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나이우스에게는 이 모든 게 얼마나 가당찮게 보였을까. 생명의 질서에 담긴 진실을 캐내기 위해서 그 어떤 동물이나 식물도, 헤엄치거나 숨 쉬거나 날아다니는 그 어떤 존재도,
싹을 틔우거나 꽃을 피우는 그 어떤 존재도, 생명의 세계에 관한 그무엇도 알 필요가 없다는 것. 분자들, DNA만 알면 된다는 것. 심지어분류학마저, 생명 분류의 과학마저 생명 자체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철저히 현대적인 과학에 전념하는 단계로 넘어가는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것은 인간이 감각할 수 있는 것, 자연의 질서는 어떠하리라는 직관에 대한 전념이 아니라, 전에는 눈에 보이지않던 것을 다루는 과학이 밝혀낼 새로운 과학적 자연 질서에 대한 전념이었다. 이제 움벨트를 완전히 저버리기까지 딱 한 가지 일만 남았는데, 그 일은 이미 여러 해 동안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바로 물고기의 죽음이다. - P330

수리분류학자들은 분류학 전반을 폭풍처럼 휩쓸지는못했지만 그래도 자기들이 주장하는 객관성과 점점 더 복잡해지는통계학에 대한 집요한 숭배를 품은 채 계속 그 일을 하고 있었다. 분자생물학자들 쪽에서는 만만찮은 추진력을 얻으며 무서운 속도로 세 불려갔다. 바로 이 괴로운 시절에, 젊은 무뢰한들 가운데서도 가장 경악스러운 자들이 나타나 자기들 특유의 새로운 대혼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수리분류학이 현대 과학으로서 분류학의 유아기였다면, 그리고 분자분류학이 생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향해 비틀비틀첫걸음을 내디디며 신기함과 놀라움을 채워가던 유년기였다면, 가장최근에 등장한 이 불행은 분류학의 청소년기였을 것이다. 누구나 알듯이 청소년기는 항상 어여쁘지만은 않다. 이 시기는 분류학이 삐딱함을 장착하고 모히칸 스타일로 머리를 밀고 군데군데 피어싱도 하고는 엄마 아빠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이던 시절이었다. 이들은 분기학자라고 불리게 될 이들, 아니 그보다는 사납게 날뛰는 분기학자나 횡설수설하는 분기학자라고 불리게 될 이들, 그리고 혹시 남부캘리포니아 출신이라면 때로 ‘온탕hot-tub 분기학자‘라 불리게 될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뭐라고 불렸건, 누가 그들을 좋아했건 싫어했건, 그들은 다가오고 있었다. - P332

그런데 일단 실제 유기체들과 실제 분류 작업에 헤니히의 규칙등을 적용하기 시작하자 그 규칙들이 순한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 새로운 유형의 분류학자들은 우리가 미처 그들을 ‘날뛰는 분기학자들‘이라고 부르기도 전부터, 황당한 변화들을 요구하며 말도 안 돼 보이는 분류의 체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들은자신들의 논리를 맹렬히 내세우며 이른바 인위적 분류군이라는 것들을 폭발시켜 흔적도 남지 않게 없애버리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나방부터 무척추동물, 파충류, 물고기, 얼룩말(누가 얼룩말을 부인할 수 있•단 말인가?)까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심지어 그들은 새가 사실은 공룡이라는 헛소리까지 함부로 지껄여대면서, 자신들의 방식이계몽된 방식이며, 따라서 유일한 방식이라 주장했다. - P347

나는 물고기를 좋아한다. 그건 어쩌면 나의 어머니가 일본계여서 우리가 생선을, 어떤 날은 아침, 점심, 저녁까지, 회로, 튀김으로,
구이로 먹고, 설탕을 넣고 조려서 먹고, 훈제하거나 절여서 먹고, 국을 끓여 먹고, 덴푸라 tempura로 튀겨 먹고, 어쨌든 거의 모든 생선을,
아무 생선이나 다 먹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물고기가 원래억누를 수 없이 정이 가는 존재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는 내가 키웠던 모든 물고기를 애정 어린 (그리고 이제는 오래전에 땅밑으로 들어갔으니 슬픔도 어린) 마음으로 기억한다. 금붕어, 네온테트라, 앤젤피시도 있었고, 수줍은 클라운로치도 있었다. 아마도 내가 물고기를 좋아 - P347

