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이 꽃다발을 내밀자 오대표가 "샤베트 튤립이네요?" 하고 차분히 반색했다. 이연은 오대표의 느긋하고 위엄 있는목소리가 단정한 외모와 묘하게 어긋난다 느꼈다. 어쩌면 그런 어긋남이 상대를 집중시키는 힘인지 모르겠다고. 오대표가가슴에 꽃을 안고 천천히 두 사람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기역자로 꺾인 복도 너머에서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노란 불빛, 달콤한 알코올 냄새가 희미하게 새어나왔다. 이연은 마스크를벗어 코트 호주머니에 넣고 성민을 따라 그 빛 속으로 조심스레 들어갔다. - P12

실제로 이 년 넘게 전염병이 이어지며 많은 이들이 관계를실내로 들였다. 더불어 사적 관계도 조금 더 선택적으로 변했는데, 누군가와 숨을 섞고 대화를 나누는 게 어느새 모험이자사치가 된 까닭이었다. 모임을 위해서는 일단 서로 믿을 만한상대를 택해야 했다. 성민은 ‘홈 파티의 그런 내밀하고 폐쇄적인 성격이 우정의 위상을 높여주고, 서로에게 특권을 주는 듯해 싫지 않다‘고 했다. ‘정말 비싼 정보는 온라인에 없고 세상 많은 중요한 일은 식탁에서 이뤄지기 마련‘이라면서 이연 듣기에 ‘최고경영자 과정‘ 밟은 티를 냈다. - P13

식탁 위 다채로운 식기와 소품을 보며 이연은 평소 오대표가색을 얼마나 대범하게 쓰고, 색 쓰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지 알수 있었다. 대학 때 미술을 전공했다는 오대표는 지금은 인테리어 편집숍을 운영한다고 했다. 더불어 그 집에는 그런 개성뿐 아니라 서사적 윤기‘라 부를 만한 것이 곳곳에 포진돼 있었다. 한쪽 바닥에 무심하게 놓인 현대 회화 액자와 아프리카대륙에서 온 걸로 추측되는 나무 조각품들, 은은하게 색이 바랜 진짜 아라비아산 카펫까지…… 오대표가 일일이 설명하지않아도 이연은 물건 하나하나에 깃든 집주인의 시간과 체력,
미감과 여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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