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자리는 천하의 모든 일을 걱정해야 하는 자리였다. 정조에게는 더위도 장마도 모두 걱정이었다. 무더위에 ‘만족함을 알아야 한다‘고 별전으로 옮길 것을 거부했지만 정조는 사실상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었다. 재위 22년(1798) 정조는 각신 이만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본래 더위를 참지 못하기 때문에 매년 삼복더위가 지나고 서늘한바람이 처음 불어오면 마치 옛 친구가 찾아온 것처럼 기쁘다. 그러나 올해는 가뭄 때문에 농사가 아직 제대로 되지 않아서 날씨가 일찍 서늘해지는것을 꺼리고 있다. 백성을 위하는 나의 일념 때문에 날씨가 서늘해져도 기쁜 줄을 모르겠다. 방백(方伯: 감사)과 수령들도 이러한 나의 마음을 체득할 수 있겠는가."
정조는 또한 검소함에 대해 김조순에게 이렇게 말했다.
"부지런히 일하고 검소함을 밝히는 것이 우리 왕가의 법도이다." (일득록」
그랬다. 부지런히 일하되 검소하게 생활하는 것이 정조가 생각하는 조선 왕가의 법도였던 것이다. 영조도 그랬고 자신도 그랬다. 그 누구보다 부지런히 일했지만 그 누구보다 검소했다. 규장각 각신들은 정조의 검소함에여러 차례 탄복했다. 각신 서유방(徐有防)의 기록에 따르면 재위 11년(1787)정조의 거처는 벽지를 바른 지 오래되어 검게 변했고, 기둥과 서까래도 계속 내린 비로 다 썩었다. 경연 신하가 유사(有司)에게 고치게 하자고 청하자 정조는 서두르지 말라고 말렸다. - P178
"나는 사치스러움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옷은 모시와 목면에 지나지 않고 음식은 몇 가지에 지나지 않는데 억지로 애써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몸소 행한 효과가 있으면 세상이 변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지금 도리어 온 세상이 사치스럽고 화려할 뿐 변화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다. 아마도 나의 정성이 감동시키지 못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습속이갑자기 변화하기 어려워 그런 것인가." (일득록」7)
정조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명주옷, 즉 비단옷을 입지 않았다. 부드러운명주옷보다 거친 무명옷을 선택했다.
"명주옷이 편리한 무명옷보다 못하다. 사람은 대체로 화려한 옷을 한 번입으면 사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므로 사치하는 풍습이 점점 성하게 된다. 이는 재물을 축내는 것일 뿐 아니라 실로 끝없는 폐해와 연관된다. 내가나쁜 옷이 좋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볍고 따뜻한 옷을 입으면 가난한 여인의 고생하는 모습이 생각나고, 서늘한 궁전에 있을 때면 여름에 발에서 땀 흘리는 농부의 노고가 생각나 경계하고 두려운 마음이 항시 간절하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검소함에서 사치로 가기는 쉬워도 사치에서 검소함으로 가기는 어렵다‘고 했으니, 이것이 경계해야 할 점이다."(『일득록」 1)
그 무명옷도 여러 번 빨아 입었다. 대개 군주들은 옷을 빨아 입지 않고새 옷을 입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정조는 달랐다. - P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