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말 나는 연구실 동료와 함께 뉴욕 시내를 활보하고있었다. 맨해튼 건너편에 자리한 ‘퀸즈‘의 한 호텔에서 빵과커피로 아침을 때운 뒤, 온종일 정처없이 걷고 또 걸었다. 뉴욕을발바닥으로 체험하고 싶어서였다. 10여 년 전 그맘 때 처음 뉴욕IFK 공항에 발을 디뎠다. 뉴욕 주에 속한 이타카의 코넬 대학에가기 위해서였다. 『열하일기』를 ‘리라이팅‘한 이후 코넬 대학에서한 학기 ‘방문교수‘로 초빙을 받은 것이다(혹시나 해서 말해 두는데,
당연히 한국어로 하는 강의였다. 『열하일기』가 몰고 온 역마살이아니었을까. 그로부터 십여 년이 흘렀다. 2013년부터 다시금뉴욕이 내 일상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결국 나와 연구실 동료들은뉴욕에서 ‘청년 세대‘를 위한 새로운 ‘네트워크‘를 실험해 보기로마음먹었다. 해서, 2014년 가을 적당한 공간을 물색하기 위해 뉴욕거리를 헤매고 다녔던 것이다. 다시 역마살이 도래했음에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2014년 초부터 뜬금없이 ‘로드클래식‘이란 테마로글을 쓰게 된 것도 왠지 우연만은 아닌 듯하다. 시절인연이란 이렇듯 묘한 것이다. - P195

그것도 자주 줄 필요도 없어. 나는 말이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것 따위는 눈곱만큼도 관심 없어" 트웨인, 톰 소여의 모험 405쪽) 부자와화폐에 대한 신랄하고도 통쾌한 풍자!
청춘의 생명은 자유다. 화폐와는 천적지간이다. 화폐는 문명을구축하고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모든 주체를복속시킨다. 그런데 문명인들은 그것을 진보라고 부른다. 야생적에너지를 알량한 안정과 교환한 것이다. 하지만 헉에겐 그거야말로
‘부당거래‘다. 출구는? 간단하다. 화폐를 버리면 된다! 이게 톰소여가 소개하는 혁 편의 행동방식이다. - P199

자. 이것이 혁이 놓여 있는 자리다. 한쪽은 감시와 보호다른 쪽은 주정과 폭력, 전자는 안전하지만 지루하기 짝이 없고,
후자는 유쾌하지만 늘 채찍에 시달려야 한다. 사실 이것이 문명의이중주다. 금욕 아니면 방탕 규율 아니면 폭력, 지금도 이 둘사이를 격하게 오가고 있지 않은가. 혁은 아빠의 폭력에서 벗어나고싶지만 과부댁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다. 그렇다면방법은 오직 하나, 멀리멀리 떠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선 "한곳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 같았고, 차라리 방방곡곡을 여기저기떠돌아다니"면서 "사냥과 낚시로 끼니를 때워야 할 것 같았다. "주석척편, 316쪽.) 유목민이 되기로 작정한 것이다. - P203

이것은 일종의 니체식 계보학이다. 우리가 자명하다고 여기는것들에 대한 유쾌한 전복을 동반하는! 전국 순회 낭독회 때 최고의인기를 누린 대목이기도 하다. 이런 식의 대화는 작품 전체에 걸쳐쉬지 않고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뗏목 위의 노마드‘, ‘강물위의 철학자‘인 셈이다. 그들이 토해 내는 언어 속에는 문명과 문화이전의 카오스, 다시 말해 ‘야생과 탈주의 연대기‘가 생생하게 살아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미시시피 강의 오디세이아‘라 부르는것도 그 때문이다. - P211

이와 관련하여 멋진 삽화를 하나 소개한다. 1982년 중남미문학의 거장 보르헤스는 워싱턴 대학에 초청을 받았다. 그때 그가내건 요구 조건은 마크 트웨인의 고향인 해니벌에 잠시 들를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거의 시력을 잃어 가던 그는박물관의 학예사에게 강으로 안내해 달라고 부탁했다. "미시시피강이야말로 마크 트웨인이 지닌 힘의원천입니다." "그 강을 한 번만져 보고 싶군요." 그래서 이들은 강변으로 나갔고, 보르헤스는그곳의 조약돌 위에 웅크리고 앉아 흐르는 강물에 자기 손가락을담갔다. 그리고 말했다. "자, 이제 여행은 끝났습니다."주석 헉 핀,207쪽.}물론 우리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헉과 짐은 미시시피강을 따라 계속 흘러갈 것이다. 유속이 빨라질수록, 물결이높아질수록 그들이 마주칠 사건들도 한층 격렬해질 것이다. 동시에자유와 연대를 향한 그들의 갈망 또한 깊어질 것이다. - P211

