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 끈을 조이고 사막에 첫발을 내디뎠다. 겨우 열 걸음정도 걸었을 뿐인데 뒤에서 잡아채는 느낌이었다. 몸이 가벼운체책과 규는 아주 빠르게 모래언덕을 올라갔다. 조르흐도 나보다는 빨랐다. 사구를 살펴보니 한 삼십 분 정도면 충분히 오를수 있을 것 같았다. 한 걸음씩 천천히 올라가면 고비를 넘을 수있다는 생각에 약간의 흥분이 느껴졌다.
조금 더 올라가니 모래언덕은 직각의 벽처럼 가팔랐다. 살면서 우습게 여기고 함부로 덤벼든 일들이 참 많았다. 지금도 눈으로 슬쩍 보고 저까짓 것 정도야 하면서 교만하게 첫발을 떼지않았던가. 밀가루처럼 미세한 모래가 쌓이고 쌓여 불쑥 솟구친언덕은 그러나 쉽게 내 발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앞서 가는 조르흐의 발자국을 빠르게 지우며 바람은 안개처럼 모래를 피워올렸다.
눈으로 보는 것, 슬픔이나 사랑이나 죽음 따위를 관념으로 상상하는 것은 결국 허상이었다. 그것은 결코 면도칼로 살을 베어내는 듯한 상처를 남기지 못했다. 오직 몸으로 겪은 것들만 실상인 것을. 육체가 겪어낸 순간들만 기억이 되었고, 상처로 남았다. 이 고비를 넘으면 바람에 날려가는 모래먼지처럼 내 생의모든 기억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규와 함께했던 날들의 소소했 - P175

던 추억까지도 고비의 모래 속에 묻혀 다시는 기억되지 않기를간절히 소망하며 나는 네발짐승처럼 기었다.
일어서면 바람에 몸이 휘청거렸고, 엎드려 기어가면 입이며코로 모래가 들이쳤다. 앞서 가던 조르흐가 눈썰매를 타듯이 바닥으로 미끄러져내렸다. 잠시 후 체첵도 포기하고 슬슬 미끄럼을 타며 내려왔다. 규는 언덕을 거의 넘기 직전이었다. 모래바람이 내 몸을 덮쳤고, 나는 중심을 잃고 낙석처럼 굴렀다. - P176

 긴 세월을 만났든 겨우 몇 시간을 만났든 헤어져야 하는 순간은 반드시 오고야 만다. 서로 다른 공간 속에서 헤어지는 것이 차라리 편했다. 이별을 선고하는 자는 헤어지는 것이지만, 선고를 받는 자는 버림받았다고 느끼기 마련이었다. 체첵이 몸을 돌려 울었고 나는 위로하지 않았다.
나는 사랑했다. 상처를 입고도 그 영혼이 심오하며, 하찮은 사건으로도 파멸할 수 있는 사람을 운서는 그런 사람이었고, 나를뒤에 남겨두고 떠났다. 흐미를 부르는 소녀 체첵도 그런 사람으로 자랄 것이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상처를 주고받을 터였다. 사랑과 몰락을 반복하며 삶은 그렇게 지속된다.
이제 기어이 고비 속으로 들어가 고독해지고 싶었다. 남겨졌다는 것과 고독하다는 것은 달랐다. 아름답고 열렬했던 사랑일수록 그 안의 상처는 언제나 치명적이었다. 운서는 내게 안녕이라는 짧은 한마디도 남기지 않고 내 곁을 떠났다. 그렇다고 내생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 P177

나는 내가 슬펐다.
슬픔에는 윤리도 논리도 들어 있지 않았다. 상처는 상투성에서 비롯되었다. 생활과 작품과 상상력의 상투성에 사로잡혀 옆구리의 절벽만 자꾸 높였다. 차라리 절벽 끝에서 아득한 낭떠러지를 향해 몸을 던져야만 했었다. 그리고 손톱을 세워 절벽을긁으며 다시 올라와야만 하는 것이었다.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으면서 무엇이 두려워 머뭇거렸던 것일까. 게다가 엄살은 또 얼마나 심했던가. 나는 내가 불편했다.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밤의 적막 속에서 테비시를 향해 걸었다. 테비시는 검은 실루엣으로 초원 위에엎드려 있었다. 나는 테비시의 암각화를 향해 백팔 배를 시작했다. 대지에 오체투지를 하며 절을 하자 오래지 않아 땀이 비오듯 쏟아졌고 뼈들이 삐거덕거렸다. 그래, 자학하지 말자. 백팔배를 마치고 나는 초원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욕망의 물컹한살들이 제거된 뼈만 남은 나를 보고 싶었다. 별이 흐르고 늑대가 우는 밤이었다. - P218

내게 있어 길이란 바로 소설쓰기이며, 떠도는 집이란 소설입니다.
낙타』를 쓰는 동안, 나의 현재를 부정하고자 무던히도 애를썼습니다. 자기의 현재를 부정하지 않으면 새로운 상상력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새로워지기 위하여 지금 이 순간도나를 부정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 부정이 얼마나 치열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지상에 평등한 삶은 없습니다. 평균율의 삶 또한 존재하지 않습니다. 삶은 근본적으로 불평등합니다. 낙타와의 여행은 그것을 깨닫는 길이었습니다. 불평등한 삶을 더욱 불평등하게 몰아세우기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도 영혼의 나태를 경계해야 합니다. 무한경쟁에서 승리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타자를 배려하면서 자기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연재할 때와 달리 소설의 내용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문장들은 온전히 제 것이 아니고 누군가에게서 빌려온 것들입니다. 눈 밝은 독자라면 충분히 읽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빌려온 문장의 진짜 주인을 찾아보는 것은 독자 여러분의 몫입니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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