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정상에 세워진 산타마리아 성당 Iglesia de Santa Maria에 이르니 안개가걷히고 있었다. 코엘료가 쓴 《연금술사>에서 자아의 신화를 이루려는주인공 산티아고가 자신의 검을 찾게 되는 배경이 된 곳이기도 했다.
꿈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자아의 신화를 만들기 위한 그의 끝없는 여정속에 지금 내가 서 있다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차다.
간절한 마음으로 원하고 바란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진실을믿어야 한다고 코엘료는 말했다. 그것은 포기하지 말아야 하며, 우리의 - P293

삶이 궁극에는 모두 순금의 시간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음을 마음에새기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최선의 시간을 살아내야만한다.
그동안 카미노 길의 수많은 화살표를 따라 걸었다. 카미노를 걸어본사람들은 삶에도 이런 친절한 이정표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여 제나름의 이정표를 만들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모든 마음을 이기내며 나아가자! 새롭게 새겨진 믿음의 이정표를 따라 멈추지 말자!
하며.... - P294

에콰도르에서 NGO 활동을 하며 만난 두 친구. 에너지가 넘치는조아나와 달리 산드라는 무척이나 왜소하고 가냘프다. 그런 그녀가 남자친구와 이별 후 1년이 되어 가는데 아직 잊지 못해 힘들어하고 있었다.
조금 더 견뎌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녀가 말한다.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어려운 때를 아파하고있었다. 필연이든 우연이든 견디는 시간은 이기는 시간이다. 그 시간만큼세상을 살아내고 있으니까. 많이 울어도 도망가지 말고 스러지지 말아야한다. 비록 통증일지라도 깨끗이 비워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될것이니까. 그녀도 나도 모두 이겨 내야 할 삶의 한때를 살고 있었다.
산드라와 함께 하지 않았다면 지루하고 힘들었을지 모르겠다.
끈적끈적 발길을 잡는 숲길을 지나니 도심까지 이어진 도로길 저 멀리사리아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윽고 다다른 곳에서 마지막 알베르게를코앞에 두고 가파른 오르막 계단이 숨 가쁘다. 서로 파이팅을 외치며산드라와 조아나는 공용 알베르게의 마지막 베드를 차지했다. - P309

잠시 잊었던 그리움이 뒤범벅되어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다.
선생님이 신기한 듯 다가와 한솥단지에 무엇을 만들어 먹는지궁금해하면서도 권하는 음식을 극구 사양한다. 누가 봐도 이 민족의취향은 선뜻 소화하기 힘들 것 같다. 빨간 고추장에 마늘까지 들어갔으니선생님 취향은 정말 아니다. 오늘의 요리는 주제도 이름도 없는 그냥먹거리일 뿐이다. 그저 때우기 식사였음에도 내겐 최고의 밥상이었다.
그렇게 갈리시아의 어느 맑은 날, 그리운 밥을 먹는다. 따뜻하다. - P324

이른 새벽 어두운 길에도 사람들이 시끌벅적하다. 이제 평온한 새벽길도북적대고 있었다. 불과 며칠 전에는 한 시간을 기다려도 보이지 않던사람들이 이제 길 위에 넘쳐나고 있다. 때론 사람이 그립다가도 번거로워지기도 하고, 기운도 되지만 그로 인해 한없이 지쳐버릴 때도 있었다.
이제 막바지로 접어든 길에 많은 얼굴이 스친다. 그들은 지금도 묵묵히길을 걷고 있을까? 또 다른 길을 선택하고 떠났을까? 조금 더 많은사람들과 나누고 인연 되지 못함을 아쉬워하면서도 한편으로 지금의무탈한 시간이 그저 고맙다.
‘함부로 인연을 만들지 마라.‘
그것이 비단 사람뿐일까? 무엇을 얻게 되고 희망과 기쁨을 안고도우리는 그것을 잃을까 염려한다. 소유는 기쁨도 되지만 한편으론 마음의어려운 몫을 갖게 되기에 항상 쉽지 않았다. - P327

그 기록 중에 가장 많은 날을 함께 한 사람이 있다. 바로 훌리오선생님이다. 첫날 나바레테 성당 앞에서 손짓 발짓으로 시작된 우리의우연이 오늘에까지 이어졌다. 처음엔 말도 통하지 않았고, 몸의 언어도모자라 수첩에 그림도 숱하게 그렸다. 교직 생활을 오래한 탓인지선생님의 그림은 설득과 이해의 충분한 도구이기도 했지만, 남다른탁월한 솜씨를 갖고 있었다.
딱히 약속된 것도 없이 시작된 하루 이틀의 우연한 만남이, 어느새단짝 동무가 되고 난 후 매일 서로의 안부를 묻고 위안하며 안아주었다.
함께 하는 친구들과 있을 때는 누구보다 흥겨운 친구였고, 그를 통해스페인과 카미노를 더욱 깊게 이해하며 느낄 수 있었다.
하루하루 걸음을 떼듯 하나둘 카미노 말을 배워갔다. 무엇보다 심신의기운이 지쳐 쓰러졌을 때 진심으로 걱정하며 보듬어주었다. 그것은 결코잊을 수 없는 작은 빛으로 남았다. 그 귀한 마음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와 따뜻함을 나누는 인연의 경이로운 시간은 주어질 것이라믿는다.


