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기 전에는 이 사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집집마다 흔하게 있는 사진, 흔하게 있는 소풍으로 여기며 사진철의 첫 장을 넘기곤 했다. 이제는 생각한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며 아버지가 부양의 의무를 맡았던 넓지 않은 집에 늘 함께 있었던 삼촌, 고모들, 작은집 식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러니까 이날은 그들이 모두 어디론가 가고 오붓이 네 식구만 남았던 명절이나 휴일이었을까. 아버지는 이날 아침 쉬고 싶지 않았을까. 어머니는 어린 나를 옷 입히고(무척 두꺼운 스웨터를 입히셨다) 나들이 가방을 싸느라 힘들지 않았을까. 한 사람이 나를 안으면 다른 한 사람은 가방을 들고 오빠의 손을 잡는 식으로 두 분은 버스를 타고 왔겠지. 유원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내가 가리키는 풍선을 사주었겠지. ‘사진 찍어요‘라는 사진사의 권유에 따라 얌전히 정해진 장소에 섰겠지. 여기 봐요. 여기. 사진사가 외치는 소리에 오빠와 내가 동시에 렌즈를 바라보기까지는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을까.
그날, 두 분은 행복하셨을까. 돌아오는 길은 멀지 않았을까. 어린 내가 너무 무겁진 않았을까.  - P304

어린 시절 내가 느낀 아버지의 가장 지배적인 인상은 ‘피곤하시다‘는 것이었다. 낮이면 국어교사로, 밤이면 글쓰는 사람으로 네다섯 시간밖에 못 자며 아버지는 꽤 오랜 시간을 버텼다. 새벽 네시쯤부터 안방에서 타자기 소리가 들렸다(오랫동안 아버지에게는서재가 따로 없었다). 비몽사몽간에 아득히 들려오던, 타닥, 타다다닥, 드르륵, 땡, 하는 소리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그러다 아침결에 아버지가 잠깐 토막잠을 붙이는 동안 우리 형제들이 일어나 이른 아침을 먹을 때면, 어머니가 우리에게 수저 소리를 못 내게 했던 것이다. 예민한 아버지가 숟가락 소리에 깰까봐 우리는가만히 숟가락을 상에 놓고, 쉬쉬 귓속말로 얘기하며 가만히 밥을 덜어먹었다. 그러다 누군가 실수로 큰 쇳소리를 내면 숨죽여 키득키득 웃기도 했다.
- P305

불우한 시절이라 이사를 많이도 다녔는데, 중흥동에서도, 삼각동에서도, 풍향동에서도, 서울 올라와 수유리에서도 어김없이 새벽이면 타자기 소리가 들렸다. 수유리에 이사온지 이 년쯤 뒤 워드프로세서를 들여놓으며 처음으로 그 소리가 사라졌다. 새벽 네시부터 여덟시까지 일하는 아버지의 습관은 하루의 예외도 없이 이어져, 낙향하신 뒤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집안에 어떤 우환이 있어도, 아무리 몸이 아파도, 입원을 하거나 상가에서 밤을새우거나 하지만 않으면 자명종 없이 일어나 책상 앞에 앉으신다. - P305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는 허리디스크를 앓으셨는데, 의자에 앉기어려울 만큼 통증이 심할 때는 워드프로세서 밑에 두꺼운 책을 여러 권 깔아 높이를 맞춘 뒤 서서 일하셨다.
고백하자면 아버지를 잘 이해했던 것 같지는 않다. 왜 늘 저랑게 피곤하실까. 인생은 꼭 저렇게 힘들어야 하는 건가. 막연히 그런 의문을, 때로는 불만을, 때로는 연민을 가졌을 뿐이었다. - P306

