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더욱 어렵고 두려운 일이 되었다. 현실에 들고 나는 과정(in and out), 즉 인식 과정이 격렬해졌고 그만큼 언어화도 힘들어졌다. 근본적으로는 나의 무능력 탓이지만, 예전과 달리 이제는남성 문화뿐만 아니라 동료, 여성주의자, 여성들과 내 의견이 다른경우가 많아졌다.
분명 페미니즘은 대중화되었다. 그러나 한계 없는 자본주의, 인류세 시대의 한국 사회 페미니즘에 대한 억압과 금기, 반발은 그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이 삶의 ‘기본값‘이 된 반면, 그만큼 남성 문화의 저항도 심해졌다. 이 문제의 양상은 상당히 복잡해 보인다.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의 의미는 이전과 달라졌고, 남성 문화는 그저 당황하고 있다. 다시 말해페미니즘의 대중화에 비해 한국의 여성주의 담론의 발전은 더디고,
일부 여성들은 기본적인 사회 정의에 반하는 언설(예를 들어 성소수자나 난민에 대한 적대와 탄압을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 P7

있다. 한편 남성 문화의 젠더 문해력은 ‘혐오‘ 수준에 가깝다. 지난30여 년간 여성 운동이 추구해 온 젠더 관련 법들은 그 시행과 결과 모두 극히 불안정하다. 금내 몸은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기에 역부족인 듯싶다. 매일매일이 놀라움의 연속이다. 한국 사회에서 젠더는 크게 변화했지만 그변화를 살아내야 하는 ‘우리‘는 준비가 부족한 듯하다. 최소한 나는그렇다. 한편 당연하게도 30대의 젠더와 50대의 젠더는 다를 수밖에없는데, 이 차이를 두고 사회와 타인과 소통하기도 쉽지 않다.
누구나 그렇듯 자기소개는 어려운 일이다. 나는 안목 있는 독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 군 ‘위안부‘ 문제를 계속 공부하는 연구자, 남성성과 여성성이 모두 자원으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를 희망하는 사람이고 싶다. 이 중 맨 마지막은 앞의 두 가지에 비해 나의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다. - P8

<페미니즘의 도전>이 사회 정의로서 여성주의를 소개했다면, 이책은 변화된 여성주의 정체성의 정치 위주의 담론을 분석한다. 특히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변화해 온 한국 사회의 성 문화(섹슈얼리티, sexuality)를 살펴보고 더불어 기존의 논쟁 구도에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개인을 보호하는 공동체나 사회구조가 작동하지 않고, ‘각자 알아서 살아야 하는 통치 방식을 가리킨다. 이때 개인들은 생존하기 위해 자신이 지닌 자원을 총동원하는데, 부모의 자원은 물론이거니와 나이, 건강, 젠더, 식사량(먹방 유튜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망라한다. 특히 여성성은 기존에는 차별과 억압의 ‘원인‘이었지만, 지금 일부 여성에게는 자원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가속화할 것이다. - P9

특히 여성이 자신의 성을 자원으로 삼기 위한 ‘자기 결정‘을 하는 경우에는 매우 논쟁적인 이슈가 된다. 다시 말해 성적 자기 결정권은 성폭력처럼 성적 자기 결정을 침해하는 사안에 대해서도 주장할 수 있지만 성매매, 다이어트, 외모 관리, 여아 낙태처럼 여성이자신의 의지로 (대개 남성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몸을 자원, 투자, ‘처벌‘, ‘학대‘의 대상으로 삼을 권리로도 주장할 수 있게된다. 그래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내 몸은 나의 것이 아니라 "내 몸이 나"이다. 내가 내 몸의 ‘쓸모‘를 결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사회와 협상하는 삶을 의미한다. - P18

이 책이 쉽게 읽히지 않는, 논쟁의 불씨가 되는 텍스트이기를 바란다. 여성학, 여성 운동은 모든 담론과 마찬가지로 언어의 경합을통한 생산적인 갈등 없이는 진전도 없다. 한국의 여성주의가 나아감 없이 여성의 생존의 목소리가 왜곡되어 미소지니의 타깃이 되지않기를 희망한다. 나는 여성의 공부, 다른 언어, 남성 사회가 못 알아듣는 언어가 최고의 저항이라고 생각한다. 남성 사회의 질문에답하지 말고, 그들이 못 알아듣는 새로운 언어로 말하자. - P20

