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이란 관념은 생각해 낼 수 없는 것이라고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다.
모순은 바로 생명체의 고통 속에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 헤겔

어머니가 4월 7일 월요일에 돌아가셨다. 퐁투아즈병원에서 운영하는 노인요양원에 들어간 지 두 해째였다. 간호사가 전화로 알려 왔다. 「모친께서 오늘 아침, 식사를 마치고 운명하셨습니다.」 10시쯤이었다.


어머니가 머물던 방의 문이 처음으로 닫혀 있었다. 이미 염을 마친 상태여서, 깨끗이 씻긴 뒤 흰색 염포가 턱 밑으로 지나가게 머리를 감아 놓았고, 그 바람에 피부가 전부 입과 눈 주위로 몰려 있었다. 어깨까지 시트로 덮여 있어서 두 손이 보이지 않았다.  - P7

내가 가장 힘들 때는밖에 시내에 있을 때였다. 차를 몰다가 퍼뜩 이런 생각을 하기 일쑤였다. <어머니는 이제 다시는 이 세상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아. 사람들의 습관적인 행동 방식이 더 이상 이해가 가지 않았고, 그들이 정육점에서 자잘한 신경을 써가며 이런저런 부위를 고르는 모습을 보면 끔찍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한 상태가 차츰차츰 사라져가고 있다. 어머니가 아직 살아 계실 때인 이달 초에 그랬듯, 날이 춥고 비가 오면 여전히 만족스러움. 그리고, <이젠 더 이상그래 봐야 소용없구나> 혹은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구나>(어머니를 위한 이런저런 일)를 확인할 때마다 밀려드는 공허한 순간들. 어머니가 보지 못할 첫 번째 봄이라는 생각이 자아내는 빈틈. (이제는 평범한 문장들, 심지어 진부한 표현들에 담긴 힘이 느껴짐.) - P17

편지가 아닌 책의 첫머리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를 쓸 수 있었다. 또한 어머니의 사진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센 강가에서 찍은 사진 하나에서는 어머니가 다리를 구부리고 앉아 있다. 흑백사진이지만 어머니의다갈색 머리카락과 검은색 알파카로 지은 정장의 광채가 보이는 것만 같다.
나는 어머니에 관한 글을 계속 써나가겠다. 어머니는 내게 진정 중요했던 유일한 여자이고, 2년 전부터는치매 환자였다. 기억의 분석을 보다 쉽게 해줄 시간적거리를 확보하자면, 아버지의 죽음과 남편과의 헤어짐이 그랬듯 어머니의 병과 죽음이 내 삶의 지나간 흐름속으로 녹아들 때를 기다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 다른 것은 할 수가 없다. - P18

이것은 쉽지 않은 시도이다. 내게 어머니는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어머니는 늘 거기 있었다.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여는 첫 행위는 시간의 관념에 - P18

서 벗어난 이미지들 속에 어머니를 고정시키는 것 -<어머니는 난폭했다>, <어머니는 전부를 다 불사른 여자였다. 그리고, 어머니가 등장하는 장면들을 뒤죽박죽 떠올리는 것. 그렇게 해서 내가 되찾게 되는 것은내 상상이 만들어낸여자, 며칠전부터 내 꿈속에 나타나, 스릴러 영화에서처럼 팽팽한 긴장 속에서 다시한 번 삶을 사는 나이 불명의 여자와 동일한 그 여자일 뿐이다. 또 내가 붙들고 싶은 여자는 나와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존재했던 여자, 노르망디의 소도시 촌구석에서 태어나 파리 외곽 지역의 병원에서 운영하는노인병 전문 의료 센터에서 죽음을 맞이한 실제의 그여자이기도 하다.  - P19

보다 정확히는, 내가 쓰려고 하는 것은 가족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접점에, 신화와 역사의 접점에 위치하리라. 나의 계획은 문학적인 성격을띤다. 말들을 통해서만 가닿을 수 있는 내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찾아 나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진들도, 나의 기억도, 가족들의 증언도 내게 진실을가져다주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문학보다 아래 층위에 머무르길 바란다. - P19

이브토는 루앙과 르아브르 사이의 바람 부는 고원에 세워진 추운 도시이다. 그곳은 금세기 초만 해도, 대지주들이 장악한 순수 농업 지역에서 상업과 행정의중심지였다. 농가의 짐수레꾼이었던 외할아버지와 집에서 직물을 짜던 외할머니는 결혼하고나서 몇 년 뒤그곳에 정착했다. 그들은 둘 다 3킬로미터 떨어진 옆마을 출신이었다. 그들은 역 근처 카페들이 드문드문해지는 곳과 유채 밭이 시작되는 곳 사이, 철길 건너편외곽의 경계가 불분명한 시골 지역에 안마당이 있는 작은 단층집을 빌렸다. 나의 어머니는 그곳에서 1906년여섯 아이 중 넷째로 태어났다. (「나는 시골에서 태어나지 않았단다.」 그 말을 할 때 내비치던 자부심.) - P20