단 하루. 잠깐의 기억이 남아 있다. 여덟 살 즈음, 중흥동의 조그만 한옥에 살던 때다. 식구들 모두 마당에 나와 대청소를 하고있었다. 햇빛이 밝은 초여름날이었다. 우리 형제들은 바가지를 들고 작은 화단에 물을 주고, 어머니는 시멘트가 얇게 발라진 마당에 양동이로 물을 부어가며 비질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커다란적갈색 ‘다라이‘에 호스로 물을 받고 있었다. 두 분이 무슨 이야긴가를 나누다 웃는가 싶더니, 어머니가 갑자기 양동이를 들고 가아버지의 등에 물을 끼얹었다.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른 아버지는, 늘 지쳐 보이고 어렵기만 하던 아버지는, 화를 내는 대신 껄껄 웃으며 호스를 들고 어머니에게 물줄기를 쏘았다.
그 순간이 나에겐 일종의 개벽이었다.
아! 어른들도 장난을 하는구나!
두 어른은 숨이 넘어가게 웃으며, 차갑다고 외쳐대며 서로에게 - P306

물을 끼얹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었다. 껄껄껄, 까르륵꺄르륵 웃어대는 그이들을 향해 우리는 누가먼저랄 것 없이 달려가 소리지르며 합세했다. 서로서로 물을 뿌리고 쫓아가고 도망가고 비명을 질러댔다. 온통 부서지고 튀어오르고 흩어지는 게 햇빛인지 웃음소린지, 눈부신 물줄기, 물방울들인지 알 수 없었다. - P307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 어두운 것과 밝은 것. 따뜻함과 차가움, 노동과 휴식, 병과 치유, 꿈과 현실, 애정과 오해, 기대와 실망, 잠깐 마주잡는 손길, 잠깐 마주치는 눈빛들...... 속에서 우리는 나아간다. 사실 식구라고 해서 모든 것을 아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도 아니며, 모든 기억을 공유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식구가 주는 애틋함을 말하려 할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은, 이 모든 삶의 국면들을 함께 매만지며, 상처를 공유하며 나아갔던 순간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한 것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 따뜻한 기억들이 떠오른다는것이다. 아홉 살 즈음, 걸을 수 없을 만큼 고열이 오른 나를 아버지가 업고 소아과로 달리던 기억. 횡단보도를 건너던 아버지의 발소리. 그 등의 온기. 고등학교 때 내가 급체했을 때, 카이로프랙틱치료를 받으시던 기억을 떠올려 척추 마디 하나하나를 한 시간 가 - P307

까이 꾹꾹 눌러주시던 밤. 방학 때면 늦잠 자고 싶어하는 우리 남매들을 억지로 깨워 뒷산 손병희 선생 묘 앞까지 데리고 가 맨손체조를 시키시던 것이 지극한 사랑이었음을.


어느 순간, 갑자기 아버지의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자식에게 찾아온다. 그것이 자식의 운명이다. 인생은 꼭 그렇게 힘들어야 하는 건가 하는 의문 없이. 불만도 연민도 없이, 말도 논리도 없이. 글썽거리는 눈물 따위 없이. 단 한 순간에. - P308

오랫동안 아버지에 대한 글을 피해 도망다녔다. ‘귀밑머리 희어질 때쯤 쓰겠습니다‘라는 말이 내가 정해둔 변명이었다. 아직 귀밑머리는 희어지지 않았지만, 가르마 오른쪽으로 희끗한 머리칼이 부쩍 눈에 들어온다. 기억들은 모두 조각조각이고, 그 조각들 하나하나에 어린 빛은 제각기 다른 말을 한다. 씌어지는 것보다 씌어지지 않는 것, 씌어질 수 없는 것이 더 진한 말이라는 것을 간신히 깨닫는 나이가 되었다.
이 글을 마쳐야 하는 지금은 아침 일곱시 십분 전, 아버지가 아직 책상 앞에 앉아 계실 시각이다. 이곳 서울에서 남해 바닷가의 외풍 센 방까지, 쏜살같이 공간을 넘어...... 지금 아버지가 책상앞에 앉아 계신다. 십수 년 된 회색 오리털파카를 입고, 돋보기안경을 끼고, 서리처럼 머리가 희어진 아버지가. - P308

