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니 파미르 하이웨이에서 만난 여인들은 누구나 마디나 같았다. 신산한 삶의 파고 같은 건 내보이지 않고, 그저 지나가는 이를 환대할 뿐이었다. 감자 캐는 모습을 찍으려는 나를 보고 일어서서 포즈를 취해주는 바람에 뻣뻣한 자세의 사진만 찍게 만든 랑가르의 할머니도, 어린딸을 옆에 앉혀놓고 밀을 베다 말고 차 한 잔을 내밀던 지제우의 젊은 여인도, 조식에 나온 팬케이크를 잘 먹는 모습을 보고 다음 날 두 배는 많아진 팬케이크를 내밀던 호록의 할머니도. - P33

알리추르 마을의 고도는 3,991미터였다. 알리추르는 ‘알리의 저주‘라는 뜻. 예언자 마호메트의 사위 알리가 이 지역을 여행하는 동안 혹독한 기후와 지독한 바람에 대해 한소리 하셨단다. 그걸 또 좋다고 마을의 이름으로 삼은 이들의 감수성이 남다르다. 이 주변에는 곰도 살고, 아이벡스산다는데 도대체 어디서 뭘 먹고 사는 걸까. 1년 중 151일눈이 오고, 겨울철에 영하 30도까지는 아무렇지 않게 내려가는 곳에서. 나무 한 그루 없이 온통 회색인 이 환경을 이들은 그저 견디고 있는 걸까. 아니, 내가 알지 못하는 삶의기쁨이 분명 이 마을 구석구석에서 빛나고 있을 터였다. 작고, 소소한 환희의 순간이 이들에게도 수시로 찾아올 것이다. 어차피 삶은 거창한 희망 같은 걸로 견디는 건 아니니까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인간다운 삶의 기본은 전기와 수도가 아닌가. 전기는 그렇다쳐도 생존을 위해 깨끗한 물만큼은 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나라의 영아사망률이 높은 이유에는 분명 상수도가 - P34

없는 환경도 작용했을 것이다. 잿빛 강에서 물을 길어오는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눈이 시렸다. 마을의 여자와 아이들이 물 긷는 일에 쏟을 시간과 에너지를 생각하면 아깝고 분했다. 파미르 하이웨이를 넘는 내내 ‘여행자라니, 참 한가하군, 자조적인 기분이 들곤 했다. 파미르에서는 모든 것이 부족했고, 덕분에 주어지는 모든 것이 소중했다.
두산베로 향하기 전, 오토바이도 다닐 수 없는 가파른 산길을 세 시간 걸어가야 다다르는 지제우 마을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진흙으로 지은 소박한 집들의 담벼락에는 소똥이 말라가고, 다랑논마다 온 가족이 모여 밀을 베고 있었다. 끝나가는 여름의 햇살이 노랗게 익은 대지를 뒤덮고 있었다. 자로 할아버지가 마흔여덟 마리 양과 아홉 마리 소를 키우며 어린 손주들과 함께 살아가는 집이었다. 냇가의정자에 앉아 감자를 섞은 메밀밥으로 저녁을 먹고, 살구나무가지 위로 무수한 별들이 내려앉는 모습을 지켜봤다. 아침은 소리로 찾아왔다. 장난치는 아이들 웃음소리, 기세 좋게 흘러가는 물소리, 살구 열매를 탐하는 새들의 울음소리,
손녀를 부르는 할머니 음성,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의 결이달랐다. 자로 할아버지가 왜 산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지,
할아버지의 딸이 왜 그곳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가는 - P35

