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네가 다시 말하더군. 난 무슨 소리인가 싶었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그가 계속 말하기를 기다렸지. 노인네는 그 당시를 회상하더니, 잠시 후 말했어. ‘우리는 빅터 축음기하고 레코드판 몇 장이 있었다오, 선생. 밤마다 축음기를 틀어놓고 음악을 들으면서 거실에서 춤을 추었소. 매일 밤 그랬지. 가끔은 바깥에 눈이 내리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갔다오. 1~2월이면 기온이 많이 내려갔지. 하지만 우린 레코드판을 들으면서양말을 신고 거실에서 춤을 췄다오. 레코드판을 다 들을 때까지췄지. 그러고 나면 불을 지피고, 등은 하나만 남겨두고 다 끈다음 잠자리에 들었어.  - P400

어떤 날은 밤에 눈이 내렸는데 밖이 어찌나고요한지 눈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오. 정말이오. ‘선생.‘ 그가 말했어. 정말 들을 수 있소. 가끔은 눈 내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조용히 하면, 그리고 마음이 맑고 나와 주변 세상이 조화를이루면, 어둠 속에 누워서 눈 내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언제한번 해보구려.‘ 그가 말했어. ‘여기도 이따금 눈이 내리지 않소?한번 해보시구려. 여하간 우린 매일 밤 무도회에 갔다오. 그러고나서 잔뜩 쌓아올린 누비이불 안으로 들어가서 아침까지 포근하게 잤지. 아침에 일어나면 입김이 보였소.‘ 그가 말했어.
헨리가 휠체어에 탈 만큼 회복되었을 때, 간호사 한 명이랑 내가 그를 휠체어에 태워서 부인이 있는 곳으로 데려갔어. 붕대를 - P400

푼지 이미 한참 지났을 때였지. 노인네는 그날 아침에 면도도하고 로션도 발랐어. 목욕가운 위에 병원가운을 입고 있었는데,
알다시피 아직 회복중이었는데도 휠체어에 앉아서 몸을 꼿꼿이세우더라고. 근데 꼭 고양이처럼 긴장한 게 눈에 보였어. 아내의 병실이 가까워지니까 얼굴이 달아오르면서 기대심으로 가득한 표정, 뭐라고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이 되더라고. 나는 휠체어를 밀었고 간호사는 내 옆에서 걸었어. 간호사는 얘기를주워들었는지 둘의 상황을 좀 알고 있었지. 간호사들이란 왜 온갖 것들을 보다보니 조금 지나면 무슨 일을 당해도 시큰둥해지는데, 그날 오전엔 이 간호사도 꽤 긴장했더군.  - P401

병실 문이 열리고, 내가 헨리를 병실로 밀고 들어갔어. 게이츠 부인, 그러니까애나는 아직 몸은 움직일 수 없었지만 머리와 왼쪽 팔은 움직일수 있었어. 애나는 눈을 감고 있다가, 우리가 병실로 들어가니까눈을 번쩍 뜨더군. 아직 붕대를 감고 있기는 했지만 골반 아래쪽만 하고 있었어. 난 헨리를 침대 왼쪽으로 밀고 가서 말했어. ‘손님이 오셨네요, 애나. 손님이 왔다구요.‘ 더는 말이 나오지 않더라고. 애나는 살짝 웃더니 얼굴이 환해졌어. 시트 아래에서 애나의 손이 나오더군. 푸르뎅뎅하게 멍들어 있었어. 헨리는 양손으로 그 손을 잡았어. 손을 들더니 입을 맞췄지. 그러고는 말했어.
‘안녕, 애나, 내 사랑, 좀 어때? 나 기억하겠어?‘ 애나 뺨에 눈물 - P401

이 흐르기 시작했어. 애나가 끄덕였지. ‘보고 싶었어.‘ 헨리가 말했어. 애나는 계속 끄덕였지. 간호사랑 나는 잽싸게 밖으로 나갔어. 병실 밖으로 나오니까 간호사가 엉엉 울기 시작하더라, 억센축에 드는 간호사였는데도. 정말이지 대단한 경험이었어. 여하간 그후로 헨리는 매일 오전, 오후에 휠체어를 타고 거기 갔어.
우리는 두 사람이 점심과 저녁을 부인 병실에서 같이 먹을 수 있게 했지. 나머지 시간에 두 사람은 그냥 앉아서 손을 잡고 이야기를 하더군. 이야깃거리가 끝이 없더라구." - P402

나는 창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제 하늘에서 파란 층이 물러나며 전체적으로 어두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별들이 나타났다. 금성이 보였고 그 옆으로 저멀리. 그만큼 환하지는 않지만 지평선 위에 분명하게 걸려 있는 화성이 보였다. 바람이 거세어졌다. 나는 바람이 빈 벌판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았다. 맥기니스 부부가 더이상 말을 기르지 않아서 참으로 안되었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말들이 거의 어두워진 들판을 가로지르며 질주하는 모습을, 아니면 그저 울타리 근처에서 서로 반대편을 향해 가만히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싶었다. 나는 창가에서서 기다렸다. 아직은 그대로 있어야 한다는 걸, 바깥으로 눈길을 향하고 밖을 내다봐야 한다는 걸 알았다. 볼 것이 남아 있는동안은. - 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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