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누더기 시
가난과 시를 섞는다 진실을 소금에 절인다 정신에 침을 뱉는다 아이러니 속에 아이러니를 투척한다 누더기 위에 누더기를 겹친다 아무려나 시에서 가난을 추출한다 소금에서 진실을 구한다 침 묻은 정신을 닦는다 아이러니 속에 아이러니를 구조한다 누더기 위에 누더기를 찢는다 아무려나 누더기 위에 누더기를 겹쳐도 누더기 위에 누더기를 찢어도 누더기는 누더기다 가난을 피할 순 없지만 가난을 환대할 순 있다고? 이런 시는 사원보다도 춥고 그림자보다도 어둡다 죽기도 전에 죽은 목숨 눈물 속으로 가라앉은 신 아무래도 좋다 죽은 목숨에 죽은 목숨을 더해도 죽음의 누누더기일 뿐인 - P62
엄헬레나
1942916-2024211
부잣집 딸로 태어나 탄광으로 시집온... 딸 셋을 낳은...... 실향민의 딸 엄∙∙∙ 헬레나... 과부는 아니었지만 과부 같았던... 장성 제1광업소 급식사이자 세탁부였던... 엄... 헬레나..... 닥치면 겪는다... 닥치면... 엄... 헬레나..... 헬레나.. 닥치면 겪는다..... 탄광촌.. 판잣집... 공용 변소... 닥치면 겪는다... 엄...헬레나... 0명의 아들과 0명의 남편 그리고 자신도 모른채 엄헬레나로 죽은... 어쩌다 마지못해, 의무적으로 전화하면 자꾸 어디니이껴 묻던 엄헬레나...엄... 헬레나... 어디니이껴... 어디니이켜... 어디 계시니이껴...... - P64
횡성
오지 않는 시를 기다리며 가을이 다 갔지만 어떤 날은 박상륭의 열명길을 읽다 잠들기도 했고 어떤 날은 안개가 피어오르는 물가에 나가 앉아 종일 물소리를 들었다 가끔 아침부터 동쪽에서 바람이 불어 자작나무 잎들이 춤을 추면 읍내에 나가 술을 받아 와 대낮부터 대취했고 고라니 울음소리에 깬 밤이면 지난날 용서 빌지 못한 일들을 생각하며 벌벌 떨었다 오지 않는 엄마 오지 않는 아버지 오지 않는 시를 기다리러 횡성 갔다 지난날 빌지 못한 죄들과 오지 않는 것들이 매일 밤 별처럼 돋아나던 - P69
사월
고장난 심장 어두운 미래 허튼 그림자
가난을 피할 순 없지만 헛된 가난은 피할수 있다고?
죽기도 전에 죽은 목숨
내가 아직 사람인가?
아무래도 좋다
고장 난 심장 어두운 미래 허튼 그림자
가난을 피할 순 없지만 가난을 환대할 순 있다 고?
물속으로 던진 돌처럼
눈 속으로 가라앉는 신
어두운 미래 허튼 그림자 고장 난 신 - P78
비두리 옛집
무너지고 있었다
버림받고 있었다
버림받고도 집이었다
무너지면서도 집이었다
내 마음 내 마음 같았다
자신마저 버릴 거요?
묻고 있었다 시간이
무너진 집의 문이 열린다
비두리 옛집
자신으로 죽고 있었다
자신으로 살고 있었다 - P80
수학여행 가는 나무*
나무는 쓴다 우리 모두가 연루되어 있다고 겨울에도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수요일에도 수요일에도 수요일에도 떠나지 못할 거라고 쓴다 결국 떠날 수 있는건 없다고 쓴다 다만 울음이 바닥났을 뿐이라고
나무는 운다 굴뚝 위에 독재 위에 철탑 위에 올라간사람들과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위해 나무는 운다 우리는 모두 까닭이고 바보라고
나무는 간다 어둠을 뚫고 바위를 타고 계급을 넘어 나무는 간다 울음을 찾아 울음의 핵심을 향해 울음의 연대를 위해 나무는 간다 사월의 사월의 바다로 - P-1
나무는 난다 세계는 늘 위독하지만 수학여행 다녀올게요 기억하겠습니다 기록하겠습니다 살고 싶어요 엄마 사랑해요 특별해서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랑해서 특별해진 그 사랑을 기억하며 기록하며 나무는 난다 나무는 날아오를 것이다
*이영광 시인의 「수학여행 다녀올게요 ㅡ유령6 (「끝없는 사람」, 문학과 지성사)을 읽고 쓰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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