그녀는 살림을 알뜰하게 살았다. 그러니까 최소한의 돈으로 가족들을 먹이고 입혔고, 미사를 보러 가면구멍도 나지 않고 더럽지도 않은 옷을 입힌 아이들을나란히 앉혀 놓았고, 그럼으로써 시골뜨기라는 느낌을 갖지 않고 살아가게 해주는 자존감을 추슬렀다.
그녀는 셔츠의 목과 소매 깃을 뒤집어서 한 번 더 사용했다.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우유 위에 뜨는막과 굳은 빵으로는 케이크를 만들었고, 장작을 때고남은 재로는 빨래를 했고, 프라이팬에 남은 열로는 자두나 행주를 말렸고, 아침에 사용한 세숫물은 그날 손을 씻는 데 사용했다. 가난을 덜어 주는 그 모든 행위들을 앓, 여러 세기에 걸쳐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전해 오는 그 지식이 내게 와서 멈춘다. 나는 관련 문서정리자에 불과하다. - P22

열두 살 반에 학교를 떠나도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는 것이 일반적 관례." 마가린 공장에 입사한그녀는 그곳에서 추위와 습기로 고생했고, 젖은 손은겨울 내내 동상에 걸려 있었다. 그러고 나니 마가린쪽으로 다시는 <눈길을 돌리기도 싫었다. 따라서<꿈 많은 청소년기>와는 거리가 .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토요일 밤을 기대함, 모드 잡지인 ‘르 프티 데 - P26

코드 라 모드』*와 백분(白)을 살 수 있을 정도의 돈만 남기고 어머니에게 월급 전부를 갖다 바침, 정신없이 깔깔거림, 미워함. 어느 날 작업반장의 목도리가기계 벨트에 말려 들어갔다. 누구도 그를 도와주러 달려가지 않았고, 그는 혼자 힘으로 빠져나와야만 했다.
내 어머니는 그 사람 옆에 있었다. 노동 소외에 버금가는 중압감을 겪었던 게 아니라면 그 사실을 어떻게받아들이겠는가? - P27

여자에게 결혼이란 삶 또는 죽음이었으니, 둘이 되어 보다 쉽게 궁지에서 벗어나리라는 희망일 수도 있고 결정적인 곤두박질로 끝날 수도 있다. 따라서 <여자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남자를 알아볼 수 있어야만 했다. 당연히, 아무리 부유하다고 해도, 당신을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촌구석에서 암소 젖이나 짜게만들 땅 파는 사내는 퇴짜, 나의 아버지는 밧줄 제조공장에서 일했고, 키가 크고 풍채가 근사했으며, 제법<멋쟁이였다. 그는 술을 마시지 않았고, 가정을 꾸릴 생각으로 월급을 차곡차곡 모았다. - P32

이번에는 내가 어머니를 세상에 내어놓기 위해서그녀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가 보다.


두 달 전, 종이 위에 <어머니가 4월 7일 월요일에 돌아가셨다>라고 쓰면서 이 글을 시작했다. 그 뒤로, 그것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문장이고, 심지어 만약 그문장이 누군가 다른 사람이 쓴 것이라면 내가 그 문장을 읽으면서 느낄 감정과 전혀 다르지 않은 감정을 품고서 읽어 낼 수 있는 문장이다. 하지만 병원과 노인요양원이 위치한 구역으로 가는 것이나, 어머니가 살아 있었던 마지막 날에 대한 기억들이 잊고 있는 줄알 - P41

았는데 불쑥 솟아오르는 것은 견디지 못한다. 처음에는 내가 글을 빨리 쓰리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무슨 말을 어떤 순서로 해야할지, 마치 어머니에 관한진실 - 그 진실을 이루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모른다 - 을 유일하게 보여 줄 수 있는 어떤 이상적인 순서가 존재하기라도 하는 양 단어들을 고르고, 그것들을 어떻게 배열할지에 대해 궁리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고,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내게는 그러한 순서의 발견 말고는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 - P42

예의범절들(예의범절에 어긋나-어머니는 배움는 것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 관례에 대한 끊임없는 불안), 요즘 벌어지는 일들, 위대한 작가들의 이름, 최신상영작(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영화관에 가지 않았다),
공원의 꽃 이름들 ㅡ을 열망했다. 누군가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 말하면 호기심 때문에, 자신이 지식을향해 열려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어서 주의 깊게 들었다. 정신적으로 향상된다는 것, 그녀에게 그것은 우선 배우는 것이었고(그녀가 말하기를, <정신을 풍요롭게 해야 한단다>), 그 어떤 것도 지식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었다. 책이 그녀가 유일하게 조심스럽게 다루는 물건이었다. 책을 만지기 전에는 손을 씻었다. - P56