사회적 약자의 피해와 고통이 저절로 규명된다면 이미 유토피아이고, 사회 운동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피해자 입장에서 피해가자명한 사실로 인정되고, 가해자가 ‘내가 받은 상처 이상으로 처벌받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피해와 가해 여부는 피해자가 아니라 사회가 결정한다. 문제는 성 중립적(gender neutral) 사회는 없다는 것이고, 이는 곧 여성에 대한 성차별을 의미한다.
피해는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경합적 가치다. 즉 피해를 당했다고해서 곧바로 피해자가 되는 게 아니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지만, 모두 피해자로 인정받는 건 아니다. 피해자는 투쟁으로 획득되는 지위‘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피해자의 저항은 평생에 - P24

걸친 과정일 수도 있고, 생전에 해결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가해자가 피해자라고 나서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제주 4·3 사건도 그랬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도 그랬다. 일상적으로는 여성이 겪는성폭력이 대표적이다.
성폭력 실태 조사를 해보면 성폭력 범죄는 범인이 아는 사람인 경우가 70퍼센트를 넘고, 범행 장소도 가해자나 피해자의 집인 비율이가장 높다. 증인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검찰과 경찰은 피해자에게 피해 증명을 떠맡긴다. 우리 사회에서 성범죄는 여전히 피해자나 여성 단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피해자가 사법 기관에서 그리고 사회적으로 취조받는 현실에도 변화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구호가 피해자 중심주의다. 사기나 절도 범죄에는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당연하기 때문이다. 어느 범죄나신고가 접수되면 피해자 말부터 듣는 게 상식이다. - P25

오드리 로드는 "주인의 도구로 주인의 집을 부술 수 없다"는 말로 이 곤경을 정확히 해석했다. 남성 문화는 남성들의 주관성을 보편성, 객관성, 과학, 전통, 국민의 뜻, 대의 따위로 포장해 왔다. 이에 대항한 여성주의 지식은 남성의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재구성하고 해체하려고 노력해 왔다. 남성도 마찬가지지만 여성의경험도 객관적이지 않다. 여성들 간에 이해의 충돌이 있을 때 어떤여성의 경험을 여성주의 지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모든 지식은 맥락에서 발생하는 상황적 지식 (situated knowledge)이고 당파적/부 - P26

분적(partial)이다.
인식자의 위치도 유동적이어서 우리는 이를 유목적 주체, 과정적 주체라고 부른다. 남성 중심적 보편성이 인식론적 폭력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피해자 중심주의가 그 대응 방법이 될 수는 없다. 피해와 가해는 논쟁과 경합의 산물이며, 이 과정에서 여성주의 지식도 발전한다. 여성주의 지식이 모든 학문 분야에서 ‘최첨단‘의 질문과 문제의식으로 지평을 확장할 수 있는 힘도 상황에 맞는(contextual) 사유의 힘 때문이다. - P27

성차별은 여전하다. 남녀 간 임금 격차는 여전하다 (100 대 60).
다만 변화하는 상황에 남녀가 다르게 대응함으로써, 특히 하층 계급 남성들이 자기만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김중배와 심순애 스토리로 대변되는 남성 심리, 여자는 돈 많은 남자를 좋아한다는 생각은 통념-이데올로기-자격지심의 삼중합작품이다. 여성들은 남편이 돈벌이가 시원찮아도, 가사나 육아에 적극적이고 여성을 인격적으로 대하면 얼마든지 자신이 생계를 책임질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사회적 자원과 경제력이 없을수록 열등감 때문에 시간많은 남성이 더 가사 노동을 안 한다는 것이다. 남성의 이런 상태는 여성이 결혼을 기피하는 가장 결정적 이유이자 성차별 현실을요약한다. 우리 사회에서 가사 노동을 얼마나 천시하는지(솥뚜껑운전‘, ‘집에 가서 애나 봐라‘.......), 그리고 가사 노동 전담 여성을 얼마나 비하하는지 모르는 여성은 없다. 남성 문화는 가사 노동을 루저의 상징으로 삼는다. 여성들은 이 구조를 간파했다. 더욱이 ‘외모와 능력‘을 모두 갖춘 여성들이 많아졌지만, 남성의 의식은 그대로이고 남성의 입장에서는 배우자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 P35

