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드 몽테뉴Michel de Montaigne, 
1538~1592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 최고의 교양인, 사상가, 철학자, 때로는 정치인으로 부각되기도 하는 몽테뉴 그러나 곧 덧붙여 말해야 한다. 그는 당대 인문학자들과 달리 라틴어가 아닌 속어(프랑스어)로 글을 썼고, 나아가 장바닥의 생생한 말로만 쓰고싶다고 한 교양인이요 어려운 개념도 체계도 교화적 목적도 없이 누구나 부딪히는 실존적 문제들에 대한 인간적이고 온당한 답, 주어진 삶을 풍요롭고 만족스럽게 사는 길을 찾고자 하는 보통 사람의 ˝자기 탐구˝로 사상가, 철학자가 된 최초의 사람이다. 내란으로 분열된 나라에서 중재자로, 보르도의 시장으로 일했지만, 공격 생활에 염증을 느껴 서른여덟 살에 은퇴하여‘자기만의 방‘으로 물러났고, 왕이 하사하는 은전을 거절하고, 억지로 시장직을 맡았으며, 사적 삶의 문제로도 벅찬 사람으로서, 공적인 일에 ‘손‘과 ‘어깨‘까지는 빌려줄 수 있어도 그일을 ‘간과 폐‘에 담지는 않겠다고 공언한 사람이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면서, 유대인 핍박과 신대륙에서 저지른 유럽인들의 잔인한 행위를 큰 소리로 비판한 유일한 문인이요, 농부를 비롯한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삶의 교훈을 얻은 사람, 그가 읽고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여기 20여 년 동안 써 내려간 『에세에서 그의 시대만큼 혼란스런 시대를 사는 21세기 독자에게 들려준다.


독자에게

독자여, 여기 이 책은 진솔하게 쓴 것이다. 처음부터 내 집안에만 관련된 사적인 목적 이외에 다른 어떤 목적도 없었음을 밝혀둔다. 그대를 위해서나 내 영광을 위해서 쓰겠다는 생각은 추호도없었다. 내 역량은 그런 계획을 세울 만하지 못하다. 나는 그저 내 집안 사람들과 친구들을 위해, 내가 세상을 떠난 뒤 (머지않아 그렇게 될 것이니) 내 처신이나 성격의 특징들을 여기서 찾아보며 그렇게 해서 그들이 나에 대해 알고 있는 바를 더 온전하고 생생하게 간직할 수 있게 하려 했던 것이다.
이것이 세상의 호의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면, 나는 나를 더잘 장식하고 공들여 제시했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여기서 꾸 - P35

밈없이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보통 때의 내 모습을 봐 주기 바란다.
왜냐하면 내가 그려 보이는 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공공에 대한 예의가 내게 허락했던 한에서, 내 결점이며 생긴 그대로의 내모양이 여기서 읽힐 것이다. 여전히 대자연의 원초적인 규범 아래아늑한 자유를 누리며 산다는 저쪽 나라들에서 태어났다면 장담컨대 나는 정녕 기꺼이 나를 통째로 적나라하게 그렸을 것이다.
그러니 독자여, 나 자신이 내 책의 재료이다. 그러므로 이처럼 경박하고 헛된 주제에 그대의 한가한 시간을 쓰는 것은 당치않다.

그럼 안녕, 몽테뉴로부터,
1580년 3월 1일3 - P36

이 이야기는 우리가 최근에 본 프랑스 왕공들 중 한 분의 이야기와 쌍벽을 이룰 만하다. 그분은 체류 중인 트렌토에서, 온집안의 지주요, 영광이었던 맏형‘의 사망에 연이어 두번째 희망이던 아우의 사망 소식까지 듣게 되었다. 이 두 번의 애사를 감탄스러우리만큼 의연하게 견딘 그가 며칠 뒤 자기 수하 중 하나가 죽게 되자 이 마지막 참사에는 완전히 넋을 잃고 말았다. 이전의 꿋꿋함은 간데없이 어찌나 슬퍼하고 원통해하던지, 어떤 이들은 이 마지막 충격만이 그의 급소를 찌를 수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사실인즉 이미 슬픔으로 꽉 차서 넘칠 지경이었기 때문에 별것 아닌 일 하나라도 더 얹히자 인내의 방벽이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 P46

