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된 지 2주 남짓 지났다. 내 마음은 점점 우울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말할 나위 없이 지난해 말 일본과 한국의 선거 결과 때문이다. 일본의 새 정권은 올여름 참의원 선거를 의식해 일시적인 인기몰이 정책을 잇달아 내세우는 한편으로 외교, 안보, 교육 등의 분야에서 극단적인 우경화를 실행하기 시작했다. 극우 이데올로그들이 여봐란듯이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60여 년을 살아온 나는 이 예상외의 장수 덕분에 보고 싶지 않은 꼴을 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 내 인생을 20년씩 세 시기로 나눠 보면, 앞의 20년은 일본전후 민주주의의 융성기에 해당하며, 다음 20년은 대학 투쟁의 패배를 거친 탈정치의 시기, 뒤의 20년은 경제성장의 정체와 보수화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바라지는 않지만, 내가 만일 20년을 더 산다면 그것은 대반동의 시기가 될 것이다. 일본은 패전과 맞바꿔 얻은 민주주의와 평화주의라는 귀중한 재산을 이 반동기 - P301
에 거의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과거에서 배우지 않고 또 타자를해칠 것이다. 어떤 계기로 반동을 극복할 때가 온다고 해도 그때까지 막대한 희생과 시간을 대가로 치러야 할 것이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게 됐다고 했는데, 지난해 말의 한국대선 전에 본 시인 김지하의 모습은 정말 보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1970년대의 험악하기 짝이 없던 유신 독재 시대에 일본에서출판된 그의 시집 (일본어판)이 내게 남아 있다. 당시 한국 국내에서는 금서였기 때문에 일본에서 먼저 출판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나는 그것을 읽고 또 읽었다. 지위도 권력도 없는 젊은이, 재일조선인이라는 피차별 소수자, 정치범의 가족이었던 나는 진정 "타는 목마름으로" 그것을 읽었다. - P302
거기서 절망속에서도 고개를 쳐들고 싸우는 숭고한 조국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팔레스타인에서, 남아프리카에서, 라틴아메리카에서,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뒷골목 젊은이들이 부러진 분필로 ‘민주주의‘라고 쓰는 모습을 떠올렸다. 나도 그런 사람들의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나는 거기서 절망의 극점으로서의 ‘희망‘을 읽어 내려 한 것이다. 지금도 한국에서, 일본에서, 세계각지에서 버림받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희구하고있다. 지난해 말 ‘시인회의‘라는 단체의 창립 50주년 대회에서 기념 강연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나는 「시가 투영하는 동아시아 근현대사」라는 제목으로 이상화, 윤동주, 김지하, 박노해, - P302
최영미, 정희성 등의 시를 소개했다. 나는 1990년대 말 도쿄에서열린 기미가요. 히노마루 법제화 반대 시민 집회에서 김지하의「타는 목마름으로」를 소개한 적이 있다. 일본 사회가 현재에 이르는 우경화의 가파른 비탈 아래로 굴러떨어지기 시작한 무렵의일이다. 우리 조선인들은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갈망했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우리 재일조선인들에게 가르쳐 준 것은일본의 전후 교육이었다. 그 민주주의는 한국에서는 막대한 희생을 통해 쟁취되었으나, 일본에서는 이렇다 할 저항도 없이 내버려질 상황에 직면했다. 민주주의가 안락사 직전에 놓인 것이다. 이것이 그때 내가 한 이야기의 취지였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일본의 민주주의는 무자각속에 단말마의 위기를 맞았고, 한국은 일찍이 "타는 목마름으로" 노래했던 시인이 자신의 시를 배반하는 무참한 꼴을 드러내고 있다. - P303
1970년대 당시, 그런 암흑 속에서도 인간은 이렇게 빛날 수있다는 걸 느꼈다. 나뿐만이 아니다. 일본인을 포함한 세계 각지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감격을 공유하며 한국 민주화 투쟁을 성원했다. 지금 우리는 그토록 빛나던 시인이 이토록 범용하고어리석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오늘날의 암흑이다. 얼핏 보기에는 지난날과 같은 폭력적인 모습은 아니지만, 인간 정신에 대한 실망과 냉소가 만연해 있다. 우리는앞으로 이 냉소의 어둠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 P303
