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을 사로잡는 보기 드문 사람들도 있다. 한 노인이 감상에 지쳐서 보행기에 몸을 엎드리면 그의 아내는 고개를 숙여 그의 귀에 속삭인다. 몇 분 동안 그녀는 그가 체력이 모자라 놓치게될 중세의 유물들을 자세히 묘사해준다. 설명이 끝나면 그녀는그를 일으켜 세우고 그들은 다시 조금씩 나아간다.
아메리카 전시관의 분수대 앞에서 한 어머니가 아이에게 동전 두 닢을 건네며 말한다. "하나는 네 소원을 위해서, 다른 하나는 네 소원만큼 간절한 다른 누군가의 소원을 위해서." 이런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나는 듣자마자 언젠가 내 아이들에게 똑같이 말해주리라 결심한다.
머리가 하얗게 센 두 나이 든 숙녀가 똑같은 차림을 하고 있어서 자세히 보니 일란성 쌍둥이다. 더욱 자세히 살펴보면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 한 사람은 나비넥타이를 착용하고 다른 사람은 착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사람들을 몇 분간 바라보고 있다 보면 묘한 일이 일어날때도 있다. 갑자기 방향을 튼 그 관람객이 이쪽으로 걸어와 나에게 질문을 건네는 것이다. - P143

사진에서 눈을 돌려 전시실을 둘러보니 문득 웃음이 터질 것같다. 전 세계에서 모인 수십 명의 살아 숨 쉬는 사람이 한 공간에 있는데 하나같이 벽에 걸린 무색의 움직임 없는 인물 사진들을 보느라 옆 사람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현실의 사람들은 흔해 빠진 대상들로 간주되는 듯하다. 정말이지 아무 때나 볼수 있는 대상 아닌가. 우리의 삶을 순식간에 지나쳐 영원히 사라져버릴 낯선 이들에게 왜 구태여 관심을 쏟겠는가. 여기 있는 예술 작품으로서의 조지아 오키프는 우리에게는 없는 미덕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녀는 멈춰 있다. 그녀는 영구적이다. 그 주변으로는 그녀의 성스러운 아름다움과(옛말에서 성스럽다Sacred는 단 - P151

어의 의미는 ‘분리되어 있는‘이었다) 지루하고 평범한 세속의 영역을 분리하는 액자가 둘러져 있다. 때때로 우리에게는 멈춰 서서무언가를 흠모할 명분이 필요하다. 예술 작품은 바로 그것을 허락한다.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한 관람객이 미동도 하지 않는 조지아의 얼굴 사진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카메라를 갖다 대고 있다.
목격하는 순간에는 이것이 초현실적인 일처럼 느껴지지만, 왜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카메라 뒤의 남자는 그가현실을 더 꽉 움켜쥐고 있는 기분이 들 것이다. 손 틈새로 금세빠져나가버릴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우리는 소유, 이를테면 주머니에 넣어갈 수 있는 무언가를 원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주머니에 들어가지 않고,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것 중에서 아주 작은 부분만 소유할 수 있다면? - P152

이런 생각에 이르자 갑자기 전시실 안의 낯선 사람들이 엄청나게 아름다워 보인다. 선한 얼굴, 매끄러운 걸음걸이, 감정의높낮이, 생생한 표정들. 그들은 어머니의 과거를 닮은 딸이고, 아들의 미래를 닮은 아버지다. 그들은 어리고, 늙고, 청춘이고, 시들어가고, 모든 면에서 실존한다. 나는 눈을 관찰 도구로 삼기위해 부릅뜬다. 눈이 연필이고 마음은 공책이다. 이런 일에 그다지 능숙하지 않다는 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사람들이 입고 돌아다니는 옷과, 남자친구나 여자친구와 손을 잡거나 혹은 잡지 않는 몸짓에서, 머리를 다듬고, 면도를 하고, 내 눈 - P152

