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신경숙의 글쓰기를 두고 가슴에서 퍼내듯 쓴다고 하는 것은 그런 정황을 전하려는 것이며, 다른 작품보다 「감자 먹는 사람들」을 되풀이해 읽고 그에 대한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도 같은 연유일 것이다.

<감자 먹는 사람들>은 반 고흐의 누에넌 시절 초기작으로,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정직한 삶의 모습을 그리려고 애쓰던 무렵의 작품이다.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리려고 평소에 잘 알던 농부 가족을 한 명씩 따로 마흔 번 이상 그리면서 인물의 표정들을 익혔다. 다섯 명의 농부가족이 등불 아래 식탁에 둘러앉아 찐 감자를 먹고 있는 저녁식사 자리의 광경은 이 무렵 고흐의 특징이던 회색과 갈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다"고 고흐는 아우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썼다.
신경숙의 단편소설 「감자 먹는 사람들」은 디킨스와 밀레와 에밀 졸라에 심취해 있던 그 무렵 반 고흐의 인민적 열정에서는 ‘비켜서‘ 있으나, 결국은 사위어가는 말년의 아버지를 간병하는 화자의 기억을 통하여 세상살이의 회한과 연민을 그려낸다.
- P64

 처음 읽으면서는 그냥 지나쳤던 아슬아슬한 복선들을 다시 읽으면서 확인한다. 남편은 그녀가 읽은 추리소설의 남편처럼 연쇄살인범일지도 설마 아닐 수도 있다. 어쨌든 인간관계의 가장 압축된 상징이 부부라면 서로는 서로의 피사체일 뿐이다. 각자의 존재는 상대에게 투영된 자기 그림자를 보면서 또다른 자기를 간직한다. 따라서 내가 알고있다고 여기는 ‘너‘는 ‘바라보는 거리‘가 만든다. 결론적으로 「빈집」은 매우 치밀하고 냉정한 작품이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미건조한 일상 속에서 끔찍한 존재의 고독을 무심한 듯 드러내고 있다.
혼자서 딸아이를 키우고 대학까지 가르치고 취직해서 분가시켰던 어느날, 김인숙이 나와 통화를 하다가 "이젠 시집가야겠어요"라고 농담처럼 던진 말이 쓸쓸하게 귓전에 남아 있다. 이 단편소설을 읽으니 그가 엄마로서뿐만이 아니라 작가로서도 이미 고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P92

1980년대의 급진적인 혁명의 열기는 또한 맞춤하게 베를린장벽붕괴와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급속하게 냉각된다. 이들 분열의 갈등은 변혁운동의 주체가 이제는 냉정히 승인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좌절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역사적 진실의 진전이란 언제나 지상의 시간적 제약 때문에 의미를 부여했던 기호와 따로 떨어져서 뒤늦게 체험된다. ‘그러한 시차에 둔감한 모든 진보의 기획은 기획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정지된 시간의 다른 이름인 역사의 종착점을 향해 눈먼 질주로 치달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깨달음은 뒤늦게 오지 않던가. 지상의 무상한 시간을 견디고서 속세의 먼지 가운데서 빛나는 것들을 알아보는 그 기억의 힘을 결코 버릴수 없다는 것이, 공지영의 단편소설 「인간에 대한 예의」의 주제이기도할 것이다.

어디선가 듣고 그럴듯하다고 여겨온 이야기가 있다. 장님에는 두 부류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두려워서 마당 밖으로는 절대로 나가지 않고방안이나 익숙한 공간에 머물러 있고, 또다른 하나는 낯선 장소나 건물속을 과감히 돌아다니는 부류다. 그래서 후자는 무수히 부딪치고 넘어지고를 거듭하여 무릎과 정강이에 상처가 아물 날이 없다. 작가로 치면 공지영이 그런 이가 아닐까.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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