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 그녀는 다시 서점으로 갔다. 그녀는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셰익스피어는 시작하는 책으로는 무리였다. 고전이 꽂힌 서가에서 읽을 만한 다른 책을 찾았다. 이번에는 서점이 친숙하게 느껴졌다. 수염이 난 젊은 점원이 그녀에게고개를 까딱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표지에 이끌려 『마담 보바리로 결정했지만 그러기 전에 한동안 책 선반을 꼼꼼히 훑었다. 짙은 눈동자에 머리를 프렌치 스타일로 아름답게 틀어올린 여자의 그림을 찬찬히 살폈다. 그 얼굴에 드러난 표정으로 보아 그녀가 여자들의 삶 속에 녹아 있는 내밀한 슬픔에 대해 안다는 느낌이 들어, 마침내 그 책으로 결정했다. - P164

봄이 왔다. 개나리가 출입문 옆에서, 그리고 돌담을 따라 노란꽃망울을 터뜨렸고, 이어서 수선화가, 히아신스가 꽃을 피웠다.
수선화는 제 줄기에 의지해 바람이 스칠 때마다 한들거리며 집의 아래쪽 널에 부딪혔다. 매일같이 하늘은 파랬다. 건물의 벽돌벽은 내리쬐는 햇볕을 받아 따끈했다. 강둑 옆으로 앙상한 자작나무들이 쭈뼛쭈뼛 서 있었는데, 새로 돋아난 보드라운 초록 새싹 때문에 여학생들처럼 수줍음을 타는 것 같았다. 해는 강물 위에서 춤추고 바람은 강둑을 따라 훈훈하게 불었다. 사람들은 공원 벤치에서 점심을 먹다가 바람에 날아가는 빈 감자칩 봉지를허둥지둥 붙잡았다.
저녁은 점점 길어졌다. 저녁을 먹은 뒤에도 부엌 창문을 열어 - P194

놓았고, 습지에서는 청개구리들이 개굴거렸다. 이저벨은 포치계단을 쓸려고 밖으로 나가다가 자신의 삶에 멋진 변화의 순간이 다가왔다는 강렬한 확신에 사로잡혔다. 그 믿음이 어찌나 강렬한지 정신이 아뜩했다. 지금 느껴지는 것은 진정 신의 존재라고, 그녀는 결론 내렸다. 신은 여기 뒤쪽 계단에, 튤립 꽃밭 위로떨어지는 마지막 햇빛에, 습지에서 끈질기게 빽빽거리는 목쉰울음소리에, 바로 이 순간 노루귀와 취란화의 예민한 뿌리가 내리는 향기롭고 축축한 땅에 있었다. 이저벨은 안으로 들어가 방충문을 잠갔고, 그분의 사랑 덕분에 자신의 삶이 마침내 커다랗고 새로운 것이 되려 한다는 확신을 다시금 느꼈다. - P195

하지만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저벨은 에마 보바리를 마지막으로 바라보고 앞쪽 서랍에 집어넣었다.) 에마를 곤경으로 끌어들인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 정말로 그랬다. 정말로, 정말로 그랬다. 에마의 남편 샤를은 완벽하게 괜찮은 사람이었다. 에마가 남편을 사랑했다면 그도 강인하고 재미있는 남자가될 수 있으리라는 것을 그녀 또한 알았을 것이다. 이저벨은 그렇게 믿었다. 솔직히 이저벨은 자신이 샤를 같은 남편과 살면 매우행복했을 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고, 그래서 에마의 관점으로 상황을 바라보기가 당연히 어려웠다.
하지만 복잡한 문제였다. 이저벨은 마음 깊숙이 에마가 품은지독한 열망을 이해하고 있었다. 셜리폴스에서는 누구도 이저벨의 이런 마음을 모르겠지만, 그녀에게는 한 남자와 파괴적인 육 - P203

체적 사랑에 빠진 기억이 있었고, 이 기억은 이따금 살아 있는생물처럼 그녀의 마음속에서 춤을 추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지독히 잘못된 일이었고 그녀의 심장은 지금 세차게 뛰었다. 이 차 안에서 질식해 죽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주차장 가장자리를 따라 걸으며, 고개를 들어 파란 하늘 높이 날개를 펴고 나는 매 두 마리를 이어서 화강암 위 공장아래쪽에서 뿜어낸 거품이 부글거리는 탁류가 흐르는 강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에마 보바리는 이기적이었다고. 이기적이고 사랑을 모르는 여자였다고 혼잣말을 했다. 그녀가 단순히 남편에게 무관심했던 것뿐만 아니라 제 자식을 완전히 내팽개친 것이 그 증거였다. 아니, 에마 보바리는 이저벨 굿로가과거에 그랬던 것보다, 혹은 앞으로 그럴 수 있는 것보다 더 악독했고, 결국 그녀가 역겨운 죽음을 맞았을 때 탓할 수 있는 사람도 자기 자신밖에 없었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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