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얼어붙은 겨울의 한밤중에 일본에 있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화제가 바뀌었다. "지금 오로라가 나타났어." "진짜야?" "꽤 격렬하게 움직이는데? 너한테 보여주고 싶다." "그렇군......" 친구의 말이 일순 끊겼다.
북쪽 하늘에서 나타난 한 줄기의 빛은 바람에 날린 것처럼흔들리기 시작했고 어느덧 온 하늘에 퍼졌다. 시시각각 변하는빛의 띠는 커튼이 되었다가 다시 토네이도가 되었다가 하며 어두운 밤하늘에서 춤을 추었다. 잠시 보고 있어야지 생각했는데마침 친구의 전화가 걸려온 것이었다.
내가 사는 극북의 도시 페어뱅크스는 북위 65도에 자리하며, 경도로 봤을 때 오로라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이라고 한다. 이 도시의 사람들에게 오로라는 보기 드문 현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 P174
도 온 하늘을 살아 있는 생물처럼 날뛰어 다니는 차가운 불길에 우리는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뭔가 위대한 존재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ㅈ예전에 겨울 산에서 홀로 오로라를 본 적이 있다. 너무나도 강렬하게 눈밭에 반사된 빛으로 주위가 순간 낮처럼 환해졌었다. 그것은 아름다움이라기보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경험이었다. 에스키모 민화에서도 오로라는 불길한 징조로 간주되었다. 그들은 빛이 지상에 내려와 아이를 낚아채 간다고 믿었다. 일찍이 오로라가 무엇인지 몰랐던 에스키모에게는 그 빛은 어쩐지불길해 보였다. 아름답게 느낄 리가 없었다.
전화를 건 친구의 목소리가 끊긴 것은 수화기 저편에서 뭔가를 상상했기 때문일까? ‘내가 일본에서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 알래스카에서는 오로라가 춤추고 있다.‘ 그것은 당연하면서도참으로 심원한 일일 것이다. - P175
우리는 두 개의 시간을 가지고 살아간다. 달력이나 시계바늘로 새겨지는 분주한 일상과 또 하나는 막연한 생명의 시간이다. 만물에 평등하게 똑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 그 신비함이 우리에게 또 다른 시간을 느끼게 하고, 매일의 일상에 아득히 먼 시점을 제공해주는 듯하다. - P176
알래스카로 이주한 지 10년이 지났을 무렵일까, 친구가 땅을사서 집을 짓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불쑥 꺼냈다. 그의 집 옆에있는 숲이 매물로 나왔다는 것이다. 그때까지는 작은 오두막을 세내어 살고 있었기에 여행을 해도 돌아갈 터전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알래스카에서 지내다가는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결국 나는 나그네였다. 이땅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생활을 접하며 나는 어느순간부터 자문하고 있었다. ‘넌 도대체 어디서 살아가려고 하는거야?" 나는 나그네라는 상황에 어떤 피로감과 허전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 땅에서 살아가자.‘ 그렇게 생각하니 주위의 풍경이 조금씩달리 보였다. 봄에 남쪽에서 날아오는 철새, 발밑에 핀 꽃들과 주위의 나무들, 아니 불어오는 바람마저 나와 친밀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그 친밀함은 지금이라는 좌표축에 머물지 않고 먼 과거의 시간을 향해서도 이어졌다. - P219
골드러시의 꿈에 이끌려 이 북쪽 끝까지 찾아온 각양의 사람들. 혹은 먼 옛날 알래스카가 아직 여명기일 때 북을 향해 끝없이 항해한 베링이나 쿡처럼 북극 탐험사에 족적을 남긴 사람들. 이 수많은 사람들이 알래스카 자연과 만났고, 꿈이 꺾였고, 좌절했고, 또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이 땅에서 계속 살아온 에스키모와 극북 인디언들…… 그들도 아득히 먼 옛날 마지막 빙하기에 물이 빠진 베링 해를 건너 이 땅에 찾아왔다. 그 끊임없는 관계 끝에 지금 내가 알래스카에서 숨을 쉬고있다. 어느새 나에게 알래스카라는 땅이 지닌 특수성은 희미해졌다. 이 땅에서 살며 관계를 맺어가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이 더욱 큰 의미로 다가왔다.
어느 여름의 해 질 무렵, 매물로 나온 숲에서 쓰러진 나무에 걸터앉아 있으니 밑천도 없는데 갑자기 꿈이 부풀었다. 볼을 쓰다듬으며 지나가는 바람이 정처 없는 인생의 불확실성을 알려주었다. 고민하지 마, 마음 가는 대로 나아가! - P220
북극해에서 정면으로 내달려오던 바람은 이제 미친 듯이 불어대고 있었다. 걸리는 것 전혀 없는 알래스카 북극권의 대지에150센티미터 정도 되는 내 텐트만 덩그러니 놓여 있어 마치 이바람에 혼자 맞서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알루미늄 센터폴은 활처럼 휘어지고, 텐트는 간신히 버티고 서 있었다.
5월의 알래스카 북극권. 나는 캐나다 북극권에서 넘어올 카리부 떼의 계절이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광활한 대지에서 카리부 떼의 계절이동을 만나겠다는 것은 모든 상황을 계산에 넣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도박이 아닐 수없다. 그해의 적설량, 추위의 정도, 눈이 녹는 시기 등이 복잡하게 작용하여 어느 날 갑자기 카리부 떼는 겨울철 서식지를 떠나긴 여행길에 오른다. 그들은 도대체 어떤 경로를 거쳐 알래스카 북극권으로 넘어와서 새끼를 낳는 것일까? 나는 베이스캠프를 설치한 뒤 이 광활한 알래스카 북극권 속에서 하나의 점이 되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 P256
빗물 한 방울도 허투루 하지 않고 희박한 수분과 지표의 온기만으로 살아가는 지의류. 가혹한 극북의 툰드라에서 피어나려고 하는 작은 꽃. 영하 50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의 겨울 내내눈구덩이 속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오로지 봄을 기다리는 회색곰.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설원에서 태어나 필사적으로 일어서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카리부 새끼. 이는 헤아릴수 없는 강인함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이곳의 생태계는미묘한 균형으로 유지되는 참으로 연약한 자연이다. 단순한 먹이사슬이 대표하듯이, 지구상에서 가장 상처받기 쉬운 자연일것이다. 사슬 하나만 끊겨도 사슬 전체가 회복할 수 없는 파국에 이르고 만다.
카리부의 주요 먹이인 지의류는 공해 기준의 바로미터일 정도로 대기오염에 약하다. 게다가 그 생장 속도가 매우 느려서한 번 파괴되면 불과 몇 센티미터 자라는 데만 50년에서 100년이 걸린다고 한다. 이는 카리부의 생존을 위해서 광활한 땅이필요한 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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