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0월부터 1951년 4월까지 동남아시아 곳곳에서 미국, 영국, 네덜란드, 호주 등 일곱 개 나라가 주도한 BC급 전범재판이 50회 넘게 열렸다. 전범재판은 이제야말로 정의가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으리란 점에서당시 사람들의 뜨거운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그 기대는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어떤 법정에도 조선인 판사, 조선인 검사는 없었다. 조선인들 기소 이유의 대부분은 포로에 관한 제네바협약 위반과 관련이 있었다. 연합군 포로의 기억이 생사를 갈랐다. 강제노역, 뺨 때리기는 거의 모든 포로 학대의 유력한 증거였다. 조선인 전범 149명 중90퍼센트는 포로감시원이었다. 그중 23명은 조국을 해방시킨 연합국에 의해 사형당했다. 조선인 포로감시원이사형을 당하는 동안 천황, 731부대 책임자, 위안부와 강제징용의 기획자, 전쟁으로 막대한 이득을 취한 기업인누구도 전범 명단에 오르지 않았다. 1945년 무렵의 정의는 맥 빠지고 싱겁게 실현되었다. 인간은 애절할 정도로정의를 갈구하지만 분별력을 갖기는 힘들다. - P32
이제 역사에 마지막 전범으로 기록될 사람, 전남 보성 출신, 10만 명이 사망한 악명 높은 태국 콰이강의 다리 건설 현장에서 일했고 호주 포로 학대죄로 1947년 싱가포르 호주군 전범재판에서 교수형을 언도받았으나 감형돼살아남은 사람. 그가 바로 정창수가 일본에 가서 만난 그 사람이었다. 이학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조문상의 유서를 복사해서 나눠주곤 했다. 이학래는 그날 정창수에게 이렇게말했다. "전범의 일은 우리에게 맡기고 젊은이들은 돌아가서 자신의 삶을 사세요." 이학래의 이 말은 사형당하기 전날, 죽음이야말로 정직해질 기회라고 생각한 조문상이 쓴 유서의 한 부분과 - P47
연결된다.
역시 정말로 죽고 싶지 않다. 이런 세상에 미련이 없다는 말은 본심이 아니었다. 역시 이 세상이 그립다. 이제 와서 아무 소용이 없다면 영혼만이라도 이 세상 어딘가를 떠돌고 싶다. 가능하다면 누군가의 기억 속에라도 남고 싶다. 26년이 거의 꿈에 지나지 않았다. 지극히 짧은 시간이라고 할 만하다. 이 짧은 일생 동안 무엇을 했는가. 완전히 나를 잊고 있었다. 모든 것이 흉내와 허망. 왜 좀 더 잘 살지 않았던가? 자신의 것이라고 할 만한 삶을 살았다면 좋았을 것을. 친구야! 아우야! 자신의 지혜와 사상을 가져라. 나는지금 죽음을 앞에 두고 나의 것이 거의 없다는 것에소스라치게 놀란다.
나는 처음 조문상의 유서를 읽었을 때 조문상의 "소스라치게 놀란다"는 말에 놀랐다. 내일 죽을 사람에게 놀랄 일이 뭐가 있을까? 그런데 있었다. 고통도 진짜, 두려움도 진짜, 죽음도 진짜. 그런데 삶은 가짜였다면? 그것을너무 늦게 알았다면‘? 정말 그랬다면 어떻게 해야 한단말인가? - P48
살아남은 전범들은 교수대에 올라가는 동료들에게 그저 "잘 가"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던것을 괴로워했고, 죽음을 뼛속 깊이 두려워해봤고, 살아서 삶 속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원했고, 자신들이 한 일을 부끄러워했고, 감옥에서 무엇이 우리를 죽게 하나 물었듯이 살아 나와서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나를 물었다. 그리고 무엇이 부조리인지 알게 된 뒤에는 그것에 맞서 지속적으로 싸웠다. 듣는 사람이 거의 없어도 그렇게 했다. 나는 내가 들은 이 이야기를 조선인 전범 재판에 문제가 있었음을 말하는 것으로 끝내야 적절하다는 것을 알고있다. 그들은 당시 역사가 필요로 했던 정의를 채워주는 역할을 한 역사의 엑스트라에 불과했다고 말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끝내고 싶지 않다. 나는 그들이 그들만의 역사를 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느낀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그들의 이야기가 삶의 가장 비밀스러운 부분을 건드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태까지 나의 삶이라고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나의 삶이 아니었다는 앎. 식사는식사 이상, 노래는 노래 이상, 삶은 자고 먹고 노래하는 그이상의 것, 우리가 뭐라고 말하든 그 이상의 것, 죽을 때돌아보고 후회할 우리의 것, 소중한 것이라는 앎 말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자기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는가? - P51
전범들이 자신과 친구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할수록 세계는 이전과 달라 보였을 것이다. 그전까지 알았던 것은 더 이상 ‘앎‘이 아니었다. 세계는 과거에 알던그 세계가 아니었다. 앞으로 살아갈 세계는 그들이 더 이상 알고 있고 살고 있다고 생각한 그 세계가 아닐 것이었다. 그리고 의심할 여지 없이 지금도 바로 그런 시대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배경‘이 바뀌었다. 상상해본 적도 없는 코로나와 기후위기는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되었고 바이러스와 기후위기가 우리 인생 이야기를 쓰고 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 대유행어는 "부자되세요!"가 아니라 "건강하세요!"와 "별일 없죠?"였다. 그 말을 할 때 마음 한구석에는 두려움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세계에 대한 안정감을 잃는 것이 우리의 상황이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없이 나아닌 것들, 나의 외부세계와 관계를 맺을 방법을 찾아야하지만 나의 가장 큰 두려움은 우리가 경고를 무시하는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사는 것이다. 하루하루 두려움에 시달리며 외로움에 떨면서 사는삶에 적응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사는 것을 두려워하다 - P55
니 참 이상한 일이다. 그토록 살고 싶어 하는데. 두려움 없이 살기 위해서라도 세계에 대한 앎이어야 한다. 세상을 이전과는 다르게 알아야 한다. 알았던 것을 잊어버려야 한다. 다행히 어떤 앎은 지도다. 새로운 앎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새로운 삶을 살게 한다.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을 알게 되어야 가능성이 태어난다. - P56
내가 살릴 수 없는 게 너무 많았다 내 운명을 그들에게 걸어야겠다 특별한 힘도 없이 세상을 재구성하는 그들에게. _에이드리언 리치
우리는 누구인가 어둠 속에서 우리가 만드는 그 무엇이 아니라면 어맨다 고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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