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다른 언어를 쓰는 국가 사이에 충돌이 있을 때는 번역/통역가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극에 달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번역/통역가들은 스파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취급받는다. 번역/통역가는 적대적인 세력 사이에서 협상을 거들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도록 도울 뿐인데,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는 박쥐처럼 여겨지고 모국에서는 배신자로 낙인찍힌다. 일제강점기 때도 역관들은 친일파이자 배신자취급을 받았다.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도 통역사들이 숱하게 죽었다. 번역가 수잔 바스넷도 이 죽음을 언급한다. "얼마 전에 한 신문의 짧은 기사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시체 몇 구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발견되었는데 모두 탈레반의희생자였다. 그들은 잔인하게 살해되었고 혀가 잘려 있었다. [...] 희생자들은 모두 통역사로 일했던 사람들이다. [...] 여기에 한 가지 역설이 있다. 번역가들은 한편으로 세상에서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사소한(invisible) 존재처럼 보이지만, 또한 어떤 사람들에게는 생명이 위태로울 만큼 중요한 존재로 보인다는 것이다." 
뒤집어보면 번역가들을 배신자라고 비난하는 까닭은 이들의 손에 막중한 무언가가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위대한 원작이든, 국가나 민족의 존속이든, 문화적 정체성이든, 신의 말씀이든. 실제로 역사적으로 번역가들의 손에서 엄청난 일들이 일어났다. - P49

이슬람교에서는 경전에 대해 기독교와 조금 다른 입장을취한다. 꾸란은 아랍어로 전달된 신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적은 것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될 수가 - P57

없다. 그래서 외국어로 번역된 책은 꾸란이라고 불리지 않고일종의 해설서로 취급된다. 한국어 번역본에는 ‘성 꾸란의미의 한국어 번역‘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문자 그대로의 번역은 아예 염두에 두지 않고 의미만을 번역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아랍어 음성에 담겨 있는 신성은 번역이 불가능하고, 음성과 의미가 분리될 수 없게 결합되어 있으므로, 번역은 절대 원본과 같을 수가 없다. 처음부터 실패를 전제한 번역이다.
번역에 가해지는 배신이라는 비난은 ‘충실성‘ 개념과 맞물려 있다. 그래서 성경처럼 충실성이 특히 중요시되는 텍스트와 관련해 배신을 논할 때가 많다. 그런데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버라 스미스에게 ‘배신했다‘라는 비난이 가해지면서 논란이 매우 흥미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번역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에서 다시 하기로 하고, 먼저 히에로니무스가 말하는 ‘단어를 단어로‘,
‘의미를 의미로‘가 무슨 이야기인지, 번역의 대상이 되는 문자는 무엇이고 의미는 무엇인지 이제 들여다볼 때가 된 것 같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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