아예 맥락을 벗어난 기이한 일도 있다. 2022년 한국의 대통령 윤석열 부부가 동아시아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캄보디아를 방문한때 일이다. 김건희 여사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선천성 심장질환을앓고 있는 14살 소년의 집을 직접 찾아 아이를 안고 사진을 찍었다. 정상 배우자들의 앙코르와트 방문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대신비공개로 개별 일정을 진행한 것이었다. ‘캄보디아의 이미지)‘에 동일시하는 지구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실제 캄보디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분노했다. 동시에 이는 평범한 시민의 고달픈일상이기도 하다. 타인이나 집단이 나를 마음대로 재현(묘사, 평가,
규정)할 때는 어떻게 대응하며 살아야 할까.
대통령의 배우자는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가 아니다. ‘가난한나라‘에서 국제적인 공식 회의가 있어서 대통령을 따라간 배우자가그 나라 빈곤 지역의 심장병 아동을 찾아가, 조명을 설치했다는 루머는 뒤로하더라도, 사진을 찍고 배포하는 행위는 적절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폭력이다. 전쟁만 폭력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 불가피한 전쟁도 있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타인이나 집단 전체를 이용하는 행위는 가장 뿌리 깊은 폭력이다 - P43

대상과 대상화는 다르다. 누구나 대상일 수 있다. 대상화는 ‘나‘ 를 설명하기 위해 타인을 동원한다. 이성애의 정상성은 동성애에대한 낙인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고, 결혼 제도의 정상성은 이혼과저출산이 문제라는 사고방식이 없다면 작동할 수 없다. 흰 피부의우월성은 흑인의 존재를 전제한다. 이것이 사고방식으로서 ‘미소지니다.
카메라와 권총은 동반 발전했다. 사진을 ‘찍다‘와 총을 쏘다‘의 스펠링이 모두 ‘shoot‘로 같은 이유이다. 김건희의 성모 마리아, 오드리 헵번 흉내 내기는 ‘캄보디아‘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제국주의는 물자와 노동력을 착취하는 시스템만이 아니다. 그것을 당연하다고 믿게 만드는 장치까지 포함한다.
제국주의는 불쌍한 어린이를 이용해서 관용을 선전한다. 제국주의라는 용어가 불편하다면, 순한 말로 바꿀 수 있다. 주인공병,
‘관종‘, 돋보이고 싶은 욕심, "돋보이고 싶다"도 그 행동에 비한다면 너무 좋은 표현이다. 타인의 생명과 고통을 볼모로 삼아 ‘셀럽(celebrity)‘이 되고 돈을 버는 이유가 겨우 돋보이고 싶은 욕망 때문일까. - P46

미소지니는 대통령조차 ‘여성‘으로 격하시킬 수 있는 남성 문화를 말한다. 미소지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실정(失政)을 벗은 몸으로 공격한 경우이다. 당시 나는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그의 공적 영역의 지위가 성 역할로서 여성으로 환원되는 문화현상에 반대했다. 반면 김건희 여사는 경제력을 기반으로 해서 가부장제가 원하는 규범적 여성성을 적극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자원을 확보해 왔다. 외모와 교양이 그것인데, 외모보다 ‘교양 확보‘는좀 더 복잡하다. 미술계에서 일하거나 대학원 생활을 조금이라도해본 이들은 그의 경력이 모두 위조라는 것을 안다. 자신만 모르는듯하다. 그러니 "돋보이고 싶은 욕심" "(기자에게 당신도 털면 안나올 줄 아느냐"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 P49

