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토요일 저녁, 그녀는 차를 몰고 쇼핑센터에 있는 제과점을 찾아갔다. 바인더에 들어 있는 케이크 사진을 훑어본 뒤, 그녀는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를 주문했다. 그녀가 고른케이크에는 반짝이는 별들 아래 우주선과 발사대 그리고 반대쪽으로 빨간색 사탕으로 만든 행성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아이의 이름인 ‘스코티‘는 그 행성 아래에 초록색으로 적을 예정이다. 다음주 월요일이면 아이가 여덟 살이 된다고 그녀가 말하는 동안, 목살이 늘어진 늙은 빵집 주인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빵집주인은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는데, 그게 작업복인 모양이었다. 앞치마의 끈은 겨드랑이 아래를 거쳐 등을 한 바퀴 휘감은뒤, 다시 앞으로 나와 볼록한 허리 아래에서 매듭을 짓고 있었 - P97
다. 그는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그녀가 말하는 동안, 그는 사진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마음껏 얘기하도록 내버려뒀다. 그는 제과점에 막 도착해서 밤새빵을 구울 작정이었으므로 서두를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녀는 빵집 주인에게 앤 와이스라고 이름을 말한 뒤, 전화번호를 남겼다. 오후에 아이의 생일파티가 열릴 테니 월요일 아침이면 막 오븐에서 나온 케이크가 준비될 것이었다. 빵집 주인은신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그저 최소한의 말들, 필요한정보만 오갔을 뿐 즐거울 만한 것은 없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마음이 불편했고 기분이 나빠졌다. - P98
그가 연필을 쥐고 계산대에몸을 숙이고 있는 동안, 그녀는 그 덜떨어진 모습을 바라보며 평생빵이나 만들면서 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서른세 살의 애엄마인 그녀가 보기에 사람들에게도, 특히 빵집 주인과 비슷한 연배 -그러니까 자기 아버지 또래의 중늙은이들 - 에게도 아이들이 있겠지만 케이크나 생일파티를 준비하는 인생의 특별한 시기는 이미 지나간 게 틀림없었다. 우리 사이에는 그런 차이가 있겠지,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렇긴 해도 그는 좀 퉁명스럽게굴었다. 무례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딘지 태도가 퉁명스러웠다. 그녀는 그를 상냥하게 대하려던 마음을 포기했다. 그녀는 제과점 안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 한쪽 끝 길고 육중한 나무탁자 - P98
위에 알루미늄으로 만든 파이 팬들이 놓여 있는 게 보였다. 탁자옆에는 선반이 텅 비어 있는 철제 보관함이 있었다. 또 어마어마하게 큰 오븐도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서부 컨트리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빵집 주인은 특별 주문사항을 주문서에 기입한 뒤, 바인더를덮었다. 그녀를 바라보며 그는 "월요일 아침이오"라고 말했다. 그녀는 고맙다고 말한 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 P99
월요일 아침, 생일을 맞은 아이는 다른 아이와 함께 걸어서 등교하고 있었다. 포테이토칩 봉지를 서로 주고받으며 걸어가는 동안, 생일을 맞은 아이는 그날 오후에 있을 생일파티에서 친구에게 받을 선물이 뭔지 알아내려고 애를 썼다. 앞을 살피지 않은채, 교차로를 걸어가던 아이는 인도 연석에 발을 헛디뎠고 곧바로 차에 치였다. 아이는 옆으로 넘어지면서 얼굴은 도랑에 처박혔고 다리는 차도 쪽으로 나와 있었다. 두 눈은 이미 감겼으나 다리만은 마치 기어나오겠다는 듯이 앞뒤로 까딱거렸다. 친구는포테이토칩 봉지를 떨어뜨린 채, 울음을 터뜨렸다. 100피트쯤 더 나아갔던 차는 길 한가운데에서 멈춰 섰다. 운전석에 앉은 남자는 고개를 돌려 어깨 너머로 돌아봤다. 그는 아이가 불안정한자세로 일어설 때까지 그렇게 있었다. 아이는 선 채로 비틀거렸 - P99
