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으로 살다가 고요히 사라지고 싶은 욕망은 나를 꽤 두껍게 둘러싸고 있는 세계다. 나는 내가 그런 에너지를 발산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에너지가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나의 자아 깊은 곳의 에너지가 나를 마니로 가게 만들었다. 나는 은둔자, 몽상가, 이상주의자, 게릴라, 난민, 잔존 세력들이 걸었던 그 길로 마니에 갔다. 타이게토스 산맥을 넘으면 구불구불한 언덕들이 나타나고 이어서 그리스에서 흔히 볼수 있는 지붕의 둥근 성당들이 나타난다. 그다음에 눈에들어오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마니를 그리스의 다른 어떤 마을과도 다르게 보이게 만든다. 바로 탑들이다. 마니의 탑은 설명하자면 그냥 탑이다. 직사각형 돌탑. 아무런 장식도 없고 특별할 것도 없는 그냥 탑.  - P179

레이먼드 카버의 시 「캅카스」에 이런 구절이 있다.
"페테르부르크 사람들은, 캅카스에서는 노을이 전부라고말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노을로는 부족하다. 페테르부르크 사람들은, 캅카스는 전설이 만들어지는 곳이고, 날마다 영웅들이 태어나는 곳이라고 말했다." 내가 이 시를 읽은 것은 마니를 다녀오고 7년 뒤였다. 처음이 시를 읽을 때 나는 마니를 떠올렸다. 그 뒤로는 언제나 이 시와 함께 마니를 떠올린다.
마니의 노을은 아름다웠지만 노을로는 부족했다. 폐허에 바람이 불면 보이지 않는 할머니가 지팡이에 의지해 "끙!" 어렵게 무릎을 펴고, "끙!" 소리를 신호 삼아 할머니 뒤를 따라서 뭐라고 불리든 보이지 않던 사람들, 목소리가 들리지 않던 사람들, 현실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소속감을 느낄 어떤 이야기를기다리던 사람들이 "이놈들! 좋은 사람이 뭔지 제대로 맛을 보여주겠다!" 소리를 지르고 뛰쳐나와 토대부터 무너지는 폐허 (폐허인지도 모르고 우리가 사는 사회)가 된 세 - P185

상에, 우리를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모든 것에, 피도, 눈물도, 사랑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저항을 선포하면 좋겠다. 우리는 이 폐허에서 무엇을 위해 살고 사랑하고 싸워야했지? 무엇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해야 했지? 대답을 찾는사람들이 날마다 태어나고 제 몫을 해내다가 어느 아름다운 날의 노을처럼 장엄하게 지면 좋겠다. 황제의 이야기가 죽음 너머 기억되는 것은 그의 책임감과 희생과 헌신 때문이다. 사랑 안에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이 없다면 시간과 우연 너머 살아남는 것은 없다. 사실 그것을 빼면 우리 인생에 무슨 좋은 이야기가 남아 있겠는가. 우리는 우연의 산물이지만, 책임감과 희생과 헌신의 경이로운이야기들의 연속된 흐름 속에 있을 수 있다. - P186

나는 인생의 중요한 선택 중 포기와 관련되지 않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은 많은 포기들이 발명 중이다. 고기 안 먹을래, 모피 안 입을래, 가죽 안 입을래, 비행기 안 탈래, 에어컨 안 켤래, 난방 안 켤래, 빨대 안 쓸래, 종이컵 안 쓸래, 자동차 안 탈래, 비닐봉투 안 쓸래, 농약 안 뿌릴래, 나무 안 벨래. 바다에 쓰레기 버리지 않을래. 이제 더 이상 새 옷은 사지 않을래.. 이렇게까지 다른 생명과의 관계를 고민하는 것에는 감동적인 면이있다. 나와 타인, 나와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은 당연한 것 같지만 그렇다고 꼭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꼭 다정해야 할 이유는 없다.
꼭 따뜻해야 할, 꼭 친절해야 할 이유도 없다. 꼭 페르난도 페소아 시 「만약 내가 일찍 죽는다면」의 한 구절 같다.
"나도 한 번은 사랑을 했지, 날 사랑하리라고도 생각했지, /그러나 사랑받지 못했지. / 꼭 받아야만 하는 법은 없다는/유일한 큰 이유 때문에 사랑받지 못했지."
"왜 내가 너를 사랑해야 해?", "꼭 그래야 할 이유는 - P188

