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2006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시작했다.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이름은>, <끝나지 않는 노래》, 《도》, 《구의 증명>>《해가 지는 곳으로》, 《이제야 언니에게》, 《내가 되는 꿈》, 《단 한 사람》, 소설집 《팽이》, 《겨울방학》, 《일주일>, 단편소설 《비상문》, 《오로라》가 있다. 이상문학상, 만해문학상, 백신애문학상, 신동엽문학상,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 P-1
모두 지난 일이다. 그리고 반복될 일이다. 나는 이제 그것을 이해한다. ‘이해한다‘는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태어나면서 세상을 받아들이듯. 그러므로 싸우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나의 할머니는 전쟁을 세 번 겪었다. 첫 전쟁은 할머니가 어린아이였을 때 일어났다. 역사는 그것을 진압이라고 기록했다. 진압당하는 사람에게는 전쟁과 다를 바 없었다. 할머니의 엄마가 할머니를 살렸다고 한다. 감추고, 경고하고, 부둥켜안으며 이 고난에는 끝이 있을 거라고 말하면서, 그리고 정말 끝이 났기 때문에 할머니는 희망을 믿는 사람이 되었다. - P10
할머니가 어른이 되었을 때 모두가 틀림없이 전쟁이라고부르는 일이 일어났다. 그때 할머니에게는 지켜야 할 자식이 다섯 있었다. 할머니는 어릴 때 배운 것처럼 감추고, 경고하고, 부둥켜안으며 희망을 나누었다. 섭이, 필이 은이는 죽고 곤이와 홍이는 살았다. 전쟁이 끝났을 때 할머니는 신을믿는 사람이 되었다. 귀하고 소중한 우리 섭이, 필이, 은이를잘 보살펴달라고 기도하기 위해서 더는 나이 들지 않기에영영 보살핌이 필요한 세 자식을 신에게 잠시 맡긴 거라고믿었다. 세 번째 전쟁이 일어났을 때 할머니는 숨거나 도망치지 않았다. 언젠가는 끝날 거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전쟁 속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가 물건을 팔고 음식을 구하면서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러다가 신에게 맡겨둔 자식들을되찾으러 떠났다. 그토록 저주하던 인간을 벗어던진 것이다. 기다리던 버스에 마침내 오르는 사람처럼 미련도 후회도 없는 표정으로 죽었다고, 나의 엄마 홍이는 회상했다. 당시 엄마는 서른세 살이었고 나는 일곱 살이었다. 그때 나에게 죽음이란 숨바꼭질처럼 언젠가 끝날 놀이였다. 다시 만날 수없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디에 숨었든 내가 찾아낼 거 - P11
야. 찾지 못해도 어딘가에는 있겠지. 못 찾겠다고 외치면 슬쩍 나타나 나를 놀려대겠지. 아무리 기다려도 할머니는 나타나지 않았다. 너무 멀리 숨으면 반칙인 걸 알면서. 젊은 사람들, 아이가 있는 사람들, 현금이나 보석을 가진사람들, 다른 지역에 가족이나 지인이 있어 거처를 부탁수 있는 사람들부터 동네를 떠났다. 평생을 한곳에서 살아온 노인들과 몸이 불편한 사람들,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은 남았다. 처음에는 엄마도 떠나고 싶어 했다. 곤이 삼촌이 살고 있는 수도에 가려고 했다. 할머니는 남겠다고 했다. 앞서 두 번전쟁을 겪을 때도 할머니는 집을 버린 적이 없었다. 엄마는할머니를 두고 떠나기를 망설였다. 할머니가 죽은 뒤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엄마는 집을 지켰다. 할머니의 집. 엄마가 오랫동안 살다가 떠났던 집. 나를 안고 돌아간 집. 이제는 기억에만 존재하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 - P12
작은 마당이 있었다. 낮은 담벼락 아래에 채송화와 봉숭아가 피었다. 할머니는 봉숭아 꽃잎을 짓이겨 내 손톱에 물을 들였다. 나는 손에서 피가 나는 것 같다고 울었다. 할머니는 나를 놀리며 웃었다. 수돗가 옆에는 앵두나무가 있었다. - P12
