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45년의 프레스코화와 역사람 자아의 탐구, 고독이란 시를 썼던 스무 살의 일시 정지된 순간들의 자아를 동시에 만나게 할 수 있을까, 등등. 그녀의 가장 큰 고민은 ≪≫와 ≪그녀> 사이의 선택이다. ≪나 안에는 너무도 확고부동한 것들, 편협하고 숨 막히는무언가가 있고, ≪그녀 > 안에는 너무 많은 외재성과 거리감이 있다. 아직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녀가 생각하는 자신의 책의 모습과 그 책이 남겨야 하는 것은 얼굴 위로 흐르는빛과 그림자이며, 12살에 바람과함께사라지다와 그 후에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최근에 삶과 운명을 읽으며 그녀가 간직한 느낌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에 이르는 방법을아직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녀는 방법이 아니라면 깨달음,
적어도 마르셀 프루스트의 차에 적신 마들렌처럼 우연이 가져다주는 어떤 신호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녀를 꿈꾸게 만드는 것은, 새 옷을 사게 하고, 편지, 전화, 음성사서함의 메시지를 기다리게 하는 것은, 이 책이나 미래보다는, 다음에 만날 남자일 것이다. - P225

다음 해에 퇴직을 앞둔 그녀는 수업, 책에 관한 메모 그리고 수업을 준비할 때 쓰던 자료들을 이미 버리고 있다. 마치글쓰기를 위해 깨끗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처럼, 더는 그것을 뿌리치는 데 내세울 만한 이유를 대지 못하면서, 자신의삶을 포장하는 것들을 벗어던진다. 그녀는 물건을 정리하던중에 우연히 앙리 브륄라르의 삶의 초반에 나오는 문장 ≪나는 곧 오십 세가 되니, 이제야말로 나를 알아야 할 때다≫을 보게 된다. 이 문장을 베껴 썼을 때, 그녀는 서른일곱 살이었다 - 이제는 스탕달을 따라잡고도 남는 나이가 됐다. - P257

전차 위의 옐친에 대해서도 사실 특별히 기억하는 게 없다. 95년 12월의 안개 낀 밤들, 어쩌면 세기의 마지막이었던, 멀어진 대파업만을 기억하고 있을 뿐 덧붙이자면 알마 다리에서 자동차 사고로 죽은 아름달고 불행한 공주 다이애나와, 빌 클린턴의 정액이 묻은 모니카 르윈스키의 청색 드레스, 그 뒤로 모든 월드컵 경기들이 남았다. 사람들은 기다림의 평일들을, 경기마다 피자 판매원들이 누비고 다녔던 조용한 도시에서 티브이 앞에 모여앉았던 것을, 함성과 흥분 속에 이겼다는 행복으로 함께 죽을 수도 있었던 - 단 그 반대일 경우는 죽음이지만- 그 일요일, 그 순간을 다시 살고 싶어 했으며 하나의 바람에, 하나의 장면에, 하나뿐인 이야기에 한껏 빠져들었던 때를 되찾고 싶어 했다 - 지하철 벽에 에비앙, 지단의 얼굴이 나오는리더프라이스의 광고가 있던 빛나는 날들은 하찮은 유물이었다.
우리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P259

세기의 도래가 있고 몇 개월 후, 우리 주변인들은 아무도 타지 않았던 부자들의 비행기가 고네스에서 박살이 났고 기억에서 금세 잊혀지면서 드골 시대에 합류하게 됐다. 차가운 남자, 헤아릴 수 없는 야심가, 이번에는 발음하기 쉬운 이름인 푸틴이 주정뱅이 옐친의 후임자가 됐다. 그는 <변소에 숨은 체첸인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소탕하겠다≫고 약속했다. 러시아는 이제 희망도 두려움도 아닌, 영원한 침통함만을 줄뿐이었다. 우리들의 상상 속에서 러시아는 물러났다. 지구상에 가지를 뻗어 나가는 거대한 나무 같은 미국인들이, 우리의 뜻과는 상관없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들은 교훈적인 말들과 주주들 그리고 연기금, 지구오염과 우리들의 치즈에 대한 거부감으로 우리를 짜증나게 만들었다. 무기와 경제를 토대로 한 그들의 우월성의 근본적인 빈곤을가리키기 위해, 우리는 보통 ≪교만≫이라는 단어로 그들을 정의했다. 이념은 없고 기름과 달러만 있는 정복자들. 그들 - P261

의 가치와 그들의 원칙은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 - 그들을제외한 어느 누구에게도 희망을 주지 못했고, 우리는 《다른 세상》을 꿈꿨다.


