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카와 나는 최선을 다해서 리디아 아주머니가 요청한 대로 새 진주인 제이드를 교육했지만 허공에 대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손을 무릎에 모은 채로 참을성 있게 앉아 있는 법도 몰랐거든요. 몸을 비틀고 꼬물거리고 발을 가만히 두지 못했어요
"여자들은 이렇게 앉아야 해." 베카가 시범을 보이며 말하곤 했죠.
"네, 임모르텔 아주머니." 그렇게 말하며 노력하는 시늉을 하더군요. 그러나 이런 시도는 오래가지 않았고, 금세 다시 구부정하니 앉아 무릎 위로 발목을 꼬고 앉았어요.
아르두아 홀에서 제이드가 처음 저녁식사를 할 때는 어찌나 부주의한지, 우리 둘이 제이드를 가운데 두고 앉아 보호해야 했어요.  - P458

C 현관의 젊은 두 아주머니는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걸 금세 깨달았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과는 말을 섞고 지내는 관계가 아니라 내게는 그 두 사람밖에 없었어요. 베아트리스 아주머니는 토론토에서 나를 개종하려 할 때는 그렇게 친절하더니, 내가 일단 여기온 후로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어요. 지나칠 때면 거리를 두는 미소를 지었지만 그게 다였지요.
생각해 보면 나는 두려웠는데 두려움에 좌우되지 않으려 애썼던거예요. 그리고 몹시 외로웠어요. 여기에는 내 친구가 하나도 없었고, 그곳 사람들과 연락할 길도 없었어요. 에이다와 일라이자는 머나먼 곳에 있었어요. 조언을 구할 사람도 없었어요. 설명서도 없이 무작정 내 힘으로 해 나가야 했어요. 가스가 정말로 그리웠어요. 백일몽으로 함께했던 일들을 꿈꾸었어요.  - P462

제이드는 몹시 칠칠치 못했어요. 공용 거실에 제 물건을(스타킹, 새컨습 탄원자 유니폼 벨트, 심지어 구두까지) 아무렇게나 두고 다녔죠. 화장실을 쓰고 물을 꼬박꼬박 내리지도 않았어요. 머리를 빗을 때 빠진 그 애 머리카락이 욕실 바닥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녔고, 세면대에서 치약을 발견하기도 했어요. 샤워도 허가되지 않은 시간에 자꾸해서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해야만 했어요, 그것도 여러 번 저도 이런 게 사소한 일이라는 건 알지만, 비좁은 데서 함께 살다 보면 문제가 쌓이기 마련이에요.
게다가 왼팔의 문신 문제도 있었어요. 하느님과 사랑이라는 단어가 십자가 형태로 그려져 있었어요. 그 애 말로는 참된 신앙으로 개종한 증표라지만, 나는 그 말이 의심스러웠지요. 한 번은 하느님이 ‘상상 속의 친구‘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흘린 적이 있거든요. - P464

그 밑에는 생물학적 아버지라고 적혀 있었지만, 그 이름 역시 편집되어 있었어요. 주석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현 소재 캐나다.
메이데이 요원으로 알려짐. 소재 불명.
내가 어머니를 닮았을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어요.
어머니 기억이 났느냐고요? 기억을 되살리려 애쓰기는 했지요. 기억해 내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과거는 너무 어두웠어요.
참으로 잔인한 것이죠. 기억이란 우리는 우리가 잊은 게 무엇인지 기억할 수 없잖아요. 우리에게 잊으라고 강요한 것도 여기서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척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잊어야 했던 것도미안해요, 나는 속삭여 말했어요. 어머니를 되살릴 수가 없네요.
아직은.
나는 어머니의 사진 위에 손을 얹었어요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느냐고요? 나는 그걸 바랐죠. 사랑과 온기가 이 사진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었어요. 예쁘게 찍힌 사진은 아니지만, 그건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이 사랑이 내 손으로 흘러오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었어요. 유치한 공상이죠, 나도 알아요. 그러나 그래도 위로가되었어요. - P471

