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그건 경우가 달라. 신문에 실리는 가벼운 소설들은 내가 하루 종일 문체와 씨름하고 나서 기진맥진한 상태로 써내는 거야. 그러나 기자라는 직업은 아침부터 밤까지 기사만 써내야 하는 일이고 삶 전체를 바쳐야 하는 일이야. 소용돌이 같은 삶, 과거도 미래도 없이 당장의 그 순간만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해. 문체에 대해 어떤 생각도 하지 않고 보고체만 써야 하는데, 그건 문학과는 거리가 멀지. 내 문체가 막 형성되려는 지금 기자가 된다는 건 문학적 자살이나 마찬가지야. 지금도 신문에 실리는 가벼운 소설 한 편마다, 가벼운 소설의 단어 하나마다, 나 자신과 나 자신에 대한 존중과, 나의 문학에 대한 존중에 위배돼. 정말 구역질이 난다고. 나는 죄를 지었어. 그래서 나는 그것들이 팔리지 않게 되자 속으로 기뻤어. 옷을 전당포에 맡겨야 했지만 말이야. 그런데 연애시 연작』을 쓸 때의 기쁨이란! 지고의 창조적 기쁨이란! 만사가 그걸로 보상되고도 남았어." - P67

마틴은 루스가 창조적 기쁨에 그다지 공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녀는 ‘창조적 기쁨‘이란 말을 종종 썼다. 그는 그 말을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처음 들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에 대해 읽었고, 대학에서 문학사 학위를 따는 과정에서 그것에 대해 배웠다. 그러나 그녀는 독창적이지도 창조적이지도 않았으며, 그녀가 문화에 대해 하는 말이란 다른 사람이 어디선가 듣고 되풀이한 말을 또 되풀이하는 데 지나지 않았다.
바다 서정시를 손 본 편집자가 옳지 않았을까?" 그녀는 의문을 제기했다. "생각해 봐, 편집자는 자격을 검증받았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편집자가 되지 못했을 테니까." - P67

"그 말은 기존 체제를 지속시키는 논리와 같아." 편집자라는 족속에 대한 분노로 그는 열변을 토했다. "이미 있는 것이 옳을 뿐만 아니라, 있을 수 있는 가능성 중에 최상이라는 논리.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존재하기에 적합하다는 증명이 충분히 된다는 논리. 보통 사람들은 현재의 조건에서 그럴뿐더러 모든 조건에서도 그럴 거라고 믿어. 그런 헛소리를 믿는 이유는 물론 무지 탓이야. 그들의 무지는 바이닝거 (오스트리아의 사상가 - 옮긴이)가 묘사한 몽매한 상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그들은 자신이 생각한다고 생각하지. 그런데 그런생각 없는 사람들이 진짜 생각하는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의 목줄을틀어쥐고 있단 말이야."
그는 자신이 루스가 이해하기에는 무리인 얘기를 하고 있음을 깨닫고 멈추었다. - P68

물론 순전히 허튼소리지. 지나치게 신경 쓰고 정신을 혹사해서 생기는 증상이야. 요점은 이거야. 내가 왜 이렇게 지내왔을까? 자기를위해서야. 수련 기간을 단축하고 성공을 앞당기기 위해서야. 이제 나는 수련을 마쳤어. 내 장비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아. 맹세컨대, 나는 매달 평범한 대학생이 일 년에 걸쳐 배우는 것보다 더 많이 배워. 정말이지 나는 알아. 하지만 자기가 이해해 주기를 내가 이토록절실히 바라지 않는다면 얘기하지 않았을 거야. 자랑하는 게 아니라고 읽은 책을 보면 결과를 알 수 있지. 지금 시점에서 자기의 남동생들은 나에 비하면 무지한 야만인들이야. 그들이 자는 동안 나는 책을 비틀어 지혜를 짜냈어. 예전에는 유명해지기를 원했지만, 이제는 별로 개의치 않아. 내가 원하는 건 너야. 음식보다, 옷보다, 인정받는 것보다 나는 네게 굶주려 있어. 내 꿈은 너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수억 년쯤 잠자는 거고, 그 꿈은 남은 한 해가 가기 전에 이루어질 거야." - P75

