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도 다디에게 그림은 고통스럽지만 꼭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생각을 돕는 도구였을 것이다. 나는 예수의 그림들에서 새롭거나 미묘한 뉘앙스를 찾는 데 관심이 없다. 내가 이해한 건 다디는 고통 그 자체를 그렸다는 점이다. 그의 그림은 고통에 관한 것이다. 고통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말문을 막히게 하는 엄청난 고통의 무게를 느끼기 위해 그림을 본다. 그렇지 않다면 그림의 정수를 보지 못한 것이다.
많은 경우 위대한 예술품은 뻔한 사실을 우리에게 되새기게 하려는 듯하다. ‘이것이 현실이다‘라고 말하는 게 전부다. 나도 지금 이 순간에는 고통이 주는 실제적 두려움을 다디의 위대한 작품만큼이나 뚜렷하게 이해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내 그 사실을 잊고 만다. 점점 그 명확함을 잃어가는 것이다. 같은 그림을 반복해서 보듯 우리는 그 현실을 다시 직면해야 한다. - P51

결혼식이 끝나고 형은 왼쪽 허벅지에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그해 11월에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고, 방사선 치료와 화학요법이 계속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7년 1월, 암이 폐에 전이되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형이 건강하지 않은 상태로 뉴욕에서 함께 산 2년 8개월 동안 도시 자체가 변한 것처럼 느껴졌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 뉴욕은 레코드 가게와 싸구려 식당, 워싱턴 스퀘어의 분수대로 이루어진 도시였다. 두서 없고 오색찬란하고 낭만적인 도시, 젊은 연인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걷는 도시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업타운으로 거점을 옮긴 내게 뉴욕은 마천루, 옐로 캡, 멋진 거리와유명한 건물들이 가득한 도시이자 뒤처지지 않으려면 어떻게든발 디딜 곳을 찾아야만 하는 도시였다. 그러다가 형이 병에 걸렸다. 뉴욕은 하루아침에 암 병동의 병실과 형의 퀸스 아파트만 남은 도시가 되었다.
형의 아파트. - P58

몇 달 후, 우리는 필라델피아에 사는 어머니의 네 형제자매를 찾아갔다. 스물여섯 살짜리 아들을 땅에 묻은 후에 자신의 형제자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혹은 되지 않는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일지 짐작이 갈 것이다. 시간을 보내다가 어머니가 좀 더 단순하고 조용한 곳으로가자고 제안했고 우리 두 사람은 자리에서 슬쩍 빠져나왔다. 차창문 밖으로 평범한 도시의 삶이 흘러가고 있었다. 거리는 조깅하는 사람,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을 비롯해서 누군가에게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일이 벌어졌다고 한들 세상이 멈추는 일은 없으리라는 증거들로 넘쳐났다. 우리는 벤 프랭클린 파크웨이를 벗어나 미술관 앞에 차를 세웠다. - P64

특징 없는 금색 배경 앞으로 매우 아름답지만 당돌하리만치 죽은 게 확실한 젊은이를그의 어머니가 온몸으로 받치고 있는 장면이다. 마치 아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그를 껴안고 있는 어머니를 그린 이 그림은 ‘통곡annerstation‘ 혹은 ‘피에타 Pieta‘라고 부르는 장르에 속한다. 어머니는 늘 잘 울었다. 결혼식에서나 영화관에서나 눈물을 흘리곤 하는 사람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어깨가 흔들리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가 심장이 부서지는 동시에 충만해져서 그렇게 울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그림이 어머니 안의 사랑을 깨워서 위안과 고통 둘 다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경배‘를 할 때 아름다움을 이해한다. ‘통곡‘을 할 때 ‘삶은 고통이다‘라는 오래된 격언에 담긴 지혜의 의미를 깨닫는다. 위대한 그림은 거대한 바위처럼 보일 때가있다.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냉혹하고 직접적이며 가슴을 저미는 바위 같은 현실 말이다. - P67

