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의 편지는 감정적이지 않았다. 분노의 기미조차 없었다. 그러나 구구절절, 처음부터 끝까지, 상처받았고 실망했다는 암시가 담겨있었다. 그는 그녀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녀는 그가 방탕했던어린 시절을 극복했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사랑이 그가 진지하고 점잘게 살도록 할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여겼다고 했다. 그러나이제 그녀의 부모님은 단호한 입장을 취하여 파혼하라고 명하셨다. 부모님의 결정이 정당하다는 것을 그녀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결코 행복한 것일 수가 없었고 처음부터 가망이 없었던 거라고 했다. 편지 전체에서 그녀는 단 한 번 아쉬움을 드러냈는데, 그게 마틴에게는 쓰라렸다. "당신이 어느 직장에 자리를 잡고 성공하려고 노력하기만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녀는 다음과 같이 썼다. "하지만 그렇게 될 리가 없었어. 당신의 예전 삶이 너무 거칠고 불규칙적이었으니까. 당신이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는 걸 이해할 수 있어. 당신은 자신의 본성과 일찍이 받은 훈련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어. 그래서 나는 당신을 비난하지 않아, 마틴, - P158

이 점을 기억해 줘. 우리의 관계는 단순히 실수였어. 부모님은 우리가 서로에게 맞지 않고, 너무 늦지 않게 알게 된 걸 둘 다 다행스럽게 여겨야 한다고 말씀하셨어. 나를 만나려고 해 봐야 소용없어." 편지 막바지에 그녀는 말했다. "우리 어머니에게는 물론이고 우리 둘다에게 즐겁지 않은 만남이 될 거야. 나는 내가 어머니께 크나큰 고통과 걱정을 안겨 드렸다고 느끼고, 그건 사실이야. 나는 속죄하기위해 아주 열심히 노력하며 살 거야."
그는 끝까지 읽었고, 주의 깊게, 두 번째로 다시 읽었다. 그러고 앉아서 답장을 썼다. 사회주의 집회에서 자신이 했던 발언을 간략히 개괄하고, 어느 모로 보나 그 발언은 신문에 그가 한 말로 적힌 내용과 반대임을 지적했다. 편지의 막바지에는 자신이 열렬히 사랑을 갈구하는, 신이 선택한 연인이라고 썼다. "제발 답장을 해 줘." 그는 말했다. "답장에서 한 가지 대답만 해 줘. 당신은 나를 사랑해? 그게 다야.
내 질문은 이것 하나뿐이고, 당신이 할 대답도 하나야." - P159

그녀는 소리 내어 울면서 갔다. 그녀의 무거운 몸과 꼴사나운 걸음걸이를 지켜보는 그의 가슴이 슬픔으로 찢어졌다. 멀어져 가는 누나를 보고 있자니, 니체주의적인 사고체계가 흔들려 기우뚱대는 듯했다. 추상적인 개념으로의 노예 계급이야 아무 문제 없지만, 그게 제 가정사일 경우에는 괜찮지만은 않았다. 강자에게 짓밟히는 노예가 있다면, 바로 제 누나 거트루드였다. 그 역설에 그는 이를 악물었다. 어쩌다 감정 혹은 정서를 느끼자마자 흔들리다니, 아아, 노예의 도덕에 흔들리다니, 자신은 어지간히 훌륭한 니체주의자였다. 그가 누나에게 느끼는 연민은 사실 노예의 도덕이었다. 진정으로 강한자는 연민과 동정을 초월했다. 연민과 동정은 지하의 노예 수용소에서 생겨났고, 비좁게 욱여넣어진 비참한 약자들의 몸부림과 땀에 지나지 않았다. - P161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이게 다 당신 자신의 뜻인가?" 그는 물었다.
"그래." 그녀는 낮고 분명한 목소리로 신중하게 말했다. "내 뜻이야. 당신이 나를 망신스럽게 해서 나는 친구들 만나기도 부끄러워.
다들 당신 얘기를 하고 있어. 난 알아. 내가 당신한테 할 수 있는 말은 이게 다야. 당신이 나를 매우 불행하게 만들었고, 나는 다시는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
"친구들! 뒷말! 신문의 허위보도! 이런 것들은 절대로 사랑보다 강하지 않아! 난 당신이 나를 전혀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밖에없어."
그녀의 창백한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도 사랑하라고?" 그녀는 희미하게 말했다.
"마틴, 당신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라. 난 쉬운 여자가아니야"
"봤지? 누나는 당신과 어떤 인연도 맺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노먼은 소리치고 그녀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마틴은 그들이 지나가도록 옆으로 물러서서, 외투 호주머니 속을더듬어 거기 있을 리 없는 담배와 종이를 찾았다. - P163

북 오클랜드까지는 먼 길이었으나, 계단을 올라 제 방에 들어서고나서야 그는 그 길을 걸어왔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침대 가에 앉아막 깨어난 몽유병자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식탁 위에 있는 『기한 초과를 보고 그는 의자를 끌어다 앉아서 펜을 찾았다. 그 - P163

의 천성에는 완성을 향한 논리적 충동이 있었으며, 여기 완성해야할 것이 있었다. 다른 일 때문에 미뤄져 왔으나, 이제 그 다른 일이끝났으니 그는 이 일에 전념하여 이것을 끝낼 것이다. 그다음에 뭘할지는 알지 못했다. 인생의 전환기가 끝났다는 것만 알았다. 그 기간이 다했으므로, 그는 노동자다운 자세로 마무리하려는 것뿐이었다. 미래는 궁금하지 않았다. 미래가 그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 두었을지 곧 알게 될 터였다.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그 어떤 것도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 P164