"그것들은 염병에 걸려 버리라지!" 마틴이 브리슨덴의 작품을 잡지사들에게 보내 보겠다고 자청하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것들은 내버려 두고, 자네는 아름다움을 그 자체로 사랑하게. 배를 타고 자네의 바다로 돌아가. 그게 내가 자네에게 하는 충고야, 마틴 에덴. 이 병들고 썩은 도시에서 뭘 바라나? 자네는 잡지계의 천한 요구에 맞춰 아름다움을 팔아 보려는 헛수고로 날마다 제 목을 조르고 있어.
전에 자네가 인용한 구절이 뭐였더라? 아, 그래, ‘인간, 최신 하루살이 자네, 최신 하루살이는 명성을 얻어서 뭘 하려는가? 명성은 자네에게 독이 될 거야. 그따위 이유식을 먹고 크기에는 자네가 너무 단순하고, 너무 원초적이고, 너무 합리적이라고 나는 믿네. 자네가 시한 줄도 잡지에 팔지 않았으면 좋겠어. 자네가 섬겨야 할 단 하나의 주인님은 아름다움이야. 아름다움을 섬기고 대중은 무시해 버려! 성공! 헨리의 유령」을 능가하는 자네의 스티븐슨에 관한 소네트, 『연애시 연작』, 그리고 바다에 관한 시들이 성공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면, 성공이란 게 대체 뭔가? 자네의 기쁨은 글을 써서 성공하는 데있지 않고, 글을 쓰는 데에 있어. 자네는 그렇게 말하지 못하겠지. 난 알아. 자네도 알아. 아름다움이 자네를 아프게 해. 아름다움은 자네 - P94

에게 끝나지 않을 고통이고, 치유되지 않을 상처이며, 화염의 칼이야.
자네가 왜 잡지사와 흥정해야 하지? 아름다움을 자네의 목적으로삼아. 왜 자네가 아름다움을 거푸집에 넣어 금화를 찍어 내야 해? 어쨌거나 자네는 할 수도 없어. 그러니 내가 흥분할 필요도 없지. 잡지를 천 년 동안 읽어 봤자 키츠의 시 한 줄 만한 값어치도 없어. 명성과 돈은 내버려 두고, 내일 당장 선원 계약을 해서 바다로 나가라고."
"명성이 아니고, 사랑을 위해서입니다." 마틴은 웃었다. "당신의 우주에는 사랑이 있을 자리가 없는 모양이죠? 내 우주에서 아름다움은 사랑의 시녀죠."
브리슨덴은 연민과 동경이 담긴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참 젊네, 마틴, 참 젊어. 자네는 높이 날아오를 텐데, 날개가 가장 섬세한 실로 짜여 있고 가장 선명한 염료로 물들여져 있지. 그걸 그을게 하지 마. 그런데 물론 자네의 날개는 이미 그을었어. 『연애시 연작』을 쓰려면 찬미의 대상인 어떤 여자가 있었을 테고, 그게 그 시에서 아쉬운 점이야." - P95

이제 내 목을 졸라 봐야 소용없어. 난 할 말을 할 거니까. 명백히 이번은 자네의 풋사랑이야. 그런데 아름다움을 위해서, 다음번에는 보다 나은 취향을 보여 줘. 부르주아의 딸과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거야? 그런 여자애들은 내버려 두라고. 삶을 비웃고 죽음을 야유하며, 사랑을 마다하는 법 없는 대단한 여자, 걷잡을 수 없이 활활 타오르는 불꽃 같은 여자를 고르라고. 그런 여자들이 있고, 그들도 부르주아의 온실 같은 삶에서 배출된 여느 겁쟁이만큼 기꺼이 자네를 사랑할 걸세."
"겁쟁이라고요?" 마틴은 항의했다.
"바로 그거야, 겁쟁이. 자기들에게 지껄여진 오밀조밀한 도덕을 지껄이면서, 삶을 제대로 살기는 겁내지. 그들은 자네를 사랑하겠지만,
마트, 자기들의 오밀조밀한 도덕을 더 사랑할 거야. 자네가 원하는것은 삶의 멋진 방기, 위대하고 자유로운 영혼, 불타는 나비야. 조그맣고 칙칙한 나방이 아니지. 오, 자네는 그 멋진 나비들도 역시 지겨워하게 될 거야. 불행히도 그때까지 살아 있게 된다면, 여자라면 다지겨워하게 될 거라고. 그런데 자네는 그때까지 살지 못할 거야. 배를 타고 바다로 돌아가지 못할 거야. 그래서 이 역병이 창궐하는 도시들을 배회하다 뼛속 깊이 썩어 문드러져, 죽어 버릴 거야." - P97