없어"가 맞는 대답이다. "왜 내가 다른 생명을, 미래 세대를 생각해야 해?", "꼭 그래야 할 이유는 없어." 이것 역시 맞는 대답이다. 외롭지 않고 싶다는 것은 우리 모두 열망하는 감정이지만 외롭지 않기는 무척 어렵다. 우리가 외톱기를 택할 가능성이 훨씬 높으므로, 무관심, 무책임, 외면, 조롱, 무시, 냉소, 혐오가 많다면 그것은 그렇게 하는것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다. 수많은 지구 생명이 겪고 있는 위기 때문에 뭔가 ‘포기‘하는사람, 뭔가 ‘하지 않는 사람‘은 그 쉬운 길을 택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 P189

다정함도 온기도 사랑도 책임감도 없이 사는 것이어떤 것인지... 각자의 어두운 기억이 두텁게 쌓여가는이 세상에서, 결국은 자신도 해치고 남도 해치는 에너지가 발산되는 이 세상에서, 누군가 ‘우리 모두의 것인 삶‘에대해 뭐라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감동적이다. 그래서다른 생명에 대한 관심 때문에 그 전에 하던 일을 더 이상하지 않게 되는-포기와 자제와 하지 않음 쪽으로의 변화를 살아내는, 그렇게 미래 세계의 일부가 되려는 사람들이 내 눈에는 경이로워 보인다. 지구의 여러 문제에 우선 자신의 삶으로 대답하려고 하기 때문에, 스스로 자제하고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는 삶을 자유롭게 선택할 줄 - P189

알기 때문에 꼭 그래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이런 사람들의 핏속에는 별빛이 흘러다닌다. 피부에는 별빛 가루가 뿌려져 있다. 이 사람들의 빛이 내게로 흘러온다. 이런 사람들이 없다면 말을 건넬 사람도, 기댈 곳도, 기대할 것도 없이 살게 된다. 나는 하늘의 별을 볼 때처럼, 심금을 울리는 희생과 헌신과 책임감의 이야기들에매료된다. 나의 욕망 중 가장 큰 욕망은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대한 욕망이고 나는 이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인간적인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본다. 나는 이 경이로운마음들과 함께 멀리 가보고 싶다. 더 많은 하지 않음, 포기를 발명하면서. - P190

행복해지려고 그렇게 했다고?
좋아. 행복해 보인다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외로워 보이는군솔직히 말해도 될까?
네가 예전처럼 근사해 보이진 않아.
네가 행복하려고 한 선택 때문에
너는 내가 예전에 알던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아니야
너의 행복이라는
그 헛소리를 다 뒤집으면 거기에 희망이 있어
그럴 마음이 들면 전화해
전화번호는 같아

_미상(「바뀌지 않는 전화번호」, 파르테논이 정면으로보이는 카페에서 본 시)

황금 파고다가 있고, 새벽마다 파고다를 스치는 바람이 황금의 소리를 전하고, 황금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땅, 미얀마. 그 땅 속에 묻힌 지하자원이란 이름의 황금 보물들이 피를 부르고 있었다. 욕망이 같다면 동일한 운명이 기다린다. "저주가 같다면 나를 부르는 이름이 뭐가 중요하냐." 이것은 보르헤스의 말이다.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이것은 셰익스피어의 말이다. - P211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자연이 아니고 돈이다.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성장은 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이윤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이 이야기 속에는 모든 것이 사라지고 일부 인간만이 남는다. 이 세상이 최선의 세상이라고 생각하고 잘 적응한 인간만이 살아남는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메인 서사다. 이것이 우리가 공유하는 정신적 배경이다. 다른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면 우리는 적응을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행복은 우리가 지구에 드리운 그림자가 되어서 우리에게 돌아왔다. 코로나바이러스, 기후위기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살아 있고 죽이는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살아있고 죽이는 언어를 쓴다. 그런데 모든 이야기는 우리가상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힘이 있다. 우리는 현실의 세계를 살지만 허구와 환상의 세계-이야기의 세계에도 살기 - P212

때문이다. 내면에 깊게 뿌리 내린 다음 우리가 그 안에서 굳어져 그것에 따라 살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야기의 무시무시하고 엄청난 힘이다. 우리가 다른 이야기를 필요로하는 이유? 하나의 이야기밖에 모른다면 하나의 삶밖에 살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세계가 다른 삶이 가능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어쨌든 이것들은 내가 마음 편히 깃들 이야기들이 아니다. 나의 좋은 부분을 자극하지 않는다. 이것이 내 이야기이도록 놔둘 수 없다. 다른 이야기가 필요하다. 새로운운명을 마련해주고 새로운 가능성에 마음을 열게 하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우리가 얼마나 애타게 지구를 돈을 벌어줄 자원으로 보고 싶어 하는지 잘 아는 아미타브 고시의 지도가 가리키는 출구 쪽 화살표에는 ‘이제 이야기를 바꿔라‘라고 써 있다. 앞으로는 자연을 빼놓고는 미래에대해서 이야기하기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그리고 모든것을 자원으로 보는 이야기 속에는 어떤 탈출도 해방도없다. - P213