다. 넋이 나간 표정이었으나 멀쩡했다. 운전사는 기어를 넣고 떠나버렸다. 생일을 맞은 아이는 울지도 않았고, 또다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자동차에 부딪힌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 친구의 말에도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이는 집으로 돌아갔고 친구는 학교로갔다. 하지만 생일을 맞은 아이는 집 안으로 들어가 엄마 -그녀는 아이를 소파에 앉히고 자기도 옆에 앉아서 아이의 손을 무릎으로 끌어당긴 채, "스코티, 정말 괜찮은 거니?" 라고 물으면서, 괜찮다고 하더라도 의사를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 에게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는 갑자기 소파에 몸을 파묻더니 눈을 감고 축 늘어졌다. 아무리 깨워도 아이가 일어나지 않자, 그녀는 전화기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남편 직장에 전화를 걸었다. 하워드는 일단 진정하라고, 냉정을 찾으라고 그녀를 달래고 병원에 전화해 구급차를 보낸 뒤 자신도 병원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 P100
당연히 생일파티는 취소됐다. 아이는 쇼크에 의한 가벼운 뇌진탕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구토로 인해 아이의 폐에 물이 차 있을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그날 오후에는 물을 빼내야만 했다. 이제 아이는 깊은 잠 속에 빠져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혼수상태는 아니었다. 의사인 닥터 프랜시스는 부모의 얼굴에 서린 근심을 보자, 그렇게 강조했다. 혼수상태는 아닙니다. 수많은 엑스레 - P100
이 촬영과 검사를 거친 뒤, 아이가 편안하게 잠든 것처럼 보이던 그날 밤 열한시, 이제 아이가 깨어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한 하워드는 병원을 떠났다. 앤과 함께 하루 종일 병원에서 아이 곁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잠깐 집에 들러 몸도 씻고 옷도 갈아입을 작정이었다. "한 시간 뒤에 올게." 그가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내가 여기 있을 테니까." 그녀가 말했다. 그는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춘 뒤, 손을 잡았다. 그녀는 병상 옆 의자에 앉아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아이가 깨어나 모든 게 괜찮아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가 되면 자기도 좀 쉴 수있을 것 같았다. - P101
하워드는 병원에서 집까지 차를 몰고 갔다. 그는 비에 젖은 어두운 거리를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속도를늦췄다. 지금까지 그의 삶은 순탄하기만 했고 어디 하나 부족한게 없었다. 대학도, 결혼도, 경영학 고급과정 학위를 받기 위해다시 다닌 일 년의 대학생활도, 투자회사에 하위 파트너로 들어가게 된 일도, 아빠가 된 것도. 그는 행복했고, 지금까지는 운이좋았다. 그도 알고 있었다. 부모님은 여전히 살아 계시고 형제자매들은 다들 자리를 잡았으며 대학친구들은 모두 사회에 나가나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 어떤 쓰라린 경힘도 없었다. 운이 다하면, 갑자기 모든 상황이 바뀌면, 한 사람 - P101
을 꺾어버리고 내팽개치는 어떤 힘 같은 게 이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그는 집 앞 진입로로 차를 몰고 들어가 주차했다. 그의 왼발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잠시 차에 앉아서 이성적인 태도로 그 상황에 대처하려고 애썼다. 스코티는차에 치였고 병원에 있다. 하지만 아이는 곧 멀쩡해질 것이다. 하워드는 눈을 감고 손으로 얼굴을 한 번 훑었다. 그는 차에서내려 현관문 쪽으로 걸어갔다. 집 안에서 개가 짖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그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전등 스위치를 더듬거리는 동안에도 전화벨은 계속 울렸다. 병원을 떠나는 게 아니었다. 그러는 게 아니었다. "빌어먹을!" 그가 소리쳤다. 그는수화기를 들고 말했다. "이제 막 집에 들어온 참이었어!" - P102
"케이크 왜 안 가져가는 거요?" 수화기 저편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말씀이죠?" 하워드가 물었다. "케이크 말이오. 십육 달러짜리 케이크." 그 목소리가 말했다. 하워드는 무슨 얘기인지 알아들으려고 수화기를 귀에다 바짝붙였다. "케이크라니 지금 무슨 말입니까? 젠장, 지금 무슨 얘기하고 있는 겁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지." 그 목소리가 말했다. 하워드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는 부엌으로 가서 위스키 - P102