문서의 마지막 문단 아래, 파란 잉크로 쓴 흔들리는 필체의 글이한 줄 쓰여 있었어요. 일급비밀. 아기 니콜은 현재 여기 길리어드있을 수 없는 일만 같았어요.
울컥 감사하는 마음이 복받쳤어요. 내게 여동생이 있다니! 하지만 덜컥 무섭기도 했어요. 아기 니콜이 여기 길리어드에 있다면 왜 모두에게 알리지 않은 걸까? 온 국민이 기뻐하며 대규모의 축하 행사가 열릴 텐데, 왜 나한테는 알려 주는 걸까? 그물이 내 몸을 옭아맨 느낌이었지만, 칭칭 몸을 감은 그물은 눈에 보이지 않았어요. 내 동생이 위험한 걸까? 그 애가 여기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그리고 저들은 동생을 어떻게 할까?
이때쯤은 내가 보도록 파일을 갖다 놓는 사람은 리디아 아주머니가 분명하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왜 그런 짓을 하는 걸까요? - P472

그리고 내가 어떻게 반응하기를 원하는 걸까요? 내 어머니는 살아있지만, 사형선고를 받은 몸이었어요. 범죄자로 취급되고 있었어요.
아니, 심지어 테러리스트였죠. 내 안에는 어머니가 얼마나 있을까요? 나는 어떤 면에서 더럽혀진 걸까요? 그것이 내게 전하려던 메시지였을까요? 길리어드가 나의 반역자 어머니를 죽이려 했으나 실패했다고 그러면 나는 기뻐해야 하나요, 유감으로 여겨야 하나요? 내충성심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요?
그때, 충동적으로 아주 위험한 짓을 했어요. 보는 눈이 없다는 걸확인하고, 혈통 파일에서 풀로 붙인 사진이 붙은 두 페이지를 뜯어내서 여러 번 접은 후 내 소맷자락에 슬쩍 넣은 거예요. 어쩐지 그사진들과 헤어지면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어요. 어리석고 무모한것이었지만, 내가 저지른 어리석고 무모한 짓이 그 일 하나뿐인 것도 아니었지요. - P473

리디아 아주머니의 집무실을 나와서 베카는 주간 근무시간을 채우리 도서관으로 갔고, 니콜과 나는 함께 다시 우리 아파트로 걸어
"우리는 자매니까, 우리끼리 있을 때는 아그네스 언니라고 불러도좋아." 
"알았어요. 그렇게 해 볼게요." 니콜이 말했어요.
우리는 거실로 들어갔어요.
"너한테 말해 주고 싶은 게 있어. 잠깐만 기다려."
그리고 나는 위층으로 올라갔어요. 혈통 파일에서 몰래 빼낸 두페이지를 작게 접어 매트리스 밑에 숨겨 두고 있었거든요. 나는 돌아와서 조심조심 다시 펼쳐서 판판하게 만들었어요. 내가 테이블에올려놓자 니콜도 (나처럼) 우리 어머니의 사진에 손을 얹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어요. - P485

"감사기도를 올려야 해." 아그네스가 경건한 아주머니의 말투를쓰는 걸로 보아, 아직 나한테 화가 난 모양이었어요. 우리 언니라고생각하면 이상했어요. 우리는 서로 너무나 달랐거든요. 그렇지만 아직 그런 걸 알아볼 시간을 가진 적이 없으니까요.
"언니가 있어서 기뻐요." 화해하려고 내가 말했어요.
"나도 기뻐" 아그네스가 말했어요. "그래서 감사를 드리는 거야."
하지만 별로 고마운 말투가 아니었어요.
"저도 감사를 드려요." 내가 말했어요. 그게 그 대화의 끝이었어요.
나는 언제까지 이걸, 이런 길리어드식 말투를 유지해야 하느냐고 물어볼까 생각했어요. 이제 도망 길에 올랐으니까 우리 다 집어치우고자연스럽게 행동하면 안 돼요? 하지만 어쩌면 언니에게는 이게 자연스러운지도 몰라요. 어쩌면 다른 방식은 모를 거예요. - P518