이 글을 쓰면서 때로는 <좋은〉 어머니를, 때로는<나쁜 어머니를 본다. 유년기의 가장 먼 곳에서부터올라오는 이 흔들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치 어떤 다른 어머니와 내가 아닌 어떤 다른 딸의 이야기인 것처럼 묘사하고 설명하려고 한다. 그래서 가능한 한 가장객관적인 방식으로 글을 써나가고 있지만, 내게 몇몇표현들은(〈그러다가 네게 불행한 일이 닥치면!〉) 추상적인 다른 표현들(예를 들자면 <육체와 성의 거부>)과는 다르게 객관적이 되지 않는다. 그것들을 떠올리는 순간, 나는 열여섯 살 때 꼭 그랬듯이 여전히 의기소침한 기분을 느끼고, 내 인생에 가장 많은 영향을미쳤던 그 여자와 할례 시술사가 클리토리스를 절제하는 동안 등 뒤로 어린 딸아이의 팔을 꼭 붙들고 있는 아프리카의 어머니들을 순간적으로 혼동한다. - P62

사람들은 내가 어머니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어머니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어머니가 살아 있는 시간과 장소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아간다는 느낌이다. 가끔씩 집에서 어머니가 소유했던 물건들과 맞닥뜨리는 일이벌어진다. 그저께는, 밧줄 제조 공장에서 기계 때문에휘어 버린 손가락에 끼었던 골무였다. 곧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의식이 밀려들며, 나는 어머니가 결코 다시는 존재할 수 없는 진짜 시간 속에 놓인다. 그러한 상황에서 책을 낸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어머니의 - P69

죽음이라는 의미 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미소를 지으며 <다음 번 책은 언제쯤 나올 건가요?> 묻는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싶은 욕구.


그녀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 해도 내가 결혼하지 않는 한 나는 여전히 그녀에게 속해 있었다. - P70

그녀는 늘 소통하고 싶은 욕구는 지니고 있었다. 언어 기능은 손상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아귀가 맞는 문장들. 발음은 정확하나, 그저 사물로부터 분리되어 상상의 세계에만 복종하는 단어들. 그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이 아닌 삶을 꾸며냈다. 파리에 가기도 했고, 금붕어 한 마리를 사기도 했고, 누군가 자신을 남편의 무덤으로 데려다 주기도 했다. 하지만 가끔씩 인식했다. 「내 상태가 돌이킬 수 없게 될까봐 두렵구나 혹은 기억했다. 나는 내 딸이 행복해지라고 뭐든지 했어.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걔가 더 행복한 건 아니었지.」 - P102

그녀는 또 다른 겨울을 났다. 부활절 다음 일요일에개나리를 안고 그녀를 보러 갔다. 날이 우중충하고 추웠다. 그녀는 다른 여자들과 함께 식당에 있었다.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녀는 내게 웃음을 보냈다. 방까지 휠체어를 밀고 갔다. 화병에 개나리를 가지런히 꽂았다. 곁에 앉아 초콜릿을 먹으라고 주었다. 병원 직원들이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갈색 털양말을 신기고, 삐쩍 마른 허벅지가 내보일 정도로 너무짧은 가운을 입혀 놨다. 손과 입을 씻겨 줬는데, 피부가 미지근했다. 어느 순간엔가 그녀가 개나리 가지들을 잡으려고 했다. 얼마 있다가 그녀를 식당에 데려다줬는데, 텔레비전에서는 자크 마르탱이 사회를 보는「팬들의 학교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키스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녀는 다음 날 죽음을 맞았다. - P106

지금은 2월 말이고, 비가 잦고, 날씨가 제법 온화하다. 오늘 저녁 장을 보고 난 뒤 노인요양원에 가봤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건물은 보다 환하고, 거의 안락해보였다. 어머니가 있던 방의 창문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어머니가 있던 곳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있구나.>처음으로 깜짝 놀라며 해본 생각이었다. 21세기의 언젠가, 내가 이곳이든 혹은 다른 곳에서든 냅킨을 폈다접었다 하면서 저녁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 그 여자들가운데 한 명이 되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 P107

몇 주 전, 고모 한 분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처음 사킬 때 공장 화장실에서 만남을 가졌다고 얘기해 줬다.
어머니가 세상을 뜬 지금, 그녀가 살아있을 때 그녀에 대해 내가 알았던 것 말고는 더 알고 싶은 것이 전혀 없다.
그녀의 이미지는 다시, 내가 유년기에 그녀에 대해서 갖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그 이미지가 되어 가고 있다. 내 위로 드리워진 커다랗고 희뿌연 그림자.


그녀는 시몬 드 보부아르보다 일주일 앞서 죽었다. 그녀는 받기보다는 아무에게나 주기를 좋아했다. - P109

글쓰기도 남에게 주는 하나의 방식이 아닐까.


이것은 전기도, 물론 소설도 아니다. 문학과 사회학, 그리고 역사 사이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리라. 어머니의 열망대로 내가 자리를 옮겨 온 이곳, 말과 관념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스스로의 외로움과 부자연스러움을 덜 느끼자면, 지배당하는 계층에서 태어났고 그 계층에서 탈출하기를 원했던 나의 어머니가역사가 되어야 했다. - P110

앞으로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여자가 된 지금의 나와 아이였던 과거의 나를 이어 줬던 것은 바로 어머니, 그녀의 말, 그녀의 손, 그녀의 몸짓, 그녀만의 웃는 방식, 걷는 방식이다. 나는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 고리를 잃어버렸다.


1986년 4월 20일 일요일~1987년 2월 26일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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