지 알 것도 같았다.
파미르의 마을을 마음으로 더듬다 보니 지금 여기 수도 두샨베의 풍경이 더 슬프게 다가온다. 이 도시의 어설픈 화려함이, 건물마다 걸린 대통령의 대형 사진이, 규모만 압도적인 건축물들이 서글프다. 국립도서관에서 열린 국제도서전에서는 이 나라 대통령의 자서전을 쌓아놓고 있었다. 중심가에서는 멀쩡해 보이는 보도블록을 교체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두샨베가 마음에 드냐고 묻는 이들은 옷차림에도, 태도에도 자신감이 흘렀다. 쓸쓸한 마음으로 도시를 걷다 돌아오던 길, 숙소 앞에서 어린 소녀와 마주쳤다.
열서넛쯤 되었을까. 어린 소녀는 노인의 얼굴을 한 채 빵이쌓인 수레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파미르 고원어디에선가 양을 치고 꼴을 베던 아이는 아니었을까. 내가기억하고픈 이 나라의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 P36

카자흐스탄에 도착해 심카드를 갈아 끼웠지만 알마티를 벗어나니 인터넷이 터지지 않았다. 당연히 사티 마을에서도 디지털 라이프를 기대하지 않았다. 가이드북에 내가예약한 집은 샤워 시설이 없다고 쓰여 있었기에 불편을 각오했다. 사흘 정도 샤워를 못 하면 냄새야 좀 나겠지만 나는 이 분야의 전문가였다. 씻지 않고 15일을 버텼던 엄청난 기록의 소유자가 나였으니(에베레스트 겨울 트레킹을 하던 때의 일이었다). 막상 내가 묵을 자나라의 집에 도착하니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서 와이파이가 터졌고, 화장실에는 우리 집보다 더 좋은 샤워 시설이 있었다. 걷다가돌아와 따뜻한 물에 몸을 씻는 축복을 이 깊은 산골에서 누릴 수 있다니. 생각도 못 한 기쁨이었다. 3년 전만 해도 이마을 어디에도 샤워 시설이 없었단다. 그 3년 사이에 산천이 뒤집혀 이제는 대부분이 샤워 시설을 갖췄다. 그들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든, 가축보다도 더 큰 수입원이 된 관광객을 위해서든, 내 눈에는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저개발국의주민들이 자연보호를 명목으로 불편한 삶을 감수해야 한 - P39

다는 의견은 그 말을 하는 사람이 그런 삶을 살고 있을 때조차 폭력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내게 중요한 건 문명의혜택을 무조건 거부하는 게 아니라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다.
사티 마을은 콜사이 호수로 향하는 길목에 있다. 해발고도천 5백 미터에 자리한 작은 마을은 관광 시즌이 끝난 후여서 고즈넉했다. 민박집의 창밖으로 풀을 뜯는 말과 양이 보였다. 숙소를 나와 5분쯤 걸어가면 강변이었다. 해가질 무렵이면 마을 끝의 언덕에 올라 책을 읽었다. 그 시간이 너무 완벽해 슬픔이 스며들 정도였다. 천산산맥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이, 따가운 햇살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거친 대지 위의 작은 집들이, 거기 깃든 사람들의 소박한 살림이, 들판에서 풀을 뜯는 가축들이, 나를 위로했다. 지금 이곳에서 이 모든 것을 누리는 사람이 오직 나뿐이라니, 이 작은 마을이 이토록 커다란 충만함을 주다니, 어리둥절했다. 거대한 자연 앞에 서면 나는 늘 작아진다. 우주의 티끌 같은 존재임을 매번 확인한다. 그 자연의 냉혹함에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은 나를 늘 겸손하게만든다. 어떤 종교적 성소에 들어선 듯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 - P40

사티 마을은 짧은 시간에 큰 변화를 겪고 있었다. 알마티에서 사티로 오는 도로가 좋아져 여섯 시간씩 걸리던 길이 네 시간이 채 안 걸렸다. 도로가 깔리면 한 마을의 삶은확연히 달라진다. 도로를 따라 온갖 것이 외부에서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 거친 파고를 흔들림 없이 감당할 수 있는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사람들이 생겨나면 마을에는 없던 빈부 차도 커진다. 우리가 그랬듯 그들 또한 편리함을 선택함으로써, 지구상 다른이들과 똑같은 욕망을 갖게 됨으로써, 그들이 지녔던 많은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 상실을 나는 안타까워하며 지켜보겠지만, 그로 인한 고통은 온전히 그들이감당해야 할 몫이다. 겨우 며칠 머물다가 모든 편리함을 다갖춘 도시의 삶으로 되돌아갈 내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으니. 그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내가 다녀감으로써 이들 삶에 끼치게 될 부정적인 영향이다.  - P41

