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키트가 그보다 훨씬 더 야심만만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늘 그랬다. 하지만 리처드의 전화가 왔을 때, 스리랑카에서 출발하는 첫 번째 비행기에 그를 태운 것도 키트였다. 프로듀서들에게 제작을 일주일 동안 중지하게 해서 그가 뉴욕에 다녀올 수 있게 한 것도 키트였다. "화나게 하려는 건 아니지만, 윌럼." 키트는 조심스레 말했다. "네가 주드를 사랑한다는 거 알아. 하지만 좀. 뭐 네 일생의사랑이라거나 하면 이해하겠어. 하지만 이건 너무 극단적이야, 네 경력을 이런 식으로 막는 건." 하지만 그는 가끔 자기가 누군가를 주드만큼 사랑할 수 있을까 싶었다. 물론 주드 자체가 좋지만, 주드와 같이 지내는 게, 자기를 그렇게 오랫동안 알아온 사람이 있다는 게, 그날 자기의모습을 늘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 거라 믿을 수 있는 사람이있다는 게 편안했다. 그의 일, 그의 삶 자체가 가장과 가면극이었다. 그와 그를 둘러싼 상황은 모든 게 끊임없이 변했다. 머리, - P22
몸, 그날 밤 어디서 잘지. 가끔 그는 자기가 밝은색 병에서 밝은색 병으로 계속해서 따라지고 있는 액체, 한 번 옮길 때마다 조금은 홀리고 조금은 남는 액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주드와의 우정은 자기에게도 진짜배기, 변하지 않는 뭔가가 있다는 느낌을, 가장으로 이루어진 삶 속에도 본질적인 뭔가가 있다는 느낌을, 자기가 못 볼 때조차 주드는 알아봐주는 뭔가가 있다는 느낌을 줬다. 마치 주드가 지켜봐주고 있다는 게 자기를진짜로 만드는 것 같았다. 대학원 때 한 선생님은 최고의 배우들은 가장 지루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배우는 자아를 사라지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자의식이 강한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배우는 자신을 캐릭터에 녹아들게 해야 한다. "개성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팝스타가 돼라." 선생님은 말했다. - P23
그는 그 말에 담긴 지혜를 이해했고, 지금도 이해하고 있지만, 사실 그들은 다 자아를 갈망했다. 배우 생활을 오래할수록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으로부터 정처 없이 멀어져가고,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길을 찾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렇게 많은 동료들이 다 그렇게 망가진 게 과연 놀랄 일일까? 그들은 다른 사람 흉내를 내면서 돈을 벌고 인생을 살고 자기의 정체성을 만든다. 그렇다면 그들이 자기 인생을 모양 짓기 위해 끝없이 다음촬영장, 다음 무대를 필요로 하는 게 놀랄 일인가? 그게 없다면그들은 무엇이며 누구란 말인가? 그래서 그들은 뭔가 자기만의것을 가지려고 종교를, 여자친구를, 대의를 찾는다. 그들은 자지도, 멈추지도 않고, 혼자 있는 걸, 자기가 누구인지 질문해야만 하는 걸 두려워한다. ("배우가 이야기를 하는데 아무도 듣는사람이 없으면, 그래도 배우일까?" 한번은 친구 로먼이 물었다. - P23
그는 가끔 그게 궁금했다.) 하지만 주드에게. 그는 배우가 아니었다. 그는 그의 친구였고, 그 정체성이 다른 모든 것을 대신했다. 그건 그가 너무 오래 살아온 역할이라 지울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됐다. 주드에게는, 주드 자신이 일차적으로 변호사가 아니듯이 그도 일차적으로 배우가 아니었다. 그건 그들이 상대방을 묘사할 첫 번째도, 두번째, 세 번째 방식도 아니었다. 다른 사람인 척하면서 인생을 살기 전 그의 모습 ㅡ형이 있는 사람, 부모가 있는 사람,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인상적이고 흥미진진하게 보던 사람 ㅡ 이 어땠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주드였다. 자기의 과거 모습, 다른사람이 되려고 굳게 결심했던 시절의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원하지 않는 배우들도 있었지만,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과거의 자신을 일깨워주는 사람을 원했다. 그는 절대 자기가 배우라는 사실을 가장 흥미로운 것으로 여기지 않을 사람 옆에 있고 싶었다. - P24