닥쳐올 일에 대해 우리는 전혀 힘을 쓸 수 없고, 심지어지난 일에 대해서보다 더 속수무책이니, 사람들이 늘 미래의 일에만급급한 것을 나무라며, 현재의 복을 붙들어 그것에 만족하라고 가르치는 이들은 인간의 과오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자연 자체가 자기 작품이 지속되게 하는데 우리의 지혜보다행동이 더 절실하다 보니 다른 많은 그릇된 생각들처럼 그런 그릇된 생각을 주입하여 우리를 그쪽으로 이끈 것인데, 그것을 감히콰오라고 부르겠다면 말이다. 우리는 편안하게 제 집에 머무는 적이 없고 늘 저 너머로 나가 있다. 두려움, 욕망, 희망은 우리를 미래로 집어던지며, 지금 있는 것을 느끼고 생각하지 못하게 하며앞으로 올 일, 심지어 우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의 일에까지 정신을 팔게 한다. "미래를 근심하는 영혼은 불행으로 짓눌린다."(세네카)
플라톤에서 자주 언급되는 위대한 가르침은 네 일을 하고 너우리 시대를 알라는 것이다. 두 부분으로 된 이 가르침은 각각 우리의 의 - P52

무 전체를 담고 있으며 하나가 다른 하나를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자기 일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첫 번째로 알아야 할 것이 자기가누구이고, 자기에게 적합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를 아는 사람은 자신과 무관한 일을 자기 일로 삼지 않고,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가꾼다. 헛된 일이나 쓸모없는 생각과계획을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어리석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도 만족하는 일이 없는 것처럼, 지혜는 지금 있는 것에 만족하며결코 자신을 불만스럽게 여기지 않는다."(키케로)
에피쿠로스는 현자에게는 미래에 대한 예견이나 염려가 없다고 말한다.
죽은 이들과 관련된 법 중에서 왕들의 행적을 그 사후에 판별하도록 만들어 놓은 법은 내 생각에 아주 마땅해 보인다. 왕이란 법의 주인은 아닐지라도 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들이다.
정의가 그들의 머리를 누를 힘이 별로 없는 만큼 그들의 사후 명성과 그 후손들의 복락에 정의가 행사되도록 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우리는 흔히 사후 명성과 후손의 복을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여기니 말이다. 이 관습은 그것을 지키는 나라들에 특별한 이익을 가져다주며, 자신들이 못된 군주들과 엇비슷하게 기억되는 것을 불평할 선한 군주들에게는 바람직한 일이다. - P53

모든 것을 휘저어 보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무도 죽기 전에는 행복하다는 말을 들을 수 없다고 한 솔론의 말을 따져 보며, 순탄하게 살다 죽었는데 나중에 그 명성이 훼손되고 후손이 비참하다면 그 경우에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 살아 움직이는 동안 우리는 어디든 기대에 차서 마음에 드는 곳으로 옮겨다닌다. 그러나 존재 밖으로 나가면 우리는 여기 이 세상의 것과는 아무런 소통도 할 수 없다. 그러니 솔론에게는 이렇게말하는 것이 좋으리라. 인간은 이 세상에 없고서야 행복할 수 있으니 그렇다면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노라고 말이다.


자기 뿌리를 온전히 들어 내어,
삶 밖으로 자기를 내던지기는 어렵다.
저도 모르게 자기의 무언가가
이승에 존속하리라 상상하는 것이다.
죽음이 쓰러뜨린 육체에서
인간은 완전히 벗어나 해방되지 못한다.
루크레티우스 - P55

크리스푸스는 경주하는 자들은 빨리 달리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지 적수를 손으로 잡아 저지하거나 딴죽을 걸어 넘어뜨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층 더 고결하게, 저 위대한 알렉산드로스는 야음을 틈타 다레이오스를 공격하라고 설득하려는 폴리페르콘에게 말했다. "승리를 훔치는 것은 내게 합당치 않다. 승리를 수치스러워하느니 차라리 운명을 한탄하는 편이 낫다." (퀸투스 쿠르티우스)