단연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 누군가 그 소식을 귀에 속삭이자 길을 잃은 아이처럼 아무 반응 없었던 조지 W. 부시의 영상이 보여 주듯이. 아무 생각도 어떤 느낌도 없이, 단지 티브이 화면을 보고 또 봤다. 9월, 그날 오후, 맨해튼의 쌍둥이 빌딩이 하나씩 무너졌고 - 뉴욕은 아침이었지만 우리에게는 늘 오후로 남아있다 - 그 장면을 너무 많이 본 나머지 그것이 현실이 된 것만 같았다. 우리는 쇼크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고, 핸드폰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소식을나눴다. - P262

담화, 분석들이 쏟아졌다. 사건의 본질이 흐려졌다. ≪우리는 모두 미국인이다>라는 르몽드지의 선언문에 반발했다. 세상의 모습이 갑자기 완전히 뒤바뀌었다. 반계몽주의 나라에서 온 커터 칼만으로 무장한 광신도 몇 명이 두 시간만에 미국의 힘의 상징을 베어버렸다. 이 경이로운 업적은 환상적이었다. 무적의 미국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후회했다. - P262

착각에 대한 복수였다. 우리는 또 다른 9월 11일, 아예덴 암살 사건을 기억한다. 무언가 대가를 치렀다. 이제 연민을 가지고 결과에 대해 생각해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중요했던것은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 의해 혹은 무엇에 의해 쌍둥이빌딩의 습격을 듣게 됐는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 소식을당일에 듣지 못했던 극소수의 사람들은 세상과 동떨어져 있었던 듯한 느낌을 간직하게 될 것이다. - P263

요양원에서는 늙은 여자들의 초점 없는 눈앞에 단 한 번도 필요성을 의심해 본 적이 없는, 언젠가 갖게 될 일도 전혀없는 기계와 상품들의 광고 쇼가 끊임없이 펼쳐졌다.


우리는 물건들의 시간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기다림과 등장 사이, 결여와 획득 사이에 오랫동안 유지됐던 균형이 깨졌다. 신상품들은 더는 비난도 열광도 불러일으키지못했고, 상상의 세계를 넘나들지도 않았다. 그것은 삶의 정상적인 틀이었다. 이미 발전의 개념이 거의 사라져 버렸듯이 어쩌면 새로운 것이라는 개념조차 사라질 것이다. 모든것의 무한한 가능성이 어렴풋이 보였다. 죽은 이의 심장, 간, 신장, 눈, 피부가 산 사람에게 넘겨졌고, 자궁의 난자가 타인에게로, 60대의 여성들이 출산하게 됐다. 리프팅은 얼굴의 시간을 멈췄다. - P276

뒤섞인 개념 속에서 자신만을 위한 문장, 침묵 속에서 자기 자신에게 외치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문장을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인터넷에 키워드 하나를 입력하기만 하면 수천 개의 ≪사이트>가 밀려들었고, 흥미로운 보물찾기 놀이 속에서 문장의 일부, 텍스트의 단편을 내주면서 다른 것들을 향하도록 우리를 빨아들였으며, 우리가 찾지 않는 것들에 대한 발견이 끝도 없이 재실행됐다. 새롭고 거친 언어로 적힌 블로그에 쏟아진 다양한 관점들 속에서 지식의 전부를 독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P278

사진관 삼각대 위에 놓여 있던 카메라에서 침실의 디지털카메라로, 지난 세기의 어두움이 조금씩 떠밀려 완전히 사라져 가고 있었다. 우리는 미리 부활했다.


우리 안에는 세상에 대한 어렴풋한, 거대한 기억이 있었다. 우리는 그 모든 것 중에서 말과 디테일, 이름, 조르주 페렉의 <나는 기억한다> 다음에 이어지는 말들만을 간직했다. 엉팡 남작, 피코레트, 베레고부아의 양말, 드바케, 포클랜드 전쟁, 아침식사용 벤코. 그렇지만 그것들은 진짜 기억이 아니었다. 그 시절에 새겨진 어떤 것들을 계속 기억이라고 불러왔던 것일 뿐.


기억과 망각의 과정은 미디어에 맡겨졌다. 미디어는 할수 있는 모든 것을 기념했다. 아베 피에르의 호소, 미테랑과 - P281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죽음, 전쟁의 시작과 끝, 달 착륙, 체르노빌, 9월 11일, 법률, 재판의 시작, 범죄, 매일이 기념일이었다. 예예 스타일, 바바쿨, 에이즈의 해로 시간을 재단했고,
드골, 미테랑, 68년, 베이비 붐 세대와 사람들을 디지털로 나눠 놓았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이었고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리들의 세월은 거기에 없었다.


우리는 변화했다. 우리는 우리들의 새로운 형체를 알지못했다.


한밤중에 고개를 들면 수십억 인구가 우글거리는, 광대함이 느껴지는 세상 위에 달이 멀거니 빛났다. 지구 전체에서 의식이 팽창하여 다른 은하계를 향해 갔다. 무한대는 상상의 것이기를 멈췄고, 그렇기 때문에 언젠가 죽는다고 말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 됐다.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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