정직히 말해서, 그는 주드와 함께 오는 사람들, 해럴드와 줄리아도 사랑했다. 주드의 입양은 그가 처음으로 주드가 가진 것에 부러움을 느꼈던 일이었다. 그는 주드가 가진 것들-그의지성과 사려 깊음, 풍부한 지식을 늘 대단하게 생각했지만, 그를 질투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해럴드와 줄리아가 주드와함께 있는 모습을, 주드가 그들을 보고 있지 않을 때조차 그를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을 보면서, 그는 공허함 같은 걸 느꼈다. 주드는 부모님이 없었고 대부분 그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살았지만, 자신에게 부모님은 소원하기는 해도 적어도 그를 그의 삶에 붙들어 매어주는 존재였다는 걸 느꼈다. 가족이 사라지자, 그는 공중을 부유하는 종잇조각, 바람이 휙 불 때마다 위로 - P24
날아가는 종잇조각이었다. 그와 주드는 그 점에서 하나였다. 물론 이 부러움이 말도 안 되고 터무니없이 치사하다는 건 알았다. 그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주드는 아니었다. 그리고 해럴드와 줄리아가 자신이 품은 애정만큼이나 그를 사랑한다는것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의 영화를 하나도 빠짐없이 다 봤고, 그의 연기에 대한 칭찬과 동료 연기자들과 촬영 기술에 대한 지적인 논평을 포함한 길고 자세한 감상을 보냈다. (그들이 절대 보지 않은 ㅡ적어도 논평하지 않은 ㅡ 유일한 영화는 주드가 자살하려 했을 때 찍고 있었던 영화 <시나몬 왕자>였다. 그도 그 영화는 한 번도 보지 않았다.) 그들은 그에 관한 기사 ㅡ 리뷰와 마찬가지로 그는 기사들도 피했다 ㅡ는 다 읽었고, 그의 기사를 실은 잡지란 잡지는 다 샀다. 생일에는 전화를 걸어 뭘 하면서 축하할 거냐고 물었고, 해럴드는 그가 몇 살이 되는 건지 상기시키곤 했다. 크리스마스에는 늘 책과 함께, 전화할 때나 메이크업 의자에 앉아 있을 때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릴 수 있는 웃기는 조그만 선물이나 재치 있는 장난감 같은 걸 보냈다. - P25
월럼이 얼음 넣은 위스키 두 잔을 들고 돌아온다. 그는 셔츠를 입었다. 잠시 그들은 소파에 앉아 술만 홀짝거린다. 혈관에 열기가 오르는 게 느껴진다. "말해줄게." 그가 윌럼에게 말하자, 윌럼은 고개를 끄덕인다. 말하기 전 그는 몸을 기울여 윌럼에게 키스한다. 평생 그가 먼저 키스한 건 처음이었고, 그는 이걸로 어둠 속에서조차, 회색빛 여명 속에서조차 말할 수 없는모든 것들, 수치스러운 모든 일들, 감사하는 모든 마음을 다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에는 그도 눈을 감는다. 어딘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키스할 때, 섹스할 때 간다고 하는 그곳으로자기도 곧 갈 수 있을 거라 상상한다. 그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땅이자 보고 싶은 곳, 그에게 영원히 금지되어 있지 않았으면하는 그 세계로. - P60
"알아." 그는 말했다. 그는 늘 맬컴의 집들을 사랑했고, 오래전 그의 열일곱 번째 생일 때 맬컴이 선물로 만들어준 첫 번째집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바보 같지 않아." 맬컴에게 그 집들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그건 통제력에 대한 주장, 인생의 온갖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그가 완벽하게 조종할 수 있는, 말로는 할 수 없는 것을 늘 표현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는것을 상기시켜주는 물건들이었다. "맬컴이 걱정할 게 뭐가 있어?" 맬컴이 뭔가 불안해하면 제이비는 묻곤 했지만, 그는 알았다. 