를 들이마셨다. 그는 병원에 전화했다. 하지만 아이의 상태는 달라진 게 없었다. 아이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고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욕조에 물을 받는 동안, 하워드는 얼굴에 거품을바르고 면도를 했다. 그가 욕조에 들어가 발을 뻗고 눈을 감으려는 찰나,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그는 벌떡 일어나 수건을 집어들고 집 안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병원을 떠난 일을 두고 자신에게 "이 병신!"이라고 소리치며. 하지만 그가 수화기를 들고 "여보세요!"라고 소리쳤을 때, 저편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전화를 건 사람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 P103
앤은 손으로 아이의 이마를 만졌다. "그래도 열은 없으니까." 그러더니 말했다. "세상에. 하지만 이건 너무 차갑잖아. 하워드? 얘가 왜 이렇지? 머리 좀 만져봐." 하워드는 아이의 관자놀이를 만졌다. 그의 호흡이 느려졌다. "그렇게 차가운 건 아냐. 얘는 지금 쇼크 상태야. 알지? 의사가 그렇게 말했잖아. 방금까지 의사가 여기 있었고, 스코티에게 무슨 일이 있었으면 분명히 얘기했을 거라구." 하워드가 말했다. 앤은 이빨로 입술을 깨물며 잠시 멍청하게 서 있었다. 그러더니 의자로 가서 앉았다. 하워드는 그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둘은 서로를 쳐다봤다. 그녀에게 뭔가 말해주고 싶은데, 그녀를 달래주고 싶은데, 겁이 나는 건 그로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자기 무릎 위로 끌어당겼다. 그렇게 하고 있으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그는 잡은 손에 힘을 줬다. 그러고는 다시 그냥 잡고만 있었다. 그들은 잠시 그렇게 앉아서 아무 말 없이 아이를 바라봤다. 이따금 그가 잡은 손에 힘을 줬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손을 치웠다. "기도했어." 그녀가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 P109
"기도하는 법을 다 잊어버렸다고 생각했었는데, 하니까 또 되네. 기도라고 해봐야 눈을 감고 그저 ‘하느님, 우릴 도와주세요. 스코티를 도와주세요‘ 라고 말한 게 다지만, 그것 빼고는 어려울게 없으니까. 말이야 다 준비돼 있으니까 당신도 기도하고 싶으면"이라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벌써 했어." 그가 말했다. "오늘 오후에, 아니, 벌써 어제구나, 당신 전화 받고 병원으로 차 몰고 오는 동안 기도했어. 내내 기도하고 있었어." 그가 말했다. "잘했어." 그녀가 말했다.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들이 이 곤경속에 함께 있다고 느꼈다. 그녀는 지금까지는 그 곤경이 자신과 스코티에게만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달았다. 내내 함께 있으면서 도왔음에도 그녀는 하워드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아내라는 사실이 기뻤다. - P110
그들은 종일토록 기다렸으나, 아이는 깨어나지 않았다. 가끔 한 사람이 커피를 마시려고 아래층에 있는 카페테리아에 가기도했으나, 이내 아이의 일이 떠올라 죄를 짓는 듯한 기분이 들어 테이블을 박차고 허겁지겁 병실로 돌아왔다. 그날 오후 다시 병실을 찾은 닥터 프랜시스는 아이의 상태를 다시 한번 살펴보더니 아이가 잘하고 있는 중이니 곧 깨어날 것이라고 말하고는 병실을 떠났다. 전날 밤에 일하던 간호사들과는 다른 간호사들이이따금 병실을 찾았다. 그리고 검사실에서 온 젊은 여성이 방문을 두드리고 병실로 들어왔다. 하얀 슬랙스에 하얀색 블라우스를 입은 그녀는 몇 가지 물건이 담긴 작은 쟁반을 들고 와 병상옆 작은 탁자에 놓았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아이의 팔에서 피 - P112
를 뽑았다. 그 여자가 아이의 팔에서 핏줄을 찾아 주삿바늘을 찌르자. 하워드는 눈을 감았다. "이건 또 뭐예요?" 앤이 그 여자에게 물었다. "담당의사의 지시예요." 젊은 여자가 대답했다. "저는 시킨대로 하는 것뿐이에요. 피를 뽑으라고 해서 피를 뽑는 거예요. 그런데 어디가 아픈 거예요? 이렇게 예쁜 애가." "차에 치였답니다." 하워드가 말했다. "뺑소니요." 젊은 여자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더니 다시 아이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쟁반을 들고 병실을 떠났다. "애가 왜 깨어나지 않는 걸까?" 앤이 말했다. "이 사람들은왜 얘기를 안 해주는 거야?" - P113
