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 기법의 효율성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약자, 특히 여성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오지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기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모르거나 혼란스러워한다. 타인의 기대와 자신의 원하는 것(want)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이러한 유동성은 인간의 본질에 가깝다. 인간 행동을 설명할 때, "내가 원해서 한 행동"은 극히 일부분이다. 더 논쟁적인 지점은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정하는 것은 실상 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고유한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정체성(동일시)과 욕망의 산물이다. 내가 원하는 것, 나의 선택이라고 해서 모두 수용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사회 정의와 충돌할 때는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일베‘ 같은 여성혐오 세력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성적 자기 결정권은 "내 몸은 나의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내 몸이 바로 나"라는뜻이다. 내가 내 몸의 ‘쓸모‘를 결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사회와 협 - P218

상하는 삶을 의미한다.
더구나 개인의 선택이나 의지는 사회 구조에서 자유롭지 않다.
사회와 분리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언어를통해 사고하는데, 그 언어가 이미 사회적 구성물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사회처럼 전 세계에서 가장 성 산업이 발달된 국가에서 성산업으로의 진입 장벽은 너무나 낮다. - P219

대개 폭력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고정관념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어떤 맥락에서 폭력인가 아닌가 여부가 아닐까. 회유는 폭력인가? 저항으로서 폭력은? 솔직히 필자는 폭력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폭력 없는 세상은 모든 인간이 ‘쿨‘하고 우아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약자는 분노하고 강자는 차분하기 쉽다. 그렇다면 약자만 폭력적인가? 이 논의는 대단히 복잡하다. 권력은 곧 폭력이라는 주장부터 권력이 있다면 굳이 폭력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논의까지. 다음의 주장을 살펴보자  - P220

"자기방어를 위한 폭력은 지성이다."(맬컴엑스) "혁명은 신적(divine) 폭력이다."(슬라보예 지젝 "폭력은 식민지인이 저항의 주체가 되는 과정이다." (프란츠 파농) "지배자의 평화는 민중에게 비상사태이다." (발터 베냐민) "법은 조직된 공적 폭력의 코드이다."(니코스 풀란차스) "나는 그들을 알고 있다는 식의 타자화(他者化)야말로 가장 큰 폭력이다."(도미야마 이치로) "삽입성교 자체가 폭력이다."(안드레아 드워킨) 모든 대상화, 즉 내가 정의하는 네가 너다. 너의 존재는 나에 의해 정해진다는 논리, 이것이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포괄적인 개념의 폭력이다.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군대나 경찰 같은 공권력을 ‘합법적 - P220

(normal) 폭력‘이라고 한다. 다른 의미에서 대표적인 ‘합법적 폭력‘
은 일상에 만연한, 그러나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인류학은 의례(ritual)로서 폭력을 연구한다. 이처럼 폭력 개념을 개인의 의지에 반한 것으로만 설명할 때 우리는 폭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으며,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피해 또한 여성의 관점에서 정교하게 드러낼 수 없다. 아내에 대한 폭력도 마찬가지이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성 산업보다 더 안전하다는 일상의 인식은 가족주의에 불과하다. 남편과 손님 중 누가 더 폭력적인가? 이것은 개별 사안의 문제이며, 구조적으로는 오히려 사적 영역인 가정에서의 폭력이 더 은폐되기 쉽다. 더구나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은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는 남성에게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다‘. - P221

성 노동론 주장은 사회적, 공적 임금 노동으로서성산업 종사여성들의 노동이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 주장 역시 당연하다. 문제는 이 담론의 효과이다. 성 판매가 노동이라는 엄연한 사실이 남성 중심 사회에서는 "여성에게는 그 일이 적합하다"는 의미로 읽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여성은 잠재적 ‘창녀‘로 간주된다. 이는 성매매 찬반 논쟁과 무관하다. 변화무쌍하게 질주하는 성매매와 성 산업의 성격을 현실에 더 가깝게 드러낼 수 있는 개념이 중요하다. - P222