맬컴이 걱정하는 건 살아가는 것 자체가 걱정이기 때문이었다. 삶은 두려운 것, 알 수 없는 것이다. 맬컴의 돈도 완벽한 면역이 될 순 없다. 인생은 그에게 벌어질 테고, 나머지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그에 답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그들 모두는 ㅡ맬컴은 자기의 집들로, 윌럼은 여자친구들에게서, 제이비는 그림에서, 그는 면도날로 ㅡ위안을, 자기만의 것을, 세상의무시무시한 거대함, 불가능성, 그 세상의 분들과 시간들, 날들의 가차 없음을 저지할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 P116
삶이 상실을 보상해준다는 해럴드의 주장을 떠올리고, 그 말이옳았다는 걸 깨닫곤 했다. 하지만 때로는 삶이 그냥 보상 정도가 아니라 터무니없이 과한 보상을 해주는 것 같았다. 마치 인생이 그에게 용서해달라고 빌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인생을 원망하지 않도록, 인생이 계속 앞으로 가게 허락해주도록 금은보화를 쌓아놓고 온갖 아름답고 근사하고 바라던 물건들로 그를 질식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그는 친절하게 대해주는사람들을 따라갔다. 또 사람들을 믿었다. 다시 섹스를 했다. 구원을 희망했다. 물론 매번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건 옳은 선택이었다. 그는 자주 과거의 교훈을 무시했고, 그로 인해보상받았다. 그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았다. 섹스마저도 희망을 가지고 했으니까, 그에게 모든 걸 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했으니까. - P203
윌럼과 연인이 된 직후 어느 날 밤, 그들은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만 격식 없이 모여 시끄럽게 즐기는 리처드의 디너파티에 가 있었다. 제이비와 맬컴과 블랙 헨리 영과 아시안 헨리영과 페드라와 알리와 그들의 남자친구, 여자친구, 남편, 부인들이 다 와 있었다. 부엌에서 리처드가 디저트 준비하는 걸 돕고 있는데, 약간 술에 취한 제이비가 들어와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뺨에 키스했다. "주디" 그가 말했다. "너 결국 정말 다 가졌구나, 안 그래? 일, 돈, 아파트, 남자, 어떻게 그렇게 운이 좋냐?" 제이비가 그를 보고 싱긋 웃었고, 그도 마주 보고 미소 지었다. 윌럼이 그 말을 듣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윌럼은 그말을 다른 사람들은 다 자기보다 인생이 수월하고, 주드는 그누구보다 더 복 받은 사람이라는 제이비의 확신과 질투로 받아들이고 짜증을 낼 게 뻔했기 때문이다. - P203
하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건 제이비 나름의 아이러니, 축하 방식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과다하지만 그가 깊이 감사하고 있다는 걸 두 사람 다 아는 행운에 대한 축하. 정직하게 말하면, 제이비의 질투에 기분이 우쭐하기도 했다. 제이비 눈에 그는 비참한 달리기로 엄청난 보상을 받은 절름발이가 아니었다. 제이비에게 그는 부럽기만 할 뿐, 동정할 거리는 전혀 없는 동등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제이비 말이 맞다. 어쩌다 그는 그렇게 운이 좋았을까? 어쩌다 이 모든 걸 다 가지게됐을까? 절대 알 수 없다. 언제나 궁금할 것이다. "모르겠어, 제이비." 그는 미소 지었고 먼저 자른 케이크 한조각을 주면서 말했다. 식당에서는 윌럼이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가 박장대소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수한 기쁨의 웃음소리였다. "하지만 알잖아, 난 평생 운이 좋았거든."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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