부모님과 누이 미아는 비행기를 타고 시카고로 돌아갔다. 나는 암트랙 기차를 타고 새로운 고향 뉴욕으로 향했다. 내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모든 의미에서 어디로 갈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로 미드타운의 분주한 행인들 틈에 섞였다. 운 좋게 얻은 전도유망한 직장이 있는 마천루의 사무실로는더 이상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세상 속에서 앞으로나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꾸역꾸역 긁고, 밀치고, 매달려야 하는 종류의 일은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누군가를 잃었다. 거기서 더 앞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움직이고 싶지가 않았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는 침묵 속에서 빙빙돌고, 서성거리고, 다시 돌아가고, 교감하고, 눈을 들어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서 슬픔과 달콤함만을 느끼는 것이 허락되었다. - P69

그런엄청난 스케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전시된 모든 것은 유별날 정도로 통일성을보인다. 모든 유물이 아주 본질적으로 그리고 강력하게 이집트적이다. 고대 이집트인들만큼 3천 년이 넘는 긴 시간 내내 그들답게 존재한 인류는 없었을 것이다. 관람객들은 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이집트 특유의 미학을 알아본다. 무엇보다도 이집트는 우리의 상상력에 마중물을 붓는다. 왕가의 계곡, 피라미드들, 주기적으로 범람하는 나일강..… 모든 것들이 지어낸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재했던 것들이다. 이곳은 메트의 전시관들 중 가장 다양한 방문객을 끌어들이는 곳이다. 청소년들, 트위드재킷을 걸친 교수들부터 명상가들, 아프로퓨처리스트Aftofuturist (아프리칸디아스포라의 역사와 기술 과학적 상상을 접목하는 문화적 장르 - 옮긴이) 만화가들까지 혼재해 있다. 이곳의 경비원이라면 방문객들이 던지는 가장 상징적인 질문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자주 듣게된다. "저기요, 이거 진짜예요?" - P83

양조장과 제빵소가 합쳐진 모형에 바짝 다가선다. 그것은 전시실 안의 다른 유물들과 마찬가지로 유리벽 뒤에 있어서 방문객들이 만지지는 않을까 하는 경계를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다.
그즈음 틈틈이 이집트 역사에 관한 책을 읽고 있던 나는 책으로읽는 것과 예술품을 직접 보는 경험이 얼마나 다른지 다시 한번느낀다. 책 속 정보는 이집트에 관한 지식을 진일보시켰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이집트의 파편을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나를멈추게 한다. 이것이 예술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우리는 내용을완전히 이해하고 그다음으로 간단히 넘어갈 수 없다. 예술은 어느 주제에 관해 몇 가지 요점을 아는 것이 대단하게 여겨지는 세상을 경멸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점이야말로 예술이 절대 내놓지 않는 것이다. 예술 작품은 말로 단번에 요약하기에 너무 거대한 동시에 아주 내밀한 것들을 다루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침묵을 지킴으로써 그런 것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 P87

이집트인들은 시간에 대해 우리와는 다른 관념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시간을 ‘네헤Neheh‘, 즉 ‘수백만 년간‘이라고 불렀고 그것의 본질은 화살처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원과 같은 순환이었다. 해가 뜨고, 지고, 또 뜬다. 나일강은 범람하고, 물러났다가, 또다시 범람한다. 별들은 한자리에선 관찰자의 주위를 절대적인 규칙에 따라 회전하며 거대한 시간의 바퀴 또한 망자들을 처분하고, 새로 태어난 이들을 성숙과 숙성을 겪게 해 죽음으로 안내한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흐르지만 실제로 변하는 것은 없다. 이집트인들에게 이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물의 본질로 여겨졌고, 이런 사고방식은 사후 세계로까지 확장해 메트에 전시된 인물상들의 끝없는 노동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 P88

8시 45분에는 문 닫을 준비를 시작한다. 우리는 빠르게 돌아다니며떠나기를 머뭇거리는 손님들에게 폐관을 알리고 그들이 정 원한다면 사진 한두 장 정도 찍는 것만 마지막으로 허락한다. "완료?" 경비원들이 서로에게 확인한다. "완료" 우리는 다음 전시실의 동료들과 합류하여 그다음, 또 그다음, 차차 수를 불리며그레이트 홀까지 천천히 후퇴하는 대중을 바짝 쫓으며 몰아낸다. 건물 전체에서 비슷한 짙은 푸른색의 무리들이 비슷한 속도로 발을 끌며 걷는 관람객들 뒤로 모여든다. 모두 끝났다. 다 됐다. 매니저가 손을 들어 인사한다. "좋은 저녁!"
다음 날 아침, 배치 사무실로 들어선 나에게 밥은 다시 이집트 구역을 준다. - P105