을 마주하거나 피하고, 얼굴과 자세에서 기쁨이나 조급함, 지루함이나 산만함을 보이는 방식들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그리고내가 보는 대부분의 것에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확실한 의미를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저 이 장면에 깃든 눈부심과 반짝임을 바라보며 기쁨을 만끽한다.
하루가 끝난 후 86번가에서 지하철을 탄 나는 우물처럼 샘솟는 연민의 마음으로 동승자들을 둘러본다. 평범한 날이면 낯선사람들을 힐끗 보며 그들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사실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들이 나만큼이나 실존적이고 승리하고 또 고통받았으며 나처럼 힘들고 풍요롭고 짧은 삶에 몰두해 있다는 사실을 입원해 있는 톰을 방문한 후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던때를 기억한다. 누구라도 심술을 부리거나, 실수로 부딪힌 다른승객에게 쏘아붙이면 그게 그렇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편협하고 무지해 보였다. 우리 모두 그럴 때가 있는데도 말이다. 오늘밤은 운이 좋다. 낯선 사람들의 피곤하거나 어떤 생각에 빠져 있는 얼굴들을 애정을 갖고 바라볼 수 있다.
반 시간이 지나고 유니언 스퀘어에서 환승한 후, 내가 탄 전철은 맨해튼 다리를 건너 브루클린으로 빨려 들어간다. 지금 내가 향하고 있는 사람을 떠올리며, 더 큰 사랑을 느낀다. - P153

"물론이죠! 우리 엄마는 아빠가 일을 안 하는 백수라고 불평했어요 아이 열둘을 키우면서 하나하나 모두 자기가 외동이라는 느낌을 받도록 애지중지했는데도 엄마는 아빠가 게으르다고생각했다니까요! 하지만 엄마도 대단했어요. 진짜 존경받는 선생님이었거든요. 틈날 때마다 엄마를 뵈러 고향에 가요." 나자도 근무가 끝난 후 페르시아어를 가르치는 교사로 일한다. 나와이 대화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경비대장으로 승진했다.
소위 비숙련직의 큰 장점은 엄청나게 다양한 기술과 배경을지닌 사람들이 같은 일을 한다는 점이다. 화이트칼라 직종은 비슷한 교육을 받고 관심도 비슷한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때문에대부분의 동료들이 어느 정도 비슷한 재능과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다. 경비원의 세계에는 이런 문제가 없다. 메트가 새로운경비를 고용할 때면 기본적으로 와서 면접보세요‘라는 내용의짧고도 명료한 광고를 낸다(예전에는 《뉴욕타임스》, 요즘은 온라인에), 경비 담당부서에서 찾는 사람은 이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건강한 사람이고 그들은 이 일에 적합한 다양하고도 방대 - P183

한 인력풀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 결과 외국 출생인 사람이 거의 절반에 달하는 경비팀은 인구학적으로만 다양한 것이 아니라 모든 축에서 각양각색이다.
미술관 경비가 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출발하는 특별한부류는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수없이 많은 형태의 사람들이 이직업을 택하며 각자 서로 다른 동력을 가지고 일에 임한다. 《뉴요커>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일을 시작한 동료들은 엘리트 사립학교 출신이었고 대부분이 출판계에서 다른 일을 하다가 온 사람들이었다. 메트의 경비팀에서는 벵골만에서 구축함을 지휘했던 사람, 택시를 몰던 사람, 민간 항공사 파일럿으로 일한 사람, - P184

목조 가옥을 짓던 사람, 농사를 짓던 사람, 유치원에서 아이들을가르치던 사람, 순찰을 돌던 경찰, 그런 경찰들의 활동을 신문에보도하던 기자, 백화점 마네킹의 얼굴을 그리던 사람들을 만날수 있다. 전 세계 오대양 육대주와 뉴욕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다.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다. 열의가 넘치는 사람도 있고 매사에 뾰로통한 사람도 있다.
경비 전문가들도 있고 어쩌다 보니 이 일을 하게 된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포인트에 서서 그들 중 어느 누구와 이야기를 나눠도 혼란스럽지 않다. 같은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화의 물꼬는 이미 튼 셈이다. - P184

동료 경비원들이나 관람객들과 나눈 짧은 소통에서 찾기 시작한 의미들은 나를 놀라게 한다. 부탁을 하고, 답을 하고, 감사 인사를 건네고, 환영의 뜻을 전하고 그 모든 소통에는 내가 세상의 흐름에 다시 발맞출 수 있도록 돕는 격려의 리듬이 깃들어 있다. 비탄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 리듬을 상실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잃고 나면 삶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한동안 그 구멍 안에몸을 움츠리고 들어가 있게 된다.
여기서 일하면서 나는 메트라는 웅장한 대성당과 나의 구멍을 하나로 융합시켜 일상의 리듬과는 거리가 먼 곳에 머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상의 리듬은 다시 찾아왔고 그것은 꽤나 유혹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가 영원히숨을 죽이고 외롭게 살기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만들어지는 운율을 깨닫는 것은 내가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될 것인지를 깨닫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삶 - P191

