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 가운데 「어둠의 왼손 보다 장르의 관습을 강하게 뒤엎은 작품은 없었다. 르 귄은 네 번째 작품인 이 소설에서 고정된 성이없는 세상을 상상했다. 인물들의 성 역할은 상황에 따라 결정되며, 매달 한 번만 성이 발현된다. 책은 행성을 탐사하는 민족지학자의 수첩에 적힌 1차 자료들의 모자이크 형식인데, 사무적인 일지에서부터 외계인 신화의 단편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이 다양하다. 제이디 스미스‘와 앨지스 버드리스를 포함한 여러 작가들이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어둠의 왼손을 꼽았고, 해럴드 블룸은 이 작품을 서구의 정전』The Western Canon 에 수록했다. 그 뒤 수십 년 동안 르 귄은 판타지 시리즈를 쓰며 자신의 영역과 독자층을 계속 넓혀왔다. 수십 권의 책들 중일부만 이야기하자면 무정부주의자들의 유토피아적 우화인 빼앗긴자들과 그녀의 작품으로 가장 유명한 판타지 시리즈인 『어스시가있다. 르 귄의 생산성은 놀랍다. 2008년에 나온 『라비니아」는 스물세번째 장편소설이다. - P138

과학소설‘ science fiction 이라는 용어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슐러 K 르 귄 
음, 무척 복잡한 이야기인데요.



그 용어가 편하신가요, 아니면 터무니없게 느껴지시나요?


르 귄
 ‘과학소설‘이 훌륭한 명칭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다른 종류의 글과 다르니 고유한 명칭을 가질 만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제가 과학소설가로만 불린다면, 까칠해지고 전투적이 될 수도 있어요. 전 소설가이자 시인이니까요. 몸에 맞지도 않는 작디작은 통에밀어 넣지 마세요. 저는 사방에 있으니까요. 제 촉수들이 비둘기집구멍을 통해 여기저기로 나오고 있답니다. - P141

당신의 작품들보다 ‘과학소설‘이라는 용어가 더 잘 어울리는 작품을 쓴 작가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아서 C. 클라크‘의 소설은 구체적인 과학 개념과 연결되죠. 그에 반해 당신의 소설에서는 철학이나 종교, 사회과학보다 자연과학의 비중이 작지요.


르 귄
하드SF 소설가들은 물리학과 천문학, 화학을 뺀 나머지를 무시해요. 그들에게 생물학, 사회학, 인류학은 물러터진 것들이죠. 그들은 인간이 무엇을 하는지에 전혀 관심이 없지만 전 사회과학에 무척이나 끌려요. 사회과학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는데, 특히 인류학이 그렇답니다. 나름의 사회를 갖춘 다른 행성, 다른 세계를 만들어낼 때 제가 만드는 사회의 복잡성을 통해 뭔가를 시사하기 위해 노력해요. 단순한 제국을 언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말이에요. - P142

그래서 당신의 소설이 문단에서 찬사를 받는 걸까요? 인간의 복잡성과 심리에
치중하니까요.


르 귄
과학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제 글을 통해 과학소설에 좀더 쉽게 다가오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장르로 인한 편견이 최근까지도 무척 심했어요. 작가 활동을 한 대부분 동안 과학소설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는 건 비평적으로 말해ㅈ죽음의 키스예요. 화성인이나 촉수에 대한 귀여운 제목이 붙은 작은상자 속에 들어가 비평을 받았다는 뜻이죠. - P142

