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한 이십 년
-1974년 봄, 또는 1973년 겨울

이인성


그때 그가 돌아오려 했던 곳은 어디인가? 여기인가? 그렇다면, 여기서. 그가 여전히 돌아가려 했던 곳은 어디인가? 어디론가 돌아가야 한다는 막연한 절실함, 그는 지나는 길에 잠시 머문 춘천을 떠나 돌아오기 위해 서울행 직행버스에 앉아 있었다. 탑승대 옆 벽시계의 커다란 분침이 뚝 일 분을 건너뛰어 네시 사십분을 가리킬 때 버스는 움직이기시작했고, 그는 또 뜻 모를 조바심을 느꼈다. 종합 정류장을 빠져나온버스는 왼쪽으로 방향을 꺾더니 곧 나타난 다리 위로 올라섰다. 다리 아래로, 반쯤 얼어붙은 너른 물폭의 공지천이 길게 내려다보였다. 깨끗하게 기슭을 다듬은 강둑 가까이 보트 한 척이 얼음 속에 갇혀 있었고, 그안에 두터운 파카옷을 껴입은 한 쌍의 남녀가 앉아 있었다. 헛되이 얼음을 저어 나가려는 것일까? 그 장면을 바라보며 불현듯 꿈터오는 그의상상 속에서, 남자가 말했다. 사랑해. 물끄러미 남자를 바라보던 여자가피식 대꾸했다. 안 믿어. 순간, 그의 두 손이, 가슴 밑으로 한낱 바늘처럼 날카롭게 관통해들어오는 통증을 움켜잡았다. - P97

헤아릴 수도 없는 작은 소리의 응어리들이 방안에 투영된 창문 앞의 사철나무를 두드린다. 소리는 나무를 물들이고, 불빛은 물기 속에 스며 나무를 드리우고 있다. 그 불빛들은 여기저기 가지의 끝에서나 잎새의 끝에서 다시 뚝 뚝 뚝 떨어져내린다. 방안 창 밑의 깊은 어둠 속으로 불빛들이 스러질 때, 어둠의 우물안에서는 설핏 빛의 소리들이 울려나온다. 창문을 열고, 나는, 그 깊은깊이를 향하여 몸을 기울인다. - P147

나는 물론 이 소설의 이야기꾼이지만, 이 소설에선 이야기꾼으로서의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본문 안에서도 여전히 이 책표지에 인쇄되어 있는 이름의 존재와 동일한 이인성이고자 하는 것이다. (…) 작가와는 다른 이름으로 무수히 가능한 다른 이야기꾼들이란, 새로운 두께로 겹쳐져, 나로 하여금 바로 나와 또하나의 나사이를 오가게 하는, 그 사이 속에 개입해 들어오는 타인의 얼굴로 다가오는 것이다. (...) 이름과 함께, 그는 나를 벗어나 독자적인 주체이자 대상이 될 테지. 나로부터의 분열이든 확산이든, 그때 하나의실체인 그는 이미 그인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 나는 그를 고스란히나 자신으로 품고 싶다. 원심력의 욕구를 가지고 나로부터 떨어져나가려는 한 의식의 반대편으로 일종의 구심력을 작용시키며, 내가 팽팽하게 둥근 하나의 폭으로 열리도록. (이인성, 「문학에 대한 짧은 생각들) - P154

열거한 기억들이 순서대로 나온다면 독자가 읽기에 얼마나 편하겠는가마는, 마치 손가락 깍지를 마주 끼듯이, 아니 손가락이라기보다는 실뜨기를 하듯이 기억들이 얽혀 있다. 그러고는 이러한 모든 기억의 서사가 끝나고 글쓰는자인 ‘나‘가 나타나 그 드러냄을 위해서 이 대목이 있는 것처럼, 비 내리는 이른 여름 밤의 빗소리를 전한다. 그것도 현재의회상 시점을 밝히려는 목적인 것 같다.
이들 젊은 날의 자잘한 상처를 짚어나가는 잡다한 편린들은 엄살을부리거나 심각하지도 않고, 그맘 때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시시껄렁하게 드러낼지언정 과장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지켜보는 나는 안쓰럽고 어딘가 아프게 느낀다. 도와줄 수도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고 그냥 등뒤에서 묵묵히 지켜본다. 남들도 내게 그러했으리라. ‘한국문학은 1974년에 스물서너 살이 된 한 상처받은 젊은이의 전형적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김현은 쓰면서 그 모습이 성숙하다고 덧붙인다.
심야 공항의 환승구역을 서성대는 여행자가 떠오른다. 그는 불 꺼진쇼윈도 위에 비치는 자기 모습을 힐끗 바라보며 지나간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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