을 더욱 선명하게 바라보도록 이끈다.
죽음은 낯설다. 우리는 자신의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다. 그래서 나의 죽음은 그 어떤 것보다 낯선 사건이다. 반면 타인의 죽음은 상투적으로느껴질 만큼 익숙하다. 나의 죽음과 타인의 죽음은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에 놓여 있다. ‘죽음의 학자‘로 불리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Ross)는 이 차이를 생생하게 설명한다. "타인의 죽음은 동물원 철창에갇힌 호랑이를 보는 것과 같지만, 자신의 죽음은 그 호랑이가 철창 밖으로 나와 덤벼드는 것과 같다." 타인의 죽음을 바라볼 때 우리는 대개 관찰자의 자리에 선다. 죽음의 위험을 감지하면서도, 아직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두꺼운 쇠창살 안의 호랑이를 바라보는 것처럼. 그러나 죽음이 나에게 직접 찾아오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쇠창살을 뚫고 나온 호랑이가 덮쳐드는 극심한 공포와 혼란을 경험하는 것이다. - P5
여행자는 낯선 곳으로 향한다. 낯선 곳에서는 익숙했던 하늘과 바람, 땅의 감촉마저 새롭게 다가온다. 우리는 그 낯섦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는다. 낯섦은 굳어버린 삶을 다시움직이게 하는 윤활유와 같다. 죽음도 그렇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말은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아무 감각도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익숙한 명제 앞에서 잠시 멈춰 서면, 죽음은 먼관념이 아니라 언젠가 반드시 나에게 찾아올 현실로 모습을 드러낸다. 죽음을 낯설게 바라보는 일은 쉽지 않다. 익숙한 삶에 머무는 일이안전하고 편하다. 그러나 낯선 곳으로 떠날 때 일상의 관성에서 벗어나 - P8
듯, 죽음을 새롭게 보려면 마음의 절전모드를 해제해야 한다. 익숙한 생각에서 한 걸음 물러나, 죽음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다시물어야 한다. ‘죽음 낯설게 보기‘는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작은 모험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죽음을 둘러싼 제도와 문화, 오래된 습관까지 새롭게 보게 된다. 너무 익숙해서 지나쳤던 것들이 낯선 질문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나 역시 죽음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병원과 조직은행에서 일하며 죽음 가까이에 있었고, 그 곁에서 삶을 다시 생각해 보는 작은 깨달음들을 얻었다. 이 책은 그 기억과 질문을 따라, 죽음이라는 낯선사건에 한 걸음 다가가보려는 시도이다. 우리의 삶은 늘 죽음과 동행한다. 생명의 이면에 마치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죽음은 늘 밀물처럼 질문을 던지고 썰물처럼 물러난다. 파도가포말로 부서져 사라질지라도 늘 다시 다가오듯, 죽음이 던져오는 끝없는 질문에 언제나 낯선 답을 찾으려는 시도는 생명처럼 아름답다. - P9
서두에 밝힌 것처럼 우리나라 노인의 38%는 집에서 죽기 원한다. 그런데 직업이 의사인 경우에는 그 비율이 현저히 높아진다. 한 통계에 따르면 의사의 63.1%가 자택 임종을 원하고 10% 정도만이 병원이나요양기관을 원한다고 한다. 아마도 의사들이 병원 임종의 민낯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전 국민의료보험이 확대된 1989년 이후 우리나라의 의료 접근성은세계 어떤 나라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높다. 병원 문턱이 낮아지면서우리는 많은 의료 혜택을 누리게 되었고 이것이 병원 임종의 큰 원인 중하나로 꼽힌다. 낮은 수가로 병원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병원에서끝까지 치료받다가 돌아가시는 병원 임종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약 40년 전인 1983년에는 무려 85% 가까이가 집에서 죽음을 맞았다. 요즘 상황과 비교하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놀라운 숫자다. - P26
