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나는 교회 안에 들어가 보곤 했다. 나는 예술 작품을 보고 싶기 때문이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내가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지 못했다. 여행 안내책자에 나와 있거나 역사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교회들을 일부러 찾아다니지는 않았으며,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았다. 사실 그 생각자체가 싫었다. 내 관심을 끄는 것은 그 안에 있는 것이지 그 안에서진행되는 일들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우연히 교회를 발견하고 충동적으로 안으로 들어가곤 했다.
일단 교회 안에 들어서면 건축물 자체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건축 관련 용어를 알고 있기는 하지만 클리어스토리*와 신랑(身廊)에 대해서 논문을 쓴 적도 있다.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으면 그것을 바라보곤 했다. 나는 개신교 교회보다 가톨릭 성당을 선호했다. - P9

그 다음에는 동정녀 마리아를 보았다. 보통 때처럼 푸른색이나하얀색, 황금색이 아니라 검은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동정녀 마리아인 줄 알아보지 못했다. 왕관도 쓰고 있지 않았다. 머리는 앞으로 숙이고, 얼굴에는 그늘이 지고, 손은 양옆으로 펼쳐져있었다. 발치에는 양초 토막이 있고, 검은 드레스 전체에 별처럼 보이는 것이 잔뜩 달려 있었다. 실제로는 동이나 주석으로 만들어진조그마한 팔과 다리, 양, 당나귀, 닭, 하트 모양이었다.
나는 이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잃어버린것들의 동정녀, 상실된 것들을 회복시켜 주는 동정녀 마리아였다. - P11

내 두 딸은 "그래서요?"라고 되묻곤 하던 시기를 거쳐 갔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죠?"라는 의미다. 첫째가 열두 살인가 열세 살이되던 즈음이었다. 그들은 팔짱을 끼고 나를, 자기들 친구를, 서로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래서?
나는 말하곤 했다. "그러지 마. 미칠 것 같아."
"그래서요?"
코딜리어 역시 같은 나이에 같은 짓을 했다. 똑같이 팔짱을 끼고똑같이 고정된 표정을 하고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응시하며, 코딜리어! 장갑을 껴라, 밖은 무척 추워. 그래서? 나는 너희 집에 갈 수 없어, 숙제를 끝내야 하거든.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코딜리어, 너는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여기도록 만들었어.‘
그래서?
그에 대해서는 대답할 말이 없다. - P12

여름이 오고 다시 가고, 그 다음에 가을, 다음에 겨울이 오고, 왕이 서거한다. 나는 점심시간에 뉴스에서 그 소식을 듣는다. 나는 눈덮인 거리를 따라 학교로 돌아가면서 생각한다. ‘왕이 서거했구나.‘
그의 생전에 일어났던 모든 일은 이제 다 지난 일이 되었다. 전쟁,
한쪽 날개만 남은 비행기, 우리 집 밖의 진흙, 그외 많은 일들이 나는 동전에 새겨진 그의 수천 개의 머리를 생각한다. 이제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죽은 사람의 머리다. 동전의 문장도, 우표도 바뀔 것이다. 왕 대신 여왕의 모습을 그려 넣을 것이다. 여왕은 이전에는 엘리자베스 공주였다. 나는 그녀가 훨씬 더 어릴 적의 사진을 보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녀에 대한 다른 기억도 있지만, 그것은 희미하게만 남아 있으며 내 마음을 막연히 불안하게 만든다. - P13

나는 무언가를 망각했다. 내가 망각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나는 이전에 다니던 학교를 오직 희미하게 기억할 뿐이다. 마치 그곳에 다녔던 것이 다섯 달 전이 아닌 5년 전 일인 것처럼. 나는 주일학교에 가던 것을 기억하지만 구체적인 것은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스미스 부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왜 그런지는 잊어버렸다. 나는 기절하던 것과 접시 더미에 대해서, 시내에 빠진 것과 동정녀 마리아를 보았던 것에 대해서도 잊어버렸다. 나는 내게 일어났던 모든 나쁜 일을 잊어버렸다. 비록 코딜리어와 그레이스와 캐럴을매일 만나지만 나는 이 모든 일을 다 잊어버렸다. 오직 내가 어렸을때, 다른 친구를 사귀기 전에 그들이 나의 친구였다는 것만을 기억할 뿐이다. 그들과 관련된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옛 전투의 날짜와같이 매끈한 책장에 작고 건조한 글자로 새겨진 문장. 그들의 이름은 주석에 있는 이름들, 마구 번지는 잉크로 성경책 앞장에 써 놓은이름들과 같다. 그런 이름에는 어떤 감정도 결부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먼 친척, 먼 곳에 사는 사람들, 내가 거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름 같은 것이다. - P14