언젠가 읽었다. 우리들 각자는 평생에 걸쳐 한 사람을 집요하게감시하고 있다고. 그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행동을 지시하고, 그 사람의 감정을 느끼며 울고 웃는다고. 그 사람이란 바로 우리 자신이며,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자신이 감시자이자 감시당하는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때로 과거를 골똘히 돌아보려 할 때 (자전적인 산문을 써야 하는지금처럼), 그와 비슷한 느낌이 찾아올 때가 있다. 한없이 비좁고 기다란 어항의 입구에 한쪽 눈을 대고 있는 것 같다. 그 어항 안에서 움직이는 어둑한 ㅡ때로 놀랍도록ㅡ선명한 영상들을 나의 기억이라고 불러야 할 테지만, 그것들이야말로 나의 역사, 내가 경험한 전부임이 분명할 테지만, 어째서인지 곧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어졌다. - P310

서울로 올라온 뒤 열세 살 즈음, 아버지가 광주에서 구해온 사진집과 비디오테이프를 보았던 것. 꼭 그 영향만은 아닐 테지만그후 오랫동안 어쩌면 지금까지도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근본적인 의문을 지울 수 없게 된 것. 그즈음 가방에 넣어가지고다니며 읽기 시작한 책들. 연필로 줄을 긋거나 베껴 적었던 문장들, 활판으로 꾹꾹 눌려 찍힌 그 활자들이, 이따금 눈이나 살갗에도 꾹꾹 박히는 것 같았던 것.
스물여섯 살의 여름, 첫 책을 출판사에서 받아든 오후에 느낀, 말로 옮기기 힘든 복잡한 감정, 증정본으로 받은 ‘내 책‘ 다섯 권을 가방에 넣고, 꺼내보지도 못한 채 혼자서 한동안 일층 카페에 앉아 있었던 것. 그후 지금까지 보낸 시간. 쓰고, 쉬고, 쓰고, 때로오래 쉬고, 다시 썼던 그 밖의 다른 말로는 요약하고 싶지 않거나, 달리 요약할 수 없는 시간. - P312

펜촉 또는 송곳을 들고 등신대의 종이 화폭 앞에 선 사람을 생각한다.
그 사람이 형상에 대해 느끼는 고통은 무슨 고귀한 창작의 진통같은 게 아니라, 정말로 피부가 찢어지는 것같이 괴로운 감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정말로 그는 화면을 찢어놓았을 것이다.
그렇게 개인적인 방식으로 나는 그 그림을 이해했다.
문장들과 단어들, 구두점들의 날카로운 자국.
약간만 발을 잘못 디뎌도, 아니, 잘 디뎠다고 믿은 순간마저 기다리고 있는 구역질의 기미. - P313

지워야 하는 문장들.
단호하게 송곳으로 뚫어, 깨끗이 찢어버려야 하는 단어들.


이젠 정말 글을 못 쓰려는가보다. 생각한 적이 있었다. 실제로글을 안 쓰고 퍽 오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던 늦여름, 리모델링하기 전의 광화문 교보문고 소설 코너에 갔다. 누군가에게 선물할 일이 있어서 책을 고르려던 것이었다. 수천 권의 소설들이 꽂힌 벽면 앞에 섰을 때 나는 왜 눈이 뜨거워졌던 걸까. 마침 매장에 조용히 울리고 있었던 피아노곡 때문에? 수천 권의 소설들이 뿜어낸 어떤 에너지 때문에? 이루 말할 수 없이 낯익은 세계로 돌아왔다는 감정 때문에?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인생을 그 세계에서 보냈기 때문에? - P314

그 모든 소설들을 쓴 수천의 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등신대의회색 종이 앞에 서서 한 줄씩 점을 뚫었을 것이다. 생존한 사람들은 지금도 그 앞에 서 있을 것이다. 그 일에 고통을 느낄 때도 있고, 충일감이 더 클 때도 있을 것이다. 한순간 깨끗한 생명이 차오르며 기쁨을 느낄 것이다. 건너가야 할 생각의 고리들, 꿰뚫어지지 않는 감정 때문에 서성거릴 것이다. 퀼트를 짜거나 건축물을 설계하듯 오 년, 십 년, 그보다 더 긴 시간을 소설 한 편에 골몰해 - P314

보내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시간이 지워지고 있을 것이다. 늙어가고 있을 것이다.


