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수리


아내는 또다시 집수리를 시작했다 같이 사는 동안 몇 번있었다 집을 아주 바꾸지는 않았다 제 살 집을 바꾸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를 바꾸고 싶은 모양이었다 불륜과는 다르다

삶은 감자 세 알


사무실 건물 환경원 아줌마가 옥상에 감자를 심어 길렀다고 오늘캤다고 뜨끈뜨끈한 주먹만 한 감자 세 알씩을 사무실마다 돌리며 귀한 거니 잡수어보시라고 했다 세 알을맛있게 다 먹었다 먹는 일이 제일로 귀하다는 걸 몸으로 알았다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가지 않아도 되었다 귀하다는말! 진종일 내가 귀했다

개구리 우는 밤


논농사 두어 마지기 밤새 물꼬 터두고 새벽에 나가보면그들먹한 논물, 그들먹한 논물로 밤새 울고 울던 개구리들도 예법을 챙긴다 가까이 다가가면 가만히 침묵으로 읍한다 拱手로 절한다 그 침묵의 물 떠다가 혼자 놔두면 다시밤새 울을까 그들먹한 논물, 비친 낮달, 슬픈 눈썹 새로 그리고 있다 택배로 부쳐드리니 놔두고 보시게나

감실 부처님


나를 獨對해주셨다 경주 남산 감실 부처님, 늦은 나의 귀가에도 저녁밥 새로 상 보아 고봉밥으로 허기를 채워주시던 어머니를 상봉했다 손톱 닳아 반달이셨다 늘 들에 나갈 때마다 눌러쓰시던 머릿수건이 좀 낡아 보였다 어머니 가신지 서른세 해 되던 날 겨우 새 타월 하나로 갈아드렸다

슬픈 공복


거기 늘 있던 강물들이 비로소 흐르는 게 보인다 흐르니까 아득하다 춥다 오한이 든다

나보다 앞서 주섬주섬 길 떠날 채비를 하는 슬픈 내역마살이 오슬오슬 소름으로 돋는다

찬바람에 서걱이는 옥수숫대들, 휑하니 뚫린 밭고랑이보이고 호미 한 자루 고꾸라져 있다

누가 던져두고 떠나버린 낚싯대 하나 홀로 잠겨 있는 방죽으로 간다 허리 꺾인 갈대들 물속 맨발이 시리다

11월이 오고 있는 겨울 초입엔 배고픈 채로 나를 한참 견디는 슬픈 공복의 저녁이 오래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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