이미 1990년대 초부터 나는 몇 번에 걸쳐 김지하를 비판한적이 있다. 그는 왜 저 꼴이 되고 만 걸까? 한국의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그들은 쓴웃음을 지으며 ‘김지하‘는 어느 개인의 이름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집합명사로, 암흑시대에 함께 싸운 사람들의 정서가 그의 시에 모여 결정체를 이루었기에 책임도 명예도 김지하 개인에게만 돌아갈 수는 없다고 답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떤 시대정신을 투영한 시의 가치는 그것을 쓴 시인 개인의 존재를 넘어선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면김지하 개인이 보여 준 천박성 역시 한 시대를 살아온 일군의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김지하라는 개인만이 기인이요 어리석은 자라면 문제는 간단하며, 이렇게 탄식할필요도 없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나는 보고 싶지 않은 것을 앞으로도 계속 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일 것이다. 그것을 통감하는 정초다. - P304
‘유대인‘이라는 존재가 먼저 있었던 게 아니라 반유대주의가 유대인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 「유대인 되기의 강제성과 불가능성에 대해」는 이에 관한 고찰을 담고 있다. 지금도 일반 사람들 대다수가 지닌 유대인에 대한 고정관념을깨기 위해서는 물론이고, ‘인종‘, ‘민족‘, ‘국민‘, ‘고향‘, ‘조국‘이라는 통념의 ‘강제성과 불가능성‘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도 읽어 봐야 할 고찰이다. 지은이 아메리는 빈대학에서 문학과 철학 학위를 받은 일급지식인으로, 1938년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하자 벨기에로 탈출했다. 1940년 독일군의 벨기에 점령 뒤 레지스탕스 활동에 참여했고 1943년 7월 게슈타포에 붙잡혔다. 1944년 1월에는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어 강제 노동을 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소련군에 의해 해방되기 직전, 후퇴하던 독일군이 강요한 ‘죽음의 행진‘에 수인 대다수와 함께 끌려갔다. 부헨발트 수용소를거쳐 1945년 4월 베르겐벨젠 수용소에서 연합군에 의해 마침내해방됐다. 전쟁 중 벨기에에서 연행된 유대인 2만 5,000여 명 중 겨우 615명만이 살아남았다. 하지만 해방된 뒤 그는 알게 됐다. - P317
"나로 하여금 2년간의 수용소 생활을 견디게 한 바로 그 사람의죽음"을 "그 사람"은 나치 지배하의 오스트리아에서 함께 탈출한 아내였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의 수기로서 널리 알려진 책으로는 빅토어 프랑클Viktor Frankl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와 프리모 레비의「이것이 인간인가』가 있다. 아메리, 프랑클, 레비 세 사람은 똑같이 강제수용소를 체험했지만, 문제 의식 면에서는 큰 차이를 보인다. 프랑클은 ‘고통받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며, 아우슈비츠가 등장한 이유를 묻기보다는 주어진 극한상황이 인간 정신을 어떻게 고양시키는지를 중시한다. 한편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란 무엇이며, 왜 등장했는가 하는 근원적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 비유하자면 프랑클과 레비 사이에는 ‘임상적‘ 차원과 ‘병리학적‘ 차원의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 P318
아메리의 책은 이 둘과 크게 다르다. 아메리는 "지겨울 만큼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 그럼에도 여전히 낯설게 남아 있는 것속을 힘겹게 더듬어 나가듯이 책을 썼다고 이야기한다(1966년초판 서문). 그 특징은 희생자인 아메리 자신의 내면세계를 가혹하리만치 철저하게 파고들어 사색하는 점에 있다. 그에 따르면 아우슈비츠에서 ‘정신‘은 무력했다. 그곳에서 "정신과 야만의 만남"이 "순수한 형태로 나타난 결과 "정신은우리를 저버렸다." "정신은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데에는 쓸모 - P318
