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문재는 1982년 동인지 「시운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산책시편」 「마음의 오지」 「제국호텔」 「지금 여기가 맨 앞」 「혼자의 넓이」 등이 있다. 김달진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 노작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사저널 기자,「문학동네」 편집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 녹색평론」 편집자문위원, ‘60+기후행동‘ 운영위원, ‘오대산지구시민작가포럼‘ 대표를 맡으면서 ‘나를 위한 글쓰기‘ 촉진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마트료시카 인형 속에는 그와 닮은꼴의 인형들이 겹겹이 들어 있다. 인형들을 꺼내 나란히 놓고 보면 크기와 표정이 조금씩 다르다. 이문재의 시를 읽는 것은 마치 이 러시아 인형을 하나씩 꺼내는 일과도 같다. 인형 속의 인형 속의 인형처럼, 이문재의 시에반복되는 단어나 문장은 서로를 품거나 낳으며 사유의 어떤 지점을 향해 나아간다. 너머의 너머, 다음의다음, 미래의 미래를 향해. - P-1
시인의 말
우리가 더 나은 내일을 상상하지 못할 만큼 망가지지는 않았다는 어느 경제학자의 말을 얼마 전에 들었다. 우리는 모두 시인으로 태어난다는 과학자의 말은 오래전에들었고, 나는 우리가 ‘시의 마음‘을 되찾는다면 이대로 살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2026년 1월 이문재 - P-1
눈동자
눈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눈동자다
눈동자는 다른 눈동자가 필요하다
지금 가장 필요한 눈동자는 내 눈앞에 있는 다른 눈동자다 - P-1
너도 봄날
거울 속의 거울
마주 보는 거울은 떼어놓기
눈동자는 다른 눈동자와 마주 보게 하기
눈동자 안에 다른 눈동자 빛나게 하기
반짝이는 눈동자에게
꿈을 꾸게 하는 꿈* 말해주기
시를 쓰게 하는 시 서로 읽어주기
* 전 지구를 무대로 활동한 일본의 생태주의 시인 나나오 사카키가 자주 하던 말로 알려져 있다. - P-1
소년
신도시 아파트 주차장 한구석 자전거 한대 누워 있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누가 소년을 놓고 갔나보다 체인이 녹슬었다 왼쪽 페달이 없다 소년이 소년을 벗었나 보다 자전거가 버려진 이곳에서 어떤 길이 시작되었으리라 먼 곳이 시작되었으리라 - P-1
새봄
잔가지 맨 끝 늦겨울 이른 봄
처음 눈뜬 새순이 뒤돌아보며 말한다
무서워요 앞에 아무것도 안 보여요
가지가 말한다 앞에서는 아무것도 안 보여
줄기가 말한다 네가 하늘을 보고 있는 거야
계속 올려줄 테니 앞만 보거라 뿌리가 말한다
하늘이 너를 보고 있는 거야 지금 네가 맨 앞인 거야 - P-1
아침
스위치를 내려야 밤이 온다
불을 꺼야 어둠이 어두워지고
밖으로 떠돌던 것들 제자리를 찾는다
그렇지 아니한가
눈을 감아야 눈 뜨는 것이 있다 두 눈을 떠야 사라지는 것이 있다
그럴 것이다
밤이 밤다워야 아침이 온다
아침이 아침에 온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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