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혼자 사는 사람과 같이 살던 사람과 사람이 그렇게 살면못쓴다 하던 사람과 죽지 말고 살았어야 하는 사람과 사랑으로 만났어야 했던 사람과 삶을 속인 사람과 살며 마주하지 않았어도 좋았을 사람과 나를 보고 그냥 살라고 했던 사람과 삶에 속은 사람과 천천히 후회하며 살라던 사람과 미안하지만 이제 이렇게는 살지 않겠다던 사람과 같이 살아도끝내 모를 사람까지 모두 말없이 올려다볼 시월의 가을 하늘입니다 - P43
아껴 보는 풍경
어머니는 꽃을 좋아하지만 좀처럼 구경을 가는 법이 없다 지난봄에는 구례 지나 하동 가자는 말을 흘려보냈고 또 얼마 전에는 코스모스 피어 있는 들판을 둘러보자는 나의 제안을 세상 쓸데없는 일이라 깎아내렸다 어머니의 꽃구경 무용 논리는 이렇다 앞산에 산벚나무와 이팝나무 보이고 집앞에 살구나무 있고 텃밭 가장자리마다 수선화 작약 해당화 백일홍 그리고 가을이면 길가의 국화도 순리대로 피는데 왜 굳이 꽃을 보러 가느냐는 것이다 만원 한장을 몇 곱절로 여기며 살아온 어머니는 이제 시선까지 절약하는 법을 알게된 듯하다 세상 아까운 것들마다 아낀다는 것이다 - P44
낮달
지난봄 산중에서 만난 낮달이
오늘은 마을까지 내려와주었습니다
내가 오랜 시간 돌봐야 했던 이가
어느 시간에 이르러 나를 돌보아줄 때도
이런 낯빛을 하고 있었습니다 - P48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397-1
바람이 그 집문을 엽니다 다시
바람이 그 집 문을 닫습니다 - P53
쪽
눈앞에 있는 것이 세상 전부처럼 여겨지는 시간을 다시보내고 있습니다 빛은 멀리서도 고개를 넘나들지만 한번 맺힌 상을 지워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응시도 미루고 외면도 거두어들이면서 헤매기만 합니다 와중 품고 있는 바람도 하나 있습니다 속절없이 맞닥뜨리고 있는 것과 애를 쓰며 다시 마주하고자 하는 것의 사이가 이참에 아주 멀어지기를 영영 아득해져서는 삶의 어느 장면에서도 한데 놓이는 일이없기를 일단 그때까지는 한쪽의 시간을 두텁게 쌓고 볼 것입니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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