글을 쓸 때는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움직이지 못한다. 걷지도 먹지도 못한다. 가장 수동적인 자세로, 글쓰기 외의 모든 것을 괄호 속에 넣고 한 단어씩 써간다. 그 외의 다른 방법은 없다.
그게 다행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다른 방법이 없어서 다행이다. 움직일 수 없어서 다행이다. 나의 것이라고 이름 붙은 삶의 모든 것을 괄호 속에 넣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 P315

소설을 쓰다 말고 잠깐 골목을 걸을 때, 어항 밖으로 감고 있던한 눈을 뜬 것처럼 아슴아슴 눈동자가 시릴 때가 있다. 그런 순간에, 나는 그 어항 속에서 움직이던 어둑한(때로 찬란한) 기억들의주인이 아니다. 침묵하는 거울 속을 들여다볼 때마다 그곳에서 나를 마주보던, 낯익고도 낯선 얼굴의 주인이 아니다.
감시자도, 감시당하는 자도 아니다. 천구백몇년생도, 어떤 도시들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사람도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어떤 사람들과 어떤 사물들, 어떤 풍경들을 만나고 사랑해온 사람도 아니다. 몇 권의 초라한 ‘내 책‘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 P315

그렇게 수없이 나는 삶으로부터 구원/버림받는다. 그 구원/버림의 힘으로 계속 등신대의 종이에 점을 뚫는다. 그 행위가 두렵거나 고통스럽다고, 스스로에게조차 함부로 말하지 못한다.


막 소설 한 편이 끝나려고 할 때, 괄호 속에 들어가 있던 모든것이 둑을 넘듯 조용히 몸속으로 다시 흘러들어올 때, 언제나 나는 더 머뭇거리고 싶어진다. 더 쓰고 싶어진다. 더 숨을 불어넣고싶어진다.


지금 내 머릿속에 마지막으로 떠오른 이미지는, 펜촉 또는 송곳을 들고 자신이 뚫다 만 종이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어렴풋한 옆얼굴이다. 그들이 내쉬는 더운 숨이 구멍들을 통과해 가장 단순한언어가 된다. 그들은 어떤 소리를 내지도 움직이지도 않는데, 간결한 부호 같은 언어들이 그 구멍들에서 새어나온다(들립니까. 나는 지금 온 힘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내 말을 듣고 있습니까). 실핏줄들을 타고 흐르는 따뜻한 피 같은, 우리가 가진 생명의 가장 연한 부분. 또는 어떤 목소리의 이미지. - P316

2012년 겨울부터 소년이 온다』를 쓰기 위한 자료를 읽으면서 나는 내면의 투쟁을 치르고 있었다. 인간의 잔혹함을 증거하는 자료들과, 다른 한편에서 인간의 존엄을 증거하는 자료들 사이에서 나는 분열을 겪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나에게 광주는 더이상 하나의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인간의 폭력과 존엄이 극단적으로 공존한 시간을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되어 있었다. 신대륙의 학살, 아우슈비츠, 보스니아, 관동과 난징의 학살을 가로지르는 인간의 잔혹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그 폭력 앞에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했던 연약한 몸짓들에 대해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 P331

이 소설을 쓰는 일을 거의 포기하려 했던 어느 날, 5월 27일 새벽 군인들이 돌아와 모두를 죽일 것임을 알면서 광주의 도청에 남았던 한 시민군, 섬세한 성격의 야학 교사였던 스물여섯 살 청년의 마지막 일기를 읽었다. 기도의 형식을 한 그 일기의 앞부분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토록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순간 내가 쓰려는 소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든 폭력에서 존엄으로, 그 절벽들 사이로 난 허공의 길을 기어서 나아가는 일만이 남아있다는 것을.
그러기 위해 먼저 이 소설의 맨 앞과 맨 뒤에 촛불을 밝히기로 - P331