그(메젠티우스)는 달아나는 오로데스를 등 뒤에서 공격하여, 상대가 볼 수 없는 화살로 쓰러뜨리는 것은 자기답지 않은일로 여겨, 그에게 달려가 마주 보고 일대일로 맞붙었으니,
기습이 아니라 오로지 무력으로만 이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베르길리우스 - P76

진실로 거짓말하는 것은 못된 악덕이다. 우리가 사람인 것도그렇고 우리 서로가 연결될 수 있는 것도 그렇고, 그 모든 것이 말을 통해 가능해지는 일이다. 거짓말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하고 심각한 일인지 안다면 그 죄를 화형에 처한다 해도 다른 범죄의 경우보다 정당하게 여겨야 할 정도이다. 내 보기에 사람들은 흔히 어린아이들의 죄 없는 실수를 엉뚱하게 처벌하면서 즐거워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무슨 영향이 남는 것도 중대한 결과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그저 무분별한 행동을 한 것을 두고 아이들을 괴롭힌다. 오직 거짓말하는 것, 그리고 그보다는 덜하지만 드세게 고집 피우는 것 정도가 그 씨앗이 보이자마자 더 자라기 전에 즉각 꺾어 놓아야 할 결점들이다. 이런 것들은 아이들과 함께 자라난다. 한번 이 잘못된 궤도에 올라선 혀는 다시는 그 길에서 끌어내릴 수 없을 정도이니 사뭇 경이로울 지경이다. 그런 까닭에 다른 점에서는 그토록 점잖은 사람들이 거짓말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해 그 버릇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내게 재단사 견습공이 하나 있는데나는 그가 참말을 하는 것을 들어 본 일이 없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익한 경우마저 그렇게 못하는 것이다. - P88

나는 나 자신을 잘 제어하여 다루지 못한다. 그 일엔 나 자신보다 우연히 더 많은 권리를 갖고 있다. 주변 상황, 동반자 하다못해 내 목소리의 떨림까지도 내가 나만을 위해 캐내어 사용하려할 때 얻어 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내 정신에서 이끌어 낸다.
그렇기 때문에 내 정신을 드러내는 데는 내 말이 글보다 낫다. 가치라곤 없는 것들 중에서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말이다.
또한 내가 나 자신을 찾으려 하는 곳에서는 나를 발견하지못하는 수도 있다. 내 생각을 조사하고 검토하는 일을 통해서보다는 우연히 나 자신을 알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쓰다 보면 내가 뭔가 예리한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다른 이들에게는 우둔한말이나 내게는 예리한 뭔가라는 뜻이다. 이런 말치레는 그만두자.
각자 자기 역량에 따라 판단할 일이니.) 시간이 지나면 내 글의 요지를 완전히 잊어버려 내가 말하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때로는 타인이 나보다 먼저 그것을 알아낸다.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그 구절들을 면도칼로 긁어낸다면 내 책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다른 어느 날에는 우연이 내가 말하려 했던 바를 대낮보다 환히 내게 밝혀 주리라. 그리하여 더듬고 망설이던 내 꼴에 내가 놀라게 되리라. - P95

각 나라뿐 아니라 각 도시도 나름의 특별한 예법이 있으며각 직업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어린 시절 우리 프랑스인의 예법이무엇인지 모르지 않을 만큼 세심한 교육을 받았고, 사람들과 잘어울리며 지내 올 수 있었다. 예법 강의라도 할 수 있을 정도이다.
나는 기꺼이 이 예법을 따르려 하지만 그렇다고 비굴할 정도로 거기에 얽매여 내 삶을 답답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예법에는 이러저런 귀찮은 형식이 담겨 있는데, 실수가 아니라 잘 판단해 그것을 빼놓는 경우라면 그 때문에 품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 P108

너무 예의를 차리다 결례를 범하고 너무 정중해서 남에게 폐가 되는 사람들을 나는 자주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 사이의 예법을 안다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다. 그것은 우아함이나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관계를 맺고 친숙해지는 과정으로 가는 첫걸음을 마련해 준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의 예를 보고 우리가 배우고, 또 우리에게 무슨 가르칠 만하고 전할 만한 점이 있으면 우리의 예를 돋보이게제시할 수 있는 문을 열어 준다. - P109