사망자의 사인은 단순한 의학적 관찰기록을 넘어선다. 한 개인의 삶을 사회적으로 평가하고 고립시키는 낙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의 삶을 둘러싼 온갖 자의적인 해석과 억측을 낳기도 하고 때로는, 그 삶 전체를 아주 편협하게 오진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죽음은 단지 죽음 그 자체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죽음은 반드시 명확한 원인이 규명되어야 하며, 결국 ‘질병과 진단‘이라는의학의 영역으로 귀결된다. 한 인간의 종결로서 죽음은 생물학적 종말이라는 과학적·의학적 관점에서 주로 이해된다. 그리고 의사가 발급하는 사망진단서는 이러한 의학적 정의를 최종적으로 확증하는 가장 간결한 문서다. 사망진단서는 행정의 틀로 죽음을 유형화하고 그 원인을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듯하지만, 자살한 아버지의 소리 없는 외침과 남겨진 자의 고통은 단 한 줄도 담지 못한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따른다는 인과론적 사고방식을 아무리 대입해보아도 그 깊은 상처와 고통은 결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 P38
병원 직원게시판에 자주 올라오는 공지글 중 하나가 부고(告)다. 직원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경우가 가장 흔하고 조부모상 공지도 간혹 올라온다. 평균 수명이 퍽 길어졌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다만 직원이 7,000명이 넘다 보니 거의 매일 부고가 올라오는데, 잘 아는 직원의 가족이 아닌 경우에는 그저 업무의 연장선쯤으로 여겨져 무감각해지기 일쑤다. 어디 회사 게시판만 그런가. 우리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아도 타인의죽음을 알리는 부고는 차고 넘친다. 도로 위 번쩍이는 LED 전광판에 표시되는 교통사고 사망자 수, TV 뉴스를 장식하는 전쟁 전사자 숫자,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사망자, 세월호, 이태원 희생자 명단 등. 이 죽음의숫자들은 모두 부고들이다. 매일 업데이트되는 부상자와 사망자 숫자는 당신도 저기에 합산되지 않도록, 혹은 타인을 합산시키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무언의 시그널이다. - P39
그 숫자 속에는 한 인간이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죽었는지에 관한‘서사‘는 사라지고 오로지 숫자 1로 기억된다. 참혹한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 폭탄에 맞아 처참하게 죽어간 이름 모를 병사의 죽음은 수만리떨어진 대한민국의 나에게 그저 숫자 1에 불과한 외신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죽음에 너무나 길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뉴스의 부고는 수많은 정보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정보는 나의 목적 달성을위한 취사선택에 필요하거나 유용한 차원으로 소비되는 도구의 성질을 지닌다. 그래서 이런 정보에 사람의 이야기가 머물 공간은 존재하지않는다. 정보는 물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내가 감당할 수준을 벗어나면 축소되고 탈색되어 원래 있던 알맹이는 사라지고 빈 껍데기만 남는다. - P40
"참혹한 전쟁터에서 청년들이 죽어 나가지. 주인공 폴이 총에 맞아 숨을 거두던 날 ‘서부 전선 이상 없음‘이라는 최고사령부의 공식 발표가 나온다네. 거기선 백 명 이상 죽으면 이상이 있지만, 한 사람이 죽으면 아무런 이상이 없어. 그런데 죽어간 폴의 어머니에게는 과연 서부 전선에 이상이 없었던 걸까?"
사실 백 명의 죽음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이 더해진 것이다. 역설적으로 단 한 사람 죽음의 무게는 백 명의 죽음이 지닌 무게에 비해 결코 가볍지 않다. 즉 같은 무게를 지니고 있다. 예수가 "한 목숨이 천하보다 귀하다"라고 말한 것도 한 생명의 가치가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크다는 의미다. 시스템이 잘 작동하는 사회일수록 죽음의 양을 나타내는 통계 속숫자는 죽음을 누구나 납득할 만한 보편적 기호로 재단해 관리하기 쉬운현상으로 바꿔버린다. 죽음이 통계 수치로 전환되고 나면 폴의 어머니가 겪은 고통은 물론 참혹한 대량학살의 비극마저 그저 언제나 일어날수 있는 일상의 사건으로 정리된다. 스탈린이 말했다고 알려진,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라는 말은 이런 상황을 잘 대변한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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