에서 마주할 대부분의 커다란 도전들은 일상 속에서 맞닥뜨리는 작은 도전들과 다르지 않다. 인내하기 위해 노력하고, 친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의 특이한 점들을 즐기고 나의 특이한 점을 잘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관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적어도 인간적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 P192

나는 널찍한 돌계단에 앉아 점심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간다. 태양이 빛나고, 고층 아파트들이 은은한 빛을 발하고, 두왑가수들이 동전을 모을 모자를 돌리고, 샛노란 옐로캡 택시들이빠른 속도로 지나가서 민들레를 문지른 자국처럼 보일 때면 5번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가판대에서 겨자소스를 바른 핫도그를 하나 사서(그는 경비원들한테는 1달러만 받는다) 외지인 무리 사이에 끼어 앉아 나 혼자 유일하게 이곳에 속한 사람이라는 기분을 즐긴다. 계단에 편히 자리를 잡은 나는 재킷 단추를 열고, 클립으로 부착하는 넥타이를 떼고, 공중에서 이런 나를 내려다보면 얼마나 멋진 한 폭의 그림으로 보일까 생각한다. 이 위대한 도시의 심장부에 있는 위대한 미술관의 계단에 작은 경비원 하나가 앉아 있다. 작지만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존재는 아니다. 앉은 자리는 편안하고, 근무복은 몸에 잘 맞는다.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재킷 주머니에서 작은 공책을 하나 꺼내 들고 머리에 떠오르는 포부들을 몇 개의 문장으로 적는다. 과거에는 대부분 수동적인 태도로 메트와 메트의 소장품들을 일 - P193

종의 보이지 않는 눈으로 관찰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태도를 취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술을 흡수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이제는 그러는 대신 예술과 씨름하고, 나의 다양한 측면을 모두동원해서 그 예술이 던지는 질문에 부딪쳐보면 어떨까? 미술관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덤벼볼만한 가치가 있는숙제 같다. 예술을 경험하기 위해 사고하는 두뇌를 잠시 멈춰뒀다면 다시 두뇌의 스위치를 켜고 자아를 찾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 P194

그리스 조각 정원 중앙에 서서 위를 올려다본다면 석고로 만들어진 원통형 천장을 볼 수 있다. 호메로스시대 사람들은 하늘이아주 구체적이고 단단한 놋쇠 돔이라고 여겼고 그 돔은 원반 모양의 지구를 둘러싼 바다에 박힌 기둥들 위에 놓여 있다고 생각했다. 바다 너머로는 역시 원반 모양인 태양의 뒷면밖에 볼 수없는 저승이 있었고 저승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 아무것도 없다고도 할 수 없었다. 실증적인 성향이 매우 강했던 초기그리스 사람들은 그들의 철학 안에 무한대나 공의 개념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는데 두 가지 모두 자연에서 관찰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수세기에 걸쳐 사고방식이 진화하면서도 그리스인들은 현실에 근거한 특유의 정신적인 습관을 결코 완전히 잃지 않았다. 그들 세계의 모든 것은, 심지어 그들의 신들까지도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특성은 그들의시각예술에도 충만하다. - P203

너무 많은 방문객들이 메트를 미술사 박물관이라고 생각하면서 예술에서 배우기보다는 예술을 배우려 한다. 또한 너두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는 모든 정답을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있고,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이 감히 작품을 파고들어 재량껏 의미를 찾아내는 자리가 아니라고 넘겨짚는다. 메트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나는 이곳의 주된 역할이 미술사 박물관이 아니라는걸 더욱 확신하게 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관심 영역은 하늘 높이 솟았다가 지렁이가 기어다니는 지하 무덤까지 내려가고, 그 둘 사이의 세상에서 사는 것이란 어떤 느낌이고 무엇을의미하는지에 대한 거의 모든 측면과 맞닿아 있다. 그런 것에 관한 전문가는 있을 수 없다. 나는 우리가 예술이 무엇을 드러내는지 가까이에서 이해하려고 할 때 비로소 예술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믿는다. 저 아이들이 과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를.
그러기 위한 좋은 출발을 한 것 같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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