페라울라스는 행운과 불운, 두 가지 운수를 다 경험한 뒤, 재물이 늘었다고 먹고 마시고 자고 아내를 안는 욕망까지 커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한편으론 내게도 그랬듯이 성가신 재산 관리까지 어깨를 짓누르는 것을 느끼자, 자기의 충실한 친구로서 부를 열망하는 한 가난한 젊은이를 만족시켜 주기로 결심했다. 그는 그 젊은이에게 과할 정도로 엄청난 그의 재산과 그의 선한 주군 키루스의 관대함과 전쟁이 날마다 불려 주는 것까지 모두 선사하고, 자기를 손님이요 친구로 보살피며 정중히 부양할 임무를 맡겼다. 그들은 이후 매우 행복하게 살았고, 두 사람 모두자기 처지의 변화에 만족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기꺼이 흉내 내고 싶은 방식이다.
나는 또 나이 든 한 고위 성직자의 행운을 높이 칭송한다. 그는 그의 지갑, 그의 수입, 그의 지출을 때로는 자기가 고르 하인에 - P136

게, 때로는 다른 이에게 깨끗이 맡겨 버리고, 긴 세월을 그런 유의 일들에 대해선 마치 남의 일처럼 까맣게 모르고 지냈다. 타인의 선함에 대한 신뢰는 그 자신의 선함에 대한 가볍지 않은 증거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이 기꺼이 그것을 돕는다. 그래서 그 성직자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집안의 질서가 그의 집보다 더 한결같이 위엄 있게 유지되는 집을 보지 못했다. 근심하거나 신경 쓰지 않고 자기 가진 것으로 넉넉히 충당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의 필요를 딱 알맞게 조절한 사람, 지출이나 돈 모으기 따위에 방해받지 않고, 자기에게 더 적합하고 더 편안한 다른 일들을 마음이 원하는 바에 따라 추구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도다. - P137

그러므로 여유와 궁핍은 각자의 견해에 달렸다. 부도 영광도 건강도 그 소유자가 그것들에 부여한 만큼만 아름답고 즐거운것이다. 각자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행복하거나 불행한 것이다. 행복할 것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행복하다. 바로 그럴 때에만 믿음이 알맹이를 갖게 되고 현실이 된다.
운수는 우리에게 이롭지도 해롭지도 않다. 그것은 단지 우리에게 재료와 씨앗을 제공할 뿐이다. 운수보다 더 강력한 우리 마음이 운수를 제 맘대로 해석하고 제식으로 써먹는다. 저를 행복하게 만들지 불행하게 만들지를 정하는 유일한 원인이며 주관자로서.
외부에서 오는 것들의 맛과 색은 우리 내부에서 구성된다. 옷을 입으면 더워지는 것이 옷의 열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열 때문인 것과 같다. 옷은 우리 자신의 열을 보호해 키워 줄 뿐이다. 옷을 둘러 추운 몸을 보온하는 사람은 냉기를 보호하기 위해 - P137

서도 같은 방법을 쓸 것이다. 사실 그렇게 해서 눈이나 얼음을 간수한다.
당연히 게으름쟁이에게 학업이, 술꾼에게 금주가 고통인것처럼, 방탕한 자에게 검약은 형벌이요, 허약하고 나태한 사람에게 운동은 고문이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이다. 사물 자체가 그토록 고통스럽고 힘든 것이 아니라, 우리의 허약함과 비겁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위대하고 고매한 것을 가려 내려면 그만큼위대하고 높은 마음을 지녀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그것에 우리 자신의 악덕을 넘겨씌울 것이다. 곧은 노도 물에 잠기면휘어 보인다. 무엇을 보느냐만이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도 문제인것이다. - P138