수없이 받은 질문인데, 정말 대답하기 어려워요. 분명 아버지의 관심사와 기질에는 기품이 있었어요. 아버지는 모든 것에 관심을 보였죠. 그런 지성인과 사는 건 교육과 같았죠. 아버지의 학문 영역이 인간을 다루는 분야였으니, 작가에게는 정말 행운이었지요.
우린 매년 여름을 나파 계곡의 목장에서 보냈어요. 황폐하지만 무척 편안한 곳이었고, 부모님을 찾아온 손님들이 아주 많았어요.
아버지는 동료 학자들이나 외국에서 온 손님들을 대접하시곤 했어요. 1930년대 후반이었고, 전 세계에서 피난민들이 들어오고 있었어요. 손님들 중에 인디언이 두 명 있었어요. 아버지와 함께 일했는데, 그들의 언어와 관습을 배우며 친구처럼 지냈죠. 그중 한 명인 후안 돌로레스는 파파고족이에요. 우리 가족의 진짜 친구였죠. 그는 2주나 한 달 동안 머물곤 했어요. 말하자면 원주민 삼촌이 있었던 거예요. 다른 문화에서 온 그들은 제게 어마어마한 선물이었어요. - P143

그 선물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르 귄
 ‘타인‘을 경험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체험을 못 하거나 기회가 생겨도 붙잡지 않아요. 지금 산업국가에 사는 모든 이들은 텔레비전 같은 도구를 통해 타인을 보기는 하지만, 함께 사는 것과는 다르죠.



"산토끼처럼 비종교적으로 키워졌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잖아요. 그런데도 - P143

상당히 많은 글에 종교에 대한 관심이 스며 있어요.


르 귄 
도교와 불교에 관심이 많고, 그 둘로부터 많은 걸 얻었어요. 도교는 제 생각의 체계를 구성하는 일부분이 되었죠. 그리고 불교는 몹시 흥미로워요. 종교가 다루려고 애쓰는 중요한 문제들에 관심이 많답니다.



도교와 불교로부터 무엇을 얻었는지 말씀해주시겠어요?


르 귄 
도교는, 제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찾아다니던 젊은 시절에 삶을 바라보고 이끄는 방법을 이해하게 해주었어요. 노자는 언제나 제가 원하는 것, 배워야 할 것을 알려줬죠. 지금도 마찬가지고요.「도덕경』의 제 번역본, 제 해석, 뭐라 부르든 그건 그 길고도 행복한 유대관계의 부산물이지요. 불교에 대한 제 지식은 도교보다 훨씬 빈약해요. 나중에 접했지만 명상하는 법을 알려줬고, 도덕적 나침반의방향을 제시해주기 때문에 필수적이지요. - P144

저는 반전문학을 읽기 시작했고, 핵무기 폐지 운동에도 참여하게 되없어요 오랫동안 신통찮은 반전활동가로 살아왔지만, 제가 운동을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몰랐다는 걸 깨달았죠. 간디가 쓴 책조차 읽은 적이 없었죠. 그래서 관련된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스스로 교육과정을 거쳤고, 그 과정은 저를 공상적 이상주의로 이끌었어요. 크로포트킨‘의 책은 평화주의적 무정부주의로 이끌었죠. 그러다 어느순간 무정부주의 유토피아를 글로 쓴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들었어요. 사회주의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를 그린 책은 있었지만.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그 뒤로 구할 수 있는 모든 무정부주의 문학을 읽었지요. 포틀랜드의 작은 서점들을 제대로 찾아가면 꽤 많이 구할 수 있답니다. - P149

이런 변화를 가장 선명하게 반영한 작품은 무엇인가요?


르 귄 
돌파과정은 무의식적이었어요. 1978년에 출간된 얇은 책인데, 「헤론의 눈」이에요. 다른 행성에 있는 두 식민지 이야기죠. 한곳은 간디 같은 평화주의자들이 살고, 다른 곳은 대부분 남아메리카에서 보내진 범죄자들이 사는 식민지예요. 두 곳은 나란히 있어요. 주인공은 평화주의자 사회 출신으로, 착한 젊은이죠. 한편 한 아가씨가 있는데, 범죄자 사회 우두머리의 딸이에요. 책의 중반쯤 착한 젊은이가 자신을 총으로 쏘겠다고 고집해요. 제가 말했죠. "이봐, 그럴순 없어! 당신은 내 주인공이야!" 그러자 제 무의식이 이야기의 무게가 남자가 아닌 여자의 의식에 있다는 걸 깨달으라고 압박했죠.