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의 애도를 하고 싶었다. 촛불의 불꽃의 중심을 통과하여, 삼십여 년을 건너 우리에게 오는 넋들의 걸음걸이를생각했다. 그 불가능한 재생을 단 한 순간이라도 가능케 하고 싶었다. 열다섯 살에 그곳에서 죽어 여름으로 건너오지 못한 소년 동호가,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으로 떠오르게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다만 애도하고 온 힘을 다해 존엄에까지 가자고 결심은 했지만, 소년이 온다』를 써가는 동안 나는 여전히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스스로 흔들리곤 했다. 4장 ‘쇠와 피‘ 같은 경우에는 내가 흔들리며 회의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더이상 나아갈 수 없다고 느껴질 때마다, 달리 방법이 없어서 소년에게 매달렸다. 그가 나를 밝은 쪽으로 이끌고 가기를 바랐고, 실제로 그에게 끌려가듯 가까스로 앞으로 나아가는 경험을 했다. 그러므로 만일 지금 누군가 나에게 인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폭력보다 먼저, 인간의 참혹보다 먼저, 6장에서 어린 동호가 엄마의 손을 잡고 밝은 쪽으로 나아가는 순간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것 같다고 느낀다. - P332

그 마음으로 에필로그에 이 대목을 썼다.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 P332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하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다. 도청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어딘가 흡사한 태도가 도청에 남은 시민군들에게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을 받기만 했을 뿐 쏘지 못했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증언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입안에 가득찬 피와 이빨 조각들을 뱉으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올려 상대를 마주보는 순간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전생의 것 같은 존엄을 기억해내는 순간. 그 순간을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 - P333

출간 후에


소설이 출간되었다.


더이상 새벽에 일어나 초를 켜지 않아도 된다.
외딴집이 정전됐을 때 촛불이 얼마나 밝은지 보려고 보일러 센서 등을 가리고 냉장고 코드를 뽑지 않아도 된다. 거인 같은 그림자가 천장에 일렁이는 걸 보려고 초를 들고 서성이지 않아도 된다. 촛불의 빛이 지나갈 때마다 낮은 목소리처럼 일어섰다가 어두워지는 책의 제목들을 읽지 않아도 된다.


살갗에서 눈이 녹는 감각을 기억하려고 손이 빳빳해질 때까지 - P342

눈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 눈이 내리기 시작할때마다 가장 가까운 산을 향해 택시로 달려가지 않아도 된다. 산아래 다다랐을 때 눈이 그친 것에 실망하지 않아도 된다. 등산객들을 위한 식당에서 반쯤 나물밥을 먹다가 창밖으로 다시 눈이 내리는 걸 보고 일어서지 않아도 된다. 등산로를 벗어나 숲속으로.
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더이상 자료를 읽지 않아도 된다. 검색창에 ‘학살‘이란 단어를넣지 않아도 된다. 구덩이 안쪽을 느끼려고 책상 아래 모로 누워있지 않아도 된다. 매일 지나치는 도로변 동산의 나무들 사이로햇빛이 떨어지고 녹음 아래 그늘이 유난히 캄캄할 때, 거기 시체들이 썩어가는 모습을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 P343

울지 않아도 된다.


더이상 눈물로 세수하지 않아도 된다.


바람 부는 자정에 천변 길을 걷지 않아도 된다.


산사람들보다 죽은 사람들을 더 가깝게 느끼지 않아도 된다. - P343

이 노래를 처음 들은 날, 달력 종이 뒷면에 1부터 1000까지 숫자를 적어 벽에 붙였었다. 하루에 하나씩 지우자고 생각했다. 하루씩 살고 쓰자고, 그걸 천 번만 반복하자고. 너무 오래 잠을 못자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남은 삶에는 평화도 희망도 없고 나빠질 일만 남았다는 결론에 다다라 있어서 이상한 일은 소설을 써갈수록 점점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잠드는 시간이 조금씩 늘었고, 차츰 악몽을 덜 꾸게 되었다. 피와 시체와 유골로 가득한 소설을 쓰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2020년 가을에 초고를 완성하면서, 마지막 장면에서 경하가 성냥 불꽃을 켰을 때 알았다. 이것이사랑에 대한 소설이라는 걸. 깨어진 유리를 녹여 다시 온전한 덩어리로 만드는 불길인 걸.
- P347