이제 내일이면 산티아고에 도착한다. 많은 이들이 여정을 마치는 곳! - P345

집을 떠나온지 40여 일이 되어 간다. 그만큼 멀어진 현재의 시간에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세상은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다. 그런 생각을하자니 풋 하고 터지는 웃음과 함께 밀려오는 허무한 느낌이 우습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내 삶 속에도 나는 없었다.
동장의 잔고를 쌓으려 한 만큼 내 마음의 곳간도 채워야 했었다. 부재한삶. 그저 세상 속에 존재하기 위한 모양새를 꿰맞추려 분주했었다.
세상으로부터 역할과 직무를 부여받고 살아왔지만 정작 내 스스로 살을향한 뜨거운 응원가 한 번 부르지 못했다. 한없이 딱하고 안쓰러운 시간들이었다. - P378

위인전 같은 삶을 바란 것도 아니고, 인간의 굴레에서 엄청 벗어난오류를 범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삶은 내게 단호했는지. 그것은 세상속의 옷을 벗고 채워놓은 시간의 몫이었다. 스스로 행동하고 마주 선진실. 그 값진 가치의 진리가 턱없이 부족했다. 어찌 보면 그 모자람으로고통을 앓고 넘어지고 부서진 것이었다. 그러한 영혼의 통증이 내두려움의 실체인지도 모른다.
다시 길로 나서며 야릇한 긴장감이 밀려왔다. 이제 온전히 혼자가 된이 길을 참 멀리도 돌아왔다는 생각과 함께 행복한 긴장감이었다. 그동안 부재한 삶과의 외로운 동거는 어설프기 짝이 없었지만 넘어져야 일어서는 법을 알아가듯, 그때야말로 삶의 풍요로운 시력을 찾을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이었다. - P378

나는 헛걸음에 지쳐 이정표 없는 길 위에서 누군가 나타나기를 한없이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지나는 바람이 감미로웠다가 뜨끔하게두려움으로 나를 몰아세우고는 사라져버렸다. 길을 잃는 것이 크나큰과오는 아니다. 하지만 왜 길을 잃고 너는 여기에 있는지….
때론 이해하고 반성하고 견뎌야 하는 그때를 살아내야 한다. 그렇게잠시 겸손한 성찰의 시간이 지난 후 만나게 되는 지혜는 평화롭다. 나는이제 조금 더 배려하고 진실한 나와 남은 길을 걷고 싶다. 새삼 지금까지무던히 스스로를 믿고 단단히 끌어안아 준 날들이 고맙다.
길을 걸으며 매번 나를 괴롭힌 또 하나는 길 끝의 허전함을 어찌할까걱정했었다. 성공적 결과 지향의 길들여진 시간 속에서 목표의 부재는매번 공허하게 버거웠다. 그 조바심 가득한 마음을 어찌 메울 수 있을까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괜한 망설임이었다. - P381

920km. 그리 쉬운 걸음이 아니었다. 여정의 끝에서 지난 시간의숨결이 푸르게 살아나 안겨 왔다. 그 날들 속의 사람, 풍경, 괜한 슬픔,
오기와 탄식, 후회의 시선, 가슴속 축복의 시간과 함께 모든 것이 마음에풍요로웠다.
그 길 위의 조화로운 시간 속의 환희가 저기 깊고 눈부신 대서양 바다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은 내게 작지만 성취된 빛나는 선물이었다.
지나온 시간이 아름다운 영광으로 차오르며 일렁였다. 삶의 막다른곳에서 선택한 길을 걷고 이제 마침표를 찍는다. 바다 저 너머엔 삶을요동치게 할 무엇이 있을까? 대륙의 끝자락을 밟고 서니 설렘의 탄성과눈물이 가슴을 적신다. - P382

내가 만나고 싶은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길을 걸으며 나는 두렵고위태로웠다. 그렇게 차오르지 못한 허전함 속에 무던히 꺾이지 않는신념의 발자국을 내딛었다. 그리고 나로부터 시작된 내 안으로의여행에서 묵묵히 견디며 걷는 영혼의 순례자를 만났다. 더디게 참고,
끝없이 응원하고 위로하던 내 영혼의 순례자.
나는 오늘 삶의 물결 위에 카미노란 징검다리를 건넜다. 그곳에서울었던 아픔은 평화로움으로, 미숙한 시선은 더욱 인내하며 자라는지혜로 거듭나길 기도한다. 그리고 이제 선택된 일상에서 진실한 가치로꾸준히 격려할 것이다. 내 영혼에 새겨진 이 길을 기억하며.. - P382

나는 오늘 순례자입니다.
타인의 시선보다 내 안의 물음을기적을 바라기보다 기도를,
스포트라이트보다 등대를,
비겁함보다 인간적 눈물,
소유보다 존재를 잊지 않게 하소서이제사람을 읽고, 길을 읽고떳떳한 가치를 찾는 걸음과한 뼘의 마음이 자라게 하소서


김수연
그림이 좋았지만 열심히 그리지 못했다.
영혼 없는 생의 반나절이 지나며인간이 제 이름만으로 사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길을 나섰다. 자신과의 불편한 진실 속에마음 길의 도로시가 되어보기로 한 것이다.
아직 삶의 습작 시간은 충분히 남아 있을 것이다.
thankstocamino@faceb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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