부지런히 일하는 여자들의 강인함이, 메마른 대지에서쉼 없이 풀을 뜯던 말과 양 떼와 소들이, 고개를 들면 보이는 설산과 성벽처럼 마을을 두른 민둥산이, 밤이면 불빛 없는 마을을 밝히던 밤하늘의 무성한 별들이, 너무 투명하고깨끗해 내 몸에 고스란히 채워 넣고 싶었던 공기가, 푸른바닷물 한바가지를 그대로 쏟아부은 것 같은 하늘의 색이, 시냇가에 서서 노랗게 물들어 가던 자작나무들이 찾는이 없이도 바라보는 이 없이도 저 홀로 아름다운 마을의 모든 것들이 나는 좋았다. 나는 이제 다시 도시로 돌아가지만 이들의 삶은 이곳에서 그대로 계속될 것이다. 내가 남기고가는 흔적과 함께. 그날따라 그 사실이 마음에 사무쳤다. - P44

작지 않은 이 민박집의 모든 청소와 다림질, 요리를 안젤리카 혼자 해낸다. 가축 여물을 주고, 마당의 잡초를 뽑고, 손님 방에 장작을 때고 하는 일은 남편 시미온의 몫. 저녁식사를 할 때 남편이 아내를 도와 그릇을 옮기거나 서빙을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이 집의 모든 침구류는 흰색이었는데 빳빳하고 뽀송뽀송하다. 그걸 혼자서 빨고, 다리고,
씌운다니 상상만으로 나는 고개가 절레절레. 하루에 도대체 몇 시간 일하냐고 물으니 안젤리카는 "24시간!"이라고 답하며 웃었다. 그런데도 일에 찌든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고, 마음을 다해 손님을 대접한다. 키우는 가축을 돌보는 태도도 다정하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하지만, 돈이 결코 전부가 아닌 사람의 태도다. 자신이 하는 일이 결국 살아 있는 존재를 향한다는 사실을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이의 존엄이 그녀에게 배어 있었다. 그 집을 떠나던 날, 안젤리카는 마당의 포도와 사과, 직접 구운 케이크와 과자를 가득 담아 건넸다. "우리의 첫 한국인 손님이 되어줘서 정말 기뻤어"라는 말과 함께.
이 산골 마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바라는 삶이다. 보람이 있는 노동을 하며, 자연과 격리되지 않은 채, 이웃과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삶. 우리는 - P53

점점 그런 삶에서 멀어지고 있다.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이가 보람이나 긍지가 있는 노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자연을 누리는 여유도, 타인을 챙기는 손길도 모두 돈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일까. 망설이는 사이 꿈꾸는 삶은 또다시미래의 일로 미뤄지고 있다.
- P54

짧은 동네 산책에 비극의 조지아 역사가 고스란히 따라온다. 페르시아, 오스만 제국, 러시아 같은 강대국 사이에낀 조지아는 끝없는 외침을 받았다. 코쉬키는 외침에 대비해 쌓아 올린 방어용 탑이다. 전쟁이 나면 식량을 들고 들어가 버티기 위해 만든 탑이 이제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후 조지아의 청년들 3천여 명이 우크라이나로 달려갔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국제 연대였다. 조지아도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러시아의 다음 목표가 조지아라는 소문도 무성하다. 이 나라의 청년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남의 일로만 여길 수 없었을 것이다. 광주항쟁 유족회에서 세월호 참사의 어머니들을 위해 내걸었던 현수막 글귀처럼.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


여행은 결국 자기만의 세계사 교과서를 써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역사는 많은 경우 승리한 자의 시선으로 쓰인일방적인 이야기일 수 있기에. 여행을 통해 우리는 평소 만 - P58