막상 영원히 길리어드를 떠나려 하니 질라와 로사와 베라와, 내가예전에 살던 집과, 타비사가 죽도록 그리워 향수병에 걸릴 것만 같았어요. 오히려 초반에는 어머니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엄마 없는 아이가 된 느낌이 들었지요. 리디아 아주머니도 엄하기는 했지만 일종의 어머니였는데, 이제 다시는 보지 못할 거예요.
리디아 아주머니는 니콜과 내게 우리 진짜 어머니가 살아 있고, 캐나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셨지만, 거기로 가는 길에 내가죽을지 살지 알 수가 없었어요. 죽는다면 이 생애에서는 어머니를 끝내 만나지 못하겠지요. 그 당시에 어머니는 그저 찢어 낸 사진 한장에 불과했어요. 부재였고, 내 안의 어떤 간극이었어요. - P526

알코올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운전을 잘했고 빨랐어요. 길은 구불구불했고 부슬비 때문에 번들거렸어요. 몇 킬로미터가 스쳐 지나갔어요. 달이 구름 위로 떠올라 우듬지의 검은 윤곽선을 은빛으로 물들였어요. 이따금 집이 나타났는데, 어둡거나 불이 몇 개밖에 켜져있지 않았어요. 나는 불안을 잠재우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어요. 그러다가 잠이 들고 말았어요.
나는 베카의 꿈을 꾸었어요. 베카가 트럭 앞자리 내 바로 옆에 앉아 있었어요. 볼 수는 없었지만 거기 있다는 걸 알았어요. 꿈속에서 나는 베카에게 말했어요.
"그러니까 결국은 너도 우리와 함께 왔구나. 정말 행복해"
그러나 그 애는 대답이 없었어요. - P526

흘러가는 시간을 셌다. 몇 시간, 몇 분, 몇초인지. 내가 보낸 연락책들이 길리어드 붕괴의 씨앗을 가지고 멀리까지 갔으리라 기대할만한 근거가 충분했다.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아르두아 홀 최고 기밀의 범죄 파일을 복제해 놓은 것이 헛되지 않았다.
버몬트의 버려진 하이킹 도로로 들어가는 입구 옆에서 진주 소녀배낭 두 개가 발견되었다. 그 안에는 진주 소녀 드레스 두 벌과 오렌지 껍질 약간, 진주목걸이 하나가 있었다. 수색견을 동원해 그 지역을 뒤졌다.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
관심을 딴 데로 돌리는 장치였으니, 몹시 방해가 되었을 것이다. - P558

현관 A와 현관 B에 사는 아주머니들이 물이 부족하다고 불평하자 설비부서에서 조사를 시작했고, 물탱크 속에서 불쌍한 임모르텔아주머니가 배출구를 막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근검절약이 몸에 밴아이는 다른 사람이 나중에 입도록 겉옷을 벗어두었다. 그 옷은 단정히 개어져 사다리맨위 가로대에 놓여 있었다. 속옷은 입고 있었던 것은 조신함 탓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임모르텔이 했을 법한 행동이었다. 그녀를 잃은 것을 내가 슬퍼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말라.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자발적인 희생이었음을 잊지 않는다.
이 소식으로 또 한 차례 무성한 추측이 나왔다. 임모르텔 아주머니가 살해당했는데, 제이드라는 행방불명이 된 캐나다인 신입보다그런 짓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없다는 소문이 돌았다.  - P558

그분이 틀림없다는 느낌에 두 팔을, 성한 팔과 낫고 있는 팔을 모두 뻗었고, 우리 어머니는 내 병상 위로 허리를 숙여서 우리는 한 팔로 서로를 포옹했어요. 그분은 다른 팔로 아그네스를 안고 있어서한 팔만 썼어요. 그리고 그분이 이렇게 말했어요.
"내 소중한 딸들."
어머니의 냄새가 났어요. 그건 마치, 또렷이 들리지 않는 목소리의 메아리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어머니는 작게 미소 짓더니 이렇게 말했어요.
"물론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 너무 어렸으니까."
그래서 내가 말했어요.
"네, 기억 안 나요. 하지만 괜찮아요."
그리고 언니가 말했어요.
"아직은 기억이 안 나요. 하지만 기억날 거예요."
그리고 나는 다시 잠들었어요. - P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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