내 눈길을 처음 끈 것은 새까만 잉크로 쓰인 완벽한 수직의 문자열을 자랑하는 콜로폰들이다. 보통 나는 중국어 구절들에 시간을 전혀 할애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음, 뭐라고 쓰여 있는지 읽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자를 읽을 줄 모르는 덕을 본다. 단 하나의 획도 언어적인 의미에 빠져 놓치지않고 이 화려하고 다양한 문자들이 펼치는 시각적 향연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한 획이 나른한 뱀처럼 나아가면 다음 획은 신속하고 격렬하게 연이어 찌르는 듯한 모양새다.
이 두 극단 사이의 모든 가능성이 지면 어딘가에는 존재한다. 각각의 문자가 남기는 조금씩 다른 인상에 주목하면서 하나에서또 다음으로 시선을 옮겨간다. 말로 형용하기에는 너무나 미묘하고 또 너무 순수하게 시각적인 것들이다. 이런 순간에 얼마나많은 감각적인 경험이 언어의 틈 사이로 빠져나가버리는지 깨닫는다. 서예가들의 기술과 관록은 예술 행위의 가장 근원적인충동을 고도의 기교를 통해 보여준다. 빈 표면에 짙은 자국을 남겨 그것을 작품으로 탈바꿈시키고 싶은 그런 충동 말이다. - P111

몸의 방향을 돌리는 것만으로 1만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중앙아프리카까지 단번에 이동한다. 그곳에는 수많은 나무 주술상이 전시되어 있다. 보자마자 그렇게 느낀 건 아니지만 나는 이들 중 하나가 이 미술관에서 가장 멋진 조각상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어떤 작품은 오랜 감상에 대한 보상을 주는 반면 어떤 작품에게서는 얻는 것이 덜한데 이런 차이는 첫눈에 알 수 없다는것을 경험을 통해 깨닫는 중이다. 처음 그 조각상이 다른 유물들사이에서 특히 눈에 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스스로를 오랫동안 의심했다. 큐레이터들이 그것을 더 높은 받침대 위에 배치하지 않았는데, 내가 뭐라고? 긴 시간, 고독하게 조각상을 바라보고 나서야 확신을 갖게 되었다. - P123

무엇보다도 조각가는 <은키시 주술상>을 초자연적인 존재로 만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놀라운 기하학적형태를 완성한 것이 분명하다. 조각의 형태를 잡으면서 이 예술가는 엄청난 난관에 직면했을 것이다. 곽희의 두루마리나 모네의 그림과는 달리 그의 조각은 다른 것을 모방하거나 묘사하지 않았다. 그것은 신성한 존재처럼 보이려고 의도된 것이 아니라그 자체로 신성한 존재여야 했고 따라서 일반적인 인간의 손길너머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야 했다. 어떤 것의 모방이나 묘사가 아니라 새롭고 기적적이며 그 자체로 완성된 형태라는 확신을 가진 완벽한 존재, 다시 말해 어느 정도 갓 태어난 아기 같은 모습이어야 했다. - P126

박력 넘치는 조각상의 주위를 돌며 나는 예술가가 이렇게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사실에 감탄할 뿐이다. 예술의 위대한 기적이 행해졌고 아름다움의 새로운 모습이 세상에 더해졌다. 감탄스러울 뿐만 아니라 감동적이다. 눈을 지그시 감은 <은키시 주술상>은 다가오는 위험한 세력들에 대적하는 의지를 불러일으키려는 듯이 내면에 몰두하는 강력한 기운을 뿜는다. 이 조각상은 폭력, 불행, 질병 등 끊이지 않는 일상적인 고난으로부터 송예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패배가 정해진 싸움이었겠지만 그 시도만큼은 심금을 울린다. 엄청난 압박의 손아귀를 뿌리치기 위해서는 이렇듯 웅장한 모습이어야 했을 것이다. - P1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