「어둠의 왼손」의 배경을 성gender 이 유동적인 세상으로 설정한 계기가 뭔가요? - P156

르 귄
페미니즘에 대한 무지한 접근 때문이었어요. 성 자체가 문제가 되고 있다는 걸 깨닫는 정도에 그치던 시절이라 성이 사회적 구주의 문제라는 걸 표현할 언어가 없었는데 지금은 정말 간단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죠 그런데 성이 뭔가요? 반드시 남성이어야 하고, 여성이어야 하나요? 성은 과학소설이 다시 돌아보고, 질문하는 흥미로운 주제들을 탐색하며 들어가는 무대에 내던져졌어요. ‘이런아무도 하지 않은 일이잖아.‘ 저보다 조금 앞서 시어도어 스터전이비너스 플러스 엑스』를 썼다는 걸 몰랐던 거죠. 그 책은 살펴볼 가치가 충분한 희귀한 작품이죠. 성을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사회적구성물로 여기는 초기의 남성적 접근방식이에요. 스터전은 재능 있고 인정 많은 작가였어요. 문체상으로는 훌륭한 작가가 아니었지만뛰어난 이야기꾼이자 매우 선량한 사람이었죠. 하지만 저는 그와 다른 방향으로 갔어요. 저 스스로에게 ‘남성이나 여성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리고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라고 묻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 P157

버지니아 울프의 팬이시니 「올랜도」가 「어둠의 왼손에 어떤 의미인지 여쭤보고싶어요.


르 귄 
대학 신입생일 때 「올랜도』를 읽었어요. 마구 빠져들었죠. 엘리자베스 시대의 언어와 풍경을 숭배했어요. 그게 제가 처음 울프와 사랑에 빠진 때였죠. 물론 울프가 그 작품에서 한 작업, 즉 성 전환의 기이함과 탁월함을 알게 되었고요. 대문호들이 그러듯이, 울프가 그 소재를 써도 좋다고 제게 허락해준 거라고 해도 될 거예요.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전체가 독특하긴 해요.


르 귄
울프가 쓴 모든 책은 독특하지요. 『플러시」Flush• 읽어보셨나요?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이 기르던 개의 관점에서 쓴 이야기예요. 무척 짧고, 경쾌하고, 잊지 못할 이야기랍니다. - P158

제글의 전반적인 목소리에 관해서는 뭐랄까, 나이가 들면 언어가 신발이나 주방 기구 같아져요. 더는 화려한 물건이 필요하지 않죠. 쉽게말하는 법을 터득한 거예요. 초기에 쓴 몇몇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이 모든 게 필요 없었는데... 그렇게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었어.
이 부분을 전부 들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죠.
이야기에 앞으로 꾸준히 나아가는 리듬이 있기를 원해요. 그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행위의 핵심이죠. 우린 여행 중이에요.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는 중이죠. 계속 움직여야 해요. 리듬이 매우 복잡하고 미묘하더라도,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바로 그거잖아요. 이 모든 말이 조금 불가사의하게 들릴 것 같네요.



음악처럼 들리기도 해요.


르 귄 
나이 드는 과정, 그 준비를 좀 더 잘할 수도 있죠. 하지만 어떤걸 여러 번 반복하는 것만으로, 그걸 하면서 나이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분명 뭔가를 배우게 돼요. 그 깨달음 중에 하나는 많은 게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이죠. 미니멀리즘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그건 - P169