"누구나 격찬하지만 결코 읽지는 않는 책"ㅡ고전에 대한 마크 트웨인의 정의다. 하긴 그렇다. 고전의 반열에 들어서는 순간, 그 책은 대중들로부터 멀어진다. 경이원지, 다시말해 존경하지만 가까이 하기는 싫은 대상이 되어버린다. 고전의 입장에선 몹시 불행한 일이다. 왠 줄 아는가? 고전은 어디까지나 당대의 ‘문제작‘이기 때문이다. 가장 첨예하고 불온한 이슈를 제기하고, 그 이슈가 시공을 넘는 파동과 울림을 확보하게 될 때 비로소 고전이 된다. 그런데 읽히지 않고 서고에 보존만 된다?
고전으로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그런 식의 ‘말라비틀어진‘ 존경이라면 차라리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쪽을 택할 것이다.
요컨대, 모든 고전은 낭송을 염원한다! 왜 ‘낭송‘인가?
읽는다는 건 텍스트와 소리와의 뜨거운 접속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P217

텍스트는 정지된 물체에 대한 명칭이 아니라 씌어진 것과 음성,
그리고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과의 동적 관계를 가리키는 명칭이된다. 따라서 텍스트는 씌어진 것의 음성적 실현에 지나지않으며, 낭독자의 음성 없이 씌어진 것만으로는 표현도 분배도할 수 없게 된다. 로제 샤르티에 외 엮음 읽는다는 것의 역사 이종삼 옮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6, 79쪽.}


그렇다. 자신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줄 음성을 기다리는 책, 다시 말해 ‘북book - 소리‘의 울림과 파동, 그것이 고전이다. ‘허클베리핀의 모험』이 그 증거다. 그 탄생의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북book - 소리‘의 역동적 현장과 마주치게 된다. - P217

진짜들이 그러하듯, 이 가짜 ‘왕과 공작‘ 역시 더더욱탐욕스러워진다. 한 집안의 유산을 송두리째 가로채기로 한 것이다.
이웃 사람을 통해 신상정보를 탈탈 털어낸 뒤, 두 사람은 그 집안의유산상속자로 변신을 시도한다. 옆에서 지켜보던 헉도 그들의음모와 연극에 완전히 질려 버렸다. "정말이지 내가 이전이라도그런 걸 본 적이 있었더라면, 나는 흰둥이가 아니라 깜둥이였을거다. 그야말로 누구나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만들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주석 헉 편 626쪽. 그런 점에서 이들은아주 훌륭한 반면교사다. 혁에게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질문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말이다. - P226

눈치 챘겠지만, 여기가 바로 이 소설의 절정이다. 헉은 "자신이 인간의 법률과 하나님의 법률 모두를 위반한다고 믿는다. 노예의 도망을 돕기로 맹세함으로써 혁은 자기 동포와 국가, 자기 하나님을 모두 부인하는 셈이다." 주석 헉 편 722쪽의 13번 주석} 그 어떤법도 양심의 가책도 인간과 인간이 나누는 신의 곧 우정보다 더소중할 수는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경치 좋은 곳에 가려면 천당에가고, 친구가 많은 곳에 가려면 지옥에 가라"는 말이 있다. 마크트웨인이 한 말이다. 고독한 천당인가? 우정이 넘치는 지옥인가?
헉은 기꺼이 후자를 택했다. 이 순간 헉은 진정 자유인이 된다.
지옥을 선택한 자를 대체 누가 다시 포획한단 말인가?
한편, 그 순간 왕과 공작은 처참하게 추락한다. 다시 한번사기극을 펼치려던 차, 마을 사람들에게 잡혀서 가혹하게 린치를당한다. 하지만 헉은 마을 사람들의 잔인함 역시 구역질이 날것 같다. 아무리 몹쓸 인간들이라 해도 결코 원한과 복수심에사로잡히지 않는 것, 그것이 헉의 본성이고 또 자유정신이다. - P229