아이는 두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아이는 다시 두 눈을 떴다. 일 분 정도 앞쪽만 바라보던 눈동자는 천천히 움직이다 하워드와 앤을 향해서 잠시 멈췄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코티." 병상 쪽으로 다가가며 애 엄마가 말했다. "얘야, 스코티." 아빠가 말했다. "이 녀석아." 그들은 병상으로 몸을 기울였다. 하워드는 아이의 손을 잡고 두드리다가 꽉 움켜잡았다. 앤은 몸을 굽혀 아이의 이마에 몇 번이고 입을 맞췄다. 그녀는 두 손으로 아이의 양쪽 뺨을 감쌌다. "스코티, 착하지, 엄마 아빠야." 그녀가 말했다. "스코티?" 아이는 그들을 바라봤지만, 알아본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입이 벌어지는가 싶더니 두 눈은 굳게 감겼고, 폐 속에 더이상 숨이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아이는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 아이의 얼굴은 편안해졌다. 아이의 입술이 벌어지면서 마지막 숨이 목구멍을 지나 앙다문 이빨 사이로 천천히 빠져나갔다. - P128
"쇼핑센터까지 좀 태워줘." 그녀가 말했다. "하워드" "무슨 말이야?" "쇼핑센터 말이야. 누가 전화했는지 알겠어. 누군지 알겠다고, 빵집 주인, 그 빌어먹을 빵집 주인이야, 하워드, 스코티 생일에 쓸 케이크를 주문했거든. 그놈이 전화한 거야. 우리집 전화번호가 있으니까 계속 전화한 거지. 그 케이크 때문에 우리를 괴롭힌 거라고. 빵집 주인, 그 개자식이." - P135
"아줌마. 나는 먹고살자고 이 안에서 하루에 열여섯 시간을일합니다." 빵집 주인이 말했다. 그는 앞치마로 두 손을 닦았다. "여기서 밤낮없이 일해야 겨우 수지를 맞출 수가 있어요." 앤의 얼굴에 지나가는 표정을 보고 빵집 주인은 뒤로 물러서면서 말했다. "번거로운 건 질색이오." 그는 조리대로 가더니 오른손으로 반죽밀대를 집어들고 왼쪽 손바닥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케이크 가져갈 거요. 말 거요? 나는 다시 일해야 하오. 빵장수들은 밤에 일하오." 그가 다시 말했다. 그의 눈이 작고 비열해 보인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 눈동자는 털이 곤두선 뺨 주위의 살에 거의 파묻혀 있다시피 했다. - P138
"빵장수들이 밤에 일한다는 거. 나도 알아요." 앤이 말했다. "빵장수들, 전화질도 아주 잘하죠. 이 나쁜 사람" 그녀가 말했다. 빵집 주인은 밀대로 손바닥을 계속 두들겼다. 그는 하워드와눈을 마주쳤다. "조심해요, 조심해." 그가 하워드에게 말했다. "우리 아들은 죽었어요." 그녀가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로 잘라 말했다. "월요일 아침에 차에 치였어요. 우리는 아이가 죽을때까지 옆에서 지켜봤죠. 물론, 당신이야 그 사실을 알 수는 없었겠죠? 빵장수라고 해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을 테니까. 안 그래요. 빵장수 양반? 어쨌든 그애는 죽었어요. 그애는 죽었다구. 이 나쁜 놈아!" 갑자기 솟구친 분노는 또한 갑자기 고자누룩해 - P138
지더니 다른 뭔가로, 그러니까 구역질이 날 것 같은 어지러운 느낌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밀가루가 묻어 있는 나무탁자에 몸을기대고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더니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 내어울기 시작했다. "너무하잖아." 그녀가 말했다. "이건, 이건 너무하잖아." 하워드는 굴곡진 그녀의 몸을 감싸며 빵집 주인을 바라봤다. "부끄러운 줄 아세요." 하워드가 그에게 말했다. "부끄러운 줄을." 빵집 주인은 밀대를 조리대 위에 내려놓았다. 그는 앞치마도 풀어 조리대 위에 던졌다. 그는 그들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머리를 흔들었다. 그는 서류와 영수증과 계산기와 전화번호부가 놓여 있는 카드놀이용 탁자에서 의자를 하나 꺼냈다. "여기 앉으시오." 그가 말했다. "내가 지금 의자를 가져오겠소." 그가 하워드에게 말했다. "여기 좀 앉아주시오." 그는 가게 앞쪽으로 가더니 작은 철제의자 두 개를 들고 왔다. "두 양반 다 여기 좀 앉으시오." - P139