그런데 참, 죽음을 대수롭게 여기지 말며 고통을 견디라고 제각각으로 설득하는 수많은 논설 중에 왜 우리는 우리에게 딱 들어맞는 것을 찾지 못할까? 남을 설득하는 데 쓴 그 수많은 공상들중에서 왜 각자 자기 기질에 제일 잘맞는 것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을까? 불행을 뿌리 뽑을 강력하고 효과적인 약을 소화해 내지 못한다면, 적어도 불행을 완화하는 약이라도 먹어야 한다.
‘쾌락 가운데에서나 고통 가운데에서나 우리는 경박한 편견, 우리를 나약하게 만드는 어떤 편견에 지배된다. 그것 때문에 마음이 물러져서, 이를테면 물같이 되면, 우리는 벌에 쏘이기만 해도 소리를지르지 않고는 못 배긴다....... 모든 것이 자기를 제어하는 능력에달려 있다." (키케로)
결국 고통의 쓰라림이나 인간의 허약함을 아무리 내세워 봐도, 철학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래 봤자 철학은 이런 난공불락의답변으로 방어할 테니 말이다. 필요에 시달리는 삶이 나쁘다면, 적 - P138

어도 필요에 시달리는 삶, 그것을 반드시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 
자기 탓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오래 고통받지 않는다.
죽음도 삶도 견딜 용기가 없는 사람, 저항할 의지도 도망칠에 대한 가능의지도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을 어쩌겠는가? - P139

 다른 덕성도 그렇지만 용맹에도 한계가 있다. 이 한계를 넘는 순간 우리는 어느덧 악덕의 길 위에 서 있게 된다. 이 한계를 잘알지 못하면 용맹에서 무모함, 고집불통, 어리석음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경계 지대에 가까울수록 어디가 한계인지 아는 것이 참으로 어려워진다. 군사 원칙으로 보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요새를 고집스레 방어한 자들을 극형까지 포함해 중형에 처하는우리의 전시 중 관습은, 이 같은 점을 고려한 끝에 생겨난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처벌은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 닭장 하나를 사수하려고 온 군대가 매달려 있는 일도 없으리란 법이 없다.  - P140

남과의 대화를 통해(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학교중 하나이다.) 항상 무엇이든 배워 보려고, 나는 여행 중에 만난이야기 상대를 그들이 제일 잘 아는 것에 관한 화제로 이끄는 방법을 고수한다.


뱃사공은 바람에 대해서만 말하게 하고
농부는 황소에 대해, 병사는 자신의 상처에 대해,
양치기는 양 떼에 대해서만 말하게 하라.
프로페르티우스


사람들은 흔히 이와는 반대로, 자기 직업보다는 남의 직업에대해 이야기하려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가 새로운 명성을 얻는다고 여긴다. 스파르타 왕 아르키다무스가 페리안데르를 두고, 형편없는 시인이라는 평판을 얻으려고 훌륭한 의사의 영광을 버렸다고 비난한 것이 그 증거이다. - P145

하느님은 당신이 좋은 대로 세상사를 조절하셨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내가 혐오해 마지않았던, 가장 타기할 만하고 수치스러운 인물들 중 세 사람은 모든 상황에서 완벽하리만큼 조절되고 절제된 죽음을 맞이했다.
당당하고 행복한 죽음이 있다. 눈부실 만큼 승승장구하던 자가 그 출세의 한복판에 있을 때 죽음이 돌연 그 실을 끊어 멋진 최후를 마련해 주는 것을 보았다. 내 보기에 그가 세운 열정적이고야심 찬 계획들 중 그 무엇도 이 돌연한 중단만큼 고고한 것은 없는 듯 여겨졌다. 그는 맘먹었던 곳에 가지 않고도 도달한 셈이다.
그가 바라고 원했던 것 이상으로 위대하고 영광스럽게 말이다. 그리고 힘껏 달려서 얻으려던 권위와 명성을, 말에서 떨어짐으로써당겨 얻은 것이다.
다른 사람의 삶을 판단할 때 나는 항상 그 마지막이 어땠는지를 고려한다. 그리고 나 자신의 삶에 대한 주요한 관심 중 하나는그 마지막이 잘 이루어지는 것, 즉 고요하고 담담하게 죽음을 맞는 것이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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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7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6-08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테뉴씨가 자꾸 째려보는 듯 해서 시작했는데...^^
쓸데없는 기우였는지, 번역탓인지.. 좀 술술~ 하든데요^^ 게으름에 관한 한 유구무언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