「작별하지 않는다」의 첫 페이지를 쓴 날로부터 완성하기까지거의 칠 년이 걸렸으니, 그사이 퍽 많은 양의 메모를 했다. 얇은노트로 열 권이 넘는, 스스로 묻고 답하고 길을 찾으려 더듬어간 기록들이다. 각기 다른 인물, 다른 내러티브로 원고지 오십 매, 백매, 길게는 이백 매까지 써본 버전들도 남아 있다(최초의 제목은
‘새가 돌아온 밤‘이었다). 2018년 겨울에 들고 다녔던 얇은 노트를 열어보니 이런 메모가 적혀 있다. - P348

기도
치고 들어오는 세계.
이것이 세계인가?
아이들이 죽어가고 여자들이 강간당하는,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인가?

그러나 살아 있으므로 아름다운 것들.
지독하게
무정하게 아름다운 것들.

유령,
종려나무,
팔을 흔드는 검은 나무. - P348

악몽 같은 현실에서 구원을 원하는 인간의 이야기.
공포와 폭력.
기도의 이야기.

바람.
해류.
전 세계가 이어지는
바다의 순환.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
연결되어 있다.
부디.

눈이 내렸다.
작별하지 않는다.

역사 속에서의 인간
우주 속에서의 인간

내 몸의 감각.
육체. 연약한. 필멸하는. - P349

‘나‘는 그 집에 가게 된다.
모두 ‘나‘를 떠난 뒤에
거의 폐인이 되어.

어디까지 차가울 것인가.
따뜻할 것인가.
뜨거울 것인가의 문제.

학살에 대하여 쓴 ‘나‘가, 학살에서 살아남은 부모를 둔 친구의 집에서, 죽음ㅡ 명부 ㅡ에서 돌아온 새와 하루를 보낸다. - P350

어떤 임계에서, 산자가 마치 혼처럼 되어서, 극심한 고통의 마지막 가장자리에서, 몸을 빠져나와 마침내, 너머의 것을 보게 되는 순간.

삶의 유한성,
존재의 시간성.
극한의 무의미
시간의 불꽃.

눈의 침묵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 P350

눈이 소리를 빨아들이며
내 목소리, 새의 소리도 빨아들일지 모른다는 생각

바람이 그치고 마침내 오직 눈만이.
어떤 소리도 내지 않으며 모든 음향을 흡음하는 눈만이.

이곳은 그녀의 집.
톱을 깔고 자는 어머니와
밤이면 섬망에 시달리며 산으로 올라가는 아버지의 집.

행렬.
그 모든 행렬들.
아메리칸인디언들. 아우슈비츠

모든 학살들.
얼굴이 없는 사람들,
뭉개어진 사람들,

내가 그 밤 서울에서 본.
머리가 길고 걸음이 느린,
총을 든 사람들의 행렬. - P351

눈은 얼마나 많은 공기의 틈을 가지고 있는가?


결정들.


죽은 사람의 얼굴에서 녹지 않는 눈.
죽는다는 건 차가워진다는 것.


대사: 숲속을 걷다가 갑자기 깨달았어. 내가 귀신들과 평생을 살아왔다는 걸.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정말 그럴 필요가 없었어. 네 제안을 거절할 수 있었어. 하지만 거절하기 싫었어. 생각했어.아흔아홉 개의, 무한의 혼들을 깎자고. 그리고 맹세로서 작별하자고. 아니, 반대로 하자고 결코 작별하지 말자고 맹세로서. - P352

그리고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쓴다…… 쓴다.
울면서 쓴다.


흐름을 끊기 싫어 부엌에 선 채로 요기를 했다.
화장실에 뛰어갔다 돌아오기도 했다.