가 있었다." 저항운동을 하다 체포된 아메리는 벨기에 브렌동크 수용소에서 게슈타포의 잔혹한 고문을 받았다. 이 책의 ‘고문‘ 장은 그때의 체험을 반추한 것이다. "몇 개의 육중한 창살문을 지나면끝에는 창 하나 없는 둥근 천장의 방이 있었다. 그곳에는 괴상하게 생긴 철제 도구들이 널려 있었다. 어떤 소리도 바깥으로 새어나갈 수 없었다." 나는 10여 년 전 브렌동크를 찾아가 그 내부를 본 적이 있다. 고문실은 아메리가 묘사한 대로 암울 그 자체로서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눈으로 확인했다고 해서 내가 무엇을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최초의 일격과 함께 일단 세계에 대한 신뢰라 부를 수 있는무언가를 잃게 된다." - P319
아메리는 고문을 성폭행에 비유한다. "아무런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경우, 타자에 의한 육체적 압도는 결국 완전한 실존적 절멸 행위가 된다." "고문당한 자는 두 번 다시 세상을 친숙하게 느낄 수 없다. 절멸의 굴욕은 사라지지 않는다. 부분적으로는첫 일격에 의해, 전체적으로는 고문에 의해 무너진 세계에 대한신뢰는 다시는 회복되지 않는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고문 희생자의 심리를 ‘안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고문 희생자가 아메리와 같은 고찰을 남기는 경우는 매우 - P319
드물다. 우선 당사자로서 기억하고 말함으로써 추체험하는 게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성폭행‘의 비유가 시사하듯, 폭력에 완전히 굴복한 체험은 사그라지기 어려운 굴욕감으로 반복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결정적인것은, 설령 이야기해 봤자 일반인들은 알 수가 없으며 그들의 몰이해와 무관심과 맞닥뜨릴 때는 자신이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는체념과 고립감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는 ‘단절의 체험‘이다. 아메리의 책을 관통하는 것은 이 절대적인 고독감이다. 따라서 그가 1978년 자살한 사실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레비는 그9년 뒤에 자살했다). 이런 세상에서 태연하게 살아갈 수 있는 쪽이 이상한 게 아닐까. - P320
그러나 고문이 나치의 독점물은 아니다. 그것은 가까운 과거의 한국에서, 일본에서,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자행됐으며, 지금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안다‘고 할 수는 없을지언정우리는 아메리의 고찰을 거듭 곱씹어야만 한다. 우리가 무엇을모르는지 알기 위해. 「사람은 얼마나 많은 고향을 필요로 하는가」와 「원한, 장을 언급할 지면은 없지만, 특히 후자는 ‘역사 문제‘나 ‘식민 지배 책임‘에 대해 깊이 생각하려 할 때 반드시 읽어야 할 고찰이라는점만 지적해 둔다. 아메리는 결코 안이한 ‘용서‘나 ‘치유‘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런 만큼 이 책을 읽는 건 독자에게는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하지만 그것은 현대 ㅡ아우슈비츠 이후의 시대ㅡ를 살아가는 우리가 ‘인간‘이고자 할 때 피할 수 없는 고통이다. - P320
프랑코군을 지원하는 나치 독일 공군이 바스크 지방의 작은마을 게르니카에 무차별폭격을 가한 1937년, 아시아에서는 중일전쟁이 시작되어 난징 대학살이 자행됐다. <게르니카> 이후80년, 인류는 제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그리고 수많은 전쟁을 경험했다. 〈게르니카>는 교과서에도 실려 있으나 그것을 그린 피카소의 정신, 그 그림을 울면서 바라본 사람들의 심정에 공감하는 사람은 지금 얼마나 될까. 예술에 전쟁을 막는 힘이 있는지, 악한 권력을 무너뜨릴 힘이 있는지 의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 어떤 악몽의 시대에도관용과 연대, 그리고 공감을 추구하는 인간 정신이 살아 있다는것을 가르쳐 준다. 트럼프와 그 지지자(예컨대 하시모토 도루 전 오사카 시장)라면 <게르니카>를 낙서라고 매도할 것이다. 예술 따위는 ‘엘리트‘의 사치품이라고 큰소리칠 것이다. ‘대중‘은 더 쉽게 와닿는즐거움을 찾는다면서. 그런 생각이야말로 대중 멸시이며, 더없는 반지성이다. 그들의 언동을 보고 나는 원형경기장에 기독교 - P326
