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민족국가든 개인 차원에서는 좋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특정 민족 전체를 좋은 사람 또는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위험하다. 3월의 지진 직후 일본에서 일어난 ‘일본은 강한 나라‘, ‘힘내라 일본‘ 따위의 캠페인이나 거기에 호응해 한국에서 고조된 지극히 정서적인 일본 동정론도 마찬가지로 단순한 발상의 산물이다. 그런 단순한 유형화의 밑바탕을 이루는 것이 어떤 사회에 속한 사람들을 ‘국민‘이라는 지표로 일괄하고, 자기 자신도 거기에 포함시켜 유형화함으로써안심을 얻으려 하는 ‘국민주의‘ 심성이다. 이 심성은 ‘국민‘ 내부의 차이나 대립을 은폐하고, 동시에 내부의 타자를 항상 외부화해 배제하려는 기능을 지닌다. 국민주의에 뿌리박은 단순한 일본 이해는 일본의 중간파나 리버럴파가 지닌 한계나 문제점에 대해서는 둔감한데, 그것이야말로 위험하다. 한국 사람들이 일본을 올바로 아는 것은 ‘한국‘ - P276
이라는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동아시아에 사는 우리 모두의평화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이제부터 내가 써 나갈 ‘일본통신‘은 타자를 위협하며 몰락해 가는 일본 사회에 사는 한 ‘내부의 타자‘가 쓰는 보고서가 될것이다. 일본에 사는 개인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갖가지 문제를 구체적 에피소드와 함께 전할 요량이다. - P277
이번 제주도행은 바쁜 와중에도 우리 세 사람이 일정을 조정해 3박 4일간 머물 작정이었다. 그런데 하필 태풍 산바를 만났다. 비행기 결항으로 섬에 갇힐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우리는 일정을 하루 앞당겨 서울로 돌아왔다. 조금이라도 일찍 출발하는비행기를 타려고 공항에 달려갔더니 이미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난민‘이라는 말이 떠올랐으나 물론 4.3사건의난민과 비교할 수는 없다. 군경의 초토화작전에 쫓기던 그들은미군 함정에 엄중하게 포위된 섬에서 필사적 탈출을 감행했다. 많은 사람이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가까스로 일본에 표착한 사람들은 밀입국자로 검속되어 한국으로 강제송환되었다. 당시 법적으로 일본 국적 보유자였던 조선인을 "외국인으 - P290
로 간주"해 검속할 수 있게 한 것은 쇼와 천황의 마지막 칙령인 외국인등록령이다. 그것은 1947년 5월 2일, 즉 4.3사건 발발 직후에 공포됐다. 일본은 4.3이라는 정치 폭력의 직접적인 가담자였던 것이다. 4.3평화공원의 행방불명자 묘역에는 유해가 없는 빈 무덤뿐이다. 하지만 그곳은 베네딕트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라고 지적한 "소름 끼치는 국민적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이런 위령과 추도를 통해 국가는 사람들을 국민으로 통합하려 한다. 하지만 다카하시 교수가 중요한 지적을 했다.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와 달리 이 자기분열적인 위령의 장소는 어쩌면 지금의 국가를 넘어서는 차후의 공동체, 바로 다음에 올 ‘상상의 공동체‘를 향한 어렴풋한 희망을 시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국가에 회수되고 말 것인지, 국가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인지, 싸움은 계속된다. -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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