문득 이 대목에서 책의 첫 페이지에 "이 이야기에서 어떤동기를 찾으려는 사람은 고발당할 것이다. 여기서 어떤 교훈을찾으려는 사람은 추방당할 것이다. 여기서 어떤 줄거리를찾으려는 사람은 총살당할 것이다"라는 저자의 경고문을 환기할필요가 있다. 왜 그런 협박을 했는지 감이 오지 않는가? 쉽게말하면, 동기와 교훈, 줄거리에 대해선 자기 자신도 잘 모르기 - P232

때문이다. 모르는데 자꾸 물어볼까 봐 미리 선수를 친 것이아닐지, 「뉴욕타임스』와의 한 인터뷰에서 마크 트웨인은 이렇께말했다. ‘나는 그 책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책이 스스로 써졌을 뿐이다. 주석18쪽) - P233

톰은 회복되었고, 짐은 자유를 얻었다. 그럼 헉은 이제 어디로? "내생각에는 조만간 준주로 도망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샐리 이모가이제는 나를 입양해서, 문미영인[문명인]으로 만들겠다고 벼르고있는데, 나로선 도무지 견딜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석 헉876쪽) 준주란 인디언 골짜기다. 미시시피 강을 건너 이젠 인디언부락으로 도주하려 한다. 즉, 헉의 여정에 해피엔딩이란 없다.
자유를 향한 끝없는 도주가 있을 뿐! 그런 점에서 자유란 어떤 상태, 어떤 장소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포획과 탈주의 끝없는 이중주그 자체라 할 수 있다.
- P233

함께 크레타의 갈탄광으로 가자는 ‘나‘(작중 화자)의 제안에 조르바는 선뜻 동의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조르바』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2013, 24쪽, 이하 이책을 인용할 때는 조르바』로 약칭하고 인용쪽수를 적는다) - P237

그리스인조르바』의 서두를 장식하는 명대사다. 인간은자유다! 이것이 조르바의 사상이다. 왠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보통은 이렇게들 말한다. ‘인간은 자유를 원한다‘고. 그리고 그자유는 세부적으로 나누어진다. 정치적 자유, 사회적 자유, 집단적자유, 개인적 자유 등등. 조르바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니다. 자유는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와 동의어라는 것. 즉, 인간과 자유사이에는 한 치의 간극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 조르바는 대체어떻게 이런 사상을 체득하게 되었을까? ‘나‘는 그토록 많은 책을읽고 사상적 편력과 방황을 거치면서도 도달하지 못한 그 경지를.
조르바에겐 뭔가 다른 길이 있다! 이제 ‘나‘는 조르바를 통해 그길을 탐사할 것이다. 그것은 폭풍과 고요가 공존하는 ‘존재의심연‘으로의 머나먼 항해가 될 것이다. - P237

조르바의 죽음은 장엄했다. 그는 최후의 순간까지 정신이말짱했고,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침대에서 뛰어내려창문가로 갔다. 거기에서 창틀을 거머쥐고 먼 산을 바라보다 눈을크게 뜨고 웃다가 말처럼 울었다. 창틀에 손톱을 박고 서 있을동안 죽음이 그를 찾아왔다. 마치 선사들의 죽음을 연상시킨다.
좌탈입망! 보통 선사들은 좌탈앉은 채로 숨을 거두는 것을 하는데,
조르바는 입망선 채로 숨을 거둠을 한 것이다. 이 대목을 볼 때마다떠오르는 구절이 있다. 심해를 항해하고 돌아온 고래의 충혈된 눈!
카잔차키스의 또 다른 멘토인 니체의 말이다.
자, 여기까지가 조르바의 여정이자 항해다. 그럼 조르바가그토록 사랑한 ‘나‘는? 그는 이 길 위에서 어떤 심해를 탐사한것일까? 그건 다음 장에서...... - P253