오래지 않아 그는 일본 식당의 단골 노릇을 그만두게 되었다. 투쟁을 포기한 바로 그때, 전세는 역전되었다. 그러나 너무 늦은 일이었다. 아무런 흥분 없이 그는 「천년 왕국지에서 온 두툼한 봉투를뜯어 300달러의 액수가 적힌 수표를 훑어보았고, 『모험』을 수락하고 보낸 원고료임을 알게 되었다. 그가 세상에 진 빚의 총액은 전당포의 고리대를 포함해서 100달러가 채 안 됐다. 빚을 다 갚고 브리슨덴의 변호사에게 써준 100달러의 차용증서를 청산해도 100달러이상이 수중에 남았다. 그는 양복점에 정장을 주문하고 시내에서 가장 좋은 카페에서 매끼 먹었다. 여전히 마리아가 세놓은 제 작은 하숙방에서 자긴 했지만, 새 옷을 입은 그의 모습에 동네 아이들이 잠잠해졌다. 더 이상 헛간 지붕 위나 뒷담 너머에서 그를 ‘떠돌이‘라든지 ‘부랑자‘라고 놀려대지 않았다. - P176

하와이에 대한 그의 단편 소설 『위키위키는 워런스 먼슬리에250달러에 팔렸다. 「노던 리뷰」가 그의 에세이 『미의 요람』을, 「매-킨토시 매거진이 「손금쟁이 그가 매리언에게 써준 시 - 를 가져갔다. 편집자와 독자들이 여름휴가에서 복귀해 원고들이 빠르게처리되었다. 그런데 무슨 변덕으로 그들이 2년 동안 줄기차게 거절했던 원고들을 이처럼 한꺼번에 수락하는지 마틴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의 원고는 이전에 한 번도 출판된 적이 없었다. 그는 오클랜드 밖으로는 알려지지 않았고, 오클랜드에서도 몇몇이 그를 악명높은 행동대원이자 사회주의자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그의 상품의 이처럼 급작스러운 수락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순전히 운명의 장난질이었다. - P176

어느 날 마틴은 자기가 외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건강하고 힘이 넘쳤으나 할 일이 없었다. 글쓰기와 공부의 중단, 브리덴의 죽음, 그리고 루스와의 결별로 그의 삶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카페에서 호사스런 식사를 하고 이집트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삶이 채워지지는 않았다. 정말로 남태평양이 부르고 있었지만, 그는 미국에서의게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느꼈다. 두 권의 책이 곧 출간될 것이고, 출간될지도 모를 다른 책들도 있었다. 그 책들로부터 돈이 나오면, 그는 한 자루 가득 돈이 채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남태평양으로 가져갈 것이다. 칠레 달러로 천 달러면 살 수 있는 마르케사스 제도의 한 골짜기와 만을 알고 있었다. 말굽 모양의 육지로 둘러싸인만으로부터 구름을 머리에 인 까마득한 산꼭대기까지, 내내 이어지는 골짜기는 대략 만 에이커는 되리라. - P180

마틴은 예전에 느꼈던 싸움의 전율을 다시 느끼며 싸움을 즐겼다. 하지만 즐거움은 빠르게 사라지고 그는 커다란 슬픔에 짓눌렸다. 거리낌 없고 속 편한 저 지난 시절의 친구들보다 자기는 훨씬 나이를더 먹은 ㅡ수백 살은 더 먹은ㅡ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먼 길을, 돌아가기에는 너무 먼 길을 왔다.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한때는 자기도 그렇게 살았건만, 이제는 싫었다. 전부 다 실망스러웠다. 그는 외계인이 되어 버렸다. 맥주 맛이 조야했듯이, 그들의 우애도 지금의 그에게는 조야하게 보였다. 그는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왔다. 수천 권의 책들이 그들과 그 사이에서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그가 그자신을 추방했던 것이다. 지식의 광대한 영토로 너무 깊숙이 들어온 나머지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 그는 인간적이었기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그는 어디에서도 새로운 고향을 찾을 수 없었다. 그 패거 - P191

리가 그를 이해하지 못하듯이, 그 자신의 가족이 그를 이해하지 못하듯이, 부르주아들이 그를 이해하지 못하듯이. 그가 매우 존경하는 옆자리의 아가씨는 그도, 그가 그녀에게 바친 영예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그의 슬픔은 씁쓸함으로 물들어 갔다.
- P192

한 가지는 분명했다. 모스 가 사람들은 그라는 사람 자체나 그의작품 때문에 그를 만나려 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지금 그들이 그를-원하는 이유는 그라는 사람 자체나 그의 작품 때문이 아닌, 그가 가진 명예 때문이었다. 그가 발군의 인물이고, 왜 아니겠는가? - 또수십만 달러쯤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부르주아 사회가 사람을 평가하는 방식이니, 어떻게 그렇지 않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는 자존심이 있었다. 그런 평가를 경멸했다. 그 자신으로서, 혹은 그 자신의 표현인 자신의 작품으로 평가받기를 바랐다. 리지가그렇게 그를 평가했다. 그녀는 그의 작품조차 개의치 않았다. 그만을, 그라는 사람만을 높이 평가했다. 배관공 짐과 옛 패거리도 그를 그런 식으로 평가했다. 그가 그들과 어울리던 시절에 이 점은 충분히 입증되었다. 셸 마운트 공원의 일요 야유회에서도 입증되었다. 그의 작품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들이 좋아하고 싸움마저 마다하지 않고 지키려 한 대상은 자기들 중 하나이며 꽤 괜찮은 녀석인 마틴 에덴, 그냥 그였다.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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