그 시간은 사라져 버렸다.
이 사라져 버린 시간에 대해서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언급하지 않는다. 가끔씩 어머니는 말한다. "네가 거쳤던 그 나쁜 시기. 그러면 나는 혼란스러워진다. 어머니는 무엇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이 나쁜 시기에 관해 언급하는 것에 대해 막연한위협과 막연한 모욕을 느낀다. 나는 나쁜 시기를 거쳤던 그런 부류의 아이가 아니다. 나는 좋은 시기만을 경험했다. 6학년 학급 사진속에서 나는 활짝 미소를 짓고 있다. "조개처럼 행복하지." 어머니는 행복함을 그렇게 표현한다. 나는 조개처럼 행복하다. 딱딱한 껍질이 굳게 닫힌 조개처럼. - P15

부모님은 계속해서 집 안 공사를 한다. 아버지가 틈이 날 때마다망치질과 톱질을 무수히 한 끝에 지하층에는 서서히 방들이 만들어진다. 암실, 단지와 젤리와 잼을 보관하는 창고. 잔디밭은 이제 제대로 모양을 갖추었다. 부모님은 정원에 복숭아나무와 배나무를 심고,
화단 가득 아스파라거스와 열을 지어 심은 채소를 재배한다. 정원가장자리에는 꽃들이 풍성하다. 튤립과 수선화, 붓꽃, 작약, 패랭이꽃 국화, 각 계절에 나는 각종 꽃들. 이따금 내가 도와야 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부모님이 진흙 밭에 쭈그려 앉아 무릎에 진흙 얼룩을묻히면서 땅을 파고 잡초를 뽑아내는 동안 먼발치서 바라보고 있을뿐이다. 부모님은 모래밭에서 노는 아이들 같다. 나는 꽃을 좋아하지만 꽃을 피우기 위해 그런 노력을 들이고 흙투성이가 될 만큼 정성을 기울이지는 않는다. - P15

"4차원이라고?" 나는 되묻는다.
"시간도 차원이야. 시간은 공간에서 분리될 수 없는 거야. 우리는시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거지."
오빠가 말한다. 변화하지 않고 시간의 흐름에서 동떨어져 있는이산 물체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는 설명한다. 시공간은 곡선 모양이며, 이 곡선의 시공간에서 두 점 사이의 최단 거리는 직선이 아니라 그 곡선을 따라 그은 선이라고 한다. 또 시간은 늘이거나수축할 수 있으며, 어떤 장소에서는 다른 장소에서보다 시간이 빨리흘러갈 수도 있다고 한다. 일란성 쌍둥이 중에 한 명만 초고속 로켓을 태워 보내면, 그는 돌아와서 다른 쌍둥이가 자신보다 열 살이나더 나이 들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오빠는 말한다. 나는 그건 매우 슬픈 일이라고 말한다.
오빠가 미소를 짓는다. 우주는 공기가 주입되고 있는 점박 무늬풍선 같은 것이라고 오빠는 말한다. 각각의 점은 바로 별들이다. 별들은 서로에게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정말 흥미로운 질문은 우 - P43

주가 무한하면서 경계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무한하면서도 풍선처럼 경계가 있는 것인지 여부라고 오빠는 말한다. 내가 풍선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터질 때 나는 폭발음뿐이다.
오빠는 우주 공간은 대부분 비어 있으며 물질이란 정말로 딱딱한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단지 빠르거나 느리게 움직이고 있는게자리 잡은 원자들의 집합에 불과하다. 어쨌든 물질과 에너지는서로의 한 측면이다. 그것은 마치 모든 것이 단단한 빛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과학적 지식이 좀 더 있다면 벽을 공기처럼통과할 수 있을 것이고, 지식을 더 많이 갖게 되면 빛보다 빨리 움직될 수 있을 것이며, 그때에는 공간은 시간이 되고 시간은 공간이 되어 시간 속을 여행해 과거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오빠는 말한다.
이것은 오빠의 말 중에서 처음으로 내 흥미를 끌었다. 나는 공룡이나 다른 많은 것들, 예를 들면 고대 이집트인들 같은 것을 보고 싶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에는 뭔가 위협적인 요소가 깃들어 있다. 내가 정말로 과거 여행을 하고 싶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 P44

그녀의 수다스러운 문체는 진지하게 들리지 않는다. 나는 때로 내가 자신을 쳐다보는 줄 모를 때 코딜리어를 보곤 한다. 그녀의 얼굴은 잠잠하고 아득하고 무감각하게 보인다. 마치 그녀가 그 안에 들어 있지 않은 것처럼. 그러나 이내 코딜리어는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웃는다. 그녀는 말한다. "저 애들이 저렇게 소매를 걷어 붙이고 담뱃갑을 그 안에 넣는 거 너무 멋지지 않니? 저렇게 하려면 이두근이 있어야지!"
그러고는 평상시 모습으로 돌아간다.
시간을 재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나는 여건이 되면 호수에서 수명을 하고,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건포도와 땅콩버터와 꿀을 두껍게바른 크래커를 먹고, 내 또래 아이들이 없어 뚱한 표정으로 시간을보낸다. 부모님의 지치지 않는 활기도 안도가 되지 못한다. 부모님이 나처럼 퉁명스러우면, 아니 아예 더 퉁명스러우면 더 나을 것 같다. 그러면 적어도 나는 좀 더 정상적이라는 느낌이 들 것 같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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