20~30대를 중심으로 한 ‘젠더 갈등‘이 왜 중장년층에서는 그만큼 격렬하지 않을까. 갈등은 상호 대칭적인 지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왜 ‘차별‘이 ‘갈등‘으로 재현되는가. 정치권은 마치 여성 유권자는 없는 것처럼, 일부 남성의 눈치를 보면서 ‘남성을 위한정책‘도 없으면서 그들에게 아부하는 데 정신이 없다. 이런 상황 자체가 남성 중심의 성차별 사회라는 증거다. 선거에서든 일상에서든힘 있는 집단에는 누구도 함부로 하지 않는다. 특히 정치인은 여성은 무시해도 대세에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선거 때조차 여성 인권을 누가 더 멀리 내팽개치나 경쟁하고 있다. 20~30대 청년의 구조적 어려움에 대응하기보다는 목소리 큰 편에서 갈등을 부추기고 선거에 이용하는 것이 ‘용감하고 책임감 있는 남성어른‘의 태도인가? 성차별을 젠더 갈등으로 둔갑시키는 이들의 ‘능력‘이 선거 전략인지 무지(ignore)인지 모르겠지만, 선거관리위원회라도 나서서 "여성도 유권자"라고 그들에게 고지해야 할 지경으로보인다. - P53

우리는 2인 1조의 사업장에 배치된 19세 청년들이 혼자 일하다 사망하는 현실을 무척 자주 목격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사라지고없는 현실이 뉴스가 되고 있다.
가장 탈정치적이고 비윤리적인 인식의 사례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다음과 같은 발언이다. "그래도 예전(조선시대? 1980년대)보다는 나아졌다." 우리는 과거를 살아본 적이 없다. 과거를 어떻게 아는가? 사회적 약자는 언제나 과거에 살아야 하가? 심지어 "나아졌다"는 주장은 누구의 기준인가. 장애인의 지위는 당대 비장애인의지위와 비교해야 한다. 지금 한국 사회는 서로 고통을 경쟁하면서약자에게 "당신들, 예전보다 나아졌잖아!"라고 분노하고 있다. 그핵심에 ‘이대남‘ 이슈가 자리 잡고 있다. 물론 20대 남성 내부의 인식도 같지 않다. 우리는 ‘온라인‘을 너무 믿는다. - P56

나는 성매매가 필요악인지 아닌지에 관심이 없다. 질문은 한 가지 왜 언제나 팔거나 팔리는 사람은 여성이고 사는 사람은 남성인가이다. 성폭력도 마찬가지다. 가해자가 여성인 경우는 거의 없다.
만취한 가해 남편은 아무리 필름이 끊겨도 아무나 때리지 않는다. 꼭 집에 와서 아내만 구타한다.
1992년 10월 28일 기지촌 성 산업에 종사하던 여성 윤금이(당시26세)가 미군 병사 케네스 마클(당시 20세)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이 사건은 처음도 끝도 아니었다. 해방 후 미군이 주둔하자마자 시작되었으며 ‘윤금이 이후‘ 격렬했던 여성 운동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희생은 멈추지 않으며 알려지지도 않는다. 여성에게는모든 곳이 ‘강남역‘이다. 나의 바람은 여성폭력 근절이라기‘보다‘
피해가 드러나는 것이다. - P66

남성에게 성(섹슈얼리티)은 삶의 ‘유용한 도구‘이다. 갑이 남성이고 올이 여성일 때, 권력은 성폭력으로 행사된다. 스포츠 기대주였던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코치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낙태한 후 선수 생활을 포기한 사례만큼이나, 여자 선수를 지도하는 남성들이룸살롱에 갈 필요가 없다는 ‘자랑‘이 끔찍한 이유이다.
간혹 여론은 가해자들에게 비교적 ‘고른‘ 분노를 보이거나 가해자를 옹호하지만, 피해자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다. 판단 기준이 가해자의 폭력이 아니라 피해자의 대응에 있기 때문이다. 사회는 ‘완벽한 피해자의 성폭력 피해만 인정한다. 완벽한 인간도 없는데, 완벽한 피해자가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은 잣대를 유독 여성에게만요구한다. 피해 여성은 끊임없이 사건 자체는 물론이고 자신의 모든 인생과 과거사를 검열당하고 변명해야 하는 상황과 마주하게 - P69

