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도 한쪽으로 눕는다


대관령에 이르러 눈을 뜬다 높은 곳에 이른 귀 고막의 외마디 소리 때문이다 그래 가벼운 것들이 위를 향하지 문득 몸무게를 떠올려본다 왜 지나온 나이들은 무거워지는것일까 능선에 가까울수록 나무들은 한쪽으로만 몸이 기울었다 수평을 잡지 못하는 저들의 마음도 바다 쪽으로 향하는가 순간 나무들의 비명이 가파르다
그래 넋이 나간 게야 한쪽으로만 쓰러진 마음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과연 동해로 가는가 아름다운 것들은 스스로 대칭을 이룬다지만 대칭의 건너편에 늘 멀리 있는 사람이 있다
안개 속을 헤매인다 안개 속에서는 모든 풍경이 먼 휘파람처럼 손짓한다 꼭 그만큼의 거리가 여기까지 날 내몰은 것이다 수평은 아득하다 넘어갈 수 없는 선이 수평선을이룬다 결국 저 숨가쁘게 달려온 철길처럼 나는 끝내 바다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 P14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툇마루에 앉아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바라본다 마당 한쪽 햇살이 뒤척이는 곳 저것 내가 무심히 버린 놋숟가락목이 부러진
화순 산골 홀로 밭을 매다 다음날 기척도 없이 세상을 떠난 어느 할머니, 마루 위엔 고추며 채소 산나물을 팔아마련한 돈 백만원이 든 통장과 도장이 검정 고무줄에 묶여매달려 있었다지
마을 사람들이 그 돈으로 관을 마련하고 뒷일을 다 마쳤을 때 그만 넣어왔다 피붙이도 없던 그 놋숟가락 언젠가 이가 부러져 솥 바닥을 긁다가 목이 부러져 내 눈 밖에 뒹굴던 것

버려진 것이 흔들리며 옛일을 되돌린다 머지않은 내일을 밀어올린다 가만히 내 저금통장을 떠올린다 저녁이다 문을 닫고 눕는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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