갈탄광 사업을 위해 크레타로 향하면서 ‘나‘는 이렇게 결심한다.
붓다에서 벗어나고 모든 형이상학적인 근심인 언어에서 나 자신을끌어내고 헛된 염려에서 내 마음을 해방시킬 것. 지금 이 순간부터인간과 직접적이고도 확실한 접촉을 가질 것"조르바』 83쪽. 참희한한 노릇이다. 채굴 사업을 하겠다는 자본가가 이런 목표를설정하다니. 한데, 더 이상한 건 그렇게 결심했으면서도 지난2년간 끌어안고 있던 ‘미완성 원고‘를 챙겨간다는 사실이다. 멀리카프카스로 떠나면서 ‘너는 대책 없는 책벌레‘라고 냉소했던 친구의웃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아기를 싸듯이 조심스럽게 그 원고를포장하여 다른 짐 속에 넣었다. 조르바 15쪽 ‘책벌레‘에서 벗어나고싶으면서도 책의 씨앗을 버리지 못하는 존재. 그가 원하는 건 책을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책에 육체를 불어넣는 것이었다. 피와 땀과근육이 펄떡거리는!
그 여정에서 조르바를 만났다. 그는 한눈에 반한다. ‘푸짐한입과 살아 있는 가슴, 야성의 영혼‘ 등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 P262

갖추고 있어서다. 하여, 그는 갈망한다. "조르바라는 학교에 들어가저 위대한 진짜 알파벳을 배울 수 있기를. 그러자면 정신을육신으로 육신을 정신으로 채워야 했다. 즉, ‘정신과 육신‘이라는영원한 적대자를 화해시켜야 했다.
조르바와 ‘나‘, 둘은 함께 간다. 하지만 서로 다른 길을 간다.
조르바는 채굴을 하고 인부들을 호령하고 또 위기에서 구출한다.
반면 ‘나‘는 사유의 갱도를 채굴해 들어간다. 존재와 우주의심연으로 향하는 길을 탐사하는 것이다. 전자의 길에선 ‘내‘가자본가고 조르바가 노동자지만, 후자의 길에선 조르바가 노련한
‘튜터‘라면 ‘나‘는 철부지 생도에 불과하다. 물질적 세계와 비물질적세계, 그 사이에서 생극(상생과 상극)의 파노라마가 펼쳐진 것. 과연이 두 개의 상이한 포물선은 서로 마주칠 수 있을까? - P263

그렇다. 조르바라는 학교의 가장 중요한 교과서는 다름 아닌 ‘조르바‘ 자신이다. 그가 들려주는 인생역정에는 모든 과목이 다들어 있다. 문·사·철을 비롯하여 여성학과 인류학, 그리고요리까지. 더구나 그는 이 모든 과목을 살아 숨쉬는 언어로 풀어낸다. 그의 질펀한 ‘썰‘들에는 고매한 이치와 통속적 감각이 제멋대로교차한다. 그것은 마치 밀려오는 파도와 같다. 높아졌다 낮아졌다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는 ‘나‘는 이 ‘썰‘의 파도를 따라잡는 데여념이 없다. 대체 ‘나‘는 이 텍스트에서 무엇을 배웠던 것일까? - P264

‘나‘의 비전은 영성과 지성이 결합된 예술가들의 공동체다.
"낮에는 하루 종일 일하고 밤에만 만나 함께 먹고 마시고 읽고인간의 중요한 관심사를 서로 토론하고 기존의 해답을 뒤집고자했었다. 나는 그 공동사회의 규칙까지 정했다. 뿐만 아니라 사냥꾼성 요한이 은거하던 이메토스 산길 옆에다 마땅한 건물까지 하나물색해 두었던 것이다." 조르바는 자신을 그 수도원의 문지기로취직시켜 달란다. "밀수도 좀 해먹고 이따금 그 성스러운 경내에괴상한 물건도 좀 들여놓게 여자, 만돌린, 라키 술통, 애저구이.
그래야 당신네들이 허튼수작이나 부리며 인생을 우습게 살아버리지 않을 거라면서.
조르바가 말하는 건 삶이다. 삶은 생명이고 욕망이며일상이다.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또 속고 속이고, 죽고 죽이는육체들의 향연, 이 생의 한가운데를 관통하지 못한다면 어떤혁명도, 이상도 다 ‘허깨비‘에 불과하다. - P268

1957년(74세) 중국 정부의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다가아시아 독감으로 독일의 한 병원에서 사망. 카잔차키스 연보의마지막 항목이다. 길 위를 떠돌다 길 위에서 생을 마감한 것. 그리스정교회의 반대로 시신은 아테네로 가지 못하고, 크레타로 가서 안치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생전에 미리 작성해 둔 묘비명이다. "인간은 자유다!"라는조르바의 명제가 멋지게 변주되고 있다. 무언가를 갈망하는 한자유는 불가능하다. 그 정열이 나를 지배할 것이므로, 뭔가를두려워하는 한 자유는 불가능하다. 불안과 공포가 나를 짓누를 것이므로, 욕망에도 두려움에도 휘둘리지 않는 충만한 상태, 그것이곧 자유다! 어떻게 해야 거기에 도달할 수 있을까? 저 깊은 곳에서이런 질문이 솟구친다면 당신은 그리스인조르바』를 만날 준비가되었다. - P277