도(당시의 피차별 마이너리티)들을 몰아넣어 맹수들의 먹이가 되게 해 놓고 로마 시민들의 볼거리로 제공한 고대 로마의 지배자들을 떠올렸다. 예술에는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게르니카>는 아직 잠들수 없다. - P327
윤동주는 당시 일본인들 사이에서 철저히 고립되어있었을 것이며, 주변의 일본인 중 그의 마음을 이해하는 자는 거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창밖에 밤비가속살거려/육첩방房은 남의 나라"(「쉽게 씌어진 시)라는 시구가 더욱 가슴을 저미는 것이다.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옥사하기직전에 질렀다는 마지막 외마디도, 그 의미를 알아들은 일본인은 아무도 없었다. 시인은 자신의 모어로 시를 쓰는 것조차 금지당했다. 증거물로 압수된 미발표 원고는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게다가 형사로부터 폭행과 조롱을 당하고 억지 설교를 듣다가 이국의 감옥에서 죽어야만 했다. 그 억울함과 슬픔, 분노는 지금도 많은 조선 민족이 공유하는 바다. 그 감정들은 어째서 아직도 사라지지않는가? - P332
그것은 가해자들이 책임을 조금도 자각하지 못하고, 과거를 반성하기는커녕 치안유지법이 적법하다고 아무렇지 않게공언하기 때문이다. 치안유지법은 적법하며, 희생자에 대한 조사나 사죄는 필요치 않다는 것은 패전과 포츠담 선언 수락이라는 역사적 사실 자체에 대한 부인을 의미한다. 일본이 조선, 대만 등의 식민지를 포기한 것은 포츠담 선언 수락에 의해서였다. 요컨대 그들은 식민 지배 책임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진상 규명조차 불철저했던 우리는 치 - P332
안유지법 등에 의한 정치 탄압 문제에는 거의 손도 대지 못한 상태다. 해방 뒤 통일체로서의 조선 민족이 주체가 되어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 추궁을 이어 나갔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민족 분단이 일본의 극우파와 역사수정주의자를 돕는 꼴이 됐다. 통탄스러운 일이다. 이제부터라도 그 작업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 상황이 이러한 가운데, 일본에서 배외주의의 창끝은 점점 ‘한국인‘, ‘조선인‘을 향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5월23일 나고야의 재일조선인계 신용조합에 한 남성이 난입해, 등유에 적신 천에 불을 붙이고는 등유가 든 기름통과 함께 카운터안쪽으로 던진 사건이 있었다. 종업원이 불을 끈 덕에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조금만 잘못되었어도 대참사로 번졌을 것이다. 경찰에 출두한 용의자(65세)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전부터 한국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라고 진술했다고한다. 헤이트스피치 수준을 한참 벗어난 명백한 ‘테러‘ 사건이다. 더 이상의 확대를 막기 위해 일본 정부는 테러 행위를 엄중히 비난하고 재발 방지에 힘쓸 것을 선언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행동은 보이지 않는다. - P333
국가권력의 횡포 이상으로 개탄스러운 것은 반지성주의가 횡행하고 냉소와 무관심이 만연해 있는 지금 상황이다. 지식인들은 이 위기에 저항할 책무를 지고 있으나, 유감스럽게도 지식인다수도 이 증상에 감염되어 자기 역할을 포기하거나 오히려 자진해서 반지성주의 쪽에 가담해 가짜 지식인으로 전락하고 있다. 가토 슈이치가 쓴 「언어와 탱크」라는 글이 있다.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프라하의 봄‘이라 불리는 ‘자유화‘ 운동이 일어나자 소련이 군사개입으로 진압한 사건이 있었다. 그는 이 사건을 지근거리에서 목격했다. "언어는 아무리 날카로워도, 또 아무리 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되더라도 한 대의 탱크조차 파괴할수 없다. 탱크는 모든 목소리를 침묵시킬 수 있고, 프라하 전체를 파괴할 수도 있다. 그러나 프라하 거리의 탱크라는 존재 자체를 스스로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언어가 필요하다. (...) 1968년 봄, 가랑비에 젖은 - P339