하는 진짜 이유는 그것들이 그냥 너무나 견고하게 물고기로서 존재하기 때문인 것 같다. 물고기라는 개념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건 공기를 좋아하지 않거나 하늘을 좋아하지 않는 것과 비슷할것이다. 당최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래서 물고기들이 죽어가는것을 보는 일, 아니 사실 내가 여리고 젊은 대학원생 시절부터 강의실에서, 세미나실에서, 연구실에서, 과학 학회에서, 조용한 복도에서 계속 반복해서 목격했듯이 물고기들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일은 내게 각별히 고통스러웠다. 그것이 과학적으로 타당하다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그건 내게 언제나 얼마간 아픔을 안겼다. 지금 나는 그것이 바로 내 움벨트에서 느껴지는 아픔이었다는 걸 안다.
하지만 분기학자들은 그 일을 아주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한 분류군 또 한 분류군 차례로 죽여 없애느라 바빴지만, 그중에서도 물고기를 죽이는 의식을 유난히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모든 관중에게 물고기의 희생제의를 치르는 광경을 보여주는 일에서 특별한 회열을 느꼈고, 그걸 본 관중은 당연히 하나같이 놀라서 멍해지고 분노했고 화를 냈고 믿지 않으려 했다 - P348

이렇게 된 사정이었다. 물고기들의 죽음은 다윈이 분류학은 생명의 계통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천명하며 시동을 건 일의 필연적인 결과. 그가 우리에게 감지된 자연의 질서 저변에 거대한 생명의 나무가 있음을 깨달은 순간부터, 생명은 정말로 진화한다는 것을 목격한 순간부터 과학이 피할 수 없이 달려온 지점. 다윈이 방향을 알려주었고, 이제 마침내 종착역에 도달했다. 마침내 분기학자들이 순수하게 진화적 관계의 계통수에만, 그 관계에 따라 이름 붙인 바로그 가지들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물고기들은 죽었고 헤니히는 아직도 연기를 뿜고 있는 분기학이라는 권총을 손에 쥔 채 물고기들 위에(이 내성적인 파리 분류학자는 1976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영혼으로라도)서 있었다. - P355

또한 그것은 정확히 분기학자들이 이 살해 의식에서 아무 분류군이나 해체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우리의 보편적 비전에서 우리가 가장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분류군을, 더할 수 없이 실제적으로 보이는 분류군을 선택한 바로 그 이유이기도 하다. 물고기의 죽음은 시연될 때마다 특별한 순간이었는데, 이는 더없이 신경에거슬리고 더없이 착잡하며 더없이 움벨트를 모욕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그것은 분류학자들의 케케묵은 본능에 대한 충성심에서 아직 남아 있던 한 조각을 직통으로 때리는 공격이었다. 요점을한 방에 각인시키는 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생명의 세계가 어떻게 보이는지,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는 단한 톨도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더 의미 없는 것도 없다. 의미 있는 것은 오직 진정한 진화적 질서뿐이다. - P357

우리아이들이 멸종한 공룡들에 집착했다가 이내 너무 금방 잊어버릴 때, 첼탈족 아이들은 진짜 삶을 배우고 있다. 이 아이들의 부모가 "이러저러한 이파리가 하나 필요한데, 네가 가서 하나만 따다 줄래?" 하고 말하면, 아이는 곧장 야생의 벌판으로 종종거리며 들어가 필요한 그 잎을 정확히 찾아서 돌아온다. 이 사람들은 아주 쉽게 자기 주변 생명의 세계를 주인처럼 누린다. 진화론 같은 것 없이도 그 세계를 잘 볼수 있고, 살아 있는 모든 것과 여러 면으로 연결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이렇게 버티고 있는 이들의 존재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할것이다. 이들은 하루하루 자기네 야생의 땅과 언어와 문화와 지식을잃어가고 있는 부족들이다.
그런가 하면 사무직 관리자, 교사, 트럭 운전사 등 수렵과 채집외에 다른 방법으로 생계를 꾸려가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움벨트를,
대개는 그 움벨트의 아주 작은 한 부분이나마 보살피고 가꿔가는 이들도 있다. 여기에는 하이킹하는 사람, 탐조인, 정원 가꾸는 사람, 토착 식물 덕후, 나비 채집자와 관찰자, 사냥꾼, 그리고 낚시꾼 등이 있다. 이들은 존경스럽지만 여전히 너무 소수다. - P374

