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가 누군지 명확하게 모른다. 저 소설가도 그것을 찾고있다. 나는 소설을 보면서 그가 찾은 답변을 살펴보겠다."
우리 안에는 엄청나게 많은 가능성이 있고, 진정한 나를 알아내는 것은 불교에 귀의해 오랜 수련을 거쳐도 힘든 일입니다. 그러니 소설을 읽으며 지속적으로 탐색해 보는 거죠. 수많은 경우의수를 말이에요. - P115

정리하면 소설은 일종의 인간 탐구 보고서입니다. 소설을 말그대로 풀면 작은 이야기거든요. 누군가는 소설을 ‘잡스러운 이야기‘,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뒷담화 같은 이야기‘라며 폄하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시대적으로나 양식적으로나 인간 존재를 이렇게까지 집중적으로 다양하게 탐구한 경우가 거의 없어요. 소설은 누적된 인간 경험의 총체이며, 가능성에 대한 탐색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인간이 경험한 일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고, 인간이 어디까지 될 수 있고, 어디까지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될 수 있는지, 이런 것을 탐색하며 소설을 읽으면 참 좋습니다. - P117

저는 드라마를 무척 좋아합니다. 특히 추리물과 청춘물을 즐겨보는데요, 우리나라 드라마를 싹쓸이하고도 더 이상 볼 게 없으면대만드라마로 갑니다. 일본 드라마와 중국 드라마로도 가요. 그런데 드라마가 좀 질릴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소설로 갑니다. 드라마도 재미있지만, 소설은 좀 더 적극적으로 세계를 구현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다양성의 측면에서도 압도적으로 많고요.
영상으로 보여줄 수 없는 무거운 진실이나 심의에서 탈락할수 있는 이야기, 깊고 내밀한 묘사, 시청률 때문에 하지 못했던 부분까지도 소설에서는 접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와 소설을 양손에쥐고 있을 수 있다면 정말 최고일 것 같네요. - P123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만 해도 10~20명 안팎의 작가들이 쓴 소설을 읽으면 어디 가서 대화할 때 빠지지 않았어요. "너그거 읽었어?", "너도 읽었어?" 이런 식이었죠. 그런데 1990년대 중후반부터는 다양한 경향의 작가들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이런 작가들이 많다는 건 우리에겐 축복이고 장점이죠. 골라 읽을 수있는 선택지가 늘어났다는 뜻이니까요.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 분모가 사라지고 다양성의 시대가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소설의 지형도가 북두칠성처럼 큰 별들이 반짝이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은하수입니다. 다양성의 지평이 확대되면서 ‘북두칠성의 시대‘에서 ‘은하수의 시대‘가 되었죠. 그만큼 본인 취향의 소설을 고르시는 데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릴 수도 있어요. 아쉬운 것은 책 읽는 독자가 줄어들었다는점입니다. 요즘엔 소설보다 영상을 더 많이 탐색하죠. 다양성이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다양성의 총합이 줄어드는 것이 무척이나 아쉽습니다. 많은 분들이 영상 탐색 외에도, 소설 탐색 또한 즐기시면 좋겠습니다. - P128

"세상에 홀로 우는 것은 없다. 혼자 우는 눈동자가 없도록 우리는 두 개의 눈으로 빚어졌다."
저는 이 구절을 읽고 위로를 받았어요. 세상에 홀로 우는 것이없도록 우리가 두 개의 눈으로 빚어진 존재라는 사실이 위안이 되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우리에겐 손도 두 개입니다. 외로울 땐 나의 왼손이 오른손을 잡아줄 수 있죠. 이런 생각을 하면 비통한 마음을 쓴고전시가들은 나의 오른손을 잡아주는 나의 왼손, 혹은 혼자 울지말라고 생겨난 두 눈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감당하기 힘든 슬픔을 아주 오래전부터 견뎌온 사람들을 보면서 오늘 나의 슬픔은 조금 작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큰 슬픔 앞에서 내 슬픔은 위로를 받고 조금 더 견뎌볼 힘을 얻습니다. - P142

생명을 주제로 하는 동화는 현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됩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가끔씩 사는 게 삶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경쟁이 일상화돼 있으니까 내가 살아남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진 거죠. 그런데 인간은 원래 같이 사는 존재이지 이기고 홀로 살아남는 존재가아닙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삶을 생존이라고 해석하는 게 요즘 사회입니다. 이런 현대의 문법에 아주 예쁜 말과 아름다운 스토리로맞서는 작품들이 바로 생명의 동화예요.
"내가 살기 위해서는 너를 죽여선 안 돼. 너를 살리는 게 나를 진짜 살아있게 해." - P182

좋은 듣기는 좋은 질문을 낳고, 좋은 질문은 좋은 답변을 낳고, 좋은 답변은 다시 좋은 듣기를 불러옵니다. 이런 선순환이 모여 아름다운 작품이 되기도 해요. 우리 전통 시의 양상에 문답시가 있는데요, 묻고 답하는 오고 감이 한 편의 작품이 되는 것이죠. - P205

에세이의 작법은 ‘격물치지格物‘의 원리와 비슷합니다. 격물치지란, 아주 구체적으로 사물을 들여다보며 추상적인 의미와 이치를 얻는다는 뜻입니다. 제가 앞서 마중물로 제시했던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사람, 경험이나 기억, 다른 사람이 쓴 글이나 한말 등이 바로 구체적인 것들이죠. 이렇게 구체적인 것들을 먼저세워놓고 그 뒤에 의미, 생각 등을 정리해 붙이는 겁니다.
에세이를 쓸 때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감정에 큰 지분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 앞에는 사람이든 사물이든 어떤 일화나 사건이든 구체적인 무엇인가가 반드시 등장해서 중심을 잡아줘야 합니다. 추상적으로 모호하게 끝나는 게 에세이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죠. - P240

에세이의 묘미는 쓰면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해석입니다. 에세이를 쓸 때는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집니다. 에세이는 당연했던 것에의문을 가져 보는 시간입니다. 남들이 알려주는 의미에서 벗어나진정한 나만의 의미를 찾자는 겁니다.
이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이라고 쓰고 잠깐 멈추세요. 남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에 끌려다니는 게 아니라, 잠깐 멈춰서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이면 나의 인생과 삶과 사건에 대한 해석의 실마리가 보입니다.
한 가지 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에세이에 넣어보세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쓰세요. 그 표현 뒤에는 나만의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이어쓰기 좋거든요. - P241

그런데 일단 써보시면 아실 겁니다. 과정 자체가 힐링이 된다는 사실을요. 에세이를 쓰는 시간은 감정의 디톡스 시간이 됩니다. 에세이를 쓰면서 나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되고 이해하게 됩니다. 타인에게 보여주어야만 글입니까. 가장 소중한 내가 볼 건데요. 그러니 쓰는 것 자체로도 충분한 기쁨을 느끼실 거예요. 조금더 열심히 쓰면 책으로 출간도 가능합니다. 요즘은 대량 생산만하는게 아니라 책 한 권만 출간해 주는 업체도 많거든요.
처음 에세이를 썼을 때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너무 못났더라도 지우지 말고 나의 비밀 폴더에 살포시 넣어두세요. 어렸을 적 보물들을 상자에 담아뒀던 것처럼 일단 담아두세요. 넣고 닫아버려도 그 글은 내 안 어딘가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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