제가 할 수도 없고 쓰고 싶지도 않은, 자의식이 고도로 강한 매너리즘 양식이죠 묘사를 많이 하고, 미사여구를 구사하고, 감성을 건드릴 마음이 충분히 있지만 전 간단하게 하는 게 좋아요. 그게 효과가 더 좋고요. 이 부분에서 제 모델은 베토벤이에요. 그의 음악, 특히 후기의 사중주곡을 보면 무척 기묘하게 움직이면서 때로는 이곳에서저곳으로 느닷없이 전환해요. 그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있고, 거기에 이르는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저는 이따금 나이 많은 화가들을 생각하는데, 그들이 쓰는 방법은 무척 단순해요. 쉽고 담백하죠. 그들은 시간이 없다는 걸 알거든요. 나이가 들어가면 그 점을 깨닫게 돼요. 시간을 낭비할 수가 없죠. - P170

존 레이Join Wray 
2007년 문학잡지 「그랜타」 선정 ‘미국 최고의 젊은 소설가‘ 중 한 명이다. 데뷔작
‘짐의 오른손은 ‘뉴욕 타임스」 ‘주목할 만한 책‘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올해 최고의 책‘에 선정되었으며, 그해 화이팅 작가상을 그에게 안겨주었다. 두 번째 작품 ‘가나안의 혀」 또한 「워싱턴 포스트 ‘올해의 책‘에 선정되며 언론의 찬사를 받았다. 한국에는 ‘로우보이」가 출간되어 있다.

줄리언 반스 영국, 1946.1.19~
유럽의 주요 문학상과 훈장을 휩쓴 영국 대표 작가로, 2011년「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 상을 수상하며 그 명성이 헛돈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 역사와 진실, 사랑이라는 보편적인주제를 독특한 시각으로 재구성하여 흥미로운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1946년 영국 레스터에서 태어났다. 부모 모두 프랑스어 교사였는데, 이 점이 프랑스 문학에 꾸준하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으나개업하지는 않고,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편집부원으로 일하기도 하고, 여러 매체에 평론을 발표하면서 문학 수업을 착실히 했다.
1980년 첫 소설 「메트로랜드』로 서머싯 몸 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했다. 「플로베르의 앵무새로 부커상 후보에 오르면서 주목받았고, 이 소설로 프랑스의메디치 상과 페미나 상, 미국의 E. M. 포스터 상, 독일의구텐베르크 상을 받았다. 프랑스 정부로부터 슈발리에문예 훈장을 비롯해 세 차례 훈장을 받은 이력을 가지고 있다. 문학적 동지이자 에이전트인 아내를 2008년 뇌종양으로 잃은 뒤 2014년 발표한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아내를 추억하며 쓴 회고록이자 가슴아픈 러브 스토리를 담은 소설이다. 이 외에 「나를 만나기전 그녀는」, 「태양을 바라보며」, 「10+장으로 쓴 세계역사』 「내 말 좀 들어봐」, 「고슴도치」, 「아서와 조지』,
「잉글랜드, 잉글랜드」 등이 있다.

사르트르는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썼어요. 당신에게 문학은 무엇인가요?


반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많습니다. 가장 짧은 대답은, 진실을 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에요. 단순히 사실을 합쳤을 때보다더 많은 진실을 말해주는,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정돈된 거짓말을 만 - P178

드는 과정인 셈이지요. 문학에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문학작품을 통해 기쁨을 느끼는 동시에 언어를 가지고 놀 수 있지요. 또결코 만나지 않을 사람들과 기묘할 만큼 친밀하게 소통하는 방식이기도 해요. 그리고 작가가 되면 역사적 공동체 의식이 생기는데, 21세기 초의 영국에 사는 평범한 사회적 존재로서의 저는 공동체 의식이 다소 약해요. 예를 들어 빅토리아 여왕 때나 남북전쟁이나 장미전쟁에 참전한 이들에게 특별한 유대감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대나 사건이 일어난 때에 살았던 작가들이나 화가들에게는 특별한 연대감을 느낍니다. - P179

"진실을 말한다."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요?


