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 밖의 대화도 맹랑하지만 골방 안의 풍경도 맹랑하다.
"배고파 죽은 혼신아! 손님에 죽은 혼신아! 임병에 죽은 혼신아! 괴정에 죽은 혼신아! 칼맞아 죽은 혼신아! 목매어 죽은 혼신아!
가다오다 죽은 혼신아!"
거리굿이라 하며 음식을 차려놓고 수없이 혼신을 불러대는 봉순이 정말 영신이 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낭랑한 목소리며, 흥분에 번쩍번쩍 빛나는 눈이며, 손짓 몸짓이 단순한 아이들 소꿉놀이라고만할 수가 없다. 너무 진박(眞拍)하여 처연(凄然)한 귀기마저 느끼게한다.
봉순이의 이런 장난은 어미에게 큰 근심거리였다. 무당놀이뿐만아니라 광대놀음도 혀를 내두를 만큼. 봉순이는 서희보다 두 살 위인 일곱 살이다. 가널가녈하게 생긴 모습이나 성미도 안존한 편인데 어떤 내부의 소리가 있었던지 광대놀음, 무당놀음이라면 들린것 같은, 한번 들은 것이면 총기 있게 되는 것도 그러려니와 목소리도 매우 아름다웠다. 아마도 그것은 숙명적인 천부의 자질인 성싶고 슬픈 여정의 약속이 듯도 하다 - P42

사방을 팽팽하게 메운 진한 어둠과 울부짖으며 달려드는 섬진강쪽에서의 바람이 맞부딪쳐 무시무시한 격투를 벌이는 것만 같은밤에, 가랑잎에 발목이 묻히는 잡목숲을 헤치고 구천이와 별당아씨가 어디론지 종적을 감춘 뒤 사흘 만에 최참판댁에서는 바우할아법의 상주 없는 장례가 있었다. 며칠 동안 상식(上食) 때면 뒤꼍에마련한 빈소에서 목이 쉰 간난할멈이 풀무 젓는 소리로 곡을 하였으나 그가 운신을 못 하게 되면서부터, 상식이야 아무나가 했을 테지만 가엾은 노파를 대신하여 울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납덩이같이 덮쳐씌운 침묵 속에서 집안 하인들은 물밑을 헤엄치는 고기떼 모양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날 밤 누가 도장문을 열어주었는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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