그러나 브리스덴은 여전히 수수께끼였다. 금욕적인 얼굴에 급격히 떨어지는 체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놓고 쾌락을 탐닉했다. 그는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삶의 모든 방식을 신랄하게 비꼬았다. 그러면서도, 죽어 가면서 삶을 철저히 사랑했다. 그는 살려는 광기, 짜릿한 흥분을 느끼려는 광기, 그 자신이 언젠가 썼듯이 ‘내가 태어난 우주 먼지 속, 나의 작은 공간에서 꿈틀거리려는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다. 새로운 짜릿함과 새로운 감각을 추구하여 마약에 손대고 여러 이상한 짓을 한 적도 있었다. 마틴에게 말한 바로는, 한번은 갈증이 해소될 때의 그 격렬한 쾌감을 경험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3일이나 물을 마시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가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 자인지, 마틴은 결코 알 수 없었다. 그에게 과거는 없고 미래는 임박한 죽음이며, 현재는 삶의 모진 열병이었다. - P98

추운 방에서 루스는 몸이 떨리고 방으로 맞아들이는 그의 손이 너무 차가운 데에 이미 충격을 받았건만, 그의 얼굴은 창작열로 환히 빛났다. 그의 낭독을 그녀는 경청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이따금 못마땅한 기색이 비칠 뿐이었으나, 그는 끝까지 읽고 물었다.
"솔직하게 말해 줘. 어때?"
"나.... 나는 모르겠어." 그녀는 답했다. "그게 과연... 당신은 그게이팔리리라 생각해?"
"안 팔리겠지."라는 고백이었다. "잡지에 실리기에는 너무 강해. 하지만 이건 진실이야, 맹세코 진실이야."
"팔리지 않을 줄 알면서 왜 그런 걸 꾸역꾸역 쓰는 거야?" 그녀는가차 없이 따지고 들었다. "당신은 먹고살기 위해 글을 쓰는 거잖아, 안 그래?"
"그래, 그렇지. 그런데 이 처절한 이야기가 나를 낚았어. 나는 쓰지 않을 수가 없었어. 나더러 써야만 한다고 했어."
"하지만 그 주인공, 그 위키위키를 왜 그렇게 거친 인물로 만들었어? 독자들에게 분명히 거슬릴 거고, 그러니 편집자들이 당신 작품을 거절하는 거야." - P108

"왜냐하면 진짜 위키위키는 그런 식으로 말하니까."
"그건 좋은 취향이 아니야."
"인생이지." 그는 무뚝뚝하게 답했다. "그게 현실이야. 그게 진실이라고. 나는 인생을 내가 본 대로 써야만 해."
그녀는 아무 말 하지 않았고, 둘은 거북한 상태로 잠시 묵묵히 앉아 있었다. 그가 그녀를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사랑하는 탓이었고, 그녀가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가 그녀의 지평 너머의 너무나 거대한 존재인 탓이었다.
"아, 「트랜스콘티넨탈」에서 원고료를 받아 냈어." 그는 보다 쉬운 화제로 말을 돌렸다. 지난번에 본 구레나룻의 삼중창단과 그들이 4달러 90센트와 배표를 물어내던 장면이 떠올라 그는 낄낄댔다.
"그럼 당신은 올 거네!" 그녀는 기쁘게 외쳤다. "사실 나는 그걸 알려고 왔어" - P109