하지만 기억하자 움벨트는 생명의 세계에 대한 시각만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를 둘러싼 현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이해하게 해주는 맥락에 대한 시각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우리는 의식하지도 못한채, 생명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생물로서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을 상품들의 풍경에서 살아가는 소비자로 바라보는 관점으로 바꿔치기한 것이다. 무의식중에 우리는 생물들을 익숙히 알아보는 능력을브랜드에 대한 서번트 같은 전문 지식과 맞바꿨고, 생명 세계의 언어(진짜 식물과 진짜 동물의 이름들)를 토니 더 타이거와 가이코 도마뱀붙이의 어휘와 맞바꿨다. 우리가 사는 세계, 우리의 단순한 현실은 구매 가능한 것들의 세계다. 별 노력을 하지 않아도 돈을 지불하면 그것은 완전한 우리 것이 된다. 당신이 사는 지역의 숲을 거닐 때는 보이는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숲해설가가 필요할지 모르지만, 쇼핑몰안을 돌아다닐 때는 그런 도움이 전혀 필요치 않을 것이다.
놀랄 일도 아니지만, 동시에 우리는 생물들의 실제 세계를, 생물대신 인공 상품들로 가득한 세계, 그것들을 만들 공장과 판매할 상점과 채워둘 집이 있는 세계와 맞바꿨다. 우리가 분주히 쇼핑하고 이세상 인공물들의 다양성을 불려가는 동안, 이 세상 생물들의 풍부함은 줄어들고 있다. - P388

생명은 모든 곳에서 끈질기게 버티고, 존재하고, 침입하고, 발산하고, 살금살금 다니고, 튀어나온다. 그리고 움벨트는 (우리가 가격표와 상표가 붙은 물건들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마음껏 쓸 수 있으며, 생명의 세계에 대한 움벨트의 전체적이고 풍성한 시각을 한껏 흡수할수 있는 우리의 것이다. 우리가 구찌와 베르사체에서, 맥과 피씨에서, 에디 바우어와 바나나 리퍼블릭, 허머와 포드와 폭스바겐에서 벗어나 생명 있는 존재들에게 돌아가려면 약간의 재훈련은 필요할 것이다. 아기들에게 더 잘 가르칠 수 있을 만큼 우리가 먼저 충분히 배워야겠지만, 희망은 영원히 솟아나며 또 그래야 한다. 한결같이 어서 생명의 세계를 이해하고 그 세계의 굶주린 움벨트의 허기를 채워주고 싶어 하는 작은 사람이 새로 한 명씩 태어날 때마다 우리에게는또 한 번의 기회가, 생물에 대해 열렬히 배우고자 하는 또 한 명의 존재가 생겨난다. - P393

이 책을 쓰는 작업에 착수하기 전, 나는 생명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는 유일한 방법이 과학이라고 확신했다. 이치에 맞는 다른 그 어떤방법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 사실 확신 이상이었다. 그것은 그대로 명백한 진실이었다. 진화의 질서는 올바로 판독하기만 하면 정말로 소중한 지식이며, 모든 생물의 진짜 역사를 흘깃 볼 수 있게 해준다. 나는 이것을 생명의 세계를 분류하고 명명하는 최선의 방법일뿐 아니라 유일하게 맞는 방법으로 알았다. 아무리 독특하고 재미있더라도 다른 모든 분류법은 틀린 것이었다. 아무리 기이한 일 같더라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확실히 알았다.
과학은 생명 분류의 접근법에서 유일무이한 힘을 지니고 있다. 분류학자들은 체계적으로 증거를 찾고, 한 유기체의 DNA 속 문자들을 수집하며, 모든 비늘, 모든 깃털, 모든 꽃잎, 모든 이파리를 뚫어지 - P394