더그는 공원의 일부분이 되었다. 훌륭한 꿈과 끝까지서로에게 헌신하고 충실했던 사랑이야기의 일부분이 되었다.
「지도 끝의 모험』은 야생을 모험한 이야기이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친구와 사랑을 찾고 인생을 바쳐 해야 할 일을 찾고 자신의 삶을 만들고 아직 우리가 가보지못한 길을 만들면서 살아간다는 고난이도의 인생 모험이야기이기도 하다. 이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조금 더 생각해보고 싶다. 우리가 듣고 나누는 많은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우리 인류가 달라질 미래를 믿지않는다. 사실은 달라질 자신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을 보는 대로 세상을 본다. 하지만 미래는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머릿속 생각이고 꿈이다. 세상은 우리의 상상과꿈과 생각대로 만들어지고, 상상하고 꿈꾸지 않으면 영영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미래를 믿지 않으면 제일먼저 사라지는 것이 이야기꾼의 능력이다. 이야기는 "그 - P219

다음엔 어떻게 돼?" "그 일 다음엔?" 시간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도를 잃는 것이다. 우리는 이야기에 따라살아가기 때문에. 그렇게 결국은 타인이 그린 지도를 따라 타인 ㅡ부동산 개발업자나 파워엘리트, 메인파워, 인싸, 인플루언서, 국회의원 등등의 뭐 그런 파워풀해 보이는 이름을 가진ㅡ이 쓰는 이야기에 따라 살게 된다. 문제는 누구도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을 포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따라 하고 있는 이야기 중 뭔가를 잊어버려야한다. 각자를 지배하는 메인서사ㅡ어느새 그렇게 살아야한다고 믿게 만들어버린ㅡ 의 환상을 깨야 한다. 우리가 행복이라고 믿었던 것, 그래서 그 길을 향해 달려가게 만들었던 이야기들을 의심해봐야 한다. 그래야 삶과 미래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고 다른 곳에 에너지를 쓰면서 다른 미래에 살고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 - P220

내 눈에 릭과 친구들의 희망과 열정은 이 불타는 지구에서 지금 가장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자신들의 열정을 현실 유지가 아닌 없던 것의 창조에 바쳤다. 나는 이 열정을 공유하고 싶다. 우리 시대는 같은 꿈을 꾸는것에 대해선 극도로 말하지 않고, 그래서 타인으로부터 - P220

에너지를 받는 일이 드물어졌지만,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 어떻게 에너지를 받지 않고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발산할수 있겠는가? 입력이 있어야 출력이 있다. 나는 나의 에너지의 대부분이 감탄할 만한 이야기를 따라 사는 데서,
마음이 가는 이야기의 일부분이 되려고 하는 데서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렇게 살 때 나는 어디에 힘을 써야 할지 모르는 슬픔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나 자신의 에너지를 발산하며 나 자신을 겨우 신뢰할 수 있었다. 나는이렇게 타인의 이야기에서 에너지를 받는 것을 이야기의 초대라고 표현해왔다. 이제는 이 이야기의 초대에 따라길을 가는 것을 삶의 발명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 P221

나는 이제 귤을 먹을 때마다 자이로와 친구들을 생각하고 완벽한 의사소통을 이루었던 야쿠시마 섬의 한밤중마임을 생각하고 그날 떠 있던 달, 나의 오랜 친구인 달ㅡ내가 힘들 때마다 숱하게 바라보던 달, 구름을 뚫고 나오던 모습을 지치도록 바라보게 만들었던 달ㅡ을 거북이도 바라보고 길을 찾는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달은 내속마음도 들어줘야 하고 거북이, 조개, 아주 많은 생물들이 길을 찾게 도와줘야 하니 정말 바쁘겠다는 생각을 하고, 알 하나하나가 들려줄 수 있는 생명의 신비와 고난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거북이 알은 생명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는 존재다. 달이 그런 것처럼, 파도가 그 - P226

런 것처럼. 모든 생명은 연결되어 있고 지구는 더 이상 황금 보물을 찾아 정복할 곳이 아니라 잃어버린 의미와 신비를 되찾는 곳이다. 나는 거북이 알과 맛있는 귤에 걸맞은 이야기를 따라가볼 생각이다. "이 이야기가 딱이야!"
그런 이야기를 찾을 수만 있다면 세상에 돌려줄 것이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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