복지는 원래 보편적인 시민의 권리이다. 소득이 높은사람은 세금을 더 많이 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적게 낸다. 이러한 조세 정의가 실현된 상태에서 모든 시민이 복지를 누리는 것이다. 부자도, 빈자도 복지 인프라를 활용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복지개념은 시혜적인 의미, 모든 이의 권리가 아니라 없는 사람만 국가가 배려해준다는 의식이 강하다(여기서 복지 대상이 되는 이들은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이에 대한 대안적(?) 개념으로 ‘진보 세력‘은 복지라는 단어에 ‘보편적‘이라는 형용사를 덧붙여서 복지를 동어 반복으로 만들었다. 이로 인해 또다시 불필요한 논쟁 구도가 형성되었다. ‘보편적 복지 대 선별적 시혜적 복지‘가 그것이다. 논의가 이렇게 전개되면, 대개는 선별적 복지가 더 합리적이라는 여론이 만들어지기 쉽고, 이는 보수 진영의 ‘승리‘로 귀결된다. 시민권으로서 복지는 부자와 빈자, 사회 구조의 가해자와 피해자, 시혜자와 수혜자를분리할 수 없는 당위다. ‘가정 경제‘가 ‘나라 경제‘의 토대라면, 학교급식은 복지 이슈가 아니라 단지 일상적인 경제활동인 것이다. - P223

이 글은 ‘시간과 공간‘, ‘마음과 몸‘, ‘문화와 자연의 이분법이라는 근대 서구 남성 중심적 사유가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정의하는방식이 될 때, 여성의 몸을 공간으로 간주하는 성별화가 성폭력의발생 원인이 됨을 논하고자 한다. 또한 몸/마음(이성, 정신……), 공간/시간의 이분법을 비판하는 관점에서 그간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 반대 운동의 중요한 논리적 기반이었던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 주장을 문제로 삼고자 한다.
여성이 남성 주체에 의해 타자화되거나 대상화될 때 여성의 몸은공간화된다. 이때 공간 개념은 사회적 공간이 아니라 몸에 기반하 - P236

지 않은 본질주의적인(disembodiment)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 인식이 젠더 논리와 결합하면, 여성의 몸은 남성 문화를 담는 그릇으로 간주된다. 전쟁, 제노사이드(genocide, 인종 청소) 자체가 젠더적현상인데, 특히 최근 국제 사회에서 심각한 인권 이슈로 등장하는제노사이드 상황에서 여성에 대한 집단 성폭력은 여성의 몸이 인종화되고 성애화된 공간으로 영토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성에대한 집단 성폭력이 제노사이드의 주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성폭력을 공간 문제와 연결하여 살펴보면, 공간과 젠더는 상호 연고 교직(交織, interweave)되어 서로를 생산함을 알 수 있다. 젠더가개입된 ‘공간 생산‘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일터‘와 ‘집‘ 분리 같은성별에 따른 공간 분리에 대한 비판이 가능할 뿐 아니라, 성폭력을근절하기 위해서는 젠더 질서의 변화와 몸, 공간에 대한 사유의 변화가 동시에 필요함을 알 수 있다. - P237

남성의 폭력을 기억하는 여성의 몸은주체의 의지대로 이동하지 못한다. 공간지각 능력은 개인이 세계와 만나는 방식의 능동성과 관련이 있다. 인간이 존재한다 혹은 살아 있다는 근거는, 인간의 몸이 공간의 어느 구체적인 장소에 실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간이 공간을 인식하는 주체로부터 객관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공간이 인식 주체의 몸을 기준으로 삼아서만 특정하게 인식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몸이 없다면 공간도 인식되지 않는다. 폭력으로 인해 몸의 주체성을 빼앗긴 여성들은 자신의 육체가 머물고 있는 공간과 자기의 관계, 즉 공간에서 자기몸의 위치를 파악하기 힘들게 된다(공간지각력 상실은 여성에 대한폭력 피해자뿐만 아니라 고문 등 국가폭력의 피해자에게서도 공통적으로발견된다). - P240

성폭력 발생 원인은 물론이고 이후 투쟁은 피해 여성 개인의 사회 의식, 자원, 장애 여부, 인종, 사회적 관계망, 학력, 계급, 외모,
나이, 건강 상태, 비혼 여부, 지역 같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한 명의 여성이 안전하지 않다면 모든 여성은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은여성 운동으로서 성폭력 운동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말이지만, 여성 경험의 공통성을 증명해야 하는 정치적 부담이 있을 뿐 아니라실제로 여성의 현실은 같지 않다. 김은실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모든 여성이 일정 정도는 젠더 연속선(continuum)에서 살아간다. 즉 언제든지 여성 한 명의 피해가 다른 여성의 피해로 대치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한 여성의 문제는 모든 여성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연속선이 항상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처지와 맥락이 다른 여성들의 젠더 문제를 같은 방식으로 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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