19161724년 영국정부는 저질화폐를 아일랜드에 유통시키려 했다.
스위프트는 당시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 있는 작은 성당의사제였다. 그는 그 저질화폐가 아일랜드를 더 가난하게 만들것이라 판단하여 그에 맞서 싸울 것을 선동하는 서한을 가명으로공표했다. 아울러 아일랜드의 빈곤을 타파할 "하나의 온건한제안"을 내놓는다. ‘아일랜드의 갓난아기들을 영국인 지주들의먹거리로 제공하면 된다‘는 것. "아기를 1년 동안만 잘 키우면 가장맛있고 영양가 있고 완전한 음식이 된다. 그 아기를 구워 먹을 수있고 삶아 먹을 수도 있다. 그것이 송아지 고기나 닭고기보다 더맛있을 것이다." 아일랜드인들은 식구도 줄이고 돈벌이도 되니까좋고, 영국인은 싱싱하고 부드러운 살코기를 먹을 수 있으니좋다는 것. 맙소사! 이것이 스위프트가 즐겨 구사한 아이러니수법이다. 아이러니란 상황을 끝까지 밀어붙여논리자체를와해시키는 일종의 ‘막장화법‘이다. - P282

이 ‘막장수사학의 끝장판이 바로 『걸리버 여행기』다. 알다시피,
『걸리버 여행기』는 판타지물이자 풍자문학의 걸작이다. 거인국,
소인국, 라퓨타, 흐이는 등 환상의 왕국들을 등장시킨 것은권력과 문명을 아예 대놓고 "씹어 대고 싶어서다. 주 타깃은 단연정치인들이다. 예컨대, 유사 이래 왕이 총애하는 신하들은 기억력이짧고 약하다. 해서 그들에게 무슨 말을 전할 때는 잊어버리지않도록 코를 비틀어 주거나 귀를 세 번 잡아당기거나 발가락에 생긴 티눈을 밟아 주거나 하면 된다. 또 당파싸움이 격화될 때는양측 정당의 지도자들을 백 명씩 뽑아서 머리 사이즈가 같은사람들끼리 짝짓기를 한 다음 솜씨 좋은 의사 둘로 하여금 양쪽의머리를 두 쪽으로 빠개어서 서로 상대방의 머리에 갖다 붙인다. - P283

그에 반해 거인국의 품성은 참 ‘대인스럽다‘. 명칭도소인국에선 황제, 거인국에선 왕이다. 소인들일수록 ‘우주 유일‘, ‘세계 최고‘에 집착한다. 사이즈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이다. 하지만 거인국에선 그럴 필요가 없다. 그래서인지 거인국의 왕은 인디언추장의 아우라를 내뿜는다. 예컨대, 걸리버가 화약 이야기를꺼내자 왕은 그런 잔인한 무기를 개발하느니 차라리 왕국의 절반을포기하겠노라고 단언한다. 또 그들의 학문에는 추상적 관념이나초월적인 존재 같은 허황된 것들이 일절 없다. 화법 또한 명쾌하고유려하다. 이것은 거인들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소인의 시선으로올려다본 탓도 있다. 멀리서 우러러 보면 뭐든 당당하고 관대해보이는 법이므로. - P286

"세계적인 여행기엔 어떤 작품이 있을까요?" 강의 때마다청중들에게 묻는 질문이다. 그러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자동적으로 "걸리버 여행기』!"가 튀어나온다. 여행기, 하면걸리버가 떠오를 정도로 인지도가 높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렇게말하고 나선 꼭 웃는다. 듣는 이들도 같이 웃는다. 이 리액션이 아주흥미롭다. 다른 여행기에선 결코 나올 수 없는 반응이다. 왜 그럴까?
이 작품이 지닌 이중성 판타지 동화와 풍자문학 때문이리라.
마치 유명한 개그맨의 경우, 이름만으로도 웃음을 야기하는 것처럼.
그렇다. 이 작품에 나오는 지명들은 몽땅 다 허구요 뻥이다.
그런데 작가(와 출판업자)는 그렇지 않다고 우긴다.  - P296