게 들여다본다. 그런 다음 다른 것은 다 배제하고 오직 진화의 역사만을 근거로 그 유기체들을 정리하고 분류한다. 그것은 의식적으로제한된 시각이며, 무의미한 부풀림과 공기는 거의 모조리 빼낸 엄밀하고 잘 정의된 시각이다. 진화적 분류는 과학자들이 이 세상 유기체들의 생물학을 다른 무엇으로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게해준다. 그것은 그들이 거둔 쾌거다. 하지만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던 내 생각은 틀렸다. 생명의 분류에는 과학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존재했다. 나는 근시안 때문에 하마터면 생명의 분류와 명명이, 그리고 생명의 세계 자체도 과학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속하며 언제나그래 왔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움벨트를 완전히 놓칠 뻔한 것이다. - P395

나는 분류학이 평범한 과학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과학적 생중분류와 명명의 역사도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만약옴펠트가 내가 믿는 것처럼 실제적이고 강력하다면, 만약 하나의 종으로서 우리가 지구상 생명의 질서에 대한 특정한 비전을 정말로 공유하고 있다면, 그렇다면 분류학의 역사는 어느 한 학문 분야의 개념과 기술이 지속적으로 다듬어지는 이야기로 이해하면 안 된다. 린나이우스의 최초의 뛰어난 짐작에서 출발해 점점 더 정확한 생명 분류의 체계화로 나아가는 합리적인 진보로 이해하면 안 된다. 만약 우리모두가 태고부터 진화해온 움벨트의 렌즈로 생명의 세계를 본다면, 분류학의 역사는 오히려 길고도 철저히 비과학적인 인간의 전통으로부터 실질적 과학이 등장한 이야기로 보아야 한다. - P395

이 모든 것이 과학자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한 이유는 단순히 과학자들이 그것이 옳다고 배웠기 때문은 아니다. 그것들이 지배력을 발휘하고 그토록 강력하게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은 오랫동안 모든 인류의 전통, 태고부터 이어진 인간의 움벨트가 준 선물들이기 때문이다.
움벨트의 이러한 힘은, 과학이 점점 더 엄격히 진화만을 근거로한 생명의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동안에도 우리 모두가 이 최신의 비전을 쉽고 단순하게 채택하지 못한 이유이다. 또한 그 힘은 우리가아직도(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얼룩말이나 물고기나 나방의 죽음을, 새가 공룡이라는 생각을 편안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우리가 진화적으로 타당한 새 용어들만을 항상 듣고 본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생명의 비전은 지금 우리가 그렇게 느끼듯 여전히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과학은 계속 전환하고 변화하겠지만, 움벨트와 움벨트의 비전이 지닌 근본적인 요소들은 늘 똑같이 남을 것이다. - P399

그러나 나머지 우리로 말하자면, 우리는 그렇게 엄격한 시각을진지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니 사실은 그러지 않는 편이 더 낫다. 오※ 세월 과학을 이해의 다른 모든 방법 위에 두고, 과학자들만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우리에게 말해줄 수 있다고 믿어온 결과, 우리는생명의 세계를 우리 자신의 시각으로 볼 수 없게 되고 생명의 언어를말할 수 없게 되었으며, 생명이 있는 존재들과 단절되고 그들에게서관심을 거둔 채 쇼핑몰만 헤매다니고 있다. 다들 뭔가에 너무 정신이팔려 있어서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멸종조차 알아차리지못하는 지경이 됐다. 우리에겐 우리 스스로 해야 할 일이 있다. 죽어가는 우리의 세계를 되살리고 구하기를, 그 세계와 우리의 관계를 회복하기를 바란다면, 그 세계에 대한 우리의 비전에 작은 생명을 다시불어넣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은 물고기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 P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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