반스 
위대한 책은, 이전에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세상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사 능력이나 성격 묘사, 문체 같은 특징을 제외하고 하는 말입니다. 그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사회에대해서나 정서적인 면에서, 아니면 둘 다에 대해 새로운 진실을 말해준다고 인식되는 책이지요. 전에는 손에 넣을 수 없었던 진실, 즉공식적인 기록이나 정부 문서, 신문이나 텔레비전에는 절대 나오지않은 진실 말입니다. 예를 들어 『보바리 부인』을 비난하며 그 책을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이전에는 문학에서 만나본적 없는 종류의 사회와, 그런 종류의 여성의 초상에 깃든 진실을 알아보았어요. 그게 소설이 위험한 이유입니다. 문학에는 이런 중추적이고 획기적인 정직함이 있고, 그게 문학이 가진 위대함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분명 사회에 따라 다양해요. 억압적인 사회에서는 진실을 말하는 문학의 본질이 다른 체계를 갖추게 되고, 때로는 예술작 - P179

품의 다른 요소들보다 훨씬 높이 평가됩니다.



문학은 수많은 형태를 취할 수 있고 시, 소설, 수필, 평론 모두 진실을 말하려애쓰지요. 소설을 쓰기 전에도 이미 뛰어난 평론가이자 기자셨잖아요. 왜 소설을 택하셨나요?


반스 
솔직히 소설을 쓸 때보다 기사를 쓸 때 진실을 더 적게 말한것 같아요. 두 매체 모두에 종사하고 있고 둘 다 즐거운 작업이지만, 기사를 쓸 때는 세상을 단순화해서 한 번 읽으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임무지요. 반면 소설가의 임무는 세상의 복잡한 문제들을 최대한 담아낸 기사로 읽으면서 바로 이해될 만큼 단순하지만은 않은 일들을 말하고, 한 번 더 읽으면 진실의 깊은 단계가 드러나는 글을 쓰는 것이죠. - P180

형식에 열중한다는 점 때문에, 일부 평론가들은 형식을 활용해 자신만의 산문적 자유를 창조한 나보코프와 칼비노 같은 작가들과 당신을 비교해요. 그들의 영향도 받으셨나요?


반스 
나보코프의 작품 대부분과 칼비노의 작품 일부를 읽었지만 정의를 내리기 어려워요. 하지만 두 가지는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작가들은 대부분 다른 작가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어요. 현재 전념하고 있는 소설을 계속 써나가기 위해서는, 그 글이 이전에 자신이 썼던 모든 글과 관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역사상 그 누가 썼던 그 어떤 글과도 관련이 없는 척해야 해요. 그건 기괴한 망상이고 터무니없는 자만이기는 하지만, 필요조건이기도 해요. 둘째, 작가들은 영향을 받은 작가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그들이 읽은 도서 목록을 대는 경향이 있고, 독자나 평론가가 그 작가에게 영향을 - P196

미쳤다고 보는 사람이 누구든 마구 뒤섞어버려요. 하지만 읽은 적이 없는 책이나 그냥 듣기만 한 개념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심지어 존경하지 않는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받을 수 있지요. 그 작가들이 충분히 대담한 시도를 하고 있다면 말이에요. 예를 들어 제가 다른 소설들을 읽고 ‘이건 제대로 안 먹혀‘라거나 ‘이건 좀 지루해.‘라고 생각했지만 그 작품들의 공격성이나 대담한 형식은 그런 것이 오히려 독자에게 잘먹힐 수 있다고 암시하는지도 모르죠. - P197

수사 커피Shusha Guppy 
1935년 이란에서 태어났다. 2008년 세상을 뜨기 전까지 런던에 거주하면서「파리 리뷰를 비롯해 미국과 영국의 잡지에 수많은 글을 기고했다. 「눈가리개 말」, 「웃음의 비밀」 등을펴냈고, 가수로도 활동했다. - P210

잭 케루악 미국, 1922. 3. 12,∼1969.10.21.

