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나는 너의 그늘을 베고 잠들었던 모양이다. 깨보니 너는 저만큼 가고. 나는 지는 햇살 속에 벌거숭이로 눈을 뜬다. 몸에게 죽음을 연습시키는 이런 시간이 좋아. 아름다운 짐승들은 떠날 때 스스로 곡기를 끊지. 너의 그림자를 베고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는 지구의 시간. 해지자 비가 내린다. 바라는 것이 없어 더없이 가벼운 비. 잠시 겹쳐진 우리는 잠시의 기억으로도 퍽 괜찮다.
별의 운명은 흐르는 것인데 흐르던 것 중에 별 아닌 것들이 더러 별이 되기도하는 이런 시간이 좋아. 운명을 사랑하여 여기까지 온 별들과
별 아닌 것들이 함께 젖는다. 있잖니. 몸이 사라지려 하니 내가 너를 오래도록 껴안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날이야. 알게 될 날이야. 축복해.
허공
수천수만 번의 벼락도 나를 멍들게 할 수 없다
비어 있으므로
나는 자유
봄의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믿기지 않았다. 사고 소식이 들려온 그 아침만 해도 구조될 줄 알았다. 어디 먼 망망한 대양도 아니고 여기는 코앞의 우리 바다. 어리고 푸른 봄들이 눈앞에서 차갑게 식어가는동안 생명을 보듬을 진심도 능력도 없는 자들이 사방에서 자동인형처럼 말한다. 가만히 있으라, 시키는 대로 해라, 지시를 기다려라.
가만히 기다린 봄이 얼어붙은 시신으로 올라오고있다. 욕되고 부끄럽다. 이 참담한 땅의 어른이라는 것이. 만족을 모르는 자본과 가식에 찌든 권력, 가슴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오만과 무능이 참혹하다. 미안하다. 반성 없이 미쳐가는 얼음 나라, 너희가 못 쉬는 숨을 여기서 쉰다. 너희가 못 먹는 밥을 여기서 먹는다.
환멸과 분노 사이에서 울음이 터지다가 길 잃은 울음을 그러모아 다시 생각한다. 기억하겠다. 너희가 못 피운 꽃을. 잊지 않겠다. 이 욕됨과 슬픔을. 환멸에 기울어 무능한 땅을 냉담하기엔 이 땅에서 살아남은 어른들의 죄가 너무 크다. 너희에게 갚아야 할 숙제가 너무 많다.
마지막까지 너희는 이 땅의 어른들을 향해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말한다. 차갑게 식은 봄을 안고 잿더미가 된 가슴으로 운다. 잠들지 마라, 부디 친구들과 손잡고 있어라. 살아 있어라, 산 자들이 숙제를 다할 때까지.
지옥에서 보낸 두 철
보았네
보았으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보다,의 지옥
인간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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