빵집 주인이 팔꿈치를 탁자 위에 올리며 말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겠소. 내 마음이 어떤지는 하느님만이 아실 거요. 내 말을 잘 들어요. 나는 빵장수일 뿐이라오. 다른 뭐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소. 예전에, 그러니까 몇십 년 전에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었을지 몰라요. 지금은 기억도 안 나는 일들이니까 나도 잘 모르겠소. 어쨌든 내가 어땠건 이제는 더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라는거요. 지금은 그저 빵장수일 뿐이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 일들이 없어지는 건 아니겠지요. 아무튼 정말 미안하게 됐습니다. 자제분에게 일어난 일은 안됐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런 식으로 행동한 제 자신에게도 측은한 마음이 듭니다." 빵집 주인은 말했다. 그는 탁자로 두 손을 내밀더니 그들을 향해 두 손바닥을펼쳤다. "내게는 아이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지금 당신들의 심정에 대해서는 간신히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라오. 지금 이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미안하다는 것뿐이라오. 용서해주십시오. 제발." 빵집 주인은 말했다. "나는 못된 사람이 아니오. 적어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전화로 말한 것처럼 못된 사람은 아니라오, 지금 내가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전혀모르겠다는 사실만은 당신들도 이해해주기 바라오. 부탁이오." - P140
빵집 안은 따뜻했다. 하워드는 탁자에서 일어나 외투를 벗었다. 그는 앤이 외투를 벗는 것을 도왔다. 빵집 주인은 그들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에서 일어났다. 그는 오븐으로 가더니 몇몇 스위치를 껐다. 그는 컵을 찾아 전기 커피메이커에서 커피를 내렸다. 그는 크림이 든 종이상자를 테이블 위에 놓았고, 설탕 종지도 가져왔다. "뭘 좀 드셔야겠습니다." 빵집 주인이 말했다. "내가 갓 만든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거요." 그가 말했다. 그는 오븐에서 따뜻한 계피롤빵을 가져왔는데, 갓 구운 빵이라 겉에 입힌 설탕이 아직 굳지도 않았다. 그는 탁자 위에 버터를 놓고, 버터를 바를 칼을 가져왔다. 그러고 나서 빵집 주인은그들과 함께 탁자에 앉았다. 그는 기다렸다. 그들이 각자 접시에 놓인 롤빵을 하나씩 집어먹기 시작할 때까지 그는 기다렸다. 그들을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뭔가를 먹는 게 도움이 된다오. 더있소. 다 드시오. 먹고 싶은 만큼 드시오. 세상의 모든 롤빵이 다여기에 있으니." - P141
그들은 롤빵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앤은 갑자기 허기를 느꼈는데, 그 롤빵은 따뜻하고 달콤했다. 그녀는 롤빵을 세 개나 먹어 빵집 주인을 기쁘게 했다. 그리고 그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주의 깊게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지치고 화가 나있었지만, 빵집 주인이 하고 싶어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빵집 주인이 외로움에 대해서, 중년을 지나면서 자신에게 찾아온 회한과 무력감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할 때부터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들에게 그런 시절을 아이 없이 보내는 일이 어떤 것인지 말했다. 매일 오븐을 가득 채웠다가 다시 비워내는일을 반복하면서 보내는 일이 어떤 것인지. 그가 수없이 만들었던 파티를 위한 음식, 축하 케이크, 손가락이 푹 잠길 만큼의 설탕, 케이크에 세워두는 작은 신혼부부 인형들. 몇백, 아니, 지금까지 몇천에 달할 것들, 생일들, 그 많은 촛불들이 타오르는 것을 상상해보라. 그는 반드시 필요한 일을 했다. - P142
그는 빵집 주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꽃장수가 아니라 좋았다. 사람들이 먹을 것을 만드는 게 더 좋았다. 언제라도 빵 냄새는 꽃향기보다 더좋았다. "이 냄새를 맡아보시오." 검은 빵 덩어리를 잘라내면서 빵집주인이 말했다. "뜯어먹기 힘든 빵이지만, 맛은 풍부하다오." 빵냄새를 맡은 그들에게 그가 맛을 보게 했다. 당밀과 거칠게 빻은 - P142
곡식 맛이 났다. 그들은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더이상먹지 못할 정도로 먹었다. 그들은 검은 빵을 삼켰다. 그건 형광등 불빛 아래로 들어오는 햇살 같았다. 그들은 새벽이 될 때까지, 창으로 희미한 햇살이 높게 비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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