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외면하려 드는 마음, 용이는 혼자 화를 낸다. 어쩌란 말인가. 제에기! 다 뿌리치고 달아날까? 눈밭을 달려가는 늑대맨치로 달아날까? 꽁꽁 묶어놓은 이놈의 줄을 끊어부리고 그러나 가슴에 젖어드는 것은 연민의 눈물일 뿐이다. 살인 공범자 칠성의 아낙, 마을에서 개처럼 쫓겨났던 여자, 아이 셋을 앞세우고 한 끼의 끼니를 위해 매음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 여자는 지금 홍이어미로서 용이 아낙으로서 이곳에까지 왔다. 증오했고 한 마리의 뱀으로 치부하며 저주했고 죽어지라고 구타했으며 인연을 원망했던 그 여자에 대한 한가닥의 아픔은 용이 인생에 있어 어떤 뜻을 갖는 것일까.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그 험악한 전력(前歷)에서 여자를 숨겨주고 싶은 거의 본능인 그 충동적 아픔은 도대체 어떤 형태의 애정이란 말일까? 일행 중 어느 누구도 그를 위해주고 따스하게 대하는 사람은 없지만 과거사를 드러내어 여자를 천대하는것만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지긋지긋하게 싸웠으면서도 용이는 여자의 과거만은 절대로 건드린 일이 없다. 당초부터 그들의 관계도 그런 것에서 시작되었다. 도대체 어떤 형태의 애정일까.
용이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 간도로 떠나오면서부터 일행에게 있어서 임이네는 불문(不問)의 존재였다. 그리고 은근히 서희와의 접근을 막는 데 신경을 써온 존재이기도 했다. 그 불문의 존재가 거복이로 인하여 풀쑥 떠오른다는 것, 떠올라 일행의 마음을 산란스럽게 하는 일이 두려웠고 여자를 데리고 산다는 죄책감도 되살려져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가만히 그 일을 덮어두고 싶은 연민의 정이 더 짙게 마음을 지배한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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