"오다니?" 그는 멍하게 중얼거렸다. "어디를?"
"내일 저녁 만찬 말이야. 그 돈을 받아 내면 정장을 찾겠다고 당신이 말했잖아."
"까맣게 잊고 있었어." 그는 순순히 말했다. "오늘 아침 시청의 단속원이 마리아의 암소 두 마리와 송아지를 끌고 갔어. 그런데 마리아는 돈이 한 푼도 없어서 내가 그 암소와 송아지를 찾아 줘야 했어. ‘트랜스콘티넨탈」에서 받은 5달러, 종소리」의 원고료는 단속원의 호주머니로 들어가 버린 거야."
"그럼 당신은 오지 않겠다는 거야?"
그는 제가 걸친 옷을 내려다보았다. - P109

"갈 수가 없다고."
실망과 질책의 눈물이 그녀의 푸른 눈에서 반짝였으나,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 추수감사절에는 당신이 나와 함께 델모니코 레스토랑에서저녁 식사를 하게 될 거야." 그는 기운 내서 말했다. "아니면 런던이나 파리, 당신이 바라는 어디에서건. 내가 장담할게."
"며칠 전 신문에서 읽었어." 그녀는 불쑥 밝혔다. "이 지역에서 몇명이 철도우편국 발령을 받았다. 당신은 그 시험을 수석으로 합격했잖아?"
그는 제게 소집장이 왔으나 거절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나 자신을 믿었고, 지금도 믿어." 그는 결론지었다. "일 년 후 나는 철도우편국 직원 열댓 명의 월급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 거야. 자기는 기다려만 봐." - P110

"오." 그가 말을 마치자 그녀가 한 말은 이게 다였다. 그녀는 일어나서 장갑을 끼었다. "난 가야 해, 마틴. 아서가 기다리고 있어."
그는 그녀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으나, 그녀는 수동적이기만 했다. 몸에 긴장이 없었고, 팔은 그를 감싸지 않았으며, 그의 입술을 맞는 그녀의 입술도 여느 때와 달리 마주 누르지 않았다.
대문간에서 돌아서면서 그는 그녀가 자기에게 화가 났다고 단정했다. 하지만 왜 그랬을까? 단속원이 마리아의 소를 채간 것은 불운한 사건이었다. 운명의 일격이었다. 그 일로 누구도 비난받아서는 안되었다. 그는 그 일에 대해 자기가 달리 처신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은 도무지 들지 않았다. 그래, 맞아, 자기가 약간은 비난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그다음에 들었다. - P110

그러나 그보다 그녀를 더 속상하게 한 것은 그의긍지와 자존심의 결여였다. 더욱이, 그 어느 때보다 예리하게, 그녀는 그 일을 통해 그가 노동자 계급 출신임을 씻어 내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그 사실 자체로 낙인이건만 부끄러움도 없이온 세상에 드러내고 다니다니, 선을 넘어선 행동이었다. 그녀와 마틴의 약혼은 비밀로 지켜졌으나 둘의 오랜 교제에 대한 뒷말이 없지않았으며, 그 제과점에는 그녀의 연인과 그를 따르는 무리를 암암리에 힐끗거리는 몇몇 지인들이 있었다. 그녀에게는 마틴과 같은 넓은포용력이 없었고 환경을 뛰어넘을 능력도 없었다. 그녀는 깊이 상처받았으며, 수치심에 예민한 기질이 발동했다. 그리하여 그날 늦게 그녀를 찾아간 마틴은 선물을 상의 호주머니에서 꺼내지도 못하고, 보다 적당한 기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격하게 분노의 눈물을 쏟아 내는 루스의 모습이 그로서는 너무나 뜻밖이었다. 그녀가 고통받는 광경은 그로 하여금 자기가 못된 짓을 저질렀다고 인정하게 했지만, 그의 영혼은 그 이유도 경위도 찾아낼 수 없었다. 자기가 아는 사람들이 부끄럽다는 생각은 결코 해 본 적이 없었으며, 크리스마스를맞아 마리아의 가족에게 한턱내는 것이 루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을 듯했다. 한편으로는, 그녀의 설명을 듣고나니 그녀의 관점이 이해가 가기도 했다. 그는 그것을 최고로 훌륭한 여자를 포함한 모든 여자에게 다 있는 타고난 연약함으로 여겼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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