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나무
성취 앞에서 저렇게 절제할 수 있을까 시련 앞에서 저렇게 겸허할 수 있을까
나무 가득 꽃 피워놓고 교만하지 않는 백매화처럼
단 한잎도 붙잡지 못하고 날려 보내면서 비통해하지 않는 산벚나무처럼
어떤 꽃나무
이쁜 날들은 갔어
그래도 널 사랑해
네가
어떤 꽃나무였는지 아니까
라일락
라일락은 왜 거기 있을까
사월이 간절하게 불러서 거기 있다
너는 왜 거기 있는가
좋은 나무
가지마다 굵은 열매를 매달아 주인이 흡족해하는게 자랑인 나무가 있다 이른 봄부터 희고 수려한 꽃을 피우는 게 생의 기쁨인 나무도 있다 그런 나무들 사이에서 좋은 나무가 되는 일이 먼저라고 믿는 나무가 있다 작고 조촐한 꽃밖에 못 피웠지만 울퉁불퉁 못생긴 열매만을 키웠지만 향기 짙은 열매를 키웠다는 뿌듯함 하나로 사는 나무가 있다 잘난 나무는 아니지만 늘 좋은 나무가 되려고 애쓰는 나무 좋은 나무가 되는 일이 먼저라고 믿는 나무가 있다
철쭉꽃
철쭉꽃이 아침에 마시는 바람을 나도 마신다
철쭉꽃을 흔드는 바람에 나도 나부낀다
흔들린다는 건 살아 있다는 것이다
사월에서 오월로 넘어가는 바람 좋은 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