빨간 열매를 배가 부르도록 따 먹고 배앓이를 했다. 집은 주방과 큰방, 창고로 나뉘었다. 방은 아침에 가장 밝았고 태양이 기울수록 어두워졌다. 방의 벽을 따라 옷장과 수납장, 좌식 책상과 선반이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일인용 의자 하나. 못질 없이 만든 의자였다. 그곳에 앉아 편히 쉬길 바라는,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만든 의자라고 했다. 누구의 사랑인지는 잊었다. 할머니와 엄마를 향한 누군가의 사랑이었겠지. 당시에는 나 아닌 사람이 할머니나 엄마를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그 의자에 올라서서 창밖을 구경했다. 등받이에 엄마의 셔츠를, 다리에 할머니의 치마를 입힌 다음 의자를 사람처럼 대하며 각종 놀이를 했다. 의자 위에 사진기를 올려두고 할머니와 나와 엄마가 맞은편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찍은 사진을 아직 간직하고 있다. 서로 닮은 우리. 유일한 가족사진. 내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것. - P13
큰 소리가 들리면 공포에 사로잡혀 움직일 수 없다. 죽을것 같다는 불안이 밀려오면 약을 먹는다. 그리고 죄책감. 인간이므로 벗어던질 수 없는 감정. 나는 아직도 우영의 얼굴과 목소리를 기억한다. 아주 잠깐 만났을 뿐인데도 생생하다. 스마일 스티커를 잃지 않으려고 죽어가는 사람이 내가방을 부여잡을 때 나는 그를 뿌리쳤다. 그러나 결국 잃어버렸다. 선악은 나의 생존 가능성을 기준으로 달라졌다. 나는빛도 소금도 아니다. 저주하며 희망하는 사람이다. 아주 작아지기 전에, 엄마를 가죽 주머니에 넣었다. 인식표 대신 그것을 목에 걸고 다닌다. 엄마는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 내심장 가까운 곳에 나는 지금 방석을 생각한다. 집은 무너져도 방석은 파괴되지 않는다. 더러운 방석은 그 자리를 지켰을 것이다. 어느 날 누군가가 그것을 치웠을 것이다. 어째서그런 곳에 방석이 있어 낡고 더러워졌는지 궁금해하지 않으며, 전쟁에서 살아남아 어른으로 자란 나의 마음도 그렇게되었다.
그리고 의자. 의젓하게 우리를 배웅하던 사랑하는 마음. - P38
이제 내게도 총이 있다. 엄마는 그것이 거기 있다는 사실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방법으로 사람들을 살렸다. 엄마가 일기에 썼던 문장을 기억한다. ‘죽어야 한다면 죽는 게 낫다.‘ 나의 일기는 언제나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살아야한다면 사는 게 낫다.‘ 무의미한 말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매일 밤 삶을 선택한다. 할머니에게도총이 있었을까? 전쟁을 세 번이나 겪는 동안 그것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전쟁 속에서도 서로를 돕는 사람들이있었다. 그들이 바로 나의 신이었다. 그리고 나의 신에게 폭탄을 떨어뜨리던 사람들. 자주 상상한다. 누군가를 죽여야만 내가 살 수 있는 상황을 내가 죽어야만 누군가가 살 수있는 상황을 새벽마다 거울 앞에서 연습한다. 거울 속의 나는 나를 겨눈다.
모두 지난 일이다. 그리고 반복될 일이다. 나는 이제 그것을 이해한다. ‘이해한다‘는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태어나면서 세상을 받아들이듯. 그러므로 싸우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 P39
어릴 때 어른스러워 보이려고 애쓴 적이 있다. 그땐 어렸으니까 어른스러운 척을 할 수도 있었다. 어른이된 지금에도 어른스러워 보이려고 애쓸 때가 있다. 나는 여전히 어른스러운 게 뭔지 잘 모르고, 모르니까 긴장했다. 긴장할 때 나는 좀더 이나를 신경 쓸 수 있었다. 이나 입장에서생각할 수 있었다. 어른스럽다는 건 아이 입장에서 생각할수 있다는 뜻일까. 그렇다면 어린 시절 어른스러운 척했던건 그 반대라고 볼 수도 있을까. 20년 전 나는 이유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유진은 나를 이해했을까? 그때 우리를 야단치지 않고 지켜만 보던 이유진의 마음을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은데……. 마흔 살의 이유진과 마흔 살의 내가 대화할수 있다면 좋을 텐데, 공미가 이유진과 연락하며 지냈다는사실은 여전히 놀랍다. 공미는 하고 나는 하지 않는 차이를 생각하면 까마득해진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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