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희생자 대책위를 만든 유족들은 질문을 던졌다.
"가족을 잃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복수를 꿈꾸는자, 냉소주의자, 은둔자, 알코올 중독자, 이중 어떤 것이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이것은 정의의 문제였고 고독의 문제였다. 가족의 목숨을 잃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사건 후에도 여전히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서 유족들은 고독했다. 유족들은 많은 것이 될 수 있었지만 가장 어려운 정체성을 택했다. 바로 ‘사랑하는 자‘였다. "아직 우리들에게는 지켜야 할 것이 있지 않은가?" 유족들이 만든희생자 대책위 4대 과제 중 두 번째는 ‘안전한 지하철 만들기‘였다. 2005년 대구 지하철 참사 유가족들은 대구지하철 노조와 함께 대구 지하철 전 차량의 내장재를 불연재로 교체했다. 우리는 불연재로 된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 P86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 그 전해에 태안 해병대 캠프참사에서 아들을 잃은 아버지들은 참사 소식을 듣자 즉시 팽목항으로 출발했고 진도의 체육관과 경찰서 문을박차고 들어갔다.
"당신들 누구요? 뭐 하는 사람들이에요?"
"나? 나는 해병대 캠프에서 목숨을 잃은 아들을 둔 아버지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로서 말합니다. 지금 잘하면아이들을 구할 수 있습니다. 아들을 잃은 사람으로서 간곡히 부탁합니다. 꼭 좀 구해주세요."
그 순간 내 자식의 목숨이나 남의 자식의 목숨이나차별하고 말 것이 없었다. 똑같이 중요했다.


춘천 산사태 유족들은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사고 지역의 산에 여섯 번이나 올라 산사태가 인재임을 밝혀냈고 아이들의 꿈을 기억하고 싶어 했다. 유족들은 자식들이 자원봉사를 하러 갔다가 목숨을 잃게 된 상천초등학교의 아이들을 위해 해마다 장학금을 기부한다. 자원봉사에 관한 조례 또한 개정했다.


김용균의 어머니는 아들이 죽자 김용균의 동료들에게 물었다. - P87

"말해줘. 우리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이상한 질문이다. 부모가 자식의 죽음을 묻다니 순리에 맞지 않는다. 김용균의 어머니는 이 이상한 질문을 끝까지 밀고 갔고 죽음을 막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고 일하다 죽는 사람들이 없는 세상을 원했고 그 세상을 만들려고 했다. 김용균 사후 만들어진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랑으로도, 하늘까지 들릴 듯한 통곡으로도 결코 자식을 되살려놓을 수 없었던 어머니의 고통과 비탄이 녹아 들어간 이름이다. - P88

유족들은 한결같이 "내가 이렇게 슬프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게 너무 많아요"라고 말한다. 그들의 슬퍼하는 눈에는 보이는 것이 있다. 그들은 비극이 자꾸 일어나는 것에대해서 기이한 책임감을 느꼈다. 그들은 견딜 수 없는 일을 겪었지만 그 일을 재료로 그나마 견딜 수 있는 세상을만들려고 했고 타인이 살아갈 힘을 뺏기는 일이 없는 데힘이 되려고 했다. 그들이 이렇게 한 이유는 뭘까? 믿어지지 않게도 희망 때문이다. - P88

희망은 정말 묘한 것이라서 희망을 가진다는 게 터무니없어 보이는 곳에서 가장 절실하게 요구된다. 유족들은차마 겪어내기 힘든 일을 겪었지만 슬픈 자아의 일부분은 눈물겨운 희망에 근거를 두고 있다. 대체 희망이 무엇이길래 이 슬픈 사람들에게 그렇게 중요했을까? 유족들에게 물어보면 모두 이구동성으로 이렇게만 말한다. "유족이 되면 그렇게 돼버려요."
나로서는 그 대답을 찾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희망은 다른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곳을 바라는 열망이다. 희망은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잡고 늘어지는 것이다. 차마 뿌리치지 못하게 하는 어떤 것들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제는 곁에 없는 사랑하는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은 변화뿐인데, 더 나은 곳으로의 변화만이 시간과 이야기 밖으로 떨어져 나간 가족들을 다시 시간과 이야기 속에 자리 잡게 할 수 있는데. 이런 방식으로 그들은 사랑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냈다.
유족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살려내지 못한 것이 한이라서 사랑을 발명해야만 했다. - P89

세월호 이후 내게 가장 크게 바뀐 점이 있다면 삶이 사라지는 것을, 삶을 잃어버리는 것을, 우리의 인간적인 모든 것이 사라져버리는 것을 무척 아까워하게 되었다는점이다. 내 삶뿐 아니라 타인의 삶도. 그것을 다른 무엇보다도 훨씬 더 많이 말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유족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법을 배웠다. 유족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구해야 할것이 있는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삶도 죽음도 무의미하지 않기를 바라는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삶도 죽음도 무의미하다는 그 무의미와 싸우며, 자신의 아픈 가슴속 생각 중 가장 좋은 것을 내주면서 변화의일부분이 되려고 하는 것이 유족들의 사랑이다. 나는 유족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나 개인에게 갖는 의미를 알고 있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큰 사랑과 더 큰 세상"
에 대해 생각한다면 유족들 덕분이다. 유족들은 슬픈 마음의 일부분을 해방시키고 그것을 우리에게 나눠주었다. - P91

이렇게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매한 행위로서의 사랑을 발명했다. 이것이 많은 유족들이 반복적으로 하는 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는 한문장 안에 담긴 말 없는 말들이다. 나는 사랑은 창조 행위라는 말을 그들을 보면서 이해한다.
단, 유족의 말이 나를 숙연하게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런 유가족이 더는 없는 세상을 꿈꿔야만 한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상실, 유한한 삶속에 무한한 것은 오직 슬픔뿐인 것만 같은, 혼자서 겪어내고 혼자서 감당해야 할 괴로움이 너무 많은 시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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