된다. 남성도 상사에게 구타당한 다음 날 ‘웃으며‘ 출근하고, 자기를 때린 사람을 위해 맛집을 검색한다. 이것이 피해자가 동의한 증거인가?
성폭력 범죄자가 강력한 처벌을 받기를 바라지만 그럴 필요도없다. 여성들은 합리적인 처벌을 바란다. 한국은 성폭력 관련 법이가장 발달한 나라 중 하나이지만, 실제 법률 서비스 전 과정은 피해자에게 유리하지 않다. 대단히 지난한 과정이다. 미국에서는 몇백 년 형에 처해지는 범죄가 한국에서는 무죄 방면되는 경우가 많다. 온라인 성폭력 범죄자 손정우의 경우가 그것이다. 2018년 미국체조 국가대표팀 주치의이자 미시간주립대 의대 교수였던 래리 나사르는 여자 선수들 150여 명의 고발로 360년 형에 처해졌다. - P70

2018년에 방영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남자 주인공은 구한말 노비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한다. 그가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어디서 왔느냐?(Where are you from?)"였다. 이방인인 그는이 질문이 고통스럽다. 이런 종류의 질문은 ‘모르는 것을 묻는다‘는평범한 의미가 아니다. "여기는 내 땅인데, 너는 어디서 왔니?"라는뜻이다. 익숙한 논리다. 어린 시절 어깨동무를 하고 편을 갈라 주고받던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이 노래가 시작이었을까.
공부는 질문하는 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혹은 공부하다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선생님에게 물어 도움을 요청하는 노동이다. 이외의 모든 질문은 권력 행위다. 타인에 대한 물음은 호기심에서부터 신문(訊間), 힐난, 비난까지 다양하다. 묻는 자의 정체나 위치는드러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말 한마디로도 묻는 자의 교양, - P78

인격, 무지, 태도를 알 수 있다. "어쩌다 동성애자가 되었나요?"
"자네는 어느 대학을 나왔나?" "왜 아직도 취직을 못했나?" "여자가 왜 이런 일을?" 이런 질문은 질문이 아니라 인권 침해이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 우리는 수시로 이런 질문에 노출되기도하고, 자신도 모르게 저지르기도 한다. 나는 어디에, 상대는 어디에서 있는지, 내가 하는 질문의 의미는 무엇인지……. 이러 질문들이 평생의 화두가 되어야 한다.
편견이 담긴 고착된 질문은 폭력이다. 가장 괴로운 질문은 답이정해져 있는 질문일 것이다. 고문이 대표적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폭력적인 질문은, 가해자(피의자)에게 해야 할질문을 피해자에게 하는 경우다. 성폭력 범죄가 그것이다. 조사를가장한 피해자 비난 여론 재판...... 유아 성폭력이거나 가해자가여러 명인 사건을 제외하곤(?) 피해자가 질문에 시달린다. 피해자는 목숨을 걸고 저항했는지, 거절이 얼마나 단호하고 절절했는지,
특히 자신이 얼마나 피해자다웠는지 최대한 증명해야 한다. - P79

피해자가 폭력적인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당사자마다 다르며, 제3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그리고 피해자는 이 질문에 대답할 의무가 없다.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사회 운동은 생각의 틀을 바꾸는 것이다. 성별 권력관계는 더욱 그렇다. 가해자에게 질문하는 반(反)성폭력 운동을 제안한다.
우리는 가해자에게 물어야 한다. 왜 여성을 때렸습니까? 아내를
‘교육시킨다‘면서, 교육만 시키지 왜 죽였습니까? 안 때린다고 공 - P80

증까지 했으면서 왜 또 때렸습니까? 술을 마셔서 때린 게 아니라 때리기 위해 술을 마신 거 아닌가요? 술을 마시고도 아내를 때리지않는 남성이 훨씬 많습니다!
왜 비서에게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키고 돈을 지불하지 않았습니까? 왜 안마를 요구했습니까? 왜 수시로 초과 노동을 시켰습니까? 왜 해외 업무에 동반했습니까? 왜 평소엔 여성 인권 운운했으면서, 이중적 태도를 보였습니까? 왜 자신의 성폭력 재판에 부인이 나왔죠? 본인이 생각하는 성폭력과 성관계, 사랑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피해자와 사귀지도 않았으면서 왜 불륜이라고 거짓말했습니까?
권력관계에서 발생한 폭력과 관련된 질문 내용은 그 자체로 가해자의 시각에서 구성한 것이다. 위력 행사가 자연스럽다고 믿는사회에서는 가해자의 행동이 궁금하지 않다. 대신 피해자의 대응이의문시될 뿐이다. 피해와 피해 이후의 심문, 약자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법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는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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