결국 불멸이란 ‘마법사의 섬‘에 나오는 유령들처럼 윤회의덫에 갇히거나 아니면 ‘나‘의 영생인들처럼 삶으로부터 완전히소외되어 있거나 둘 중의 하나를 뜻한다. 살아 있으되, 결코 삶이없는 존재들! 스위프트가 대단한 건 바로 이런 대목이다. 평생영국 국교회의 사제로 지냈음에도 그는 영생에 대해 어떤 의미도부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신이나 내세를 부정하는 방식을 취한것도 아니다. 거꾸로 내세와 영생이 가능하다고 설정한 다음, 그때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줄 뿐이다. 죽지 않는다는것이 무엇인지 진짜로 따져보라는 것이다. 영생인이 미움과 경멸의대상이라니, 또 그들이 죽는 자들에 대한 질투에 몸부림친다니이것만으로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상당히 덜어지지 않는가. 그런점에서 스위프트는 훌륭한 사제다.
- P309

붕어빵과 대학의 공통점은? 붕어빵엔 붕어가 없고, 대학에는
‘대학大(큰 학문이 없다! <개그 콘서트> 용어로 말하면
‘도찐개찐‘이다. 유토피아도 마찬가지다. 엉? 유토피아란 ‘그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소인국, 거인국, 라퓨타 등등이그런 것처럼. 근데 왜 그런 나라를 찾아헤매는 거지? ‘이상향‘, 곧유토피아를 발견하고 싶어서다. 하지만 그런 곳은 없다. 소인국은소인국대로, 거인국은 거인국대로 모순과 비리가 존재한다.
라퓨타는 문명은 고도화되었지만 인간들의 신체는 엉망이 되어버렸다. 흐이름의 나라에서 마침내 그 희망을 찾았지만 결정적으로거기는 인간 세상이 아니다. 그의 육체는 어디까지나 야후다.
야후의 육체에 흐이늠의 정신은 불가능하다! 그 덕성을 구현하려면인간이 아닌 말의 신체가 되어야 한다. 걸리버가 다시 돌아올수밖에 없는 이유다. 결국 유토피아에는 ‘유토피아‘가 없다! 아니, 다시 정리하면, 유토피아는 없다! - P316

걸리버가 쉬지 않고 여행을 떠난 것도 이 때문이다. 삶을 한없이 사랑하지만 도저히 이 부조리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래서 떠난다. 어딘가 또 다른, 더 나은 세계가 있을거라는 기대감으로 하지만 그런 세계는 없다! 거인국이건 라퓨타건 흐이늠이건 모순과 부조리가 없는 세계는 없다. 어쩌면 세계는부조리함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걸 터득하기 위해서 떠나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전혀 다르게 사유할 수 있으므로,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살아갈 수 있으므로, 그래서 떠나야 한다.
어디 걸리버만 그러하랴. 인간은 원초적으로 떠나는 존재다. 떠나지않고는 배기지 못한다. 떠나기 위해 돌아오는 자, 그대 이름은걸리버, 아니 야후! - P318

그리고 길은 계속된다.
보다시피 길은 늘 우연의 연속이다. 아니, 어쩌면 길 자체가 우연의산물일지도 모르겠다. 하여, 길 위에선 언제나 사건이 벌어지고그때마다 새로운 말들이 탄생한다. 사건과 말들의 향연, 그것이 곧 길이다. 그래서 길은 결코 끝나는 법이 없다. 하나의 길이 끝나면 반드시 또 다른 길로 이어진다. 이것은 필연이다.
- P335

이렇게 해서 로드클래식에 대한 탐사와, 그와 함께했던 나의여행도 끝났다. 그리고 2015년 봄, 감이당과 경향시민대학에서
‘로드클래식‘으로 강의를 열었다. 세대를 가로질러 많은 이들이 자원방래하였다. 덕분에 삼장법사와 요괴들, 돈키호테와 산초,
허클베리 핀과 조르바 등의 여행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또 수많은 인연들이 교차했다. 이처럼 길은 길을 부른다. 길은 길을 낳기도 하고, 길을 기르기도 한다.
또 각개약진하던 길들이 어느 순간 하나로 이어져 새로운 지도로 탄생하기도 한다. -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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