날 수 없었던 이들(패한 자, 소수자들, 경계인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로, 그들의 삶을 듣게 된다. 역사책 안 익명의 존재가 아니라 이름과 목소리와 체온을 지닌 구체적인 인간으로 만나는 시간이다. 그런 경험이 쌓여갈 때마다 자신만의 세계사가 새롭게 쓰인다. 세상이 내게 주입한 지식이 깨져 나간다. 그 자리에 내 시선으로 해석한 세계가 들어선다.
그렇기에 ‘여행은 단순한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자신이 쌓아온 생각의 성을 벗어나는 것‘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조지아인의 목소리로 조지아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조금씩 더 조지아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여름의 태양은 날카로웠지만 고도가 높아 바람이 서늘했다. 성수기인데도 트레일은 고즈넉했다. 이 아름다운 코카서스 산맥을 걷는 이들은 우리를 빼면 스무 명 남짓이 전부였다. 몸을 써야만 하는 일이 점점 줄어드는 시대에 이렇게나마 내 몸의 육체성을 확인하는 일은 고되면서도 뿌듯하다. 허벅지의 근육이 끊어질 것처럼 팽팽히 당겨지는 오르막을 오르고, 맨발로 얼음장 같은 계곡물을 건너고, 땀을쏟으며 가쁜 숨을 내뱉는 일. 그런 순간이면 내 몸이 제대로 기능을 해내고 있음에 안도하게 된다.  - P59

나는 왜 또 카미노를 걷겠다고 나선 걸까. 혼자 걸어도안전하니까, 지독한 길치도 화살표만 따라가면 길의 끝에다다르니까, 수많은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으니까, 비용도많이 들지 않으니까. 저마다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 카미노는 언제나 내 안의 가장 선한 얼굴을 만날 수있는 길이었다. 더 겸손하고, 더 강인하고, 더 다정한 나를만날 수 있는 길. 그런 나와 조우하며 걷다 보면 종교가 없는 나에게도 영적인 순간이 종종 찾아왔다. 세상 모든 것에 깃들어 있는 신의 손길을 느끼고, 더 나아가 내 안의 신성을 발견하고, 그 신전에 반짝 불이 들어오는, 그런 경이로운 순간들 말이다. 적어도 카미노를 걷는 동안은 스스로좀 더 영적인 인간이 된 것 같아 하루가 늘 감사함으로 마무리되었다. 나는 이 길이 지닌 평등함도 사랑했다. 이 길에서 우리는 단 하나의 이름으로 불린다. 페레그리노(순례자). 우리가 각자의 삶에서 무엇을 이루었고, 또 무엇을 잃었든 간에 이곳에서는 그저 순례자일 뿐. 삶에 필요한 모든것을 배낭 하나에 넣고 먼 길을 고행하듯 가는 순례자. 그래서 이 길을 걷는 동안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동시에,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여기에서는 다른 자신을 꿈꿀 수 있다. - P68

과거를 넘어서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지금 여기에오로지 집중할 수 있는 길이었다. 거기에 더해 카미노가지넌 천년의 역사성. 그 긴 세월 동안 이 길을 걸어온 사람들을 상상하면 나는 길 위에서 외롭지 않았다. 그들의 사연과눈물과 땀이 내가 걷는 발자국 아래 켜켜이 쌓여 있다고 믿었으니까. 지구 위에 이런 길이 있다는 걸 떠올리는 것만으로 든든했다. 삶이 나에게 불친절해지면 잠시 그리로 가면돼, 그럼 나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어서 돌아올 거야. 내게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도피처 하나가 있는 셈이었다. 쓰라린 사랑이 끝났을 때도, 전셋값 폭등에 내동댕이쳐졌을때도, 나는 삶을 견디고 사랑하기 위해 카미노를 찾아갔다.
카미노는 나에게 은신처이자 학교이며, 병원이고 사원이었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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