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본능적인 반응이다. 슬프면 슬픈 것이고 화가 나면화가 나는 것이지, 거기에 이성적인 이유를 달 필요는 없다. 자기 감정을 변명할 필요도, 정당화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일기장 위에서 나는 머뭇거리고 멈추면서 내 감정이 정당하지않다고 판단하거나 ‘내가 이렇게 느껴도 되는 거야?‘라고 누군가에게 허락을 구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감정에 대해서는 적지 않는 편이 차라리 나으리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너무 혼란스러웠으니까. 내 감정을 존중해야 한다거나 감정에는 나쁘거나 좋은 것이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일기장을 펼치면...... 나는 느끼지 않고 억누르려는 예전의 습관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삼십대 어느 시점의 나는 울어야 하는 일을 겪고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울면 멈출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그랬다는 걸 깨달았지만, 일기장 위에서 머뭇거리며 나아가지 못하는 마음도 그와 같았다. 내 감정을 한번 인정하기 시작하면 올이 나간 나일론 스타킹처럼 점점 그 상처가 벌어져서 수습할 수 없을 거라고 믿었다. - P15
작가가 되고 언젠가 인터뷰를 하면서 나는 내게 여성주의가 ‘백신‘이었다고 말했다. 처음 여성주의를 받아들이고 공부하면서 느꼈던 분노, 슬픔, 자괴감은 이 세상을 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항체를 만드는 과정이었다고. 여성주의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다치는 줄도 모르고 나를 다치게 했을 것이고 삶의 고비를 넘어가지 못하고 주저앉았을지도 모른다. ‘나도 세상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존엄한 사람이야‘ 같은 소박한 수준의 자기긍정조차도 여성주의 없이는 내게 가능하지않았으리라는 걸 나는 안다.
내가 체득한 여성주의적 가치는 스스로의 가치를 회의하게 될 때, 누군가 내 공간을 함부로 침범할 때, 분명한 부조리를 맞닥뜨릴 때 미약하게나마 경고 신호음을 울리게 했다. 전에는 내 안에 있는지도 몰랐던 경고등이었다. 여성주의를 접하지 않고도 자기 가치를 긍정하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십대 초반에 여성주의를 만난 건 내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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