여행하면서 겪은 술, 섹스, 마약, 자동차 질주, 음악에 대한 도취를 맥락 없이 묘사한 「길 위에서」를 발표해, 무명작가에서 비트 세대를 주도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즉흥적인 문체, 거침없는 재즈와 맘보의 리듬, 끓어오르는에너지와 호기심으로 가득한 「길 위에서는, 이후 미국 문학과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2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프랑스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컬럼비아 대학에 입학했지만 학업을 중단하고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한다. 이후 선원을 비롯해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뉴욕에서 작가 윌리엄 버로스널 캐서디 앨런 긴즈버그를 만나게 되고, 함께 미국서부와 멕시코를 여행한다.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길 위에서』가 1957년 출간되자 당시 젊은이들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비트 세대는 사회의 획일성에 싫증을 느끼며, 기성 사회의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를 거부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진정한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보헤미안들이었다. 길 위에서」에 매혹된 젊은이들은 전국을 방랑하면서 1960년대 히피 운동을 탄생시키는 도화선을만들었다. 이 책은 지금도 미국 대학도서관에서 가장많이 대출되는 책 가운데 하나이자 반납이 가장 안 되는 책이라고 한다. 달마 부랑자』, 「외로운 여행자」, 『빅서』 등의 작품을 발표했고, 1969년 사망했다.

재즈와 비밥의 영향을 받으셨죠? 사로얀, 헤밍웨이, 울프 대신에 말이에요.


케루악 
그래, 재즈와 비밥! 테너 색소폰 연주자는 숨을 들이마셨다가 숨이 다할 때까지 한 소절을 부는데, 그렇게 하면 그의 문장,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나타나잖아. 숨이 정신을 분리하듯이 그게 내가문장을 분리하는 방법이야. 나는 산문과 시에 적용할 기준으로 숨의 이론을 만들었어. 찰스 올슨이 뭐라고 하든지 상관 않고, 버로스와 긴즈버그의 부탁으로 1953년에 그 이론을 만들어냈다네. 그러자 짜릿함과 자유와 유머러스한 재즈가 생겨났지. 그 지루한 분석과
"제임스는 방으로 들어가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는 제인이 이것을 너무 모호한 몸짓으로 여겼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와 같은 문장 대신에 말이야. 자네도 알 거야. 윌리엄 사로얀에 관해서는 십 대시절, 그는 나를 사로잡았어. 내가 공부하려 애쓰던 19세기의 상투적인 관습에서 나를 건져줬지. 익살맞은 어조는 물론이고 그 말끔한아르메니아 시학으로 말이야. 헤밍웨이는 매혹적이었지. 백지 위에진주 같은 단어들을 펼쳐 정확한 그림을 보여줬거든. 하지만 울프는 미국의 천국과 지옥에서 솟구친 격류였고, 주제 그 자체인 미국을 향해 내 눈을 열어주었어. - P242

비트 무리 사이에는 공동체 의식이 있었나요?


케루악 
공동체 감각은 주로 내가 언급했던 인물들에 의해 고취되었지. 퍼링게티, 긴즈버그 등등. 그들은 사회주의적인 사고가 강했고 열광적인 특정 키부츠 속에서 연대감을 가지고 살기를 바랐어. 나는혼자 있기를 더 좋아했다네. 스나이더는 웨일런과 다르고, 웨일런은 매클루어와 다르고, 나도 매클루어와 다르고, 매클루어는 퍼링게티와 다르고, 긴즈버그는 퍼링게티와 다르지만 어쨌거나 우린 모두 와인을 마시며 재미있게 보냈지. 우린 수천 명의 시인들과 화가들, 재즈 음악가들을 알고 있었어. 자네가 말하는 ‘비트 무리‘ 같은 건 없다네.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의 ‘잃어버린 무리‘라고 하면 어떤가? 자연스럽게 들리나? 아니면 괴테와 그의 ‘빌헬름 마이스터‘ 무리‘는?
그 주제는 정말 지루해. 그 유리컵 이리 주게. - P264

테드 베리건 Ted Berrigan 
툴사 대학교를 졸업했고, 시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잡지사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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