프라하의 거리에서 마주한 것은 압도적이고 무력한 탱크와 무력하지만 압도적인 언어였다." 그 시기(1960년대 후반) 한국에서는 미국의 요구에 따라 박정희 정권이 베트남에 파병하고, 이후의 유신 체제를 향해 독재를 강화하고 있었다(1969년 ‘3선 개헌‘).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측근의 손에 사살당했고, 프라하보다 10년 남짓 늦게 한국에도 ‘봄‘이 찾아왔다. 그러나 ‘서울의 봄‘은 1980년 광주 5.18 때탄압당했다. ‘탱크‘가 ‘언어‘를 뭉개 버린 것이다. 한국에서는 그 뒤 ‘언어‘가 ‘탱크‘를 압도하는 순간이 거듭찾아왔다. 그 최근의 것이 시민의 평화적 시위로 박근혜 대통령탄핵을 쟁취한 투쟁이다. 한편, 일본에서는 ‘언어‘가 자근자근압살당해 공동화되고 말았다. ‘언어‘에 대한 신뢰가 근본적으로 파괴되어 일본의 정치권력은 ‘탱크‘ 없이도 인민을 통치할 수 있다. 이에 저항하려는 사람들은 ‘언어‘를 재건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문필가, 저널리스트, 교원 등 언어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책임이 무겁다 - P340
<론다니니의 피에타>는 미켈란젤로 89년 생애의 마지막 그리고 미완의 작품이다. 바티칸의 피에타를 비롯한 많은 피에타상은 어머니 마리아가 죽은 아들 예수를 품에 안은 모습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어머니가 등 뒤에서 아들을 껴안고 서 있다. 무덤에서 주검을 끌어내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금도 세계 각지에 존재하는 ‘지옥‘에서 무수한 어머니들이 자식의 주검을 등 뒤에서 껴안고 서 있다.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이토록 우매하고 무력하다.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데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예술에 무슨 존재 가치가 있을까? 그러나 만약 예술마저 없었다면, 인간에게는 어떤 존재 가치가 있을까....... 무력한 나는 그렇게 중얼거린다. - P358
간단히 답을 얻을 수 없는 깊은 물음(대체로 인간에 관한 물음은 모두 그러하다)에 침잠해 끝없는 문답에 몰두한다. 그 사고과정 자체가 풍요와 기쁨에 차 있다. 그것이 곧 ‘도서관적 시간‘이다. 스마트폰의 검색 기능에 의존하면서 그런 사고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주어지는 ‘해답‘을 따르는 태도는 한 사람의 불행일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평화에 대한 위협이기도 하다. 그것은 만사를 단순하게 유형화해 파악해서는 타자를 한데 묶어 차별하고 적대시하는 자세로 이어진다. 혐오범죄의 온상이며, 전쟁 배양기다. 지배자가 바라는 것이 그런 ‘신민‘이다. 인간 이외의 존재가 책을 쓰고 읽을 수 있을까. 그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기쁨, 자유로운 인격으로 자신을 형성해 가는기쁨이다. 그런 기쁨을 학생들에게 제공하려는 장소가 바로 도서관이다. 그러려면 자유롭고 관대한 ‘도서관적 시간‘을 되찾지않으면 안 된다. ‘신자유주의적 시간‘과 ‘천황제적 시간‘에 대항해서 인간의 시간을 되찾기 위해. - P378
일본에서는 민주적 절차나 인권의 원칙이 ‘비상시 대응‘의 방해가 된다는 본말이 전도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수많은 비리와 부정의 책임을 지고 사임해야 한다는 비판에대해, 코로나 대책에 주력하고 있으므로 정권을 놓을 생각은 없다고 답했다. 재해나 역병까지도 권력의 연명에 이용하려는 너무나도 노골적인 태도 표명이다. 정부가 지급을 검토하고 있는 생활지원금 대상에서 ‘외국인‘을 제외하라고 주장하는 국회의원이 있다. ‘외국인‘도 납세자고 사회의 불가결한 구성원인데도 말이다. 기존의 기초생활수급자도 제외하라고 트위터로 떠드는 ‘작가‘가 있고, 이에 대해10만 건이 넘는 ‘좋아요‘가 달린다. 이런 때는 손쉬운 차별일수 - P394
록 더 많은 지지를 얻는다. 이런 정치,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역병을 능가하는 재앙이다. 역병이나 자연재해는 인간의 생활과 생명을 빼앗지만, 실은인간을 죽이는 것은 무엇보다도 인간 자신이다. 이익이나 권력에 홀린 인간들에 의해. 그리고 사고가 정지된 채 사태를 방관하는 인간들에 의해. 도쿄 올림픽 1년 연기라는 비합리적이고 위험한 선택이 일본 사회에서 환영받는 듯 보이는 것이 바로 그 좋은예다. 브뤼헐의 <죽음의 승리>는 500년도 더 전에, 인간은 진보하지 않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죽음‘은 승리할 것이고 ‘죽음‘ 에는 저항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죽음‘에는 저항할수 없을지라도, 인간의 ‘불의‘에는 마지막까지 저항할 작정이다. - P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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