그렇게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온 힘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 P353

그보다 앞서 소년이 온다』를 썼던 일 년 육 개월을 기억하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압도적인 고통이다. 그걸 일종의 ‘들림‘이었다고 말한다면 손쉬운 일일 거다. 내가 작가로서 영매의시간을 건너갔다고 근사하게 말한다면.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때 나는 ‘들리지 않았다. 어떤 트랜스 상태에도 들어가지않았다. 매 순간 분명하게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고통이 나를 부수고 또 부수는 걸 견디면서 작업실에서, 지하철에서, 횡단보도에서, 부엌에서, 이불 속에서 이를 물고 울고 있는 내가 미친 사람처럼 보였겠지만, 사실은 조금도 미치지 않았다. - P354

그 고통이 대체 무엇이었던가를, 
소년이 온다』를 쓰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야 했다. 그 소설을 읽은 사람들도 함께 느꼈다고 말하는 바로 그 고통을. 그 생생한 고통은 대체 무엇을 증거하는 걸까? 설마, 그건 사랑인가? 지극한 사랑에서 고통이 나오고, 그 고통은 사랑을 증거하는 걸까? 그렇다면 그 사랑에 대한 다음 소설을 쓰고 싶었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던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소설이 환상성과 현실의 경계에 걸쳐져 있는 것과 별개로 매 순간 분명하게나는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행여 그런 식의 오해를 받을까봐 입 - P354

밖에 꺼내본 적 없는 어떤 생각을, 얼마 전 격월간 문예지의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다. 인터뷰어였던 동료 소설가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을 거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소설이 되기 이전에 노트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었나요? - P355

죽음에서 삶으로 가는 소설. 절반 죽어 있던 사람들이 생명을얻는 소설. 바다 아래에서 촛불을 켜는 소설. 어떻게 보면 좀 이상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는데∙∙∙∙∙∙ 항공기 조종사가 우울증을 앓다가 아주 많은 사람들과 함께 추락해서 자살한 사건이 있었잖아요. 살아 있던 사람들을 아주 많이 살해하며 죽었어요. 그런데 절반 죽은 또다른 사람이, 그 항공기 사건과는 정반대로, 삶으로 건너오면서 죽어 있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날 수도있지 않을까요? 물론 살아 있는 사람들은 죽을 수 있지만, 죽은사람들이 되살아나는 건 현실에서 불가능한 방향이죠. 하지만 어떤 한 순간에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반쯤 죽어 있던 사람이 혼들과 함께, 단 한 순간 삶으로 함께 건너올 수 있지 않을까요? - P355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던 과정에서 내가 구해졌다면, 그건 (목적이 아니라) 부수적인 결과였을 뿐이었다.


글쓰기가 나를 밀고 생명 쪽으로 갔을 뿐이다.


날마다 정심의 마음으로 눈을 뜨던 아침들이.
고통과 사랑이 같은 밀도로 끓던 그의 하루하루가.


날개처럼, 불꽃처럼 펼쳐지던 순간들의 맥박이.
촛불을 넘겨주고 다시 넘겨받기를 반복하던 인선과 경하의 손들이. - P356

그렇게 덤으로 내가 생명을 넘겨받았다면, 이제 그 생명의 힘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 아닐까?
생명을 말하는 것들을, 생명을 가진 동안 써야 하는 것 아닐까?


허락된다면 다음 소설은 이 마음에서 출발하고 싶다. - P356

아직 추웠을 때 첫 교정지를 받았던 책이 여름의 문턱에서 나오게 되었다.


장편소설 한 편.
단편소설 두 편.
시 다섯 편.
산문 여덟 편.


이렇게 골라 모으기까지 여러 차례 목차를 바꾸었다. 그 과정에서 하게 된 결심들 중 몇 개를 약속처럼 여기 적어본다. 어머니에 대해 제대로 된 한 권의 책을 따로 쓰겠다. 십 년 전에 앞머리를 써두었던, 「파란 돌」의 꿈에 대한 독립적인 책도 더 늦기 전에 - P358

쓸거다.


예전의 나는 나와 같은 사람이기보다 닮은 사람(들)이다. 교정지를 읽는 동안 그 사람(들)과 묵묵히 함께 있는 것 같았다. 사주에 역마가 들어서인지 무던히도 여러 곳을 옮겨다니며 살아왔는데, 오직 쓰기만을 떠나지 않았고 어쩌면 그게 내 유일한 집이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강윤정 편집자님과 도움 주신 모든 분들께, 이 책을 만나주실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2022년 늦은 봄
한 강 - P35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